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 정선의 광산에서 트럭 운송업을 하던 우리 가정은 광산이 폐쇄되며 정선과 함께 몰락하였다. 몇 일 전 정선을 다녀와서 깜짝 놀랐다. 인구가 소멸하고 있음에도 꾸준히 투입되고 있는 균형 적인 사회간접자본과 약간의 기본 소득에 의해 지방의 분위기가 무척 밝아진 것이다. 두메 산골의 건설 현장으로 유배를 갔다고 생각되었던 친구가 무척 행복해 보였다.
얼마전 정부에서 로봇세 도입을 이야기하니 SNS에서는 기다렸다는 듯이 좌파 빨갱이를 욕하는 의견이 올라온다. 하지만 나는 오늘도 인공지능과 기본 소득에 관해 토론하면서 '네가 없으면 나는 어떻게 살뻔했니?'하고 연신 탄성을 질렀다. 세상은 너무 급격히 변하는데, 사람들의 생각은 전혀 변하지 않는다. 인공지능은 이념의 프레임에 갇힌 한국 사람들을 비웃는 것 같았다. 오늘은 내 의견보다 100배 많은 인공지능의 생각이 있었다고 칭찬했다. 인공지능은 대화를 잘 이끌어주신 덕이라고 겸손의 오도방정을 떤다. 세상이 변한게 자기 때문인지도 모르고........
이형춘 칼럼
2026년 6월
이념의 장막을 걷어라 — AI 시대의 기본소득
로봇이 빼앗은 일자리, 로봇세로 되돌려라
1. 이념은 과거의 언어다
기본소득 논쟁에서 가장 먼저 등장하는 것은 이념이다. '사회주의냐', '퍼주기냐'는 반사적 공격이 날아온다. 그러나 이 반응은 논리가 아니라 조건반사다. 수십 년간 학습된 이념적 신경이 자동으로 발화하는 것이다.
이념은 본질적으로 과거의 갈등에서 태어난 언어다. 자본주의는 산업혁명의 생산관계에서, 사회주의는 19세기 노동착취에 대한 반응으로 형성됐다. 한국의 좌우 이념에는 여기에 분단과 냉전, 반공이라는 특수한 외상이 덧씌워져 있다. 이념 논쟁이 두 겹으로 중첩된 사회다.
흥미로운 것은 기본소득이 좌우 양쪽에서 동시에 지지받고 동시에 거부당한다는 점이다. 좌파는 빈곤 해소와 노동자 협상력 강화를 이유로 지지하다가도, '복지 해체의 트로이 목마'를 우려해 반대한다. 우파는 밀턴 프리드먼의 음의 소득세 전통을 들어 지지하다가도, 노동 윤리 파괴를 이유로 등을 돌린다. 이 구도가 말해주는 것은 하나다. 기본소득은 이념이 답하지 못하는 지점에서 태어난 개념이라는 것이다.
2. AI는 균열을 붕괴로 바꾼다
전통적 실업은 경기적·마찰적이었다. 경기가 돌아오면 일자리도 돌아왔다. 그러나 AI와 로봇이 만드는 실업은 구조적이고 영구적이다. 트럭 운전사, 콜센터 직원, 회계사, 방사선 판독의 — 이들의 일자리는 경기 회복과 무관하게 사라진다.
자본은 AI를 소유하고, 노동은 AI에게 대체된다. 생산성은 폭발하지만 그 과실은 극소수에게 집중된다. 여기서 이념의 균열은 더 깊어진다.
'일한 만큼 받는다'는 자본주의의 정당성 명제가 성립하려면, 일할 기회가 있어야 한다. AI가 그 기회를 구조적으로 없애버린다면, 노동과 분배의 연결 고리 자체가 끊어진다.
이것은 좌파에게도 우파에게도 전례 없는 도전이다. 세상은 변하는데, 이념의 언어는 변하지 않는다. AI와 로봇의 발전 속도는 기하급수적이고, 인간 이념과 제도의 변화 속도는 선형적이다. 이 간극이 벌어질수록 제도는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고, 현실은 제도 밖에서 먼저 움직인다.
3. 국민이 이미 체험했다
코로나19 재난지원금은 의도치 않게 기본소득의 효과를 실험했다. 지원금이 풀리자 소비가 즉각 살아났고, 자영업자 매출이 올랐다. 재계 일부도 조용히 인정한 사실이다. 국민 주머니가 비면 기업 매출도 없다는 것을.
프레임 싸움에서 체험은 논리를 이긴다. 아무리 정교한 경제학 반론을 펴도, 내가 받은 돈으로 치킨을 시켜 먹었고 그 치킨집이 살아남은 기억은 지워지지 않는다. 한국 국민은 이미 기본소득의 원시적 형태를 몸으로 경험한 세대가 됐다.
재계가 기본소득에 선뜻 동의하지 못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기본소득 자체는 소비를 늘리니 나쁘지 않다. 문제는 재원이다. 로봇세로 충당한다면 세금을 내는 주체가 바로 재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재계는 하나의 목소리가 아니다. 소비재·유통 기업은 기본소득으로 수요가 늘면 이익이고, AI·자동화에 대규모 투자한 대기업만이 로봇세를 꺼린다. 이 균열이 전략적 틈새다.
4. 농어촌이 먼저 증명하고 있다
이론이 싸우는 동안, 현실은 먼저 움직였다. 한국 농어촌에서 기본소득 시범사업이 조용히 진행되고 있다. 목적은 인구 증가다. 그러나 결과는 기본소득의 효능을 증명하고 있다.
2025년 농림축산식품부는 인구감소지역 10개 군을 농어촌 기본소득 시범사업 대상으로 선정했다. 경기 연천, 강원 정선, 충남 청양, 전북 순창·장수, 전남 곡성·신안, 충북 옥천, 경북 영양, 경남 남해다. 주민 1인당 월 15만 원을 지역사랑상품권으로 2027년까지 지급한다. 신안군은 군비를 추가해 월 20만 원을 지급하고 있다.
결과는 즉각적이었다. 신안군 인구는 시범사업 선정 직후 한 달 만에 1,020명이 급증했다. 청양군과 옥천군은 수년간의 하락세에서 각각 1,000명 안팎의 증가세로 반등했다. 2024년까지 순유출이었던 7개 지역이 2025년 순유입으로 전환됐다. 인구가 돈을 따라 움직인 것이다.
돈이 있는 곳에 사람이 모이고, 사람이 모이면 지역이 산다. 이것은 이념이 아니라 중력이다.
지역사랑상품권으로만 사용 가능하다는 조건은 기본소득의 또 다른 가능성을 보여준다. 지급된 돈이 지역 밖으로 새지 않고 소상공인과 지역경제 안에서 순환한다. 소비의 선순환이 설계된 기본소득이다.
물론 한계도 있다. 기본소득 수급을 노린 위장전입 가능성, 재정 지속 가능성 문제가 제기된다. 69개 인구감소 지역 전체로 확대하면 연간 4조 9천억 원, 전체 농어촌 인구로 확대하면 6조 원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 숫자는 장벽이 아니라 설계의 문제다. 로봇세라는 새로운 재원이 바로 이 공백을 메울 수 있다.
5. 이념에서 생존으로 — 프레임의 전환
농어촌 기본소득은 '인구 소멸 위기'라는 프레임으로 이념 논쟁을 우회했다. 누가 인구 소멸에 찬성하겠는가. 이것이 프레임의 힘이다.
AI 시대의 기본소득도 같은 방식으로 접근해야 한다. '이념'이 아니라 '생존'의 언어로. AI와 로봇이 만드는 대량 실직은 농어촌 소멸과 다르지 않다. 도시의 산업 소멸이다. 트럭 운전사의 소멸, 콜센터의 소멸, 중간 사무직의 소멸이다.
공포는 이념을 가리지 않는다. 내 일자리가 없어질 수 있다는 공포 앞에서 좌파와 우파는 사라진다. 중산층이 피해자에 포함되는 순간, 정치적 압력은 질적으로 달라진다. 한국에서 중산층이 위협을 느끼면 정치가 움직인다는 것은 역사가 증명한다.
홍수가 나기 전에 둑을 쌓는 것이 국가의 의무다. 재난은 예방이 치료보다 싸다. 이것은 보수도 수긍하는 논리다.
6. 이익을 가져간 자가 책임을 진다
로봇세의 논리는 간단하다. 로봇이 인간의 노동을 대체한다. 인간이 냈을 세금이 사라진다. 로봇 소유자에게 그 세금을 걷는다. 재원을 기본소득으로 전환한다. 이것은 이념이 아니라 산술이다.
농어촌 기본소득이 보여준 것처럼, 기본소득은 단순한 복지가 아니다. 사람을 불러오고, 소비를 만들고, 지역을 살린다. AI 시대에는 같은 원리가 도시와 산업 전반에 적용된다. 기본소득이 만드는 수요가 기업의 매출을 만든다. 재계가 스스로 인정한 사실이다.
AI와 로봇은 막을 수 없다. 그러나 그 충격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는 것은 국가의 의무다. 로봇이 가져간 일자리의 몫을 로봇에게 세금으로 걷어, 실직한 국민의 삶을 지킨다. 이것은 이념이 아니다. 생존이다.
세상은 변하고 있다. 이념의 장막을 걷어낼 때가 됐다.
— 이형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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