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왜 그랬을까를 생각하는 습관이 생겼다. 아마도 음성적인 사회에서 건강한 정신을 유지하기 위한 내면적인 선택인지도 모르겠다. 언젠가 일터에서 연배가 있고 무지한 이가 쉴새없이 떠드는 모습을 몇개월동안 물끄러미 지켜본 적이 있었다. 무엇보다 재미있었다. 말의 내용을 그대로 받아들이면 정신이 정상적이지 않은 길을 걷고 있거나 그 무지함이 가장 우려했던 백성의 모습이려니 하는 생각에 마음이 쓰린적이 많았을 것이다. 그러나 내 자신은 오랫동안 그런 대상에 대해서 감정처리를 할 수 있는 훈련이 잘 되어 있는듯 했다.
한반도에서 이념문제는 상당히 음성적인듯 하다. 이미 양성적인 현실은 세계화를 달리고 있는데, 이념문제는 음습한 하수구속을 헤메는 기분이다. 한 때 원리주의 종교에 심취한 사람들의 집단을 가까이서 볼 기회가 있었는데, 집단 우울증 상태에 있는 것 같았다. 이념에 몰두하는 사람들의 모습 역시 그러하리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 사람들에게도 인격이 있고, 존중받을 권리가 있다는 생각은 항상 염두에 두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런 사람들일수록 에너지를 얻어내기 위해서 싸움을 거는 성향이 있는것 같다.
북한문제나 통일문제, 이념문제나 종교문제등을 양성적으로 유도하고자 하는 의도가 있지만 내 자신의 확신이 강하지 않으면 예의 싸움에 휘말려 들어갈 위험이 있는듯 하다. 한 번은 살면서 자발적인 고생도 안해보고 자신을 통찰할 기회도 가져보지도 않은 지인이 나를 극복해야 할 대상으로 생각했는지 쉴새없이 에너지싸움을 걸어왔다. 그때마다 '시끄러우니 운동이나 하라'고 질책했다. 마음을 양성적으로 가지란 의미였다. 내 자신은 에너지를 빼앗기는게 아니라 그냥 비루한 자극으로만 느껴지고, 인간의 약점이 쉽게 파악될 뿐이었던것 같다.
대체로 정보기관이나 치안기관같은 공권력도 그렇지만 사회 전반에 널려 있는 음성적인 분위기는 이미 정상적인 사회를 유지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는듯 하다. 시민 개인 개인을 생각해보면 양성적인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음성적인 인연이 공격적인 간섭을 해 오기 전에는 전혀 상관없는 다른 세계를 살아가는 성향이 있는듯 하다. 보이지 않고, 겪지 않는 세계는 생각할 이유가 없는듯 하다. 쓸데없는 상상으로 자신들의 삶을 낭비하지 않는듯 하다.
우울한 사람이 이웃을 힘들게 만든다. 그건 공권력도 마찬가지다. 우울한 사회의 정보기관은 시민의 정보를 무차별적으로 수집한다. 보호라는 명분으로 감시를 하지만 그 내면에는 에너지싸움에서 승리할려는 욕구와 권력의지가 있다. 따지고 보면 사찰기관원들은 또한 누군가의 노예가 된다. 그리고 모든 것이 함께 진화한다. 감시의 방법, 싸움의 방법, 대응의 방법,방어의 방법들이 함께 진화한다. 본심은 블러그글로 모두 표현하고, 이것 저것 부담스러운 점이 있어서 공중전화나 스마트폰이 아닌 전화를 가끔 이용하거나 외부 컴퓨터를 많이 이용한적이 있지만 다수의 사람들이 이런 귀찮은 문제에 시간과 비용을 투자해야 하는 사회라면 그 사회는 이미 쇠락의 길을 걷고 있는 사회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타고난 건강이 안 좋아서 참으로 오랫동안 스포츠에 정신이 팔려서 살다보니 음습한 대칭세계가 보이기 시작한듯 하다. 어느 날 병색이 완연한 지인이 눈치를 살살 살피면서 에너지싸움을 걸어왔다. 내가 가지지 못하고 자신이 가진것을 내세우며 내가 어두운 기분으로 전락할 것을 기대했다. 사실 그런 마음 자세로 살면 건강은 더 나빠질 것이라고 질책했다. 한편으로는 질책하면서도 그 분위기에 어느 정도 끌려들어감을 발견하곤 한다.
북한이란 국가는 굉장히 음성적이다. 그것은 이념때문인듯 하다. 그리고 몸과 마음이 건강하지 못한 지도층이 있다. 한국은 북한때문에 더욱 음성적이기도 하고, 스스로가 음성적인 사회로 빠져드는 성향이 있다. 저번 글에도 밝혔지만 동북아시아 자체가 그런 분위기고, 그 내면에는 수직관계의 권력의지가 바탕이 되어 있다는 생각이 든다. 언젠가 일본이 세계 제 2의 경제대국이 되고, 아시아의 네마리 용이 승천한다고 떠들썩할 무렵에 무엇을 보고서 서구사회가 종말이 온다고들 말했는지 모르겠다. 정작 문제는 과잉종교에 빠져 쇠락하는 이슬람 세계나 과잉이념이나 종교, 게다가 과잉권력의지에 빠져 쇠락하는 동북아시아인듯 하다.
언젠가 이리유카바 최가 저술한 [그림자 정부]라는 책을 훑어 본 적이 있는데, 음성적인 사회와 양성적인 사회는 개인의 의지에 따라서 선택이 가능한 세계라는 생각이 들었다. 많은 사람들이 '지배'를 위해서 헛발질을 하는데, 자신과 이웃에게 불편한 사람들인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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