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wered By Blogger

2013년 5월 8일 수요일

최대다수의 최대행복 / 입법자들의 책임


철학에는 두가지 기본 프레임이 있다. 절대적인 진리를 인정해야 할것이냐, 아니면 진리란 상대적인것으로서 시대와 장소에 따라서 변화될 수 있는 여지가 있는가 하는 프레임이다. 벤덤과 밀이 주장하는 공리주의 철학은 진리보다는 인간의 쾌락이나 행복에 진리에 버금가는 의미를 부여한 상대주의 철학에 해당된다.

지구가 중력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듯이 인류는 고통과 쾌락이라는 두 지배자에게 묶여있다. 고통은 회피되어야 하고 누구나 고통을 회피할려고 하며 쾌락을 갈망하고 있다. 때문에 인간은 마땅히 쾌락을 선택해야한다. 그러나 그 쾌락은 단순한 쾌락보다는 고차원적인 의미가 있다. '나의 선택이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미칠 경우, 나는 개개인이 누릴 수 있는 쾌락의 합산량이 최대인 길을 선택해야 한다.' 도덕과 입법의 최고 목적은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이다.' 

벤덤은 이러한 공리주의 사상을 영국의 비국교회목사이자 산소를 발견한 과학자인 프리스틀리(1733-1804)의 [통치론]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벤덤은 법률적으로 자연법사상을 부정했고, 자유방임주의를 지지했으며, 프랑스혁명사상에 반대하였다.

성직자임에도 불구하고 절대적인 진리로 여겨지는 크리스트교의 종교사상을 좀 더 '현실적인' 사상으로 변환시킨 프리스틀리의 사상은 당시에 상당히  진보적이었을거라는 생각이 든다. 게다가 이러한 사상은 과학적인 탐구를 소홀히 하지 않았던 프리스틀리의 부지런한 관찰력과 지적탐구심의 결실인듯 하다.

벤덤이 자연법사상을 부정한 태도는 당시로서는 매우 획기적이었는데, 그 당시까지 사상적인 변혁을 절대 인정하지 않았던 종교(크리스트교)의 세계가 뉴우튼의 만유인력법칙에 의해서 시작된 과학의 세계에 헤게모니를 넘겨주던 흐름에 크게 조력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다. 그러면서도 철저한 자유방임주의를 주창한 이유는 그 당시로서는 자유방임주의가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을 위해 필요한 질서였으며, 막 태동하는 경제사상으로서 어떤 문제점도 검증되지 않았음에 기인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