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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6월 13일 토요일

소국적 분파주의(narrow sectism)

살아오면서 참 잘된 일이었다고 생각하는 일들이 많은데, 그 중에 하나는 일찍이 남북한 문제와 관련된 이념문제에 관점을 붙들어 놓은 일이었던 것 같다. 어차피 다른 일들이 차지할 삶의 공간을 이념문제가 자리를 잡으며, 생각해도 그만이고, 생각하지 않아도 그만인 수많은 일상에 생각을 낭비하지 않은 일은 나름 성공적이었다는 생각을 한다. 특히 그런 생각이 들때가 있는데, 좁은 관점이 발단이 된 내부투쟁에 시달리는 지인들이나 정치판을 볼때면 공리적 관점으로는 우려스러운 면이 있고, 개인적으로는 어느 정도 자유로운 처지(그래서 많은 것을 잃기도 했지만)를 다행스럽게 생각하기도 했던것 같다..

언젠가 조그만 일터에서 매우 권력적인 성향을 가진 비공식적인 보스가 있었다. 그 보스가 하는 일이 일터의 목적이나 분위기에 도움이 안된다는 믿음과 젊은 협기로 보스와 충돌했는데, 보스는 황급히 주변인들을 끌어모아 분파를 형성하고 있었다. 그 당시 보스가 권력적인 관점을 가지지 않고, 처음부터 주어진 일에 합당한 목적을 잊지 않았으면 좋았을것을 사태는 점점 산으로 가고 있었다. 나 역시 산이 있으니 산에 오르는 형국이 되어버린 것은 물론이다.

사실상 계파주의나 분파주의 이면에는 중요한 목적을 잃어버린 목적전치현상 (과정이 목적이 되어버려 본래의 목적을 잃어버리는 현상)이 있고, 공리적인 목적보다는 개인적인 이익을 지킬려는 탐욕이 지원하고 있다는 사실은 많은 이들이 알 수 있을것 같다. 그래서 원대한 이상과 넓은 관점이 필요하다는 사실도 많은 이들이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현실에서 부대끼다 보면 누구나 산이 있으니 산에 오르는 현상이 생기는데, 그런 소국적(小局的)분위기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많은 집중력이 필요하겠다는 생각도 든다.

유대인 출신 독일정치학자 한나 아렌트(Hanna Arendt 1906 - 1975)는 인간이 자신의 인간성을 보존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은 하나의 공동체에 속하는 것이라고 해서 정치공동체를 만들지 못하여 박해를 받은 유태인들의 책임론을 역설했다. 그러나 아렌트가 말하는 선량한 목적을 가진 공동체랑 자신들의 개별적인 이권(利權)이나 관점이 협소해서 또는 싸움을 위한 싸움을 위해 작은 공동체를 창설하는 분파주의는 치사스러움의 정도에 있어서 비교불가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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