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5년 새해 아침부터 대법관들을 무던히도 당황케한 사건이 있었다. 경무대로 신년하례를 가기로 약속하고 대법관 모두가 대법원에 모이기로 한 이 날 아침 유독 김세완 대법관이 모습을 나타내지 않는 것이었다. 김대법관을 기다리던 대법관들은 경무대 약속시간을 다소넘긴 오전 10시경할 수 없이 경무대로 떠났다. 더러는 김대법관을 탓하며 불평하는 이도 있었다.
대법관 일행이 경무대에 당도한 뒤 얼마쯤 뒤였을까, 대통령비서실 경비전화가 요란스럽게 울렸다. 그리고 경무대 경비를 맡은 한 경찰관이 다급하게 보고해 왔다."지금 등산복 차림의 한 노인이 경무대에서 대통령각하와 약속이 있다며 막무가내로 들어오려고 합니다. 자신이 대법관 김세완이라고 밝히고 있는데 아무래도 수상합니다."
김세완씨의 삶에서 빼놓을 수 없는 단어가 바로 '등산'이다. 등산이야말로 그의 삶의 역정을 깨끗하고 빛나게 해준 세척제였다. 끝내는 죽음의 길이 되기도 했지만...... .
그가 등산을 시작한 계기를 들어보자. [ 내 나이 20세에 판사가 되기 위해 법원서기로 취직하고 보니 화류계와 연회석의 유혹이 상당하였다. 어느 날 문득 술을 마시다 마음에 사무치는 점이 있었다. 나를 공부시키기 위해 갖은 애를 쓰다 돌아가신 아버님의 임종도 보지 못한 내가 술에 취해 길을 헤매거나 화류계에 드나드는 일이 있어서야 되겠느냐는 반성이 일었다.] - 자서전에서 -
[등산은 육체적인 운동으로서만이 아니고 정신을 씻고 키우는 데는 가장 훌륭한 방법이 아닌가 한다. 수원에서 판사로 있을 때 공휴일이면 도시락을 사가지고 찬삼이와 광교산을 다녔다. 길가에서 군밤 스무개씩을 한 줄에 꿰 5전씩에 파는 것과 군고구마 5전어치를 사들고 산에 오르면 가슴이 뿌듯하고 무엇 하나 부족함이 없는것 같은 생각이 들곤 했다.] - 자서전에서-
- 84년 韓國記者賞受賞 법에 사는 사람들 -
빈곤한 정신을 이겨내기 위해서 스포츠에 마음을 두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 내용이다. 이런 부친을 둔 여행가 김찬삼 선생의 복은 말할 것도 없고,자식들에 대한 애정은 아랑곳 없고, 북녘의 고향만 그리며 눈을 감은 나의 부친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있다면 '저 구름 흘러가는 곳'에 마음을 두도록 붙잡아준 일이다.
나의 압바는 고향을 그리워 했는데
나는 압바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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