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이념은 교차한다. 공동체주의자인 샌델교수의 특강이 미국과 한국에서 널리 알려지는 현상은 자유주의와 공동체주의 이념중 어느 한쪽의 편향성에 균형을 맞추는 현상일 수 있다. 가장 자유주의적 국가인 미국과 자유주의적인 보수정권이 자리잡은 한국에서 있을 수 있는 당연한 현상이다.
미국의 자유주의는 내리막길을 걷고 있는듯하다. 미국은 사회를 움직이는 창조적인 3퍼센트의 시민들을 제외한 나머지 국민들, 예를들면 할렘의 뒷골목에서 농구만 하는 흑인 청소년과 일을 마치고 오면 햄버거와 콜라를 들고 티브이앞에 앉는 가난한 노동자를 비롯한 97퍼센트의 능력을 끌어내지 못하는 문제점이 점차 상대적 국력감소라는 문제점으로 나타난다.
그래도 잘살았지 않냐고 한다면 미국이 참으로 복받은 나라인것을 말하고 싶다. 많지 않은 인구와 넓은 영토, 풍부한 자원, 거대한 공업 잠재력으로 축적된 자본은 투자와 수익을 반복하며 미국이란 거대한 나라를 지탱하여 왔다. 또한 다른 나라의 영토에서 일어나는 전쟁에 투입된 엄청난 미국의 군수품등은 미국경제에 눈덩이 굴리기식 승수효과를 가져왔다. 실제로 미국에 많은 부가가치를 안겨준 우주항공산업등은 군사분야와 뗄수없는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 달리는 두발 자전거처럼 미국은 어떤 일(?)이 또 발생하여 소비를 하고, 생산을 하며, 고용을 하는 정세를 바라고 있는지도 모른다.
국가도 시민도 살아있는 생물체와 같다. 피로하면 쉬는 시간이 필요하다. 미국의 근면한 엘리트들은 미국의 영웅이되어 많은 미국인들을 먹여살렸다. 이제 자아실현과 복지에서 소외된 시민들을 깨워야 할때다. 미국을 말하는것 같지만 한국도 비숫한 상황이다. 공동체주의는 새로운 삶의 방식으로 받아들여져야한다. 이념이라고 칭하면 사회주의로 받아들여질 수 있기 때문에 이념이란 용어 자체는 피하는게 좋다.
옛날 옛날 사람은 원래 한끼만 먹었다. 그러나 청동기시대에 정복전쟁과 계급이 생기면서 노예를 부리기 위해 노예에게 두끼이상을 먹이기 시작했다. 먹어야 일을 하지.........좀 역설적이지만 타인을 부려먹기(?)위해서는 타인이 일할 여건을 만들어줘야하고 일할 마음을 가지도록 행복한 동기를 부여해야한다. 그것이 공동체주의다. 너도 살고 나도 살자는 방식이다. 내 생각에는 장차 미국이나 한국에서 받아들여질 수 밖에 없는 삶의 방식인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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