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레이거노믹스를 지원했던 신자유주의자인 시카고대학의 프리드먼 교수는 불공평을 수정할려고 노력해서는 안되며, 그 불공평과 더불어 사는 법을 터득하고, 그 결과 생겨나는 이익을 즐겨야한다고 한다.
2.분배의 형평성을 주장하는 롤스는 자연의 분배방식은 공정하지도 않고 불공정하지도 않으며, 공정이나 불공정은 제도가 그런 요소를 다루는 방식에서 생겨난다고 말한다.
3.후쿠야마교수는 과거에 레이거노믹스를 옹호했지만 정세가 바뀌었으니 지금은 다른 방식의 정책을 펴야 한다는 요지의 인터뷰를 했다.
4.롤스의 정의론이 궁극적으로 실패하든, 그 이론은 미국정치철학이 아직 내놓지 못한, 좀더 평등한 사회를 옹호하는 설득력있는 주장이란 견해는 하버드대학의 마이클 센델교수의 주장이다.
학자들은 자신의 견해를 변화시키기 어렵다. 견해를 변화시키는 것을 학문적 변절로 여기는 것 같다. 그러나 말 그대로 변절을 해버린 후쿠야마교수의 말대로 정세는 변하는 것이다. 센델교수의 말처럼 지금 미국의 정치철학은 이미 한계에 도달한 불공평한 미국사회에 대한 변화를 의도하고 있다는 견해같다.
사실 나도 수백년 산다면 지금처럼 복지국가를 선호하지는 못할 것이다. 언젠가는 지금 필요로 하는 복지문제는 세월이 흘러 부작용을 낳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때는 그때대로 다시 신자유주의같은 정치철학이 다시 발생할 것이라는 것은 당연하다. 다만 지금 한국이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하는 것이 지금 이 순간의 정의라는 것이다.
정치철학은 국가현실이 항상 동태성(動態性)을 띄고 있다는 전제를 깔고서 논의되어야 한다. 그 동태성이라는 것은 개인이 만든 것은 아니며 국민과 사회구성원의 발전적합의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또한 그 합의라는 것이 교통과 통신과 지식수준의 발전에 따라 시간이 지날 수록 점점 빠르게 변하고 있다는 것도 전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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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0월 5일 수요일
공평과 불공평에 관한 석학들의 논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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