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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1월 10일 화요일

모택동과 주은래의 관계

한국은 지역과 세대, 경제력의 차이로 인하여 이념갈등이 심한 편이다. 대중들은 단기적이고 감각적인 판단을 하기 때문에 당연한 일일 것이다. 정치인이 정권을 잡기 위해서 선동을 잘 이용할 수 있는 여건이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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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은래는 학식과 외교력 등 지도자로서의 많은 자질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모택동을 성의껏 보좌했다. 모택동이 훌륭한 지도자로서의 자질을 갖추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농민과 무산계급을 선동해서 정치권력을 잡은 만큼 농민과 무산계급의 지도자로서 추앙받았기 때문이다. 주은래와 등소평은 변화를 추구하는 진보적인 성향을 가졌지만 무지한 중국의 대중들을 빠른 시간에 설득해야할 자신은 없었을 것이다. 제대로 된 중국의 변화는 제대로 자리 잡지 못한 모택동의 변화를 통해서만 이룰 수 있다는 현실에 좌절감을 느끼면서 개혁의지를 불태웠을 것이다.

 

모택동은 황제의 역할이 목표였을 것이다. 모택동의 생각과 통치시기에 많은 시행착오를 보면 분명히 그렇다. 주은래와 등소평은 중국을 살리는 일이 목표였을 것이다. 주은래와 등소평은 모택동의 지시에 따르기보다 모택동에 대한 설득에 많은 힘을 쏟았다. 가장 중요한 일이 무엇인지를 잘 아는 사람들이었다. 마음이 권력의 장속으로 많이 흘러들어 온 임표등과는 달리 주은래와 등소평의 정책력과 외교력등은 모택동이 감동하고 의지할 만했다. 이념 몰입도가 깊고, 중국의 고전적 인물 그 자체인 모택동이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주군과 신하라는 봉건적 관점을 가지면 모택동과 주은래의 관계가 그렇게 보이겠지만 개혁적인 관점으로 보면 주은래는 차기 지도자로서 인정받아야 했다. 주은래 없는 세상에 등소평 혼자서 모택동의 잔영을 벗어버리지 못한 보수적인 중국 공산당을 이끌기 힘들었을 것이다.

 

교육 등으로 인하여 많이 개혁이 되고 있지만 한국 사회의 연장자들은 지도자들의 카리스마에 쉽게 동조하고, 지도자가 되려고 하는 이들은 카리스마를 발휘해 보려고 하는 몸짓들이 많았다. 아마도 중국은 이런 현상이 더욱 강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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