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은 지인이 크게 출세를 했다고 자랑하고 있었다. 심술인지 장난기가 발동한 탓인지 그 지인의 상급자로 있을 사람에게 이 이야기를 하겠다고 엄포를 놓아 그 지인을 뒤집어지게 한 사건이 있었다.
오래전 한국인들에게 출세의 지름길이라는 수험생활에 몰입을 한 적이 있었다. 그러다가 어느 날 그 상대성의 민낯(naked face)을 깨닫고 말았다. 때 이르게 불행한 사건을 많이 겪은 탓인지 죽음앞에서는 누구나 평등하다는 생각을 기반으로 출세라는 수직적인 관점을 갖게 되면 내 위에 있는 누군가때문에 계속되는 욕망에 시달릴 것이라는 생각을 했던것 같다. 그 당시도 그렇지만 요즘도 법조계나 경제계에서 성공을 했다는 생각을 자각하게되면 더욱 상급의 권력을 획득하기 위해 정치계에 입문하는 것이 수순인것 같았다. 이익분배의 물길을 자기쪽에 유리하게 돌려놓기 위한 수단일수도 있겠고, 명예나 정치적인 권력이라는 마지막영역을 추구해보겠다는 욕심일 수도 있을 것 같다.
곰곰히 생각하다가 내 스타일은 강남스타일이 아니고 강북스타일이라는 사실을 깨닫고는 한 시라도 젊었을때 사회의 구석구석을 이해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래야 나의 관심사인 문제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거라는 생각이 들었던것 같다. 그러나 나도 인간인 탓에 경제적 안정이나 지위에 대한 욕구에 번번히 무력하게 시달리곤 했다. 특히 사회의 저층구조속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정치와 사회에 대해 전체적인 이해를 할 수 없을 정도로 인문철학적인 교육이 부실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지위에 대한, 말이 통하는 사람들에 대한 욕구에 시달렸던 것 같다.
그런면에 있어서는 뭔가 가지고 있는 사람들도 만만치 않은데, 출세나 수직적인 상승을 위해 많은 것을 잃어가는 사람들, 가까운 지인들부터 유명인들까지 가깝거나 때로는 먼 곳에서 오랫동안 변화하는 모습을 주의깊게 살펴보곤 한다. 공통적으로 모두 늙어가는 것 같았다. 그것도 별로 멋있지 않게 늙어가는듯 했다. 어느 날 신호대기중에 횡단보도를 건너가는 오래전 나의 직장상사를 만났는데, 매우 권력적인 스타일이었던 과거와는 달리 초라한 어르신 한 분이 나를 발견하고는 시선을 외면하고 잰 걸음으로 피해가고 있는 것을 보았다. 어느 지인은 승진을 하기 위해 직장 상사의 보조에 맞춰 술 대작을 하다가 고등학생인 아이 둘을 남겨놓고 간암으로 개똥밭같은 세상을 먼저 버린것도 보았다.
바로 이 대목에서 나는 대단히 욕을 먹고 있는 여피족의 처지에 눈을 돌려보고 싶다. 그들은 아마도 귀중품들에 대해 역사상 가장 탐욕스러운 소비자들일 것이다. 여피족들이 그렇게 두들겨맞는 까닭은 무엇일까? 그것은 그들이 구매하는 부와 권력의 상징이라는 것이 온갖 비용을 치르면서 소비의 경쟁을 벌이려는 기묘한 성향의 또 하나의 사례가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것은 부와 권력이 대량 소비에 의해 좌우되는 사회에서 위로부터 부과되는 준엄한 성공의 필요 조건이다.
그래서 소비주의 기풍에 자신이 충실하고 있음을 입증할 수 있는 자들만이 소비 사회의 상류계급으로 진입이 허용되는 것이다. 상승 이동의 가능성이 있는 젊은이들에게(뿐만 아니라 더도 말고 하층 계급으로 떨어지지 않기만을 바라는 젊은이들에게까지도), 과시적 소비는 성공으로 말미암아 주어지는 이득이라기보다는 성공하기 위해 치러야 하는 비용이다. 일류 디자이너가 만든 옷, 이태리 스포츠카, 레이저디스크, 고급 오디오 시스템, 블루밍데일에서의 쇼핑, 햄프톤에서 주말 보내기, 맥심에서의 오찬 - 이런 생활을 하지 않고서는 그 누구도 자기가 만나고 싶어하는 사람을 만나지 못하며 버젓한 일자리를 구하지도 못한다.
물론 그런 식으로 하다 보면 예금 통장에 잔고가 올라가는 대신 빚더미에 올라앉을 수도 있다. 교외의 공여 주택지에서 단란한 가정을 꾸리는 대신 결혼을 연기하고 아이도 없이 콘도미니움에서 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별 도리가 있는가? 윗 사람들에 대한 충성을 입증하는 데 그보다 더 나은 방식은 없지 않은가?
- 마빈해리스의 [작은 인간]중에서 -
어느 날 좀 특이한 방식의 과시적인 소비를 했다. 비싸지 않은 20대들이 입는 의복으로 모두 교체했다. 다행히 나이에 비해서 몸매가 바쳐주었다. 무엇보다 젊고 가능성에 모든 것을 미루어 버린 평등한 젊은 사회에 소속되어 있는것 같아서 기분이 좋았다. 실제로 대접도 그렇게 받는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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