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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3월 6일 금요일

상대성과 전체성의 지략(知略) / 모택동


한반도에서는 이념이 지략(知略)을 방해하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지만 중국은 이념조차 시기적절하게 변신시키는 능력이 있는듯 하다. 개선의 여지가 보이지 않는 북한의 정치스타일이나 한국의 심화되는 빈부격차를 생각하면 국가와 사회, 기업, 개인에게까지 대의적 경영철학이 빈곤함을 탓하지 않을 수 없는듯 하다.

특히 이번에 발생한 미국대사 테러사건을 보면서 개인의 충동적 테러도 아니고, 뭔가 '주의'라는 어설픈 이념이 엮여있는듯 하여 그 알량함에 민망한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우리사회의 '지엽적 지식인들'의 현실을 보는듯 하였다.

서점에서 잠깐 빼내 본 황금중국(강효백 지음)이란 책의 표지에서 이런 글이 보였다.

군사상의 전쟁과 상경계의 경쟁이 다른 점이 바로 이것이다. 상경계에서는 적을 궁지의 절망 상태로 빠져들게 하든지 씨를 말려서는 안 된다. 지혜로운 기업가는 라이벌의 목숨을 살려둔다. 경쟁이긴 경쟁이되 유한 경쟁이어야 할 것이다.

추구하고 목적하는 것들을 대하는 본질적인 자세를 잘  나타내주고 있는듯 하다. 하물며 이를 악물고 군사상의 전쟁과 같은 내부경쟁에 진력하고 있는 한반도에서라면 생각해봐야 할 내용인듯 하다.

혁명조급증에 걸린 동지들은 부당하게도 혁명의 주관적 역량을 과대평가하고 반혁명역량을 과소평가 한다. 이러한 평가는 대부분이 주관주의로부터 나온 것이다. 그것은 틀림없이 맹동주의의 길로 나아가는 결과를 가져 올 것이다.

지금 중국혁명의 주관적 역량은 비록 약하지만, 중국의 낙후하고 취약한 사회, 경제적 조직에 기초하고 있는 반동적 지배계층의 일체 조직(정권, 무장력, 정당등)도 역시 약하다. 이로 보아 다음과 같이 해석할 수 있다. 즉 지금 서구 나라들의 혁명의 주관적 역량이 비록 중국혁명의 주관적 역량보다 좀 강할지는 모르지만 서구 나라들의 반동적 지배계층의 역량이 중국의 반동적 지배계층의 역량보다 몇 배나 강대하기 때문에 서구 나라들에서는 여전히 혁명이 즉시 폭발할 수 없는 상황이고, 현재 중국혁명의 주관적 역량은 비록 약하지만 반혁명 역량도 상대적으로 약하기 때문에 중국혁명은 서구보다 더 빨리 고조될 것이다. 

- 모택동 평전 -

모택동이 일으킨 공산혁명이 옳고 그르다는 규범적인 해석을 떠나서 어쨌던 성공한 혁명지도자의 통찰력이 보이는 대목인듯 하다. 맹목적이지 않고 사물을 상대적이고 전체적으로 볼 수 있는 혜안(慧眼)이 있은듯 하다. 결국 혁명을 성공시키고 다시 모택동 자신이 '맹동적인' 우안(愚眼)으로 회귀하고 혁명정신을 보존하고 목적을 잊지 않았던 등소평이 경제적 자본주의를 인정함으로써 사실상 혁명정신을 '완성'시킨듯 하다.

국가와 사회를 좀 더 장기적인 관점으로 융합적이고 전체적이며 상대적인 관점으로 볼 줄 아는 능력이 한반도에서는 절실히 필요한듯 하다는 생각이 든다. 서로 서로가 생각보다 꽤 많이 연결되어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할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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