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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5월 16일 토요일

이념에 관한 추억

몇 일전에 북한의 김정은 위원장의 사망 소식이 들려왔을 때,  좀 창피했다. 관련 기사를 모두 모니터링 하면서 외부에서 적극적으로 유입시킨 정보임을 생각했는데, 한국내부에서는 눈덩이처럼 확산되어 갔다. 더구나 탈북인 출신 국회의원 당선자들의 확신에 찬 판단에는 분단된 한반도의 서글픈 상황이 담겨 있었다. 북한 전문가라는 명분으로 의원으로 당선된 이들이 뭔가 확신에 찬 판단을 하도록 압박과 갈등을 느꼈을 것이기 때문이다. 몰라도 뭔가 말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는 것이다.


나는 학창시절부터 이념에 대해서 객관적이었다. 고등학교 때 1972년 전까지의 박정희 전 대통령을 존경했다.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라는 장기계획의 집중력을 존경했다. 훗날 진정한 민주화가 필요한 시기에 등장했던 노무현 대통령 또한 무척 존경했다. 이런 내 태도를 비난하는 한국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이념론자다
 

한 편으로는 시사 잡지에 아들 김 한길 씨가 기고한 김 철 사회민주당 위원장의 이야기가 있었는데, 김 철 위원장을 무척 존경했다. 그 당시 뿌리내리기 힘든 사회민주주의 주창하는 정당의 당수로서 점심값이 없어 사무실 의자에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는 김 한길 씨의 회고는 신념에 찬 삶이 어떤 것인가를 생각하게 했다. 지금도 (자신의 신념은 손목시계와 같은 것이라서 남들이 묻기 전에는 말하지 않는 것이 좋다)라는 김 철 씨의 좌우명을 마음에 간직하고 있었다.


한 편으로는 외진 곳에서 살면서 밤이면 북에 두고 온 가족들이 연변으로 탈출하지 않았을까 하는 심정에 라디오의 북간도 동포들에 관한 방송을 열심히 청취하는 나의 부친에 대해서 많은 슬픔을 느꼈다. 적극적인 신념이 아쉬운 부친의 모습 때문에 눈물을 많이 흘렸다
   

고등학교 3학년 때 학사장교 출신이었던 담임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뜬금없는 반공교육을 시키곤 했다. 피로감을 느낀 탓인지 나는 가끔 장난으로 반발하였다. “이보라요 거 너무 공산두의 공산두의 하디 말라요물론 공산주의가 왜 나쁜지 논리적으로 설명해 달라는 요구를 논리적으로 하지 못한 탓이다
 

한 번은 예의 담임 선생님이 교육청에 서류봉투를 전달해 달라는 심부름을 시켜서 수업시간에 교육청으로 갔다. 현장인력보다 사무실 인력의 권한이 강한 한국의 특성탓 인지 담당 주무관은 선생님이 직접 오지 않고 학생을 보냈다고 욕설을 하였다. 순간적으로 뭔가 짚히는 데가 있었던 나는 한 마디 했다. “선생님은 반공 교육을 가셨습니다.(그런 선생님을 비난하는 당신은 빨갱이가 틀림없다)” 교육청 주무관의 태도는 매우 온화하고 매우 공손해졌다
    

코로나 때문에 어려운 한국 상황에 김정은 위원장의 사망 소식을 뿌린 외부자의 의도는 생각보다는 파문이 컸으니 어느 정도 성공했던 것 같다. 한 편으로는 한국 내에서 누군가 이념과 분단된 비극적 환경을 정치적 이익의 도구로 이용하려는 의도가 있다면 이번 기회에 반성해야 한다. 욕심이 많으면 누군가의 손에 놀아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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