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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3월 7일 토요일

코로나 사태와 한국의 정치와 종교

한국의 종교는 끊임없이 국가 시스템을 위협한다. 보수정부 시절에는 정치인에게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거나 세월호사건과 같은 국가적 재난에 배후역할을 함으로서 그들의 세상으로 국가시스템을 유도해 나가려는 시도를 계속 한다. 진보정부가 들어서고 정치인에게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자 종교와 반대성향을 가진 사회주의 프레임을 씌워서 진보정부를 공격한다.

더구나 요즘은 은밀한 내집단적인 성향이 강한 신흥 종교가 그 자체의 창궐이 아닌 진짜 역병을 창궐 하게 하는 역할을 함으로써 국가 시스템을 위협하고 있다. 내 관점으로는 이념과 종교는 한반도의 국가시스템을 교란하는데 유사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

과거 박정희 전 대통령은 집권을 하자마자 국가 재건에 필요한 가장 중요한 요소로서 과학 기술을 장려하고 미신을 타파하여 실사구시(Actual inspection)적인 집중력을 끌어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강력한 군사정부의 서슬 푸른 정책 앞에서 종교는 국가시스템에 순종적이었다. 국가시스템 만큼이나 강력한 중앙 집권적 시스템을 가지고 있던 카톨릭만큼은 한국에서 군사 정부의 부조리에 종교 특유의 자연법적인 정의감을 내세우며 저항하곤 했다.

종교는 자연법적이고 영구적인 윤리를 지향하기 때문에 국가나 사회에서 상수(常數)로 작용하고 정치는 환경과 상황과 인물이 변화함에 따라서 국가나 사회의 변수(變數)로 작용한다. 자칫하면 종교가 정치를 압도하여 암울한 사회로 만들 가능성이 큰 이유다. 이란과 같이 이슬람 혁명이 일어난 나라의 국가나 사회시스템이 퇴보하는 예가 있었고, 터키의 에르도안 정부는 이슬람 원리주의와 손잡으면서 건국 지도자 케말파샤의 원대한 희망을 무너뜨린 예가 있다.

권력을 지향하는 욕망을 가지고 있는 것은 정치인이나 종교인이나 마찬가지다. 그렇지 않은 정치인이 있는 만큼이나 그렇지 않은 종교인이 있다는 점도 마찬가지다. 다만 더 근원적이고 장기적인 종교권력이 정치권력을 종속 시킬 가능성이 많다. 많은 한국의 보수 정치인들이 단기적인 정치적 욕망에 휘둘려서 장기적이고 근원적인 종교권력에 종속되는 현상은 이 때문이다. 정신 나간 소리를 하는 종교인이 뭔가 믿는 구석이 있음은 이 때문이다.

과거 중국 청나라가 가장 융성했을 때는 실사구시를 국정의 중심 사상으로 삼은 강희제 때이다. 결국 청나라는 백련교도의 난이나 태평천국의 난, 의화단의 난등의 신흥종교의 난을 거치면서 내부 혼란을 치유할 틈도 없이 무너졌다. 그런 난들을 혁명으로 봐 줄 수 없는 이유는 실사구시적인 시스템을 갖추지 않은 혼란스러운 집단의 창궐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중국 공산당의 과학적 시스템이 중국에 자리 잡긴 했지만 시스템의 집중력을 잃어버리면 많은 혼란이 있곤 했다.

패기 넘치는 모습으로 새 역사를 창조해야 할 한국의 많은 젊은이들이 신흥 종교에 심취하는 이유는 경쟁사회나 빈부격차등의 사회적 부조리에서 회피한 이유다. 오랫동안 사회의 내면을 속속들이 관찰하고 있는 내 입장으로는 분명히 그렇다. 젊은이들에게 희망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늙은 교주의 욕망에 휘둘린다. 그래서 복지국가가 필요하다.

북한은 오랫동안 한 가문의 초합리적인 정치행위로 파탄이 났다. 젊은 김정은 위원장은 이런 모습을 타파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지만 오랫동안 진행되던 일이라서 그 부작용도 오래 간다. 북한이 빠르게 개혁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번 코로나19사태에 대해서 책임이 있는 신흥종교 교주가 마귀의 탓이라고 하는 말을 들어보면 한국 사회가 얼마나 병들어 있는지 짐작이 간다. 초합리적인 예언가로서 유명한 노스트라다무스가 전 유럽이 페스트로 곤란을 겪고 있을 때 유태인 가정만은 패스트를 앓지 않고 있는 이유를 곰곰이 생각했다는 말이 생각난다. 나중에 유태인 가정은 공통적으로 물을 끓여 먹는다는 사실을 알고 패스트를 몰아내기 위해서 물을 끓여 먹도록 전파했다고 한다. 같은 초합리성이라도 의도하는 바가 다르다.

과거 일본사회가 오음진리교 같은 신흥종교로 인해 재난을 당할 때도 일본 사회의 비합리적인 시스템과 비합리적인 의식이 숙주 역할을 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한국은 더 큰 문제를 안고 있다. 정치, 정치인이 종교나 종교인에게 종속되는 문제다. 비합리적인 종교가 결속력을 이용해서 사회 시스템을 공격하면 외부에서도 방어를 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이유이기도 하다.

한국의 사회사상은 좀 더 실사구시를 지향해야 하고, 종교는 좀 더 철학적인 고민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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