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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9월 21일 토요일

정치사상과 휴머니즘 / 칼 슈미트


엘리자베스 1세의 신하였던 필립 시드니(1554-1586)는 외숙부인 레지스터를 따라서 스페인과의 전쟁에 참가하고 있었다. 당시 영국은 신흥국가로서 스페인이라는 대국을 맞아서 네덜란드지방에서 치열한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시드니도 이 전투에 참가해서 싸우다가 다리에 중상을 입고 출혈때문에 목이말라 물을 청했다.가져온 수통의 물을 마시려고 하는데, 옆에 빈사상태로 후송되어 온 한 병사가 물끄러미 시드니의 손을 바라보고 있었다. 시드니는 물통을 병사에게 건네주며 "그대에게 더욱 필요한 것이다."라고 말했다고 시드니의 친구인 플크 그레빌이 증언하였다.

어느 날 간디가 기차를 타다가 신발 한쪽이 벗겨진 채로 기차가 출발하였다.  간디는 나머지 한 쪽 신발을 차창 밖으로 던졌다. 동행인이 놀라서 그 이유를 묻자 간디는 "서로 나누어진 신발 한 짝은 누구에게나 쓸모가 없지요. 그렇지만 저렇게 두 짝이 되면 누구에게나 쓸모가 있게 되지요.가난한 사람이 줍는다면 더욱 좋은 일이겠지요"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독일의 정치학자이며 헌법학자인 칼 슈미트(Carl Schmitt 1888 ~1985)는 적과 동지를 구분하여 '우리'라는 동질성을 가진 집단의 결속력을 다져가는 방식이 민주주의라고 한다. 당시 독일은 칼 슈미트의 이론에 의거하여 반유태주의나 범 게르만주의의 동질성을 추구하면서 내부민주화를 다지게 되었다.

어쩌면 위에 예시한 시드니도 외부집단인 스페인과의 전쟁을 통해서 동료애를 발휘하는 기회를 얻게되어 자신을 희생하는 민주주의적 가치를 보여주게 되고, 간디도 훗날 영국의 식민주의에 저항하는 지도자로서 인도민족에 대한 동료애를 보여주며 민주주의적 가치를 실현했다고도 할 수 있을것 같다.

그러나 칼 슈미트는 '인간성(humanity)'이 정치의 바탕이 될 수 없는 이유를 이야기하고 있는데, 그 이유란 인간성이란 처단해야 할 외부의 적 즉 동지가 아닌 집단을 처단할 수 없는 논리를 제공하게 되기 때문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칼 슈미트에  따르면 시드니의 동료애가 더 큰 인류애적인 범위에서 발휘되거나 간디의 무저항 비폭력주의는 대단히 "비 정치적인 행위'로 오해 받을 수 있다고 할 수 있겠다.

대단히 칼 슈미트 다운 발상인듯 하다. 칼 슈미트는 '적과 동지'를 구분하는 민주주의라는 개념을 휴머니즘이라는 개념과 동등한 위치에 놓음으로서 둘의 가치를 대립시켜서 민주주의 같은 정치적인 가치가 휴머니즘 같은 더욱 근본적인 가치를 압도하도록 하는 나쁜 전통을 만들었다고도 할 수 있겠다.

당시 독일뿐만이 아니다. 미국에서도 냉전시대에 정치적인 적이였던 공산주의가 무너지자 911사태를 도화선으로 이슬람세계를 정치적인 적으로 여기기 시작하였는데,이면에 불의나 테러에 대한 인간적인 혐오같은 휴머니즘의 감정은 정치적인 관점에 밀려서 서서히 표면에서 자취를 감추는 문제가 생기는것 같다. 물론 한국도 예외가 아닌듯 하다. 이념적인 정치적 갈등이 민주주의란 명분으로  정치의 주된 관점으로 휴머니즘을 압도하고 있는 기간이 무척 길다는 생각이 든다.

민주주의란 가치는 휴머니즘이란 가치와 결코 동등한 위치에 놓을 수 없는 개념인듯 하다. 휴머니즘이 보다 근본적이고 포괄적인 가치로서 민주주의란 개념을 내포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칼 슈미트를 비롯한 정치학자들이나 정치적인 인물들과 정치적인 사건들은 오랫동안 정치적인 명분을 위하여 휴머니즘을 희생시키고 있었던것 같은데, 호전적이고 불안한 상황을 겪은 현대민주주의의 고민이라고 할 수 있을것 같다.  

역사에 가정이란 없지만 아담스미스가 인간은 무조건 이기적이라는 가정만 하지 않고, 휴머니스트인 인간을 가정했다면 마르크스의 과학적 사회주의가 발 붙일 수 있는 여지가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다. 아마 인간을 생각하는 경제이념이 탄생하여 극단이 반대편의 극단을 낳는 오류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다. 

많은 실패를 겪어야 합의점을 끌어내는 인간의 무지(無知)와 그 무지를 학문적인 포장으로 선동하는 학자들의 죄가 큰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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