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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8월 3일 화요일

경제학과 실증성 / 프리드먼

https://hyeong-chun.blogspot.com/search?q=%EA%B2%BD%EC%A0%9C%ED%95%99

https://hyeong-chun.blogspot.com/search?q=economics


경제학이 실증성을 가져야 한다는 경제학자들도 있고, 경제학이 규범적 가치판단을 해야 한다는 경제학자들도 있다. 이념적인 스펙트럼으로 표현하자면 전자는 우파적인 성향을 띄고 있고, 후자는 좌파적인 성향을 띄고 있다. 아무래도 규범적인 판단은 현실을 개선 할려는 의지를 가져야 하기 때문에 좌파적인 성향을 띄는 것이 불가피해 보인다. 인간 본성에 담겨 있는 평등사상이 개선의지를 격려하는 것이다.

 

통계학이나 계량적인 방법을 많이 사용하는 경제학이 실증과학이라는 의견들이 많지만 틈틈이 공학을 함께 공부하는 내 입장으로는 그래도 규범적인 가치판단이라고 생각한다. 현실을 개선하려는 의지를 가진 사회과학의 영역을 벗어날 수 없다는 의미다.

 

경제학도 꽤 이념적인 편 가르기에 시달리는 학문인 것 같다. 아담 스미스, 프리드먼이나 맨큐교수 등은 우파적 성향의 정치인들이 열심히 인용하고, 케인즈나 피케티, 폴크루그먼, 장하준 교수등은 좌파적 성향의 정치인들이 많이 참조한다. 물론 케인즈에 관해서는 현대경제가 벗어날 수 없는 기본적인 규범(정부의 간섭)을 설정한 경제의 바이블로 여겨지고 있다.

 

프리드먼의 경제이론은 비교적 최신형이라서 그런지 많은 보수 정치인들이 인용을 한다. 그러나 규범성을 벗어날 수 없는 사회과학의 특성상, 현실에 얼마나 부합한지를 먼저 고려해야 할 것이다.

 

프리드먼의 주장은 지난 반세기 동안 가장 영향력 있는 경제 논문인, 1953년에 출판된 [실증 경제학의 방법론(The Methodology of Positive Economics)]의 핵심이다. 이 글에서 프리드먼은 경제학이, 물리학의 과학적 표준과 비숫한 것을 가져야 한다고 하면서, “무엇이 되어야 하는지”가 아니라 “무엇인지”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 중략 -

 

물론 사회과학자들은 물리학자나 화학자만큼 쉽게 표본을 구할 수 없다. 물리학자나 화학자는 보통 실험실에서 연구하는 것의 표본을 채취하여 실험할 수 있으며, 그들의 이해를 테스트하는 과정에서 더 많은 데이터를 얻는다. 사회과학자들은 일반적으로 실험을 할 수 없다. 실험을 못하면 가설을 테스트할 새로운 증거가 부족하기 때문에 특별한 문제를 야기한다고 프리드먼은 말했다.

 

- 중략 -

 

여기서 프리드먼이 말하는 것은 소위 “그것은 우리를 달에 데려다 줬어.”라는 논리이다.

 

- [ FORECAST ] BY MARK BUCHANAN -

 

지금은 달에 갈 시대를 넘어섰다. 경제학은 새로운 인간의 삶을 연구해야 하는 사회과학으로서 규범성을 벗어날 수도 없을뿐더러 미래를 위한 가치를 지닌 사회과학이다. 지나고 나니 프리드먼의 경제학보다 보다 케인즈 경제학이 인간을 달에 데려디 주는 역할을 많이 한 것 같다는 나같은 일반인의 생각에 동조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 같다.   

2016년 8월 29일 월요일

경제학지식의 진보

몇년전 대학입시를 준비하는 학생들의 선택과목인 경제와 법을 교습한적이 있었다. 학창시절부터 꽤 오랫동안 경제원론이나 미시경제학과 거시경제학 서적을 꽤 많이 읽었던것 같다. 조순교수의 경제원론부터 시작하여 수험용경제원론의 바이블 같았던 박홍립교수의 경제원론은 수십번을 읽었던것 같다. 이학용교수의 미시경제학이나 정운찬교수의 거시경제학까지 경제수학까지 따로 공부하면서 줄기차게 읽었는데, 요즘 대학입시용 경제학은 차원이 달랐다. 풍부한 내용을 얇은 교재속에 함축시켜 놓아서 많이 어려웠다. 공부 잘하는 학생과 진검승부를 겨룬다면 승리를 장담할 수 없을 정도였다. 이후 깨달은 바가 있어서 좀 더 최신의 경제관련서적을 하나 하나 사서 읽기 시작했다. 대충 즐겨봤던 서적은

1.NEW IDEAS FROM DEAD ECONOMISTS
2.CAPITAL IN THE TWENTY - FIRST CENTURY
3.THE ACCIDENTAL THEORIST
4.FORECAST
5.THE LOGIC OF LIFE
6.THINKING FAST AND SLOW
7.KEYNES KARA KURUGMAN MADE 14NIN NO MONOGATARI(일본 경제저널리스트가 쓴 책이라서 원 제목이 일본어다.)
8.경제학강의 / 장하준

등이다.

많이 발췌해서 글에 인용을 했는데, 책 내용의 선진성에 비해서 한반도의 현실이 많이 모자른듯 하여서 좌절했다. 더구나 '사'자 들은 시험을 준비하겠다고 시간과 비용을 투자해놓고 저따위 정말 필요한 책만 읽었다. 그 이후 좀 더 현장의 현실을 익히고자 3년전(10월달이면 3년이다) 낡은 지프를 몰고 경기도의 한공단으로 구직을 하면서 다녔는데, 역시 현실은 어두웠고, 밝은 미래는 보이지 않았던 것 같다. 게다가 3년을 현장경험하면서 지적인 활동을 부차적인 것으로 미루어놓다보니 다시 그 시절의 매우 '보수반동적'인 두뇌로 퇴보하는듯 하였다. 한 편으로는 만약에 경제관료를 비롯하여 경제정책가들이 끊임없는 학습을 하지 않는다면 요즘 고등학교 3학년의 경제학에 대해서도 장담할 수 없는 사태가 올 가능성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구나 교육관료의 반교육적실언사건이 있고나서는 더욱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한 편으로는 이렇게 진보해도 부족한 지식과 응용의 공간에서 북한같은 경우는 경제개방을 하여 경제성장을 시작할려고 해도 인재의 부족으로 좌절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곤했다. 

2014년 9월 13일 토요일

경제학의 이념과 가치관


오래전 직장 동료들 사이에 양편으로 나뉘어 분쟁이 깊어지고 있었다. 상황을 근본적으로 이해할려고 애쓰면서 중립을 지키고 있었는데,  많은 식구들의 생계가 달린 곳을 유지해야 한다는 압박감때문에 마음이 무거웠다. 그러니까 어느 한 쪽에 기대어 개인의 이익을 취할려는, 흔히 기회주의자라고 불리는 수동적인 위치가 아닌 ,끝까지 직장을 살리고 유지해 나가야하는 능동적인 책임감이 마음을 짓누르는 상황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다수의 분란과 논쟁은 개인의 고뇌를 극(克)하고도 남았던것 같다. 시간이 흘러서 개인적인 일로 이념문제의 최전선(最戰線)에서 내가 좌파의 입장으로 생각하면 좌파의 위치에 있는듯 하고, 우파의 입장으로 생각하면 우파의 입장에 있는듯 한 그 때 그 곤란한 상황을 좀 더 크게 경험하는 아주 나쁜 기회를 얻었는데,지금까지도 어린 마음에 겪은 작은 일이나 큰 일이 두고 두고 마음의 상처로 남아 있는것 같다. 

그 때 그 직장에서 중립적인 위치에서 꼿꼿하게 입장을 들이미는 나를 자기 편으로 끌어들이지 못한 동료 한 명이  "당신 왕따 아니냐 아니면 당신이 양쪽 모두를 왕따 시키는거 아니냐"하고 일갈(一喝)하는 취중행패를 부리고 퇴사를 했다.      

미국의 철학자 퍼스(Charles Sanders Peirce 1839 - 1914)는 인간의 정신은 태어날때부터 형성된 지식, 관습, 신념등에 의해서 성립되며 현재의 모든 인식들은 과거의 인식들의 제한을 받는다고 말한다. 그래서 문제의 근원이 되는 과거의 인식들을 찾는 작업을 해 왔는데, 개인의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성공적인 결과를 보기도 하고,거국적으로 문제는 계속되고 있는 상황때문에 '참을 수 없는 내 존재의 가벼움'에 대한 비애를 느끼기도 하는듯 하다.

다음은 장하준 교수의 [경제학 강의]에 담겨 있는 구절이다.

다양한 경제이론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만 힘 있는 사람들이 "대안은 없다."라고 할 때(마거릿 대처가 큰 논란을 불러일으킨 정책을 실행하면서 말했듯) 그것이 잘못 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이른 바 '적대적 분파들' 사이에 얼마나 공통점이 많은 지를 알게 되면,모든 것은 부분적으로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는 것은 부분적으로 서로 다른 도덕적, 정치적 가치관에 근거하기 때문임을 이해하고 나면, 경제학을 제대로 알게 되고, 다시 말해서 옳고 그름이 확실한 '과학'이 아닌 정치적 논쟁으로서 경제학을 토론할 자신감을 얻게 된다. 그리고 일반 대중이 이런 문제에 관한 의식을 확실히 드러낼 때에야 비로소 젊은 경제학자들이 과학적 진리의 수호자를 자청 하면서 지적인 으름장을 놀 생각을 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다음은 과학적 진리를 주장하며 '으름장'을 놓는다고  나름대로 맨큐교수를 비평했던 내용이다.  


서로 다른 도덕적 정치적 가치관이란 무엇일까. 그것도 역시 좌파와 우파의 이념적 대립과 관계된 가치관일까. 아니면 직장을 페쇄시키고 모두 흩어져서 경제적인 곤란을 겪는 상황을 막기위한 노력처럼, 국가와 사회의 성장과 발전을 지켜나가기 위한 '유기적인 통합성'을 추구하느냐 그렇지 않느냐 하는 가치관일까.하는 문제에 대해서 생각을 해봤다. 아마도 한국에서 경제학을 공부하는 수많은 경제학도들은 '서로 다른'이란 의미를 '좌파와 우파의 대립'이란 의미로 받아들이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퍼스의 말대로 확고한 과거의 인식의 제한을 받기 때문에 그럴것이라고 생각한다.

복지논리같은 것이나 위에서 인용한 피케티교수를 옹호하는 입장은 좌파 우파 논리에 근거하고 있다기 보다 좀 더 발전적이고 정의로운 모습으로 한국사회의 경제적인 구조가 흘러가기를 기대하는 입장인데, '개선을 위한 노력'과  '어느 편에 서기 위한 시도'는 명확하게 구분이 되어야 할 것 같다.

공리(共利)를 위해서라면 이념적인 왕따나 학문적인 왕따를 각오해야 하는 것이 한국의 현실인듯 하다. 그만큼 이념의 골이 깊은듯 하다. 인용한 장하준 교수의 글 속에 담긴 '서로 다른 도덕적 정치적 가치관'이란 단어들을 보자마자 이념논쟁을 떠올리지 않는 한국사람은 없을 것 같다.   

2019년 3월 1일 금요일

보편적 교양의 필요성 / 장하준

좀 연령대가 있는 정치인이 아무런 죄책감없이 비정상적인 말과 행동을 하는 경우가 많다. 오랫동안 밑바닥 인생을 살아 온 경험으로는 고정고객을 확보할 수 있는, 말하자면 정치적 이익을 남길 수 있는 마케팅활동임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곤 한다. 정치서비스의 수요자인 고객(국민)들의 정치적 수준을 온 몸으로 체득하며, 누구보다  이런 상황들을 종합적으로 이해하고 있는 중이다. 선거에 의해 정치인을 선택하는 한 표는 모두에게 평등하게 한 표씩 주어지기 때문에 사회발전과 개선을 위한 의무감이 없어도 '선동'하여 표만 끌어내면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목적을 달성하게 된다. 

요즘들어 아무나 붙들고 독서와 공부를 권하는 습관이 생겼다. 생활을 개선시키거나 좋은 직장에 취업을 하는 목적이 아닌 '인간다운 삶'을 위해서 '독서와 공부'는 중요하다. 특히 인문철학, 정치, 경제학적 지식이나 사고의 능력에 있어서는 학력의 평준화가 일찌감치 이루어진게 한국의 현실이기도 한 것 같다. 학력과는 상관없이 생각이 없다는 의미다. 오랫동안 간간히 이념문제와 더불어 기성세대의 사고영역에 대해서 비판해 왔지만 이념이나 출세로 일관된 관점은 목적하는 것 외에 다른 곳으로는 눈을 돌리지 못하게 하는 '전문성'을 이룬 것 같다. 

경제문제나 정치심리들을 말하는데, 나같은 비전문가의 분석은 어느 정도 맞을 수 있을까. 전문가와 일반시민들 중 누구와 마음을 연 토론이 가능할까. 많은 시민들이 한 표는 가지고 있으나 모든 정치경제현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 표는 어떤 정치인을 선출하고, 그 정치인은 어떤 정책을 내놓을까. 상상을 초월하는 이상한 말을 하는 정치인들중 법조인 출신들이 있는데, 법 말고는 아무것도 모르는 것이 아닐까. 국민 누구나가 최소한의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을 교육받아야 자신의 권리 수준을 높일 수 있지 않을까. 

Korea used to send its bureaucrats for extra training to - of all places - Pakistan and the Philippines untill the late 1960s. Pakistan was then a 'star pupil' of the World Bank, while the Philippines was the second-richest country in Asia after Japan. Years ago, as a graduate student, I had a chance to compare the early economic planning documents of Korea and India. The early Indian plans were cutting-edge stuff for their time. They were based on a sophisticated economic model developed by the world-famous statistician Prasanta Chandra Mahalanobis. The Korean ones, I am embarrassed to say, were definitely written by Professor Winter's usual complement of third-and fourth-raters'. But the Korean economy did far better than the Indian one. Perhaps we don't need 'first-best economists' to run good economic policy.

Indeed, Professor Winter's first-best economists are one thing that the East Asian economies did not have. Japanese economic officials may have been 'first-best', but they were certainly not economists - they were mostly lawyers by training. Until the 1980s, what little economics they knew were mostly of the 'wrong' kind - the economies of Karl Marx and Friedrich List, rather than of Adam Smith and Milton Friedman. In Taiwan, most key economic bureaucrats were engineers and scientists, rather than economists as is the case in China today. Korea also had a high proportion of lawyers in its economic bureaucracy  until the 1970. The brains behind President Pakr's Heavy and Chemical Industrialisation (HCI) programme in the 1970, Oh Won-Chul, was an engineer by training.

한국은 1960년대 말까지 관료들을 (많고 많은 곳 가운데 하필이면) 파키스탄과 필리핀으로 보내 추가 교육을 시켰다. 파키스탄은 당시 세계은행의 '촉망받는 학생'이었고, 필리핀은 아시아에서 일본 다음으로 부유한 나라였기 때문이다. 나는 오래전 대학원생이었을때 한국과 인도의 초기 경제 계획 문서를 비교할 기회가 있었다. 인도의 초기 계획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통계학자 프라산타 챤드라 마할라노비스가 개발한 정교한 경제학 모델에 기초한 것으로, 당시로는 최첨단을 달리는 것이었다. 반면 한국의 계획은 창피한 이야기지만, 윈터스 교수가 말한 '흔히 보는 삼류, 사류 경제학자들'이 입안한 것이었다. 그러나 한국 경제는 인도 경제보다 훨씬 높은 성과를 거두었다. 좋은 경제 정책을 운용하는 데에는'일류 경제학자'가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다.

사실 동아시아 국가들은 윈터스 교수가 말한 '일류 경제학자들'을 보유하고 있지 않았다. 일본의 경제 관료들이 '일류'였는지는 모르지만, 분명 경제학자는 아니었다. 이들은 대부분 경제학 교육을 받지 않은 법대 출신들이었다. 198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이들이 그나마 알고 있는 경제학이라는게 대부분 '잘못된' 종류였다. 이들이 배웠던 경제학은 에덤 스미스와 일턴 프리드만의 경제학이 아니라 카를 마르크스와 프리드리히 리스트의 경제학이었다. 대만의 경우에는 대부분의 경제 관료들이 경제학자들이 아니라 공학도나 과학자들이었다. 이것은 오늘날 중국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한국도 역시 1970년대 이전에는 경제 관료 가운데 법대 출신의 비율이 높았다. 1970년대 박정희 대통령의 중화학 공업화 프로그램을 진행한 브레인인 오원철은 공학자였다.

- HA-JOON CHANG의 [BAD SAMARITANS]-

저번글에서도 밝혔지만 한국이 급속한 경제개발을 한 배경에는 경제학자나 경제관료들의 역할 말고도 지도자의 일관된 장기경제정책과 경제를 일으키고자 하는 국민들의 공리적인 공감대가 형성되어 았었던 것이 주효했던 것 같다. 이 점은 파키스탄이나 인도, 필리핀하고는 좀 다른 점이 있는듯 하다. 인도나 파키스탄은 사회분열적 현상이 강했으며 우습게도 한국은 이념적인 통합체로서 북한과의 체제경쟁이 국민통합에 순기능을 했던 점도 있는듯 하다. 지금은 체제경쟁의 상대가 없어져서 '빨갱이'논란 자체가 비정상적인 논리가 되었음은 물론이다.

내 자신이 북한문제에 대해서 얼마나 집착을 하고 살았는지 20대 중반에 학교 졸업논문 제목이 [북한의 테크노크라트]였다. 당시 지도교수님은 좀 의외라고 생각했는지 다시 한 번 함께 생각해보자는 말씀을 하셨는데, 그 교수님의 주된 연구 분야가 필리핀 정치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교수님이나 내 자신이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문제'에 정신에너지를 쏟고 있었던듯 하다. 북한은 강한 이념적 성질때문에 테크노크라트(technocrat)가 존재하지도 않았으며 필리핀은 법조인 출신 지도자였던 마르코스와 그를 따르는 이상한 정치인들때문에 한국이 경제성장하는 속도와 비숫하게 망가져 가고 있었다. 재미있는 사실은 마르코스가 매우 영리하여 20대에 자신이 연루된 사건을 스스로 변호하여 무죄를 끌어낼 수 있었다고 한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공리적인 마음이 없는 정치인은 '국가와 사회공동체의 불필요악'인듯 하다.

이야기가 좀 다른 곳으로 흘렀는데, 공리적인 지도자는 공리적인 국민이 만드는듯 하다. 국민이 공리적인 마음을 갖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교양이 필요한 것은 물론이다. 이념적인 냉전시대에 점점 선명해졌던 자본주의의 색깔은 '이익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는 분위기로 흘러갔음은 물론이다. 

2020년 9월 1일 화요일

독서의 중요성과 경제학


몇 일전 Dwight H.Perkins외 3인공저의 [ Economics of Development ]란 경제학 원서 두 권을 구입했다. 책의 표지에는 NOT FOR SALE IN THE UNITED STATES OR CANADA라고 씌어 있었다. 주류 경제학의 관심사는 주류 국가의 경제이기 때문에 북한과 같은 저개발국가 경제의 현재와 미래를 고려하기 위해서는 필요한 책이기는 하나 보기 드믄 책이기도 하다.

나도 몇 일전까지 Paul Krugman 교수의 [The return of depression economics]을 읽고 있었다. 책 속에는 일본 경제가 장기 불황을 맞은 이유를 노령화와 관계되어 있다고 적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었다. 분명히 그렇다 요즘 한국사회에서 코로나 사태와 그에 따른 경제침체에 보수적인 종교와 연장자들이 크게 기여한 면을 보면 곧 한국도 일본의 길을 갈 것이라는 예측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책을 사오면서 북한의 김정은 위원장이 김여정 부부장에게 현장권력을 위임한 이유를 생각해 보았는데, 배후에서 국정전반에 관한 아카데믹한 판단을 위해서 노력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했다. 북한정부의 사정이야 내가 알 수 없지만 5분이라도 시간이 있으면 끊임없이 독서를 하는 내 습관과 관점을 투사(projection)해서 내린 결론이다.

젊은 사람들은 미래에 관점을 두기 때문에 바쁘고, 생각은 열려 있다. 그러나 노화가 시작되면 지적인 탐구에 대해서 마음의 문을 먼저 닫아 버린다. 그렇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연장자들은 자신들의 지적인 탐구능력이 현저하게 감소해 간다고 착각을 한다.

나중에 언급하겠지만 노인이 되면 머리가 나빠진다는 가설은 망상이다. 습관이 나빠질 뿐이다. 그리고 그 나쁜 습관중의 하나는 한국사회가 다방면의 독서를 중요시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내 경험으로는 학력이 높을수록 입시위주의 교육이나 교과중심의 독서로 부터 오는 아집과 편견이 심할 수도 있다는 생각도 한다.

사실 불황은 여기서부터 시작되었다.

북한의 엘리트들은 이념교육과 군사교육만 받았고, 일본과 한국의 엘리트들은 수험위주의 교육만 받았다. 그 교육의 실용성이 없어지는 순간에 전혀 가치 없는 투자가 되었고, 장기적으로 국가발전을 퇴행시키기도 한다. 게다가 종교인이 그 본연의 역할을 못하고 정치엘리트가 되겠다고 나서면 참혹한 결과가 생긴다.

베블런은 또한 수요와 공급이 점진적으로 균형을 이룰 수 있다는 한계론자들의 주장을 공격했다. 구제도학파 경제학자들은 선언한다. 균형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현실을 떠난 경제학자들의 공상 에서나 존재할 뿐이다. 경제란 항상 변하는 것이다.

어쩌면 베블런은 건설적 이론가였다기보다 파괴적 비평가였는지도 모른다. 그는 어떻게 경제학을 재건할지에 대해서는 자신이 없었으며 마셜과 그의 제자들이 경제학을 망쳐 놓았다는 사실만은 확신했다. 경제학자들은 사회학자, 인류학자, 심리학자들과의 폭넓은 교류를 통해서만이 현실성 있고 쓸만한 이론을 개발할 수 있다고 베블런은 생각했다.

- [NEW IDEAS FROM DEAD ECONOMISTS] by Todd G. Buchholz -

2014년 11월 14일 금요일

인간의 경제이론


가끔 경제학자의 경제예측은 전혀 맞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실제로 한 시대의 주류적인 경제학자들의 이론이 그 시대의 경제적 풍토를 이끌기도 하고, 적절하지 않다는 평가를 받으면 다시 새로운 이론으로 대체되기도 하는데, 그 와중에 경제이론은 맞지 않는다는 채찍을 맞기도 하는듯 하다.

시대의 발전과 경제이론의 발전은 동태적(動態的)으로 맞물려 가고 있으며 경제세계를 형성하고 발전해 나가는 동력이기도 한것 같다. 그러니까 경제학이론이 인간세계에서 차지하는 위상은 부차적이고 종속적이라고 할 수는 없는듯 하다.  

그러나 항상 아쉬운 것은 경제이론이 과학성 또는 실증성이 있어야 한다는 명분으로 또 다른 신앙적인 도그마(독단-獨斷)를 형성해 가면서 몰림현상을 보인다는 문제가 있는듯 하다. 아담스미스의 자유주의 경제이론이나 마르크스 이론의 대립에 이어서 케인즈의 수정자본주의 경제이론이나 프리드먼의 신자유주의 경제이론이 대립하며 새로운 경제이론의 세계를 형성해 나가는데, 요즘엔 자본소득이 노동소득에 비해 월등하다는 피케티의 이론까지 등장을 해서 주류경제이론의 위상을 넘보는듯 하다. 

사실 새로운 이론의 탄생이란 과거이론의 문제점을 '수정'한다는 의미를 두고 있는듯 한데, 이념의 문제를 집요하게 탓하는 내 관점으로는 이념적인 프레임을 벗어나지 못하고 이념적인 세상을 견인하는 '주범'중 하나가 경제이론인듯 하다.

세상은 다양해지고 있고, 인간도 다양한 토양위에 서있는만큼 다양한 존재인듯 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인간은 감정적인 존재인만큼 다양해질 가능성을 안고 있으며,어떤 이론의 독단성에 휘둘릴만큼 의미없는 존재였던 시절이 지나가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한국에서 지난 4월에 '세월호 사건'이라는 비극적인 재난이 있었는데, 조의를 표하는 한국인들의 정돈된 마음가짐이 경제를 위축시킨 예를 보아도 경제라는게 인간의 다양한 심정과 인연이 깊다는것을 말해주고 있는듯 하다. 예전 글에서도 많이 밝힌 바 있지만 자유주의 경제이론이나 마르크스의 과학적 사회주의 이론이 보인 문제점은 인간과 인간이 살고 있는 경제계를 지나치게 과학적이고 합리적으로만 해석할려고 했다는 문제점이 있는듯 하다.

10년전, 프랑스의 경제학과 대학생들은 자신들의 지도교수에 대항해 잠시 소규모의 학문적 저항운동을 일으켰다. 대부분의 경제학 이론에 포함된 너무나 심한 비현실적인 가정에 질린 그들은 수업을 거부했고 그들의 교수들이 현실과 동떨어진 경제학 이론을 가르친다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그 교수들은 자연스럽게 이런 주장을 방어했고 학생들은 결국 자신들의 입장을 철회했다. 그러나 이 소란으로부터 마침내 하나의 학술지가 탄생했다. 처음 만들어질 당시 이 학술지의 이름은 <<탈 자페증 경제학(Journal of Post - Autistic Economics)>>이었고, 이후 <<현실 경제 리뷰(Real World Economics Review)>>로 바뀌었다. 이 학술지는 쓸모없는 수학적 묘기가 아닌, 실제로 영감을 주는 경제학 연구를 출판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았다. 

- Mark Buchanan의 [FORECAST]중에서 -  

2014년 7월 11일 금요일

피케티와 맨큐의 경제학


오래전 머리 좋은 직장동료가 주식투자를 하다가 실패하여 나락으로 떨어졌다. 10여년동안 가장으로서 역할을 처에게 맡겨놓고 고생하다가 전문직 시험에 합격하여 새로운 출발을 하였다. 주식투자로 인한 채무를 모두 갚고 경제적인 여유가 생기자 다시 과거와 비숫한 시도를 하였다. 오랜만에 나에게 연락을 했는데, 배팅에 가까운 경제적인 시도를 하지 않고 소극적으로 생활하는 나를 비웃고 있었다. 자신이 곤란을 겪던 날, 끓어 오르는 배팅의 매력을 억누르기 위해서 '마음 다스리는 법'에 관한 책을 읽고 있을때와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

한 편으로는 내 절친중에 스타일이 나와 같은 사람이 있는데, 평생을 질병과 같은 의도하지 않은 불운으로 고생하다가 엔지니어가 되어서 한국사회의 '을'보다 못한 '병'으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 '병'의 대접을 받는 억울함은 자신이 토로한 불만이다. 열심히 일해도 생활이 안정이 안되니 공무원시험을 봤으면 하는데, 시험공부할 목돈이 좀 있었으면 좋겠다고 한다.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는 '신 자본론'이란 저서에서  "역사적으로 자본이 돈을 버는 속도가 노동으로 돈을 버는 속도보다 훨씬 빠르기 때문에 부의 불평등은 심화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피케티의 책은 열풍을 불러 일으키고, 현실적으로 빈부격차가 심각해지고 있는 미국에서 오바마 대통령은 소득재분배를 위한 자문을 얻기 위해 피케티를 초빙했다는 기사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부자에게 중과세를 부과할 것을 주장하는 피케티의 주장은 마르크스의 '자본론'에 버금가는 혁명적인 충격을 주었는데, 역시 '문제가 있는 경제현실의 개선'이라는 의미보다 '좌파적 경제이론'이라는  타이틀이 먼저 주어질 것은 누구나 예상할 수 있을 것 같다. 왜냐하면 누구나 좌파, 우파에 관한 프레임이 짜여진 관점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다.

특히 하버드 대학교의 그레고리 맨큐교수는 피케티의 주장에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고 하는데, 맨큐교수의 저서 [ESSENTIALS OF ECONOMICS]에는 이런 내용이 있다.

여러분은 경제학을 공부하는 과정에서 실증적 주장과 규범적 주장의 차이를 항상 유의하기 바란다. 대부분의 경우 경제학은 경제가 어떤 원리에 의해 작동하는가를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종종 어떻게 하면 경제가 보다 잘 작동할 수 있는지를 제시하기도 한다. 만약 어떤 경제학자가 규범적인 주장을 하고 있다면, 그는 과학자로부터 정책조언자로의 경계를 넘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미국의 트루먼대통령은 언젠가 제발 외팔이 경제학자를 만났으면 좋겠다고 이야기 한 적이 있다. 트루먼 대통령이 경제학자들에게 조언을 구하면, 그들은 항상 "한편으로는 이렇고, 다른 한편으로는 이렇다"고 답변하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경제학자들의 답변이 종종 모호하다고 느낀 사람은 트루먼 대통령만이 아닐 것이다. 경제학자들의 이런 경향은 제 1장에서 살펴 본 경제학의 10대 기본원리의 하나에 기인한다. 여러분은 모든 선택에는 대가가 있다는 기본원리를 기억할 것이다.경제학자들은 대부분의 정책결정에 대가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어떤 정책은 효율을 위해 공평성을 희생할 수도 있다. 또는 미래세대를 돕고 현세대를 손해 보게 할 수도 있다. 정책결정이 쉬운 일이라고 말하는 경제학자가 있다면 그 사람 말은 믿을 수 없는 것이다.

맨큐교수의 말대로 경제학자는 규범적이어서는 안되는듯 하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경제학 이론은 사회가치가 원하는 규범에 봉사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도구인듯 하다. 맨큐교수의 말은 냉철하게 사실관계를 규명해야 한다는  경제학자의 '규범'으로서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트루먼 대통령의 언급에서 보듯이 규범적인 정책결정을 해야 하는 정치가로서는 좀 더 편하게 경제학자의 이론을 현실정치에 적용 시켰으면 하는 기대가 있을런지도 모른다. 정치가가 해야 하는 수고를 경제학자가 좀 더 많이 떠맡기를 기대하는듯 하다.

사실관계는 통계와 계량만 있는 것이 아닌듯 하다. 서두에서 언급한것 처럼 내 자신이 보고 들은 현실경제속에서 자본에 비해서 푸대접을 받는 노동의 가치를 피케티는 더욱 계량적으로 실증화 시킨듯 하다. 피케티의 이론이 빈부격차의 문제점을 교정하고자하는 내용이 있음을 이유로 규범적이라는 누명을 쓰고 있는듯 한데, 혹시 이런 우려의 내면에는 끊임없이 현대 인류의 '머리속의 진화'를 막고 있는 이념적 프레임이 바탕이 된 관점이 도사리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다.


2024년 2월 17일 토요일

그로테스크 5 / 본질

요즘은 노후 대비를 위해 특허 관련된 공학 공부를 하느라고 바쁘다. 한 편으로는 전철 안에서 경제학 영어원서를 읽느라고 바쁘다. 경제학은 북한 경제를 염두에 두고 있어 손에서 놓지 않기로 작정했다. 시간이 없으니 영어와 경제학을 한꺼번에 공부할 수 있는 방법으로 영어원서로 경제학을 공부하기로 했다. 한 편으로는 실용적인 나의 태도에 만족하기도 하고, 청년기에 법 공부를 하던 시간이 아깝기도 하였다. 그때 지금처럼 살 걸......하는 후회가 밀려 왔다.

 

청년기의 어느 날 자신이 좀 깨달아서 삶의 이치를 안다고 하던 인물이 나에게 삶의 이치를 가르쳐 줄려고 하였다. “약은 약사에게 진료는 의사에게”하는 마음으로 그 사람의 멱살을 잡을 뻔 하였다. 나는 일찍이 이념문제가 발단이 되어 그로테스크들을 혐오했는데, 세월이 지나고 보니 나의 태도는 합당했다.

 

전쟁터에서 한 의사가 자신이 치료해 준 병사가 회복하자마자 다시 전쟁터에 가서 죽었다. 의사는 자신의 치료 행위가 무용함을 인식하고 비탄에 빠져 몇 일을 굶고 고민했다. 어느 날 의사는 깨달았다. “나는 그냥 의사 잖아!” - 내 자신이 점점 동양사상쪽으로 글을 쓰고 있다. 망할 -

 

정치인의 본분은 '공익적인 봉사'이고 그로테스크들의 본분은 ‘이상한 짓’이다. 서로 섞이면 국정농단이 되는 것이다. 법을 공부했던 많은 사람들이 엘리트 의식을 가지고 있지만 엘리트 의식은 오래 가지고 있는데, 사회 대중들의 지식은 진보하고 있다. 그래서 법 공부를 하던 사람들은 보수주의자가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자신이 속한 세계에서 살려고 몸부림치는 것 같았다.

 

2023년 4월 15일 토요일

보수주의 경제학의 오류

얼마 전 언론에서 한국의 인구감소 문제가 심각해질 예상이라고 하자 인구밀도가 많은 한국의 특성상 국토가 수용 가능한 적정 인구로 감소 조절 되는 결과도 나쁘지 않다는 의견도 나왔다. 그런 의견은 한국의 경제발전이 많은 인구로부터 발생한 분업체계, 내수규모, 교육받은 훌륭한 두뇌가 많음에 원인이 있음을 인지하지 못하고 내놓은 의견이다. 게다가 경로의존성의 성질 때문에 인구 소멸은 더욱 가속화되어 멸망의 길은 더욱 빨리 올 예정이다. 한 예로 장년과 노인 인구가 많아지면서 장년과 노인의 정치력이 체화된 과거지향적인 정치가 시작되고 과거 지향적인 정치는 더욱 멸망을 가속화 시킨다. 중국, 한국, 일본, 러시아 등은 감쇄적 경로의존성의 길에 들어섰다고 해도 될 것 같다. 보수적인 정치 경제의 길은 가지 말아야 할 길이다.


https://hyeong-chun.blogspot.com/search?q=%EA%B2%BD%EC%A0%9C%ED%95%99%EC%9E%90


언젠가 나는 많은 경제학자들이 경제학을 계량적이고 통계학적인 학문으로 묶어 버리는 시도를 비판한 적이 있는데, 경제학의 가치 판단적인 요소를 배제함으로써 경제학을 보수적인 현실로 몰고 가는 작용을 하도록 유도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다. 경제학자가 아닌 현실적 생활인의 생각으로선 그렇다.

 

한 번은 한국의 현 정부가 고용보험 기금이 바닥난다는 이유로 실업급여의 액수를 줄이고 실업급여를 통제하는 정책을 내놓았다. 현실적으로 한국의 실업급여는 단기 계약직이나 저임금 노동자, 3D 직종의 저급 근로자들에게 매우 유용하고 인력을 구할 수 없는 고된 노무현장에 인력을 유인하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을 생각하지 않은 결정이다. 실업급여를 받는 근로자들을 살펴보니 대부분 어려운 근로현장과 저임금에 시달리는 계약직들이었다. 한국의 현 정부의 경제입안자들은 보수경제정책의 특성상 하층 근로자들을 하찮고 밉게 보았던 것이다.

 

한국에서 보수정부가 들어서면 현장근로자들의 능력을 끌어내어 사회 경제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활성화할 생각을 하지 않고 과거 지향적인 이념적 판단을 하여 열심히 근로할 것만 독려하기 바쁘다. 그러나 실제로 보수정부의 배후에는 정치에 참여하는 종교인, 부동산이나 금융 소득자, 실행보다는 관념이 앞서는 이념론자 들이 많을 수 밖에 없는데, 그런 현상이 국가 경제 자체를 제조업과 멀어지게 하고, 부동산 분야와 금융분야를 비대화 시켜 불경기에 취약하고 사회 계층화를 강화 시켜 미래 없는 경제를 만든다. 극단적인 비유지만 폰지 사기나 암호 화페가 경제의 큰 분야를 차지하면 어떤 현상이 생길지 생각해 보면 이해가 쉽다.

 

Many of the high-productivity services that are supposed to be replacing manufacturing – such as finance, transport and business services (e,g,.management consulting, engineering, design) = can not exist without the manufacturing sector, because it is their main customer.

 

- 중략 -

 

This why countries with strong manufacturing industries, like Switzerland and Singapore, also have strong service industries (although the service is not necessarily truce).

 

[ Edible Economics ] by Ha-Joon Chang -


우리가 얼핏 부동산이나 금융 분야가 발달한 것이 자본주의 표상이라고 생각하지만 스위스나 싱가포르. 독일, 부흥기의 일본, 부흥기의 미국은 모두 제조업 강국이다. 한국은 정치와 경제를 빨리 실질화 시켜야 미래를 성장 시킬 수 있을 것이다. 현재 발생한 세계경제의 환란은 이념, 정치, 경제, 군사, 종교등이 연합한 보수적 연합군의 침공 탓이다.          

2024년 8월 2일 금요일

루카스를 비판(2)

 이형춘(Hyeong Chun Lee): 루카스에 대한 검색결과 (hyeong-chun.blogspot.com)


경제학자 루카스는 합리적 기대이론을 내세우며 정부의 경제정책이 무용하다고 말한다. 말하자면 루카스는 사람들이 이성적이고 지적인 판단을 하기 때문에 합리적이라고 말한다. 예를 들면 정부가 통화량을 늘리는 것을 알게 되면 사람들은 인플레이션이 발생할 것을 예상해서 행동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정부의 정책은 무용지물이 된다는 논리다. 1990년대 후반의 인터뷰에서 루카스는 케인즈는 경제학을 잘못된 방향으로 이끌었다고 말한다.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 통화론자 프리드먼 학파나 하바드 대학의 맨큐 교수는 루카스를 참으로 비중있게 평가한다. 맨큐 교수는 루카스를 20세기의 마지막 25년 동안 가장 영향력이 컸던 거시경제학자라고 말한다.

 

1980년대 레이건 행정부는 루카스의 이론이나 프리드먼의 이론을 바탕으로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인 레이거노믹스를 실행했다. 당시 영국의 대처정부의 대처리즘과 함께 신자유주의 열풍이 불었다. 하지만 레이건 행정부는 소련과의 군비경쟁을 위해서 결국 큰 정부로 돌아서게 된다. 결국 문제는 이념이었던 것이다.

 

레이건 행정부는 공급중시경제학이라는 경제이론을 내세워 부자 감세 정책을 취했지만 결국 세수의 부족에 시달리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세월이 지나 민생도 모르고 경제학도 모르는 아주 지엽적인 사고를 가진 한국 정부가 공급중시경제학을 모방하여 보았는데, 역시 세수 부족과 그에 따른 외화 부족으로 시달리게 되었던 것이다.

 

뭐가 잘못 되었을까? 버스 기사이자 기술 인력으로 사회의 저변을 떠도는 내 입장으로는 경제학적으로 합리적인 사고를 하는 이성적인 시민을 보는 것은 어려웠다. 요즘은 몇 차례 풍파를 겪고 나서 정치적으로 세련된 시민들이 많아진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경제적인 방향으로는 근로를 하는 다수의 시민들은 경제 순환 시스템을 전혀 이해 못하고 있다. 그리고 한국의 경제는 실물 경제 부문과 금융 경제 부문이 완전히 분리되어 금융 경제 부문은 실물 경제 부문의 근로자들이 전혀 가담을 못하기 때문에 기반이 취약하다. 그래서 미국과는 달리 한국의 금융 경제 부문은 사행성의 모습을 띄게 된다. 한 편으로 법조인 출신들(특히 검찰 출신들)이 정권을 잡은 한국 정부는 더욱 금융 경제 부문만 집중을 하면서 경제정책을 사행성 있게 몰고 갔다.

 

우리가 조금만 넓은 시야를 가지면 근로자는 일에 집중하지, 경제 시스템에 집중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경제의 바탕은 실물 경제를 구성하는 근로자들이다. 이들이 흔들리면 경제 구조가 폰지 사기 시스템으로 변화되어 한국의 미래가 없어진다.

 

루카스의 경제 이론과 그 영향력을 볼 때 마다 느끼는 것은 경제나 정치를 알려면 사회의 기반을 먼저 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경제정책은 실용적으로 접근을 해야지 이념적으로 접근하면 안된다. 모두가 연결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2013년 12월 26일 목요일

국가경제와 개인경제의 균형발전 / 리스트


철도민영화문제로 정부와 철도노조와의 대립이 심각한듯하다. 비효율적이고 만성적자에 시달리는 철도에 자유주의 경쟁시스템을 도입하려는 정부와 공공재적인 성격이 강한 철도를 민영화시켜서는 안된다는 국가사회주의적인 입장의 대립으로까지 비화되어 한국에서 발생하는 이슈는 이념대립으로 확산된다는 '법칙성'을 보여주는듯 하다.

아담스미스의 자유방임주의 경제학이 경제이론의 바이블로 통용되던 시절, 다른 유럽국가보다 후진적인 경제구조를 가진 독일의 경제학자들은 독일의 경제는 독일만의 고유한 방식으로 연구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다른 유럽과는 달리 시민혁명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 계몽전제군주인 프리드리히대왕등에 의한 하향식 근대화과정을 거친 독일로서는 국민의 경제적인 영역에 국가라는 집합체가 차지하는 비중이 클 수밖에 없는 여건을 가지고 있었던것 같다.

개인은 국가의 세포같은 존재라는 국가유기체설을 주장하였던 헤겔처럼 독일에서는 프랑스나 영국같은 유럽국가와는 달리 국가와 같은 공적영역의 위상이 다른 성향이 있었는데, 경제학에 있어서도 예외가 없는듯 하다.

당시 독일의 역사학파경제학자 리스트(Friedrich List 1789 ~1846 )는 개인과 국가는 분리된 형태의 독자적인 개체들이 아니고, 개인의 생산력은 국가나 민족공동체의 영역과 결합되어야 총체적생산력이 극대화될 수 있다는 총체적생산력이론을 내놓았다. 리스트는 정치, 사회, 제도, 법,도덕, 관습같은 정신적인 생산영역과 농업, 상업, 공업같은 물질적인 생산영역의 결합으로 총체적인 생산력이 증대된다고 하기도 했는데, 국가와 개인, 정신적인생산력과 물질적인 생산력이 유기적으로 연관되어 지속적으로 발전하도록 국가와 국민이 항구적으로 노력해야 한다는 동태적 균형이론을 제시했다.

한국에서는 통계로 잡힌 경제성장률과 시민의 체감경제성장률이 다른것이 문제가 되기도 한다. 대기업과 경공업의 해외진출로 산업공동화현상이 일어나서 실업률이 높아지고, 국가의 부(富)와 국민 개인의 부가 일치하지 않는 현상을 보이는데,국가의 경제와 개인의 경제가 심각하게 불균형한 현상을 보이는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한국에서 청년실업도 문제고 중장년실업도 문제인 현실에서 일은 도대체 누가 하고 있는것일까 하는 의문이 들 정도로 눈에 밟히는 현실은 어렵기만 한듯하다. 풍부한 자원과 기술력, 거대한 내수시장을 가진 미국의 경제시스템은 한국이 그대로 받아들이기에는 많은 문제가 있어 보인다. 개인경제의 최소한이 언제나 준비가 되어있는 미국에서는 국가와 개인의 총체적인 균형을 고려해야하는 부담이 없을듯 하다. 하지만 한국의 개인경제는 국가경제와 유기적으로 결합되지 않으면 무력해지는 문제가 있는듯 하다. 어떻게보면 한국의 정치나 공적영역이 어떤 일을 해도 국민들에게 욕을 먹을 수 밖에 없는, 총체적인 어려움에 골머리를 앓을수밖에 없는 태생적인 문제를 안고 살아가는 한국이기도 한것 같다.

한국에서 일어나는 경제문제는 이념문제와는 다른 관점으로 보는것이 시급한듯 하다. 개인을 위한 국가의 역할도 더 중요하게 고려되어야하고, 개인과 국가가 전혀 다른 영역으로 생각되어지지 않도록 소통도 자유로워야 하며,개인의 애국심이나 공동체적인 관심도 더 고려되어야 할듯 하다.

독학으로 경제학을 공부하고, 독일연방의 관세장벽을 철폐하여 독일통일의 기반을 마련하고도 현실의 생활고로 스스로 목숨을 끊은 리스트의 인생도 불균형한듯 하다.  

2013년 10월 6일 일요일

경쟁의 비용 / 사이먼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미국의 사이먼(Herbert Simon 1916~2001 )은 이전까지 경제학을 지배해왔던 기계적 합리성이, 경제주체인 인간이 가진 불완전한 정보, 인간의 본성이 내포하고 있는 비합리적인 충동과 비일관성에 의해서 제한받는다는 '제한적 합리성(bounded rationality)'라는 개념을 제시한적이 있다.

언젠가는 내 주변의 인적교류에 관해서 심각하게 고민한 적이 있었다. 왜 어떤 사람은 만나면 기분이 안좋은지 곰곰히 생각해봤다. 그러고는 인간관계의 기본 바탕이 남과 비교하는데서 시작된 우월감과 열등감으로 가득찬 지인들과의 교류를 제한하기 시작했다. 짧은 인생인데 주변인들과 적대적인 관계를 유지할 필요가 있겠는가 하는 철학적인 의도가 있기도 하지만 능률성 문제를 생각해도 썩 좋은 일이 아닌것 같았다.

우선 경쟁과 비교는 협력이 필요한 인간관계를 적대적으로 만들어서 사회비용을 발생하게 하는것 같기도 하고,  마음의 여유를 빼앗아 창조적인 지적행위(知的行爲)를 방해하기도 하는것 같다.

경쟁이란 개념은 원래 인간이 합리적 사고를 한다는 가정으로 탄생한 개념이다. 상당히 '비합리적'이었던 시대를 '과학'이란 이름으로 종식시키던 시절에 탄생한 경제학과 같은 사회과학의 파라다임이기도 하다. 마르크스의 과학적 사회주의가 호응을 얻은 배경도, 계량적인 비용편익분석을 주된 내용으로 하는 경제학이 탄생한 배경도 '과학적 분위기'에 힘입은 바가 있는것 같다.

그러나 사이먼이 생각하는 것처럼 인간이란 합리성을 추구하는 비합리적인 존재임을 인정할수밖에 없을것 같다. 사이먼은 수학, 심리학, 통계학, 경영학등 다방면에 정통한 통섭형 인간으로서 인간이란 현 존재 또는 인간이 추구하는 것들이 생각보다 다양하다는 것을 인식하고 학리화(學理化)시키기 위해 노력하였다 .

때로는 계량적 합리성이라는 시대정신의 문제점을 이념이나 종교같은 내면적인 관념으로 대체시킬려는 사회적 시도도 보이지만 인간을 다양한 관점으로 바라보지 못하는 이념이나 종교 자체의 문제가 해결 안된 면이 있는듯 하다.

모든 성인들도 말한 바 있지만 경쟁은 자기자신과 해야 되는 일인듯 싶다.

2014년 2월 20일 목요일

국정(國政)은 곧 심정(心政) / 밀


"배부른 돼지가 되는것 보다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되는것이 낫다."고 말한것으로 유명한 미국의 공리주의 철학자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 1806 ~ 1873 )은 성악설론자이며 군주론을 옹호하는 사회계약론자인 홉스나 의무와 이성을 강조하는 절대주의 철학자인 칸트와는 달리 인간의 욕망은 나쁜것이 아니며 문제가 되는것은 욕망이 아니라 양심이 없는것이라고 말한다.

밀에 의하면 욕망은 독창성을 낳고 독창성은 사회를 발전시킨다고 말한다. 그래서 밀은 다수의 횡포가 있을 수 있는 민주주의정체에서는 항상 소수의 의견에 귀를 귀울여야 하며 토론과 대화에 열린 자세를 취해야 한다고 말한다. 밀은 인간의 욕망에 배타적인 태도를 취하는 홉스나 칸트의 사상은 서양 크리스트교세계를 이끌었던 캘비니즘에서 자기의지를 부정하고 '신의 의지'에 따를것을 주장하는 분위기의 영향을 받았다고 말한다.

생각해보면 직업소명설을 주장하여 자본주의 사회의 정신적인 바탕이 된 캘비니즘이나 인간의 욕망을 긍정적으로 생각하여 미국식 자본주의의 바탕이 된 밀의 사상 역시 현대 자본주의 사상에 큰 줄거리가 되었다고 생각할 수 있을것 같다. 

밀은 조세징수의 방법에 있어서 누진세를 적용하던 미국에 비례세를 적용하도록 유도함으로써 복지국가와는 거리가 먼 미국을 건설하는데 영향을 끼친것으로 알려져 있다. 반면에 칸트의 의무론은 독일인들에게 개인의 욕망을 억제하고 공동체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도덕적인 분위기를 유도함으로서 독일식 사회민주주의의 바탕이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한때 독일에 시련을 안겨주었던 독일식 전체주의나 독일인들의 정직한 성향등이 칸트와 같은 사상가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고는 말할 수 없다는 생각까지 들기도 한다.

대체로 유명한 경제학자들의 대부분이 현실적으로 현대 자본주의 경제를 이끌었던 미국이나 영국의 경제학자들이 대부분인데 자본주의 경제는 그만큼 해결해야할 다양한 과제를 남겨놓는다고 해석해도 될것같다. 사람들의 믿음은 자신이 배운것과 접촉한것을 바탕으로 형성되는 것인데, 한 시대의 유명 사상가들이 어떤 방식으로 국가와 사회를 이끌고 있는지는 칸트나 밀이 자국(自國)에 끼친 영향에서도 어렴풋이 유추할 수 있을것 같다. 

내 스스로는 불합리한 이념적인 세뇌에 대해서 깊이 반발하는 입장에 있지만 한국의 역사속에서 그만한 원인과 해결해야 할 과제를 안긴 사건이 있었고, 그 분위기는 계속되고 있고, 역시 계속해서 해결해야 할 과제를 안고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기도 하다. 그리고 미국식 자본주의나 신자유주의 경제 이념이 어떤 문제를 보이면 역시 적절한 시기에 교정이 되야 하는것도 순리라는 생각이 든다.

한국 경제정책의 이론적인 바탕이 되는 경제학자들의 유학처가 미국이냐 아니면 독일이냐에 따라서 실증적인 경제학 연구에 항상 덧붙여지는 직관적인 경제학 연구결과가 경제정책에 영향을 끼칠수 있다고 생각하면 미국 유학파들의 경제학 이론이 한국경제를 미국식으로 이끌어 온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흔히 자유롭기는 하나 평등은 많이 부족하다고 하는 한국사회의 밑바닥에 사는 사람이 인식하는 사회문제와, 평생을 정치인, 군인, 전문직, 기업인등으로 살았던 사람들이 인식하는 사회문제는 많이 다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자신이 보고 듣는 세계가 자신이 생각하는 세계이고, 사회문제는 자신의 관점으로만 받아들여지는 오류가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소통'이라는게 중요한지도 모른다.

한국의 현실은 점점 어려워지고 있는데, 그런 문제를 심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정치가나 경제학자들이 있었는지 의문을 느낄때가 많다. 내가 어려워서 내 주관적인 생각이 일반화 되는 문제가 있는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도 던져 보지만 어렵다는 생각은 민주주의가 좋아하는 '다수'의 심정인듯 하다.


2023년 10월 12일 목요일

망치를 가진 자의 경제학

망치를 가진 사람은 세상의 모든 것이 못 대가리로 보인다는 사회학자 매슬로우의 말이 있었다. 실제로 그랬다. 나는 오랫동안 여러 가지 방식의 근로를 하면서 근로 현장을 비교할 수 있는 감각을 가지게 되었다. 햇볕을 보며(액티브한) 일하는 현장 일과 좁은 공간에서 일정 수의 동료를 만나면서 하는 일은 차이가 컸다. 매일 만나는 제한된 사람들과 제한된 공간은 시야를 좁힌다. 사무실이나 전기실 기계실 등에서 일 할때는 시야가 좁아지는게 두려워서 늘 세계사, 지리, 외교와 관련된 책을 틈틈이 읽었다.

 

자주 언급했지만 이번 한국 정부의 파행의 가장 큰 원인은 검찰이라는 내 집단에 근거해서 탄생했기 때문이다. 정권의 모든 관점, 습관, 사고 체계가 세계화 되기에는 처음부터 무리가 있어 보였다. 의도하지는 않았지만(잘 해볼려고 할 수는 있었지만) 능력의 한계는 투자와 결실의 피드백 관계를 명확히 보여 준 것 같다.

 

경제학 관련된 정책사건의 연결고리를 생각하면

 

1. 검찰의 지위에서

2. 검찰의 보수화된 관점 탄생

3. 보수화된 정치검찰에서 정권 탄생

4. 정권은 국가 전체적인 관점이 아닌 극우 편향적 관점을 가짐

5. 공급중시 경제학에 근거한 부자감세

6. 세수부족

7. 외화비축량 감소(외화를 전용, 수출감소)

8. 점점 IMF 구제금융시절과 닮아감

 

이런 연결 고리를 가지면 곤란하다. 더욱 나쁜 일은 신 냉전의 갈등 관계를 이념 정치로 악화 시키는데 한 몫 했다는 점이다. 갈등과 투쟁 관계는 마이너스의 시너지 효과가 크다. 그 당시에 손실을 본 것 뿐만 아니라 발전을 하지 못한 기회 비용까지 손실을 보는 것으로 생각해야 한다. 물론 국가 정책의 특질상 효과는 시간차를 두고 나타나기 때문에 다음 정부가 손실을 보전하기 위해서 노력해야 하는 상황이 생길 수 있다. 여러 가지로 이번 한국 정부의 운영은 매우 부정적이고 음성적인 분위기에서 운영되었다고 봐야 한다.    

2018년 12월 21일 금요일

소득주도성장과 동적역학(dynamic mechanics)


김상조교수가 소득주도성장과 재벌개혁에 관한 지속적인 노력을 표명했다. 경제정책을 과학적이고 실증적인  근거에만 의존한다면 우리가 사는 세상은 정체(stagnation)만 있을 것 같다.. 북한 정체(political system)의 가장 큰 오류는 정체(stagnation)라는 내용의 글을 많이 써 왔지만 한국이나 북한의 보수성은 국가나 사회발전에 역기능을 해왔다는건 확실하다. 언젠가는 보수정부에서 더욱 빈번하게 발생하는 부패사건 조차도 움직이고자 하는 인간본성의 색다른 그러나 방향이 나쁜 표현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실증성을 강조하며 본의아니게(나는 계획에 없던 성향이 아닌가 추측한다) 비판을 받고 있는 맨큐교수에 비해서 피케티교수의 생각들이 갈채를 많이 받는 이유는 사회의 경제현실이 변할때가 되었다는 사실을 반증하기도 하는것 같다. 저번 글에서 밝혔듯이 한국의 빈부격차등으로 인한 혼미한 경제현실에 직접 가담하면서 절망을 느꼈던 만큼 한국정부의 정책방향도 실증성 보다는 가치판단 또는 가치규범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서민의 생활속에 느꼈던 분배의 문제보다 더 근본적이고 학리적(in theory)인 냉정함으로 관찰해도 이제는 신자유주의 정책은 버릴때가 되었다는 생각이다.

All eports since then to show that a realistic economy might actually reach something like the Arrow-Debreu equilibrium have met with continuing failure. Theorists haven't been able to prove that even trivial, childlike models of economics with only a few commodities have stable equilibria. There is no reason to think that the theoretical general equilibrium so prized by economists is anything more than a curios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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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have no weather Adam Smith's invisible hand holds for the 'real world,' but then, no one else does either. This is because, even though this story is used to influence national policy, no mathematical theory exists to justify 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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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t dynamics do matter, like it or not. If economics does not establish the laws of change within economics, what exactiy does it do? And if it is concerned oniy with the "equations of equilibrium,"what happens if that equilibrium is so unstable and fleeting that it's unlikely to bearany resemblance to the real world around us? It would be like mathmatical meteorologists finding beautiful equations for a glorious atmospheric state with no clouds or winds , no annoying rain or fog, just peaceful sunshine everywhere. In principle, the atmosphere might have such a state, but it tells us nothing about the reality we care about, about our own wea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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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 we'll see, emprical evidence suggests that these loose arguments don't support market efficiency and equilibrium either. Markets bounce around far too violently and do too many surprising thing to be explained by any story of perfect or near-perfect market equilibrium. But first, let's take another look at the wisdom of crowds.


그때 이후 실물경제가 실제로 애로-드브뢰 평형과 같은 상태에 이를 수 있음을 증명하려는 모든 노력은 계속적으로 실패했다. 이론가들은 단지 몇개의 상품들만을 다루는 자명하고 유치한 경제 모델 마저도 안정된 평형 상태에 이른다는 사실을 증명할 수 없었다. 경제학자들이 그렇게 소중히 여긴 일반 균형 이론이 호기심 이상의 것이라고 생각할 이유가 없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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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이 '실제 세상'에서 성립하는지 성립하지 않는지 모른다. 하기는 어느 누구도 모를 것이다. 그 이유는 이 이야기가 국가 정책에 영향을 미쳤다 할지라도, 그것을 뒷받침해 줄 수학이론이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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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좋든 싫든 동역학 법칙은 중요하다. 경제학이 경제 속에 있는 변화의 법칙을 확립하지 않는다면, 경제학이 정확하게 무엇을 하겠는가? 그리고 경제학은 "평형 방정식"에만 관심이 있는데, 그 평형 상태가 너무 불안정하고 순식간에 지나가서 우리 주변의 실제 상황과 다르면 어떻게 될까? 그건 마치 수리 기상학자가 구름이나 바람도 없고, 성가시게 하는 비나 안개도 없이 어느 곳에나 그저 평화로운 햇빛만 내리쬐는 훌륭한 대기 상태에서 아름다운 방정식을 찾는 것과 같다. 원칙적으로 대기는 그런 상태를 가질 수도 있겠지만, 그 상태는 우리가 관심있는 실제, 즉 우리 주변의 날씨에 관해서는 아무것도 알려 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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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알게 되겠지만, 경험적 증거는 이런 느슨한 주장이 시장 효율성이나 평형 상태를 뒷받침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해 준다. 시장은 훨씬 격렬하게 이리저리 튀어 오르고, 완벽하거나 또는 완벽에 가까운 시장 평형만으로 설명하기에는 놀라운 일들이 너무 많다. 하지만 먼저 대중의 지혜를 다른 시각으로 살펴보자. 

- MARK BUCHANAN의 [FORECAST]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