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부모는 한국전쟁기간 내내 피난을 못가고 동부전선을 오르내리면서 전쟁에 시달렸다. 모친은 학살극을 겪었지만 부친은 군인으로써 살해당하고 살해하는 일을 손수 겪은 트라우마가 있었다. 한 번은 부친의 국군 하사관 시절, 시신이 가득 실린 트럭을 운전하고 있는데 인민군이 운전석에 뛰어 올라와 부친을 대검으로 공격하는 일을 겪었다. 옆에 세워놓은 소총을 들 여유도 없이 격투 끝에 인민군은 차에서 떨어져 머리 부분이 바퀴에 깔리는 참극을 겪었다. 그때는 전시 중었고 평시였으면 정당방위 상황이기도 했지만 신체적인 접촉 끝에 공격을 극복한 부친은 술에 취하면 자주 그때 이야기를 했다. 부친이 죽인 것이 아니라 자신이 스스로 죽은 것이라고 했다. 성격이 매우 온건했던 부친은 그 장면 때문에 끝까지 괴로워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4년 반을 끌며 우크라이나 국민들과 러시아의 젊은이들의 전쟁 트라우마가 깊을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러시아는 자국민들의 피해까지 고려해서 빨리 종전협상을 해야 한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한국에 대한 태도는 엇갈리는 면이 있지만 나쁜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다급해진 우크라이나와 전후 경제 전략적인 관점으로 한국을 대하는 러시아의 친한성향은 한국이 냉정하게 고려해봐야 한다.
시간이 약이 되지 못하는 나라
우크라이나의 전쟁 트라우마와 한국이 기억해야 할 교훈
이형춘 · 독립 칼럼니스트 · 2026년 10월
들어가며
러시아의 전면 침공 이후 4년 8개월이 지났다. 미국의 중재로 10월 3자 협상이 다시 준비되고 있지만, 러시아는 아직 점령하지도 못한 동부 영토까지 내놓으라는 요구를 거두지 않고 있다. 국제 예측가들은 올해 안 휴전 가능성을 15% 안팎으로 본다. 전쟁은 끝나지 않았고, 그 사이 우크라이나 사람들의 마음에는 이미 깊은 상처가 새겨졌다.
지난 9월 발표된 전국 대표 표본 조사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응답자의 31.2%가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 또는 복합 PTSD의 기준을 충족했다. 표본은 작지만 또 다른 연구에서는 PTSD 추정 비율이 31%였는데, 심리적 도움을 구한 사람은 15%에 그쳤다. 셋 중 한 명이 상처를 안고 있으나 대부분은 홀로 견디고 있다는 뜻이다.
이 글은 그 상처가 어디서 왔고, 왜 쉽게 아물지 않을 것이며, 한국은 그 앞에서 무엇을 기억해야 하는지를 묻는다.
1. "피할 수 있었던 전쟁"이라는 2차 가해
항간에는 우크라이나가 피할 수 있는 전쟁을 했다는 말이 돈다. NATO 가입을 고집하지 않았다면, 러시아의 안보 우려를 존중했다면 이 비극은 없었으리라는 것이다. 필자는 이 주장에 단호히 반대한다. 폭력을 당한 사람에게 "네가 자초했다"고 말하는 것을 트라우마 연구에서는 '2차 피해'라 부른다. 그 말은 원래의 상처보다 회복을 더 어렵게 만든다. 약자에게 더 큰 짐을 지우는 것, 필자는 이것을 인류의 오래된 질환이라고 본다.
이 주장은 사실관계로도 버티지 못한다. 우크라이나는 1994년 부다페스트 각서로 소련이 남긴 핵무기를 포기하고 영토 보전을 약속받았다. 2010년에는 법으로 '비동맹 지위'를 채택했다. 그런데 바로 그 비동맹 상태에서 2014년 크림반도가 병합되었다. 중립은 우크라이나를 지켜주지 못했다.
러시아가 지형적 요새를 갖추지 못해 NATO의 동진을 두려워했다는 설명도 있다. 그러나 2023년 핀란드가 NATO에 가입해 러시아와 NATO의 국경선이 크게 늘어났을 때 러시아의 반응은 상대적으로 조용했다. 방어적 두려움만으로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러시아의 집착을 설명할 수 없다. 러시아는 그렇게 소극적인 이유로 전쟁을 하는 나라가 아니다.
2. 홀로도모르에서 갈라진 두 개의 상처
우크라이나인의 기억 깊은 곳에는 1932~33년의 대기근, 홀로도모르가 있다. 스탈린 체제의 강제 집단화와 곡물 징발 속에서 350만~500만 명으로 추산되는 사람들이 굶어 죽었고, 농촌 사회 전체가 굶주림에 짓눌렸다. 소련 시절 이 기억은 입 밖에 낼 수 없었고, 1991년 독립 이후에야 공적인 기억으로 복원되었다. 러시아가 곡물 수출을 봉쇄하고 농업 기반을 타격할 때 우크라이나인들이 "새로운 홀로도모르"를 떠올리는 것은, 세대를 건너 전해진 상처가 다시 열리는 현상이라고 필자는 본다.
그렇다면 러시아인들은 어떤가. 자국 병사들이 대규모로 소모되고 이웃 나라의 도시가 폐허가 되어도 크게 흔들리지 않는 러시아 사회의 둔감함은 어디서 왔는가. 필자는 그것을 민족의 본성이 아니라 축적된 국가 폭력의 결과로 본다. 1861년까지 이어진 농노제, 사람을 자원처럼 소모해 온 징병 제도, 스탈린의 숙청과 굴라그, 그리고 2차대전에서 2,700만 명에 이른 소련의 희생. 수백 년 동안 국가가 인간을 소모품으로 다뤄 온 역사가 사회 전체를 마비시킨 것이다.
결국 우크라이나인의 홀로도모르 기억과 러시아인의 무감각은 같은 국가 폭력에서 갈라져 나온 두 개의 상처다. 한쪽은 기억과 저항으로, 다른 한쪽은 마비와 순응으로 나타났을 뿐이다. 그리고 지금 한쪽의 마비가 다른 쪽의 상처를 더 깊게 만들고 있다. 개전 초기 폭격을 피하던 우크라이나의 자녀가 러시아에 사는 부모에게 전화했다가 "그런 일은 없다"는 대답을 들었다는 사례들은 그 구조를 가장 아프게 보여준다.
3. 시간은 홀로 치유하지 못한다
우리는 흔히 시간이 약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트라우마 연구는 시간이 홀로 치유하지 못한다고 말한다. 정신의학자 주디스 허먼은 회복의 첫 단계로 '안전'을, 다음으로 '기억과 애도'를, 마지막으로 '관계의 재연결'을 꼽았다. 위협이 계속되는 한 시간은 상처를 아물게 하는 것이 아니라 굳게 만든다.
러시아의 침공은 우크라이나인에게서 시간이라는 약을 치명적으로 빼앗았다. 아물어가던 홀로도모르의 상처를 다시 열었고, 가해자로서의 인정을 영구히 거부했다. 러시아는 홀로도모르를 제노사이드로 인정하지 않으며, 푸틴은 2021년 논문에서 러시아인과 우크라이나인이 "하나의 민족"이라고 주장하며 우크라이나의 국가성 자체를 부정했다.
화해의 역사에서 시간보다 결정적이었던 것은 가해자의 인정이었다. 1970년 서독의 빌리 브란트 총리가 바르샤바 게토 봉기 기념비 앞에서 무릎을 꿇은 뒤에야 독일과 폴란드의 화해는 실질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시간은 인정 이후에야 약이 된다. 이번 전쟁으로 우크라이나인들은 러시아에 대한 신뢰를 완전히 잃었고, 그 상처는 아주 오래갈 것이다.
4. 인정 없는 회복의 조건: 서방의 포용
가해자의 인정을 기대할 수 없다면, 우크라이나인들은 무엇으로 회복할 수 있는가. 필자는 서방이 우크라이나를 확실하게 끌어안는 것이 그 조건이라고 본다. 우크라이나는 "우리는 혼자가 아니다"라는 믿음으로 항전했다. 그렇다면 서방은 그 믿음에 응답할 책임이 있으며, 전후 복구를 적극적으로 도와야 한다.
심리학에는 '배신 트라우마'라는 개념이 있다. 믿고 의지했던 대상에게 버림받을 때의 상처는 적에게 당한 상처보다 깊고 오래간다는 것이다. 우크라이나는 이미 한 번 부다페스트 각서의 안전보장이 무력화되는 경험을 했다. 휴전 이후 서방이 '지원 피로'를 이유로 물러선다면, 러시아가 남긴 상처 위에 배신의 상처가 하나 더 얹힐 것이다.
5. 한국이 비춰보는 거울
한국은 이 상처를 누구보다 깊이 이해할 수 있는 나라다. 다만 비교의 대상을 정확히 골라야 한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를 남북한에 빗대어 '통일'을 말하는 것은 위험하다. 그것은 두 나라가 하나의 민족이라는 크렘린의 프레임을 무심코 받아들이는 일이다. 우크라이나는 제국의 중심에서 독립한 별개의 민족이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관계는 오히려 한일관계에 가깝다. 과거의 지배국과 피지배국, 그리고 가해자의 인정이 충분하지 않다고 피해자가 느끼는 한 80년이 지나도 상처가 계속 덧나는 구조다. 반면 남북 분단의 경험이 정확히 들어맞는 곳은 우크라이나 내부다. 점령지에서 살아남은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떠난 사람과 남은 사람, 싸운 사람과 싸우지 않은 사람 사이의 의심과 반목은 한국전쟁 이후 한 마을 안에서 벌어진 보복과 낙인의 역사를 떠올리게 한다. 그리고 이 전쟁이 영토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채 정전 형태로 멈춘다면, 1953년 이후 한반도가 70년 넘게 겪어 온 '끝나지 않은 전쟁'의 긴장이 우크라이나에서 그대로 재현될 것이다.
6. 포로 사건과 한국의 태도
최근 한국과 우크라이나 사이에는 북한군 포로 문제로 외교적 갈등이 벌어졌다. 9월 23일 젤렌스키 대통령이 유엔총회 연설에서 북한군 포로 2명의 한국 송환 사실을 공개하자, 한국 정부는 비공개 합의 위반이라며 사과를 요구했고 우크라이나는 그런 합의가 없었다고 맞섰다. 한국은 10월 8일 주우크라이나 대사 소환을 발표했고, 20일에는 공관원 추가 철수를 결정했다.
한국 정부의 우려는 가볍지 않다. 북한에 남은 포로 가족의 안전은 외교적 체면이 아니라 사람의 생명 문제다. 그러나 필자는 강경 대응이 이어지는 것을 우려한다. 북한과 상호 군사지원 조약을 맺은 러시아 앞에서, 한국이 우크라이나를 몰아세우는 모습은 자칫 한국이 북러 진영 쪽에 선 것처럼 비칠 수 있다.
한국에 필요한 것은 냉정한 단절도, 동정 섞인 시혜도 아니다. "우리는 당신들의 처지를 충분히 이해한다. 그러니 당신들도 북한에 남은 가족들의 안전이라는 우리의 처지를 이해해 달라"는 대등한 설득의 언어다. 우크라이나는 고통받는 피해자이면서 동시에 자기 이익을 위해 전략적 판단을 내리는 주권국이다. 그들을 어른으로 대하는 것이 진정한 존중이다. 사과 요구에만 매달리기보다, 앞으로 생길 수 있는 북한군 포로 처리를 위한 공동 원칙을 함께 만드는 쪽으로 의제를 옮기는 것이 두 나라 모두의 체면을 지키는 길이다.
여기서 두 층위를 분명히 구분해야 한다. 도덕적 판단에서 침략자와 피해자는 분명히 다르다. 한국이 어느 한쪽에 지나치게 몰입하지 않고 외교적으로 신중하게 거리를 조절하는 것은 한반도의 특수한 사정 때문이지, 양쪽이 똑같이 옳거나 그르기 때문이 아니다.
7. 가장 중요한 교훈: 약한 나라는 먹잇감이 된다
러시아는 2022년 한국을 비우호국으로 지정하면서도 한국에 대한 문을 완전히 닫지는 않았다. 그것은 호의가 아니라 계산이다. 전쟁이 끝난 뒤 자국 경제를 일으켜 세우는 데 한국의 자본과 기술이 필요하기에, 한국이라는 카드를 관리하며 긴장을 늦추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 계산된 미소를 한국은 착각해서는 안 된다.
역사가 이를 증언한다. 구한말 한국이 약했을 때 러시아는 한반도를 자국의 세력권으로 다루려 했다. 1896년 아관파천 이후 러시아는 조선 조정에 깊숙이 개입했고, 1903년 용암포 조차 시도는 러일전쟁의 도화선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그러나 정직하게 말해야 한다. 그때 한반도를 노린 것은 러시아만이 아니었다. 청나라도, 일본도 그랬고, 끝내 한국을 식민지로 만든 것은 일본이었다. 우크라이나의 비극이 한국에 주는 교훈은 러시아가 특별히 악하다는 것이 아니다. 약한 나라는 언제든 강대국의 먹잇감이 된다는 것, 그리고 지금 그 논리를 가장 노골적으로 실행하고 있는 나라가 러시아라는 것이다.
우크라이나 국민들이 앞으로 겪어야 할 상처는 깊고 길 것이다. 그 상처를 지켜보는 한국이 품어야 할 것은 단순한 연민이 아니다. 우리 자신이 한때 그 자리에 있었다는 기억, 그리고 다시는 그 자리에 서지 않겠다는 각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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