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북이가 토끼에게 말했다. "토끼 경주다!" 어느 웹툰에서 본 내용인데, 우리들이 흔히 상상하는 토끼와 거북이의 달리기 경주이야기가 아니고 토끼와 거북이가 함께 차를 타고 경주 톨게이트에 도착했을때 거북이가 한 말이다. 유치하지만 재미있었는데, 평소 많이 겪은 사소한 경쟁의 불합리성에 비하면 긍정의 해학이 담겨 있으니 즐거움으로 기여하는 착한 내용인듯 하다.
어찌어찌하다가 구세대의 여러가지 특수한 군대출신의 지인들과 본의 아니게 갈등을 겪은 적이 많았던것 같다. 자신과 싸우기 보다는 주변인들을 적으로 상상하는 관점에 몰입하는 습관을 버리지 못하는 이들을 만났던것 같다. 인간관계를 힘의 강약관계나 서열관계로 파악을 하고 있기 때문에 빨리 그 관계를 정립시킬려고 서두르는 탓인지 강한 사람은 쉽게 군림할려고 하고, 약한 사람은 쉽게 비급한 태도를 취하는 경우가 많았던것 같다.
오래 전 유신정부시절에 부친이 누군가 무고를 해서 검사심문을 받은 적이 있었다. 검사의 권력이 서슬퍼렇던 시절인데도 아무 생각없이 부친은 담배를 꺼내 물었고, 검사는 기절초풍하며 여기가 어디라고 담배를 꺼내 무냐고 질책하였다. 부친은 아무 생각없이 담배를 다시 넣었다. 권력에 대한 민감하지 않은 반응에 좀 의외감을 느꼈던지 그 검사는 부친에게 이왕 꺼낸 담배니 피우시라고 재떨이를 앞에 놓아 주더란다. 수많은 생과 사의 고비를 넘긴 사람의 초탈한 마음은 권력관계도 같지 않아 보였던 모양이다.
평등관계가 정착이 안된 탓인지 한국을 비롯한 동북아시아의 문화권은 서열관계에 관해서 좀 과장된 몰입을 하는듯 하다. 개인적으로도 그런 관계를 많이 느끼는데, 권력기관에 있는 사람들이나 권력을 지향하는 사람들중에 간혹 담백한 내 마음과는 달리 군림할려고 했다가 꼬리를 내리고 하기를 반복하는등 저 혼자서 전 난리를 치는 경우를 물끄러미 쳐다본 적이 많았다. 어떨때는 웃기지좀 말고 운동이나 열심히 하라고 조언을 해주곤 하는데, 아무래도 자식은 아비 닮는 모양이다.
일본인들의 성향에 대해서는 참으로 생각하는 바가 많다. 왜냐하면 건강부터 시작해서 공부학습 능력이나 심지어는 노자사상이나 장자사상, 논어 같은 중국발 철학조차도 일본인들이 쓴 책은 쉽게 풀이를 해놓고, 공감되는 부분도 많았던 것 같다. 언젠가는 단시간 수면법이나 집중력을 키우는 방법에 관한 책을 본 적이 있는데, 역시 일본인들이 쓴 책이었다. 대략 일본인들의 자기 단련이나 자기계발의 노력은 무사의 단련과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존경받아도 괜찮은 풍속일수도 있지만 그 내면에는 서로에 대한 내밀한 경쟁심이 뿌리깊게 자리잡고 있다는 느낌을 받은 적이 있었다. 순수한 자신과의 싸움을 거쳐 궁극적으로는 극복해야 할 대상과의 '최후의 한 판'을 남겨놓은 모습이라고나 할 수 있겠다.
일본인들은 서로에게 눈 맞춤을 기피한다고 한다. 내 눈은 비교적 촛점이 잡혀 있어서 의미있는 해석을 좀 받는 편이었다. 여성분들에게 눈이 향하면 사랑에 빠진 눈으로 해석되고 언젠가는 대형마트에서 내가 자신을 쳐다본다고 투덜대며 지나가는 이가 있었는데, 나중에 보니 그 이의 직업은 형사였다. 일본인들은 눈을 맞추는 행위를 경쟁과 도전의 의미로 해석하는 모양이다. 초탈하고 담백한 사회분위기보다는 과장된 의미를 두는듯 하다.
싸울려고 하는 자 싸울려는 상대가 나타나는듯 하다. 어쩌면 자신의 상상이 만든 현실적 결과물인지 모르겠다. 한국의 입장으로서는 숨가쁜 이웃들을 두고 있는듯 하다. 힘이 없으면 깡이라도 가지고 싸울려는 북한과 이웃에 대한 협력보다는 배타성이 강한 일본이나 다른 국가와 사회에 대해 종속성을 요구하는 전통을 가진 중국이 있다. 동북아시아는 평등관계를 지향한다는 명분을 내세우지만 결과적으로 우세함을 확보하는 미국이나 서유럽의 지혜로움을 극복하지 못하는 우매함이 있는듯 하다. 어쩌면 서구사회는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고 형식을 타파하여 그것을 찾아내는 목표의식이 확고한지 모르겠다. 어떤 것을 선택하고 그것에 집중하면 다른 것에 대한 생각은 비어 가는 것이 진리라고 한다. 일심(一心)은 무심(無心)이라는 부처의 말을 빌어봐도 그것이 진리인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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