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버스는 준 공영제화 되는 중이다. 버스는 시장재의 성격을 가지지 않고 공공재의 성격을 가지고 있으나 버스 요금은 저렴하고 버스 회사는 영세하였다. 버스 회사는 이윤을 남길 수 없으니 모든 부담이 버스 기사에게 전가 되어 버스 기사의 근로 조건이 매우 험악했다. 나는 6년 전에 이 문제를 경기도에 청원을 한 적도 있었다. 그 전에 철도 민영화에 반대하는 시위대를 국회 정문 앞에서 만난 적이 있었다. 당시 보수정부는 공공재의 성격과 시장재의 성격을 구분하지 않고 오직 이념논리에 따라서 철도나 의료 분야를 민영화 할려는 의지를 보이고 있었다.
인간의 이기심 때문에 자본주의 논리가 정당화 되긴 하지만 난 인간의 이기심이 가져다 주는 재난 상황을 버스에서 직접 목격했다. 경기도 버스는 준 공영제가 된 버스와 안 된 버스가 공존한다. 그리고 둘의 운행 스타일이 너무 다르다. 준 공영제가 안된 버스들은 운행 스타일이 대단히 거칠다. 나는 운행시에 어느 회사의 시내버스때문에 극심한 정신적 고통을 받은 적이 있었다. 급 출발 급 정지는 보통이고 급하게 끼어들어 다른 버스운전자들을 혼란스럽게 만들기 일쑤였다. 때로는 그럴만한 장소에서 그럴만한 사고를 내기도 했다. 그 회사의 버스 기사들은 빠르게 많은 운행을 하면 매출이 오를 것이라는 기업주의 착각에 의하여 혹사를 당하고 있었다. 그리고 주변에서 입는 사회적 피해도 만만치 않았다. 우습게도 해당 버스 회사는 이윤을 남기기 때문에 준 공영제를 반대한다고 한다.
나의 이익이 타인의 희생에서 비롯되는 제로섬의 이익이라면 부당한 이익이다. 우리가 항상 창조 경제를 외치는 이유가 그것이다. 경제판을 레드 오션의 전쟁터로 끌고 가지는 말아야 한다. 현대 자본주의는 창조 경제와 더불어 최저임금, 노동 시간, 성 평등, 행복 지수등을 고려하며 수준 높은 사회 복지로 시장경제의 기능을 강화 시키고 있다. 이제 경제정책을 논함에 있어서 이념 논쟁이 의미가 없어지는 시대가 온 것이다.
준 공영제가 되는 버스와 안 된 버스의 격차를 보면 서울이 훨씬 극심했다. 준 공영제가 안 된 서울 마을버스는 서울 시민들에게 무척 필요하나 멸시 받는 천덕꾸러기로 행세하고 있었다. 차고지는 변변치 않고 운행 조건은 열악했다. 서울의 마을 버스는 약자는 착취 당하고도 좋은 소리를 못 듣는 초기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술적인 연구를 하는 용역에 맡겨 현실과 괴리된 연구 결과를 내 놓기도 하는게 서울 버스의 현실이다. 이때 나는 의문이 생겼다. 현재 서울 시장의 성격은 보수 이념적인데, 서울 시장의 이념적인 성격이 현실을 왜곡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성장은 변화와 함께한다. 이념 논리는 성장을 방해한다. 수정 자본주의는 초기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보완하고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서 발생한 이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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