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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2월 11일 화요일

창살없는 감옥, 의문없는 나라 / 알튀세르


어느 구태의연한 직장상사가 부하직원에게 윗사람의 지시는 맹목적으로 따르라고 지시하고 있었다. 부하직원들의 창조성이 필요없는 구태의연한 직장으로 가늘고 긴 생명력을 유지하고자하면 모르되, 동기부여와 혁신을 도구삼아 '중단없는 전진'을 하겠다는 목적이 있었으면 가장 무능한 직장상사가 되었을것 같다.

프랑스의 마르크스주의 철학자인  알튀세르( Louis Althuser 1918 ~1990 )는 고전경제학자들이 이론을 구성하기위해 사용한 다양하고 폭넓은 개념인'노동'이라는 개념을, 마르크스는 일반적이고 계량적인'노동력'이라는 개념으로 변환시켜서 그 당시 사회문제의 해답을 구했다고 말한다. 마르크스의 '노동력'이라는 개념에 담겨진 질문에는 그 당시 만연했던 자본주의의 고민이 담겨져 있었고, 그런 고민이 담긴 질문으로 사회문제해결의 실마리를 풀어나갈려고 했다는 것이다.

사회는 당시에 직면한 문제에 대해서 끊임없이 의문을 품고 그 해결책을 구함으로써 발전해 나가는듯 하다. 사회에 의문을 품고 의견을 제시하는 이는 반 사회적인 인물이 아니며 미래와 후손들의 번영을 위해서 애쓰는 사람인지도 모른다. 의문은 언젠가 해답을 내놓는듯하다. 지금 이 시대의 사회가 직면한 고민에 의문을 품어 본다면 사회주의도 자본주의도 답이 될 수 없다는 해답이 나올듯 하다.

생각하는 사람의 인식의 폭과 깊이를 바탕으로 의문의 폭과 깊이가 결정되고, 의문의 폭과 깊이에 의해서 해답의 폭과 깊이가 결정되는걸로 봐서는 한반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앓고 있는 좁은 인식의 폭과 얕은 인식의 깊이를 생각해봐야 할 필요가 있는듯 하다.

좌파와 우파의 프레임에 막혀버린 정치사상의 폭과 깊이, 북한이라는 존재에 막혀버린 세계화의 폭과 깊이,의문과 비판을 제시하는 능력을 키워주지 못한 교육,완전한 자유를 누리지 못하는 언론등의 문제는 시차를 두고 미래의 번영에 역기능을 할것같다.

사회변화에 따른 의문을 제시하지 못했던 마르크스주의의 패망은 고민하지 않는 믿음이 얼마나 무용(無用)한것인가를 잘 보여주는 예가 되기도 하는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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