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민 누구라도 북한이 이념적인 정체성을 유지했다고 보거나 북한의 공산주의가 성공한 사례라고 할 사람이 없는것 같다. 정보기관이 한국내에서 대북정보활동에 이념적으로 전념한다면 과거로부터의 타성이거나 그 대상은 아직도 어딘가 침투해서 한국사회를 우회적이고 완곡한 방법으로 분열시키는, 이념이 기반이 되지 않는 북한의 첩보활동일것 같다.
사회가 국제사회에서 생존해 갈 수 없을 정도로 정체되어 있다면 잘못된 점을 올바른 방향으로 시정하거나 개혁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있는것은 당연한 것인데, 한국에서는 개혁의 움직임이나 정부비판의 논리를 냉전논리로 해석하는 면이 있고, 개혁을 원하는 주체도 자신들이 이념적 주체성을 가졌다고 착각을 하는 경우가 있는것 같다.
독일의 정치사상가 아렌트(1906-1975)는 1차 대전이 끝나고 대중사회가 도래함에 따라서 모든 사람들이 원자적인 성향을 가지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 이전에는 자기가 속한 계급이나 직능집단의 이익을 대변하여 조정할 수 있는 의회나 정당이 비중있는 역할을 하였지만 대중사회에서 대중의 원자성은 귀속감없이 내버려진 개인의 적막한 외로움을 의미하기도 한다고 말한다.
아렌트는 이런 대중의 공허함을 채울 수 있는 공동체적인 이념과 환상을 전체주의가 충족을 할 수 있기때문에 대중사회는 전체주의가 탄생할 수 있는 토양이 될 수 있다고 한다.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목적으로 북한주민들을 이념적 연대감으로 묶어놓고 있는 현상처럼 한국에서도 이념적인 연대감을 중시하는 현상이 있는것 같다. 한국에서는 공허한 마음을 가진 대중들이 종교와 같은 정신적인 연대감을 찾아서 헤메는 현상이 있는데, 이념이 비숫한 역할을 하고 있는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 현상은 대중적인 시민만의 문제가 아닌것 같다. 언론이나 지식인, 정책결정에 관여하고 있는 정당, 의회, 개별적 정치인이 모두 이런 덫에 걸려 있는것 같다. 지식인으로서 능동적이고 주체적인 역할을 하는, 적어도 자신들은 '대중'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이념의 세상'이라는 오랫동안 길들어 온 본능과 타성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듯 하다.
첩보활동이나 정보활동에 집착하지 않고 유난히 이념에 집착하던 국정원의 정보활동을 생각하면 시민의 전체주의적인 연대감을 지향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때로는 이념적인 세상을 창출하여 조직의 미래를 보장받고자 하는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국가이익'대신 '이념이나 종교'등의 비젼은 한국대중에게 연대감이라는 정신적인 만족도 주지 못했을뿐만 아니라 '실정(失政)과 사회정체(社會停滯)'라는 경험을 준것같다. 정보기관은 그런 경험에 크게 조력함으로서 시민들의 원성을 받고 있는데, 지금 그런 순간에도 '국익을 위한 정보활동'은 계속되고 있는지 의문이다. 집중력 없는 정보활동, 시민들의 촛불시위, 의회에서 민생을 떠난 정쟁등 엄청난 사회비용이 소모되고 있는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