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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1월 8일 목요일

김구선생에 대한 일본의 암살공작

해주사람 황학선은 독립운동 이전에 상해에 온 청년으로, 우리 운동에 가장 열정이 있어 보였다. 그래서 각처에서 상해로 온 지사들을 황의 집에 숙식케 했는데 이것을 기화로 하여 황은, 임시정부는 성립이 며칠도 안된 정부라며 악평하기 시작했다. 그 때문에 새로 온 청년 중에, 동농 선생과 같이 경성에서 열렬히 운동하던 나창헌등이 그의 독계에 걸려 정부에 대해 극단적인 악감정을 품기에 이르렀다.

그리하여 김기제, 김의한등 십수명이 임시정부 내무부를 습격한 사건이 발생했다.그러자 당시 정부를 옹호하던 청년들이 극도로 분격하여 서로간에 육박전이 벌어져, 나창헌, 김기제 두 사람이 중상을 입었다.- 중략 - 경무국에서는 이 분란의 원인을 깊이 조사해보았는데, 그 결과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 김등의 배후에는 황학선이 활동자금을 공급했고, 황의 배후에는 일본 영사관에서 자금과 계획을 제공한 것이었다.  

한번은 박모라는 우리 청년이 경무국장 면회를 청해 만나보았는데, 초면에 눈물을 흘리며 품속에서 단총 한 자루와 왜놈이 준 수첩 하나를 내어 놓으며,자기는 며칠 전에 본국에서 생계차 상해에 오게 되었다면서, [초두에 일본 영사관에서 내 체격이 튼튼한 것을 보더니, 김구를 살해하고 오면 돈도 많이 주고, 본국 가족들은 국가토지를 주어 경작케 하겠다, 그러나 만일 불응하면 '불령선인'으로 취체한다고 하기에 그러겠다 하고, 불조계에 와서 선생을 멀리서 보기도 하고, 독립을 위하여 애쓰시는 것을 보았습니다.그렇지만 나도 한인의 한 분자로 어지 감히 선생을 살해할 마음을 품을 수 있겠습니까? 그런 까닭으로 단총과 수첩을 선생께 바치는 것입니다. 그러고 중국 어디 지방으로 가서 상업이나 경영코자 하나이다.]

- 백범일지 - 

임시정부는 내내 일본의 공작으로 시달렸고, 김구선생은 암살위협을 당하는 일이 많았다. 가장 측근에 동포들을 심어서 암살을 시도했는데 모든 위험을 극복하고 해방이 되어 동포로부터 암살당한 김구선생의 팔자도 기구하고 가슴아픈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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