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시절부터 내내 푸락치활동을 하면서 지내던 친구가 있었다. 물론 심증은 가나 물증이 없지만 가깝게 지내던 나도 옌벤에서 출판된 철학책을 보다가 포도청의 급습을 한 방 먹은 것은 물론이다. 그 이후에도 그 친구는 도움과 함께 뒷통수를 쳐주기를 멈추지 않았는데, 어차피 전정부시절 북파공작원문제나 이념문제 또는 종교적인 비판문제로 잡귀의 온상이 된 내 통신문제에 관해서 공중전화를 주로 이용하며 살며시 포기를 한 상태에다가 원리주의 기독교를 믿는 얼띤 친구의 처지가 딱하기도 하고해서 별로 문제삼지 않았다.
하지만 어느 장소에서 만나든지 나를 만나면 테러범 만나듯이 도망가기 일쑤였는데, 저렇게 오버액션을 해서 어떻게 살아가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함께 운동을 하러 다니자고 회유를 하거나 좀 더 온건하거나 세련된 교회로 옮기라고 충고하기도 했다. 일단 신경력이 강화되고 객관적이고 개방된 장소에 있어야 멋있는 사람으로 탈바꿈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어차피 한반도에서 이념문제가 논란이 된 것은 부실한 국민의 정신상태가 근본원인이라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처지에 개인적인 문제까지 신경쓸 여력이 없어서 이래 저래 귀찮고 바쁘기만 했다.
언론 기자들의 통신까지 수사기관에 털렸다는 기사가 났다.
이 정도면 한 국가의 정신상태가 갈때까지 다 갔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모든 촛점이 이념에 맞춰져 있는듯 하다. 나같은 지독한 반공주의자도 내 친구가 하듯이 사적인 감정이나 개인적인 권력욕구로 피해를 볼 수 있는 여지가 있을듯 하다. 조금 더 넓게 세상을 보면 편향성은 대칭성을 만들게 마련이고 싸울려는 자 상대가 나타나기 마련이다. 그러니까 순탄하게 통합될 수 있는 국민을 결과적으로 분열시키는 역할을 작위적으로 할 필요는 없다는 의미다. 장기적으로 중립에 있을 사람들까지 시스템의 불안정함에 불만을 터뜨리는 적으로 만들 필요가 있는가 하는 생각이든다.
북쪽이 덜 떨어졌다고 남쪽까지 덜 떨어지면 어떡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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