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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9월 10일 화요일

동조와 복종 / 솔로몬 애쉬

가끔은 내 성격에서 경이로운 모습을 발견하곤 한다, 어느 자리에 있어도 그 상황과 동조를 잘하는 성향이 있다.아마 어린시절부터 안정된 가정환경을 모르고 자라서 그렇기도 하고, 성장을 해서는 개인적인 상황으로 어쩔수 없이 이일 저일을 산만하게 손을댄 습관때문인지도 모른다.

청년시절, 신자확보에 급급했던 어느 종교단체에 몇개월 앉아 있었다. 딱히 편한 시절도 아니었기에 신앙이 가져다 주는 마음의 평안함을 비롯한 여러가지 부가적인 수입을 탐하는 계산이 있었던것 같다. 그런데 몇개월동안 지극히 일체감을 가지고 종교인 이상의 신앙인으로 탈바꿈을 하는것 같았는데, 도무지 해당 종교인분의 설교 내용에는 공감이 안갔다. 초조해진 종교인분은 '순종'하라고 소리높혀 외쳤지만 순종이 안되는 상황을 낸들 어찌하냐고  함께 소리높혀 외치고나서 그만 두었다. 다음에 또 방문하니 맞지 않으면 오지 말지 왜 오냐고 또 소리높혀 외쳤다. 비용편익계산을 해보고는 시간이 많이 아까웠다.  

다른 종교, 다른 종교인과의 관계에서도 '순종'을 권유받는 일이 있었는데, 다소 어려운 환경에서 이성이 강해진탓인지 신앙과는 별개로 종교인들에게 찰떡같이 순종하는 양이 되주지 못한것에 대해서 다소 죄송스럽기도 한것 같다. 문제는 내가 아니고 많은 신자들의 공허한 눈빛인것 같았다. 평안하고 행복한 삶을 구하는 사람들,그래서 동조하고 복종하는 삶을 살면서도 구하고자 하는 삶을 얻지 못하는 사람들을 보며 많이 안타까웠던것 같다. 한 편으로는 정신적인 권력관계를 엿본 까닭도 있는것 같다. 

이념이나 종교같은 보이지 않는 관념의  허구성에 깊이 반발하는 이유는 여러가지 과거의 경험들이 바탕이 된것 같은데, 인과의 법칙은 콩심은데 콩난다는 말처럼 진리인듯 하다.

미국의 사회심리학자인 솔로몬 애쉬(1907~1996)는 사람들이 공개적으로 반응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타인을 따르려는 성향이 있는데,이것을 동조라고 말한다. 누군가의 의견이나 행동, 심지어는 표정, 자세,목소리까지도 따라할려는 성향이 생기는데 이를 카멜레온 효과라고 부르기도 한다. 때로는 이념이나 종교의 내부에서 유난히 결집을 요구하기도 하는데, 동조현상은 집단의 결집이 강할수록 심해지며 반발자가 생기면 급속히 와해되는 성향이 있다고 한다.

애쉬는 동조의 이유로 두 가지를 들고 있는데, 첫째는  결정을 내리기 힘든 상황에서 타인의 결정이 쉽게 참고 된다는 점이고, 두번째는 다수와 의견이 다를경우 집단으로부터 배척됨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한편 사회심리학자 스탠리 밀그램(1933~1984)은 복종에 관한 실험을 했는데, 사람들이 자신들의 소신과 사회규범에 어긋날지라도 권위있는 인물의 명령에 복종하는 이유는 자신의 책임도 없어질뿐더러 자신의 행위에대한 결과보다는 복종관계를 더 중시하기 때문이라는 결론을 얻었다. 만약에 자신에게 명령을 내리는 권위자의 합법성이나 동기에 허점이 보이거나 누군가 복종하지 않는것을 보면 복종행위는 훨씬 줄어든다고 한다.

솔로몬 애쉬와 스탠리 밀그램의 연구결과를 보면 일본의 군국주의와 독일의 홀로코스트처럼 왜 사람들이 집단으로 엄청난 비윤리적이고 비 인간적인 행위를 하게 되는지 이해를 할수 있을것 같다.  

실제로 이념과 종교는 동조와 복종을 본질로 하는것 같다. 실제로 동조와 복종을 이루고 난 다음에 목표가 변질될 경우 많은 폐해를 발생할 수 있는데, 인류 역사상 가장 잔혹한 일들이 이념과 종교같은 선량한 목적으로 탄생해서 동조와 복종을 이끌어낸 다음에 변질되어간 관념들의 부작용으로 발생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고 하겠다.

주체적이고 스스로의 자아를 확립시킬 역사적 기회가 부족했거나 잘못된 교육으로 정신이 재산이나 명예,권력같은 저열한 가치에 지배를 받게된다면 동조와 복종현상이 일어나기 쉬운 바탕이 되기도 하는것같다. 정치인은 이념을 이용하고, 종교인은 신앙을 이용하여 동조와 복종을 이끌어내기도 하고  때로는 주체적이거나 반대하는 소수를 억압하는 수단으로 사용되거나 사회붕괴나 갈등의 수단으로 사용되는것 같다.   










2013년 9월 7일 토요일

한국에서 인적자원배분의 왜곡


80년대 한국에서 고시열풍이 불었다. 권위적인 정치환경에서 사회의 수직적차별에 민감했던 젊은 인재들이 너도 나도 고시에 뛰어들었다. 심지어 명문공대생의 많은 수가 법과목을 수강하고 고시에 뛰어들었으며 재학중에 3대고시를 합격한 어느 수재의 합격기는 그런 추세에 기름을 부었다. 어린시절 공학자가 꿈이었음에도 개인적인 상황때문에 수직적 또는 권력적 차별관계에 무척 민감했던 시절이라 2년정도 공부를 해보았다.그리고 오랫동안 그로인해 생계를 유지했는데, 직업의 사회공헌도에 대한 고려나 개인적인 적성과 관련해서 시행착오를 크게 겪었음을 인정하지 않을수 없는 시절이었던것 같다.

90년대에는 미국에서 어려운 여건에서 공부하여 박사학위를 얻은 어떤 공학자는 대덕연구단지에서의 열악한 환경과 열악한 처우로 공학박사학위를 얻는데 들어간 만큼의 시간과 비용을 투자해 사법시험을 합격한 기사가 신문에 실린것을 보았다.

세월이흘러 많은 시민들이 '교양인'이되고 수직적인 사회관계가 점차 수평적인 관계로 바뀌며, 정보통신의 발달로 젊은이들의 불같은 열정을 끌어낼수 없을정도로 '고시'의 가치는 평범해진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제는 안정된 직업인 '공무원'이란 직업에 관한 열풍이 생겨나 많은 젊은이들을 공무원시험공부에 열중하도록 만들고 있다.

아담스미스의 자유주의 경제사상,마르크스의 과학적 사회주의,케인즈의 큰정부주의 경제사상, 프리드먼의 신자유주의 경제사상이 경제학의 이념적 틀을 짜주면서 사회를 경제와 관련하여 이념적인 관점으로 견인했던것 처럼 고전학파와 신고전학파경제사상은 인간의 가치보다는 '생산성'과 '비용편익'의 계량적인 관점으로 견인했다.

노벨상수상자인 경제학자 베커(1930~ )는 '인적자본이론'을 내세워 시행착오를 겪는 경제학적 연구의 오류 이면에는 일을 하는 노동자인 '인간'에 대한 관심이 소홀했음을 지적하고 있다. 그는 마르크스의 '노동자'를 위한 경제이론도 비판하고 있는데, 당위에만 그쳤지 실제적인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지 않은 면을 지적하고 있다. 내가 생각하기도 특히 한국에서는 '노동자'의 존재가치나 처우개선을 위한 여론이 마르크스의 계급주의 경제사상에 연루되어 '좌파적인 의견'으로 왜곡되기 쉬운 문제가 있는듯 하다.

한국에서  인적자원배분이 장기적으로 왜곡되는 문제의 이면에는 다양한 직능집단이 국회에 진출하거나 또는 정당등을 구성하는 정치적 투입기능을 상실한 면이 있다는 생각이다. 대체로 법률이나 이념적인 사상학습을 받은 인문학적 인재들은 정치와 밀접한 관련이 있어서 여론형성의 역할을 하기쉬운데 공학자나 기술인 또는 그밖에 여러 직능집단의 인재들은 정치적 센스와는 거리가 먼 인재로 취급당하는 면이 있다는 생각이다.

한국에서 '현업'과 관련된 인재들(흔히 이야기하는 노동자)들의 처우나 근무환경에 대한 요구는 '좌파'라는 누명을 쓰기 쉬운 이념적 프레임에 갇힌 정치환경이  한국의 인적자원 배분을 왜곡시키는 주범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매번 현업의 현장에서 심각한 문제를 느끼면서 살고 있지만 개선의 길은 한없이 먼 현실을 느낀다.

인적자원을 적재적소에 배치하기 위한 노력등이 국회를 비롯한 정치권내에서 정치인의 개인적인 이익과 연루된다면 더욱 개선의 여지가 없을듯 하다. 정치인은 한 시대의 주목받는 직업군들로 구성되어있기 때문이다. 사실 근원을 캐어보면 경제의 바탕은 '적재적소에서 일을 하는 인간'에게 달려 있다는 사실은 진리인듯하다.   

미국의 꺼지지 않는 성장동력을 본받고자 하는 한국내의 견해는 미국의 경제가 오랫동안 탄탄하게 구축되어온 과학기술인적자원들로 지탱하고 있음을 잊은것 같다. 미국의 자유주의 경제의 모습을 말하기전에 햄버거와 콜라를 먹고 티브이를 보며 여가를 보내는 뚱뚱한 주민들의 이면에는 치열하게 노력하여 뛰어나게 성장하는 미국의 과학기술인력이 있다는 사실을 잊은듯 하다. 미국은 완전한 자유방임주의 경제라서 끊임없이 발전하고 있는것이 아니라 많은 자원과 실속있는 인적자원배분, 국방과학기술이 견인하고 있는 기술력등이 미국경제를 지켜주고 있는것 같다.  


2013년 9월 6일 금요일

도피로부터의 해방 / 에리히프롬


정신분석학자인 에리히프롬(1900~1980)은 한 사회의 경험은 특정무의식적인 내용이 의식화되는것을 사회적인 여과장치로 거르는 역할을 한다고 말한다. 이런 사회적인 여과장치는 이데올로기속에 숨겨져 위험한 또는 위험하다고 여겨지는 사상에 대한 사회적인 억압이 생겨난다고 말한다. 에리히프롬은 이런 사회적인 억압을 도피하기 위한 메커니즘으로 권위주의, 파괴성, 자동화기계라는 사회심리학적 개념을 이야기 한다.

권위주의는 인간이 자아의 독립성을 포기하고 타인을 지배하거나 복종하는 관계가 되어 사회적인 고독감으로 부터 벗어나기 위한 용도로 발휘된다고 한다. 파괴성은 자신과 비교가 가능한 대상을 제거할려고 발휘되며, 개인이 자동화기계로서 역할을 하며 타인과의 갈등을 소멸시키고 고독감으로부터 보호받을려고 한다고 말한다.

한국에서 일어나는 일련의 이념적인 정치사건들을 보면서 이념을 대체시킬 정신적 해방구의 필요성이 시급하다는 생각이 들때가 있다. 한국에서는 권력과 권위,지배 이런 단어들이 제시하는 관점으로부터 오랫동안 벗어나지 못하는것 같다. 조선왕조의 봉건적인 지배복종관계, 일제시대의 억압적인 통치, 연이은 권위주의 정부형태등으로 인해 시민의 자발적인 주체성이나 독립적인 사회정신을 함양하는 기회를 갖지 못한 탓인것 같다.

에리히프롬은 현대사회의 인간소외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랑의 기술'을 제안하며 사람들이 자신에게 '진실된 마음'을 쏟을것을 제안하고 있다. 에리히프롬이 이야기하는 사랑은 자신을 희생시키는 극단적인 형태도 아니며 자신에게 살아있는것을 전해주며 서로 관심을 가지고 이해하는 가운데 사회가 풍요로울것이라고 말한다.

한국사회는 격렬하다. 억압을 하거나 반발한다. 이기거나 진다. 동지가 되거나 적이 된다. 희생을 하거나 착취한다. 지배하거나 지배당한다.살거나 죽는다.

사실 한국의 격렬한 사회심리상태는 어떤 정신적인 도움도 받지 못했던것 같다. 억압하는 자는 격렬하게 비난받고, 맞선자는 영웅이 되며 사회정신을 이끌고 있었던것 같다. 종교는 사회정신의 부재로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또 다른 억압수단이 되기도 한다. 수고스럽더라도 자신이 중요하다는것을 인식하는 길만이 해방구로 나아가는 길인것 같다.

2013년 9월 4일 수요일

항상소득가설과 정부의역할


소비라는것이 저축에 비견하면 서로 희생관계에 있는 상대적인 악(惡)으로 취급받겠지만 국가경제를 종합적으로 생각하면 선(善)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듯 하다. 소비의 증대는 생산의 증대로 연결되고, 생산의 증대는 고용의 증대와 또다른 소비의 증대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일본과 같은 선진국의 경제는 국내소비가 정체되는 현상이 저성장의 주된 원인이라는것은 널리 알려져있다.결국 다국적기업과 같은 해외생산방식을 통하여 기업은 탈출구를 모색하지만 기업의 분배기능이 해외에서 이루어짐으로 해외노동자의 소득소비증대와 현지국가기업의 생산을 증대시키는데 기여하고, 자국의 경제는 공동화현상이 일어나는 문제가 있다. 자국민의 소비활동이 어느정도 보장되므로서 국부유출을 막고, 지속적인 경제성장이 가능한것은 알려져 있다. 

경제학자 프리드먼은 항상소득가설이라는 이론을 내놓았다. 고소득계층의 경우 변동소득의 비중이 높고, 저소득 계층일수록 월급과 같은 안정소득의 비중이 높다고 한다. 때문에 고소득 계층은 절대소비액의 비중이 높지만 소비성향자체는 저소득계층보다 낮은 현상이 일어난다고 한다. 소비자는 예측 가능한 소득에 소비의 기준을 두기 때문이다. 즉 항상소득이 소비를 결정한다고 말한다.

프리드먼은 경제에서 정부의 역할증대는 세금을 증대시키고 민간소비를 억제함으로서 경제성장을 방해한다고 말하는데, 항상소득가설을 생각하면 국민들에게 가능한 균등하게 일정액의 소득을 보장해주는것이 경제성장에 도움이 됨을 알수 있다. 소수의 부자들의 소비가 다수의 일정소득을 가진 소비자들의 소비를 압도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중산층을 두텁게 해야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국에서는 중산층이 형성되기 어려운 원인이 정치분야에서 시작이 되는듯 하다. 좌파와 우파의 이념논리가 지배하는 한국의 정책결정구조에서는 특정 경제계급의 경제적 이익으로 여론을 몰고가는 문제가 있는듯 하다. 수렴은 없고 기득권수호나 투쟁만이 정치적 관점을 지배하는듯 하다. 한편으로는 계층이동의 가능성이 어느정도 폐쇄되어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서로간의 흐름이 물흐르듯이 원활하지 못함으로서 갈등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국민에게 일정한 소득을 보장해주는 역할을 하는것이 경제를 살리기위해 노력해야할 정부의 역할이 아닌가 싶다. 많은 소득을 위한 적은 일자리의 창출보다 일정한 소득을 위한 많은 안정된 일자리의 창출등에 정부의 역할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한때는 정부의 역할을 민간경제와 동일한 선상에 놓아 프리드먼의 구축효과를 작은정부를 위한 논리로 인용을 했지만 작은 정부의 문제점은 케인즈의 승수효과와는 별개의 문제로 같은 프리드먼에 의해서 주장된 항상소득가설이 보여주기도 한다. 여기서 큰 정부란 분배의 역할에 어느정도 능동적인 간섭을 하는 정부를 의미함은 물론이다.

간략하게 표현하자면 많은 국민들이 일정량의 소비를 안정적으로 하는것이 경제성장에 도움이 되니 정부가 그 역할을 해야 된다는 의미다. 그리고 이 문제는 좌파냐 우파냐 하는 문제도 아니고 그냥 경제성장에 관한 문제일뿐이라는 의미이기도 한것같다.   

어휘풀이

변동소득/ 주식이나 부동산으로 인한 소득처럼 불안정한 소득
구축효과/ 정부의 조세수입과 투자가 민간의 소비와 투자를 밀어내는 효과
승수효과/ 정부투자가 고용과 소비와 생산을 연쇄적으로 늘리는 시너지 효과

2013년 9월 3일 화요일

후광효과의 정치


미국의 교육심리학자 에드워드 손다이크(1874~1949)는 어느 실험에서 군 지휘관들이 사병들을 평가할때 어떤 항목의 평가가 다른 항목의 평가에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지나간 일이지만 정치지도자에게 몹시 큰 불만을 가졌던 적이 있다. 민간인 사찰과 관련된 문제였는데, 하필이면 개인적인 문제랑 때가 겹쳐서 생각하는 시간을 많이 할애한 문제이기도 하였다.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이면의 다른 문제가 보이기 시작했다. 대통령임기 시작부터 이미지에 커다란 손상을 입고 직무를 시작했을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어떻게 생각하면 이미지, 과거사,정책스타일을 일치시키는 부정적인 후광효과가 의도적이든 또는 비의도적이든 정치지도자와 국민사이의 원만한 관계를 끊임없이 괴롭혔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이미지정치나 대중정치의 성향이 강한 국내정치의 특성상 당연히 있을수 밖에 없는 부정적인 이미지가 확대되는 현상을 감당하기에는 좀 힘겹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신념과 목표의식이 약할때는 주변에서 압박해오는 낙인을 감당하기 힘든 경우도 있을것 같다. 반대로 이미지가 좋으면 긍정적인 낙인이 찍혀 정책수행이 훨씬 수월할수도 있고, 좋은 결과를 가져올수도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개인은 긍정적인 행위나 표정으로 사회적 가치를 높일수도 있지만 그 반대의 경우도 있을수가 있는데,후광효과는 누군가를 평가하는데 타당성과 신뢰성, 객관성등을 손상시키지만 감정이나 감각같은 비합리적인 요소가 개입되기 쉬운 사회적관계의 특성상 과거와 현재뿐만이 아니라 기대되는 미래의 상황들까지도 크게 영향을 끼치게 되는것 같다. 특히 정치지도자의 부정적인 이미지는 영향력의 크기를 생각해볼때 국가와 사회전체에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올수도 있겠다 싶었다.

링컨대통령은 40대가 되면 자신의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을 했는데, 긍정적인 후광효과는 하루 아침에 만들어지는것이 아님을 시사하고 있는듯 하다.

2013년 9월 2일 월요일

건강한 성격과 프로프리움


미국의 심리학자 고든 올포트(1897~1967)가 유명한 선배인 프로이트를 찾아갔다. 그러나 프로이트는 올포트를 환대했으면서도 올포트에게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올포트는 부자연스러운 분위기를 먼저 깨기위해 기차안에서 만난 결벽증이 있는 소년의 이야기를 하였다. 프로이트는 조용히 듣고 있다가 올포트에게 갑자기 말하였다. "그 소년이 당신 아니요?" 올포트는 프로이트에 실망해서 신경증에 집중하는프로이트의 연구방식과는 반대되는 건강한 삶의 필요조건인 프로프리움이라는 개념에 집중하는 연구를 했다.

가끔은 전쟁을 승리로 이끌기 위해 웰링턴장군이 항상 고민했던 "저 언덕 너머에는 무엇이 있을까?"와 비숫한 의혹으로 사람들을 바라보는 경우가 있다. 한국에서 해결되지 않는 심리적 과제중의 몇가지를 곰곰히 생각해보는 가운데 인간심리의 여러 모습을 증명할수 있는 기회가 많은것 같다.

아마 프로이트는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경험에서 비롯되어 형성된 관점을 가지고 타인을 바라보는 잣대로 삼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듯 하다. 프로이트의 신경증과 같은 인간의 부정적 심리에 중점을 둔 연구도 자신의 어떤 경험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스스로 부정할수 없을것 같다.

사람들과의 만남에서 반복적으로 느끼는 경험중에 하나는 사람들은 스스로의 잣대로 타인을 평가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조금만 더 냉철하게 생각해보면 상대방이 나를 평가하는 모습으로 상대방의 내면을 알아낼 수 있는 경우도 많다.아마도 프로이트는 올포트가 결벽증을 경험해서 소년의 결벽증을 포착할 수 있었으리라고 생각한듯 하다.

생각해보면 관점은 비숫한 사람들끼리만 공유하는것 같다. 그래서 '그들만의 리그'에서 심각하게 진흙탕을 튀기고 싸우는데, 외부에서는 저 사람들이 왜 저러는지를 합리적으로 설명하기 불가능한적이 많은것 같다. 그렇지만 싸우는 사람들은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에 대한 인식이 확실하다. 때로는 자기들만 이해할수 있는 영웅도 만들어진다.  

올포트는 프로프리움에 대한 일곱가지 조건을 제시했다. 첫째, 의미있는 삶을 살면서 자아감을 확장할것, 둘째, 타인과 좋은 관계를 맺을것, 셋째, 정서적으로 안정될것,네째,현실적인 판단력을 갖출것, 다섯째, 성공에 필요한 지식과 기술을 습득할것, 여섯째,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볼것 마지막으로 일관성있는 삶의 철학을 가질것등이다.

소수의 개인이 건강하지 못하면 포착이 쉽고 치유도 쉽지만 집단이 건강하지 못하면 보편성으로 취급받으니 그것을 시대정신이라고 하더라

2013년 9월 1일 일요일

해결안된 믿음 / 레온 페스팅거


누군가 닭을 잡기 위해 털을 뽑았다. 그런데 죽은 줄 알았던 닭이 벌떡 일어나 털이 뽑힌채로 숲속으로 달아났다. 결국 닭을 놓쳐버린 사람은 안타까운 심정에 중얼거렸다. "이 추운 날 털없이 도망가면 저만 춥지......"

지인중에 행동이 경망스러워 남에게 비난을 받는 이가 있었다. 누군가 직접적으로 그 문제를 이야기 하지는 않고 버럭 화를 냈던 모양이다. 그랬더니 빠르게 사고의 전환을 하면서 중얼거렸다. "지금 저 친구가 사정이 안좋아서 저렇게 화를 내는거야......"

때로는 마음의 장난으로 문제의 본질을 임기 응변적으로 회피하여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영원한 방황의 길로 빠져 드는 경우가 있는듯 하다. 해결안된 문제는 또 다시 찾아올 것이기 때문에 인생이 고난의 연속이란 말이 나오는게 아닌가 싶다.

미국의 사회심리학자 레온 페스팅거(1919~1989)는 '인지부조화이론'에서 사람들은 사고와 행동이 불일치하게 되면 인지부조화가 일어나 긴장을 유발하게되고, 긴장의 감소를 위하여 사고를 행동에 맞추어 나간다고 말한다. 그가 이 이론을 내놓은 배경에는 1950년대 한 사이비 종교사건이 발단이 되었다. 

한 사이비 종교교주가 자신이 신탁을 받았는데 지구 종말이 오고 신도들만 비행접시로 구출을 받을 것이라고 말하였다. 사람들은 직장을 그만두고 모든 돈을 그 종교에 기탁을 했다. 그리고 그 소식을 전하려 애썼다. 그러나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교주는 신도들의 믿음으로 세상이 구원을 받았다고 발표를 했다. 사람들은 기뻐하며 축제를 했다.

이념과 종교에 대한 지나친 믿음은 문제의 본질을 회피하는데 도움(?)을 주는듯 하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믿음을 정당화시키기 위하여 끊임없이 동조자를 찾아 헤멘다. 그 습관이 계속 반복되면 문제를 해결할 능력조차 없어져 버린다. 그것이 개인의 범주를 떠나서 사회나 국가의 전체적인 모습이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