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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2월 21일 금요일

소득주도성장과 동적역학(dynamic mechanics)


김상조교수가 소득주도성장과 재벌개혁에 관한 지속적인 노력을 표명했다. 경제정책을 과학적이고 실증적인  근거에만 의존한다면 우리가 사는 세상은 정체(stagnation)만 있을 것 같다.. 북한 정체(political system)의 가장 큰 오류는 정체(stagnation)라는 내용의 글을 많이 써 왔지만 한국이나 북한의 보수성은 국가나 사회발전에 역기능을 해왔다는건 확실하다. 언젠가는 보수정부에서 더욱 빈번하게 발생하는 부패사건 조차도 움직이고자 하는 인간본성의 색다른 그러나 방향이 나쁜 표현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실증성을 강조하며 본의아니게(나는 계획에 없던 성향이 아닌가 추측한다) 비판을 받고 있는 맨큐교수에 비해서 피케티교수의 생각들이 갈채를 많이 받는 이유는 사회의 경제현실이 변할때가 되었다는 사실을 반증하기도 하는것 같다. 저번 글에서 밝혔듯이 한국의 빈부격차등으로 인한 혼미한 경제현실에 직접 가담하면서 절망을 느꼈던 만큼 한국정부의 정책방향도 실증성 보다는 가치판단 또는 가치규범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서민의 생활속에 느꼈던 분배의 문제보다 더 근본적이고 학리적(in theory)인 냉정함으로 관찰해도 이제는 신자유주의 정책은 버릴때가 되었다는 생각이다.

All eports since then to show that a realistic economy might actually reach something like the Arrow-Debreu equilibrium have met with continuing failure. Theorists haven't been able to prove that even trivial, childlike models of economics with only a few commodities have stable equilibria. There is no reason to think that the theoretical general equilibrium so prized by economists is anything more than a curios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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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have no weather Adam Smith's invisible hand holds for the 'real world,' but then, no one else does either. This is because, even though this story is used to influence national policy, no mathematical theory exists to justify 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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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t dynamics do matter, like it or not. If economics does not establish the laws of change within economics, what exactiy does it do? And if it is concerned oniy with the "equations of equilibrium,"what happens if that equilibrium is so unstable and fleeting that it's unlikely to bearany resemblance to the real world around us? It would be like mathmatical meteorologists finding beautiful equations for a glorious atmospheric state with no clouds or winds , no annoying rain or fog, just peaceful sunshine everywhere. In principle, the atmosphere might have such a state, but it tells us nothing about the reality we care about, about our own wea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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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 we'll see, emprical evidence suggests that these loose arguments don't support market efficiency and equilibrium either. Markets bounce around far too violently and do too many surprising thing to be explained by any story of perfect or near-perfect market equilibrium. But first, let's take another look at the wisdom of crowds.


그때 이후 실물경제가 실제로 애로-드브뢰 평형과 같은 상태에 이를 수 있음을 증명하려는 모든 노력은 계속적으로 실패했다. 이론가들은 단지 몇개의 상품들만을 다루는 자명하고 유치한 경제 모델 마저도 안정된 평형 상태에 이른다는 사실을 증명할 수 없었다. 경제학자들이 그렇게 소중히 여긴 일반 균형 이론이 호기심 이상의 것이라고 생각할 이유가 없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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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이 '실제 세상'에서 성립하는지 성립하지 않는지 모른다. 하기는 어느 누구도 모를 것이다. 그 이유는 이 이야기가 국가 정책에 영향을 미쳤다 할지라도, 그것을 뒷받침해 줄 수학이론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좋든 싫든 동역학 법칙은 중요하다. 경제학이 경제 속에 있는 변화의 법칙을 확립하지 않는다면, 경제학이 정확하게 무엇을 하겠는가? 그리고 경제학은 "평형 방정식"에만 관심이 있는데, 그 평형 상태가 너무 불안정하고 순식간에 지나가서 우리 주변의 실제 상황과 다르면 어떻게 될까? 그건 마치 수리 기상학자가 구름이나 바람도 없고, 성가시게 하는 비나 안개도 없이 어느 곳에나 그저 평화로운 햇빛만 내리쬐는 훌륭한 대기 상태에서 아름다운 방정식을 찾는 것과 같다. 원칙적으로 대기는 그런 상태를 가질 수도 있겠지만, 그 상태는 우리가 관심있는 실제, 즉 우리 주변의 날씨에 관해서는 아무것도 알려 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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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알게 되겠지만, 경험적 증거는 이런 느슨한 주장이 시장 효율성이나 평형 상태를 뒷받침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해 준다. 시장은 훨씬 격렬하게 이리저리 튀어 오르고, 완벽하거나 또는 완벽에 가까운 시장 평형만으로 설명하기에는 놀라운 일들이 너무 많다. 하지만 먼저 대중의 지혜를 다른 시각으로 살펴보자. 

- MARK BUCHANAN의 [FORECAST]중에서 -  
    

2018년 12월 9일 일요일

마샬계획(Marshall plan)과 북한의 철도


어렸을때 한국의 철도망이 잘 건설된 지역에 살았다. 부친이 태백이나 정선등지의 광산에서 자동차품을 팔았던 이유로 그 지역에서 지냈는데, 당시 철도는 광산 지역에서 어쩌면 유일한 운송수단이었다. 산업철도는 태백, 정선지역의 높낮이가 심한 지형을 극복할 수 있는 교통수단으로서 적은 비용으로 많은 물류를 수송하는 역할을 충실히 해내었다. 기차를 탈때면 대형 디젤기관차에 씌여진 양손바닥그림위에 올려 놓은 '받들자 미국의 힘'이라는 글이 인상적이었는데, 미국의 원조로 들여 온 기관차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윙윙 거리는 전기기관차의 엔진소리도 인상적이었는데, 70년대에는 다른 지역과는 달리 가장 생명력이 넘치는 지역이 강원도 남부의 광업지역이었다. 그 당시 매우 어렸음에도 그곳에서 정선선을 연장하기 위해 건설중인 광경도 기억을 하는데, 저 철도가 어느 미지의 세게로 자꾸 뻗어나가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산으로 둘러쌓인 지역을 벗어나는 꿈을 꾸곤했다. 조만간 북한에서 어느 어린이가 비숫한 경험을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끔 부친에게 북한의 부전고원의 인클라인 철도에 대한 이야기를 듣곤했는데, 험한 지형을 극복하기 위한 철도 방식이 한국에도 여러 군데 있었다.   

북한의 경제성장은 철도 인프라의 건설로 시작될 것 같다. 한국정부가 북한의 철도에 가장 먼저 신경을 쓰는 이유는 북한 내부의 물류수송을 위해서도  시급한 문제지만  한국과 러시아 중국, 나아가서는 유럽과도 연결되는 '개방적 한반도'를 만드는 일로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는 일일 것이다. 말하자면 유럽과 같은 선진 개방사회를 만드는 초석이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어느 날 이스라엘 경제가 어려워지자 이스라엘 각료회의에서 이스라엘의 전함을 미국으로 보내어 미국의 뉴욕을 폭격하자는 제안이 나왔다. 그러면 미국은 이스라엘과 전쟁을 할 것이고 이스라엘이 패할 것은 확실하고 미국은 마샬 플랜과 같은 경제원조를 하여 이스라엘을 부흥시켜 즐 것이라는 의견이었다. 물론 유머다. 마샬 플랜으로 서유럽 경제(특히 미국과 전쟁을 한  독일경제를 비롯하여) 가 크게 성장하였음을 풍자한 유머다.

Least we forget (some Europeans don,t always remember), it was American generosity that got the European unification movement off the ground. President Harry Truman's secretary of state, George C.Marshall, in a speech at Harvard University on June 5, 1947, proposed  a huge United States investment in Europe's recovery. It was not all altruism, to be sure : the American administration feared that communist parties would gain control over European countries west of the Iron Curtain, and helping Europe recover economically would pay huge dividends polically as w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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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ropean enthusiasm for the Marshall Plan grew from the realization that it would have political as well as economic consequences. By enmeshing all major European states in this multinational scheme,  the risk of a third war would be minimized, and Europe could set about its recovery under the security of the military North Atlantic Treaty Organization (NATO). The Marshall Plan commenced in 1948 and the protective shield of NATO took effect in 1949. Now it was up to the European to convert their good fortune into lasting cooperation and to accept a rehabilitating (West) Germany as part of the mission.

잊지 않기 위해(유럽인들이 이를 기억 못할 때도 있지만) 첨언하자면, 유럽 통합 운동이 이륙할 수 있었던 것은 미국의 아량 덕분이었다. 해리 트루먼 대통령 직속 국무장관이었던 조지 C. 마셜(George C.Marshall)은 1947년 6월 5일 하버드 대학 연설에서 미국이 유럽의 복구에 대규모 투자를 할 것을 제안하였다. 분명히 이는 순수한 이타심에서 나온 제안은 아니었다. 미국 행정부는 철의 장막 서쪽의 유럽 국가에서 공산당이 통제권을 잡을까봐 두려워하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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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은 마샬 플랜의 경제적 이점은 물론 정치적 중요성을 깨닫고 여기에 열성적으로 임했다. 유럽의 주요 국가 전부가 하나의 다국적 전략망으로 묶이면 3차대전의 위험을 최소화할 수 있었고, 유럽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보호 아래서 복구 작업을 진행 할 수 있었다. 마셜 플랜은 1948년에 시작 되었으며 나토의 보호막은 1949년부터 효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이제 그들에게 찾아 온 영구한 협력으로 발전시키고 (서)독일의 재활을 그 사명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일은 유럽인들의 몫이 되었다. 

- Harm de Blij의 [WHY GEOGRAPHY MATTERS]중에서-

어쩌면 북한의 철도개혁과 한국의 협조는 정치적 문제를 넘어서는 양국의 생존 문제와 직결될 수 있다. 경제적 이익추구를 넘어선 최소한의 필요조건임을 양국은 잘 알고 있는듯 하다. 흔히 한국의 대중정치의 반대편 논리에서 표현하는 무조건 퍼다주는 문제는 아니라는 것이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성공적이었음을 인식하고 있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개발 논리를 한국과 북한의 절실한 필요에 의해 이념을 넘어선 다른 성격의 정부에서 재현되고 있음을 생각하게 한다. 가능한 많은 대중들의 지지가 필요하고 또 지지를 받고 있음은 물론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매우 성공적일 것이다.  

2018년 12월 1일 토요일

현실경제속의 경제이론 / 소득과 수요


케인즈와 경제학자인 밀턴 프리드먼(위의 인터넷주소안에 있는 프리드먼은 두 사람이다. 그중 통화주의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을 말한다.)은 경제학에서 좌파와 우파로 알려질만큼 이념적으로 첨예한 대립을 한 경제학자이다. 케인즈보다 나중에 등장한 프리드먼에게 반(anti) 케인즈  경제학자라는 별명이 붙어있다. 한국에서 현 정부가 소득을 증대시켜 경제를 활성화 시켜야 한다는 정책을 내놓고 있는데, 야권의 보수주의자들은 그런 경제이론은 없다고 한다. 그렇지는 않고 정부가 재정지출을 늘려 실업률을 감소시키고 경제를 활성화 시켜야 한다는 케인즈 경제학의 기본에서 비롯된 것으로 생각된다. 다만 최저임금의 상승이라는 방법으로 좀 더 민간 부문에 그 역할을 맡겨놓았다는 생각도 하게 만든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현 정부의 경제정책은 실증보다 가치규범문제에 집중을 한 경제정책인 것으로 생각된다. 내가 직접 살고 있는 현실에서 서민과 중소기업의 현 위치는 절대로 국민소득 30000불인 나라가 아님을 확인했던것처럼 정부도 이런 문제를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대통령의 임기는 5년단위로 짧고 장기적 전망을 가지고 경제정책을 펴기에는 턱없이 짧은 시간으로 생각된다. 또 경제정책의 효과도 장기적으로 결과를 보아야지 어느 날 갑자기 경제성장의 혁명이 일어날 문제는 아니라는 것은 대중이 이해해야 할 점이 있는듯 하다. 다행스러운 것은 비숫한 방향을 가진 사람들의 세력이 장기적으로 집권을 할 예정으로 보이는 것이 점진적이고 안정적으로 현 정부가 의도한 경제정책에 좀 더 낙관적인 예측을 가능하게 하는듯 하다.

경제학자들의 이론은 대체로 맞는듯 하다. 여러가지 변수에 의해서 변하고 있는 세상처럼 계속 비판하고 변화하면서 새로운 경제이론이 만들어져 가는듯 하다.

The tradition argues that some economic activities, such as hi- tech manufacturing industries, are better than others at enabling countries to develop their productive capabilities. However, it argues, these activities do not naturally develop in a backward economy, as they are already conducted by firms in the more advanced economi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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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ost important innovation came from Hirschman, who pointed out that some industries have particularly dense linkages (or connections) whit other industries; in other words, they buy from - and sell to - a particularly large number of industries (the automobile and the steel industries are common examples), the economy would grow more vigorously than when left to the market.

개발주의 경제학자들은 첨단 제조산업과 같은 특정 경제활동이 다른 산업보다 한 나라의 생산능력을 개발하는데 더 유리 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런 경제활동은 이미 선진국 기업들이 점유하고 있는 분야라 후진국에서 자연 발생적으로 발달할 수 없다고 본다. - 중략 -그 중 가장 중요한 혁신은 허시먼의 이론으로, 그는 다른 산업과 특히 밀접한 연관효과(linkage)를 내는 산업분야가 있다고 지적했다. 즉 어떤 산업들은 다른 산업에 비해 훨씬 더 많은 산업분야와 제품을 사고 판다는 것이다 자동차와 철강산업이 대표적인 예인데, 정부가 이런 산업을 찾아서 계획적으로 양성하면 시장에 맡겨두는 것보다 경제가 더 성장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 Ha-Joon Chang [Economics:The User's Guide]-

실제로 급속한 경제개발을 이룬 한국이나 중국등 대부분의 개발도상국들이 개발주의 경제이론의 혜택을 보았고 성공했다. 아마 북한도 조만간 이 이론의 혜택을 볼 것으로 생각된다.

야권의 어떤 정치인의 이야기와는 달리 수요의 증대가 경제를 활성화 시킨다는 관계는 당연한 기본인데, 케인즈는 재정지출을 통하여 소비수요를 증진시키자고 했고, 사이먼 쿠츠네츠는 케인즈의 방법이 미국에서 효과가 없었음을 실증적으로 확인했다. 쿠츠네츠의 제자이기도 한 프리드먼은 단기소득보다 장기소득에 의해서 소비수요가 증대된다는 항상소득가설을 내세웠는데, 역시 소득이 수요를 창출한다는 기본에 의거한 이론이다. 경제의 상층부를 성장시켜 하층부에 그 과실을 얻게 한다는 낙수효과는 적어도 한국에서 효과 없음이 입증되었고, 좀 궤변 같지만 수요견인인플레이션이 존재함이 입증되었다면 소득주도 경제성장도 반드시 있다는 생각이다. 케인지안들의 실패부분인 스태그플레이션은 다른 방향에서 문제를 찾아야 한다는 생각이다.  

버스운전을 하다가 기가막한 사실을 하나 발견했는데, 운전자가 비숫한 조건을 가지니 승객의 수가 통계적으로 거의 유사한 점을 발견하고 통계나 실증의 가치에 대해서 경의를 표한 적이 있었다. 다만 단기적으로 효과를 볼려는 이상은 인위적인 비정상을 낳을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2018년 11월 17일 토요일

독서와 이상한 팔도강산 / 마빈해리스


객지생활을 하다가 집에오면 좋은 일이 있다. 집안 여기저기 널려있는 천여권이 넘는 책들이 많은 세계를 상상하게 한다. 원래 집에 책이 많았다. 이삿짐 싸기가 부담스러워 수백권씩 없애기를 여러차례했는데 한 곳에 오래 거주하다보면 책이 마구 불어난다. 한 페이지를 보더라도 필요한 책은 구입하는 습관이 있어서 도서관에서 빌린책도 내용이 좋으면 금방 내것을 구입해서 서재에 꽂아놓곤한다.

한 때 출판사에서 일하던 누나가 누군가 추천한 책이라고 가져오곤 했는데,  몇년을 묵히다가 어느 날 책을 열어보고는 그 책이 명저임을 알게 된 일이 한 두 번이 아니다. 그렇게 인연이 맺어진 책들이 마빈해리스의 [문화의 수수께끼], 앙드레 모로아의 [프랑스사], 스코트팩의 [끝나지 않은 길]등인데, [문화의 수수께끼]는 요즘도 영문판으로 간간히 꺼내보고 있고, 대학입시생들의 사회탐구영역의 예문으로서 많이 인용되곤 한다. 대학교입시를 포기하고 있다가 시험장에 갔는데,심심할때 뒤적거리던 리더스다이제스트의 내용이 영어 과목의 예문으로 그대로 나와있어 읽지도 않고 답을 짝던 즐거운 추억도 있다.

책 때문에 벌어진 역사적인 추억이 하나 있다. 20여년전에 여건이 안 좋으니 몸과 마음을 단련시키겠다고 무술서적 100여권과 지능개발 서적 100여권을 줄기차게 읽고 이렇게 저렇게 실험도 해봤다. 특히 무술서적중에는 반복하면 될 일을 신비하고 직관적인 서술을 해놓은 것이 있어 냉소를 짓게 만드는 책도 있었고, 영국의 교육학자인 토니 부잔(Tony Buzan)이 지은 [THE MIND MAP BOOK]시리즈는 실제로 우뇌영역을 개발시키는데 도움을 준 것도 같다. 책의 내용에 꿈을 잡는 법이 있었는데, 계속 꿈을 인지하고 기억하며 집중해가면 스타워즈의 주인공처럼 예지몽이 생긴다고 했다. 잘은 모르지만 민감해지긴 하는것 같다. 잠시 그런 일을 겪고나서, 아니 그런 책을 읽고나서 몸과 마음을 관리하니 좀 변화가 외부에 드러나긴 했나보다.  당시 주위에 교주가 되고 싶어하는 무술인이나 신비주의 교단의 정신 나간 성직자등이 접근을 해와 짐짓 모른척 하고 교류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일하기는 싫고 남 위에 군림하고는 싶으니 별 짓을 다한다고 질타해서 충격을 주곤 했다. 

한 번은 그런 사람들 사이에 추앙받는 교주가 되면 어떨까 하는 이상한 생각도 안해본 것이 아닌데, 좀비들의 우두머리가 되는 것은 그렇게 유쾌한 일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리고 말 조차도 안꺼냈다.

백두칭송위원회라는 단체가 김정은 위원장의 한국방문을 한없이 기다린다는 소식을 듣고 옛날 나 어릴때 있었던 일이 생각났다. 국민이 책을 안읽어서 이 지경이 됐으니 이 일을 어찌 할것이며 김정은 위원장은 이 덫에서 어떻게 빠져나갈지를 고민할 것이 생각났다. 그래서 통일이나 북한의 개혁이 급속히 이루어져서는 안된다는 말을 하고 있었던거다. 독서를 하지 않는 국민은 변화를 능동적으로 끌어내지 못하고 일단 구세주부터 기다린다.


The Book of Daniel - written about 165 B.C, when Palestine was ruled by Syrian Greeks - also speaks of militarymessinic redemption by an anointed one, the Prince, leading to a great Jewish empire : "I saw in the night visions, and behold the Son of Man came with the clouds of heaven...... and there was given him dominion, and glory, and a kingdom, that all the peoples, nations and languages shall serve him ...... an everlasting dominion ......[a] kimgdom that shall not be destroyed."

What most people fail to realize about these vengeful prophecies is that they were made in conjunction with actual wars of liberation waged under the leadership of real-life military messiahs. These wars enjoyed popular support because they not only aimed at restoring the independence of the Jewish state, but also promised to eliminate economic and social inequities that foreign rule had exacerbated beyond endurance.

Like cargo, the cult of the vengeful messiah was born and continually re-created out of a struggle to overturn an exploitative system of political and economic colonialism. Only in the case, the natives - the Jews - war militarily more of march for the conquerors, and they were led by literate soldier-prophets, who remembered a far-off time when the "ancestors" had contrplled an empire of their own.

다니엘 서 ----시리아계 그리이스인들이 팔레스타인을 지배하던 B.C.165년경에 기록된 성서 ----도 대 유태왕국을 다스릴 기름부음 받는 자, 즉 왕자가 나타나 전투적 , 메시아니즘적 구원을 하리라고 예언했다. "나는 밤에 환상을 보았다. 인자(人子)가 구름과 함께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을 보았다......그에게 주권과 영광과 왕국이 주어졌다. 모든 백성들과 모든 국가들과 모든 언어들이 그에게 엎드린다......영원한 주권......멸망받지 않을 왕국......"

이 원한에 찬 예언들 속에 깃들은 것들 중에서 대부분 사람들이 깨닫지 못한 점은, 실재했던 역사적인 해방전쟁들과의 관련 속에서 그 예언들이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그  전쟁들은 민중의 호응을 받고 있었다. 그 까닭은 그 전쟁들이 단지 유태국가의 독립을 얻기 위한 것들만이 아니었고 외국의 지배 상태에서 견뎌낼 수 없으리만큼 악화된 경제, 사회적 불평등을 제거하기로 약속된 전쟁들이었기 때문이었다.

화물숭배와 마찬가지로 복수에 불타는 메시아 숭배는 정치, 경제적 식민주의의 착취적인 체제를 전복시키려는 투쟁 속에서 생겨났고, 끊임없이 재창조되었던 것이었다. 단지 메시아 숭배의 경우에서는 원주민들----유태인들----은 화물숭배자들보다는 전투적인 면에서 정복자들과 호각(互角) 을 이루었다. 그들은 문자 그대로 군인- 예언자(solder-prophet)들의 지휘를 받았다. 군인-예언자들은  자기들의 조상들이 자기들의 제국을 다스렸던 그 먼 옛날의 일들을 상기하고 있었다.

 - MARVIN HARRIS의 [THE RIDDLES OF CULTURE] -

우연의 일치지만 바로 직전의 글에서 김정은 위원장의 영리함을 말하고 있었는데, 바로 북한언론에서 남쪽에서 김정은 위원장을 칭송하는 목소리가 드높다고 방송을 해서 아연실색했다. 하지만 이것만은 사실이다. 민중이 무식한 것이 뜻있는 지도자에게는 말 할 수 없이 큰 고민이고, 뜻 없는 지도자에게는 대충 살다 함께 망해가는 말 할 수 없이 좋은 기회일 것이다.  

2018년 11월 3일 토요일

랜드연구소의 남북한 관계 전망


어렸을때 미국대통령이 레이건대통령이었는데, 리더스다이제스트에 레이건대통령에 대한 기사가 나왔다. 대통령의 주변에 새롭게 생겨나거나 포진해있는 연구소 조직이나 참모조직(taskforce team)에 관한 기사였다. 그 당시에는 그게 뭔지는 모르지만 냉전시대에 대통령의 결정을 외롭지 않게 도움을 주는 조직으로만 알고 있었다. 세월이 흘러보니 레이건대통령에게는 피라미드형의 계선조직말고 대통령의 권력행사에 정당성과 힘을 실어줘야했던 조직들의 존재이유가 속속들이 생각났다.


레이건대통령은 냉전시대에 강력한 반공정책으로 소련과 체제경쟁을 해야하는 짐을 지고 있었으며 영국발 복지국가의 문제점을 방지해야하는 강력한 시장경제정책을 시도해야했던 짐도 지고 있었다. 지금은 '신자유주의 정책'이 그 수명을 다해가고 있지만 그 당시에는 획기적인 대안으로서 시도해봐야 하는 이유가 충분했다. 절충의 근거가 없이 반대방향의 길로 가야만 했던 인간사 사이클의 특성상 복지주의와 반대되거나 정부의 시장개입과 반대되는 자유주의 시장경제나 공급중시경제이론이 실천되야 하는 시대적요구는 부정할 수 없었다는 생각이든다.

대통령의 주변에 포진해 있던 연구소조직들은 항상 가치중립적이었을까. 분명히 그렇지는 않았을 것이다. 대통령의 정책에 필요한 자료들을 연역적인 방식으로 연구수집해왔을 것이다. 방향과 지침을 정해놓고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한 연구가 시작되었을 거라는 의미다. 연구소도 주군을 위해 봉사하는 가치형성기능을 한다.


한국정부도 김정은 위원장을 평화로운 협상가라고 완전히 믿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남북한의 통일문제나 경제협력문제에 가장 큰 이해관계가 엮여있는 두 국가의 정상들이 주변국에서 원하는 속도 이상의 관계를 맺어 나가는 것은 피치못할 이유로 생각된다. 랜드연구소는 한국과 북한이 미국이 원하는 이상으로 관계가 진행되는 것을 원치않는듯 하다. 한반도의 민중들에게는 다소 무책임하게 느껴지는 전쟁이야기가 나오고 북한에 김정은 위원장이상으로 개혁을 추구할만한 세력이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랜드연구소의 공신력(public trust)을 구실삼아 미국정부가 원하는 정책을 형성해나가자는 의도가 보인다.


김정은 위원장에 대한 호의적 감정은 전혀 아니고 냉정과 열정사이의 폭을 생각해볼때 비교적 영리하거나 젊은 김정은 위원장의 성향이 한반도 경제협력에 우려할만한 이유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든다. 보수정부 10년동안에 항상 나태하고 지엽적인 대통령들의 성향이 김위원장의 고집을 감당못핳까봐 걱정되었던 점이 있다. 말하자면 김정은 위원장을 경계하면서도 협력해야 할 대통령의 그릇이 필요했던 것 같다. 70년을 호전적인 전시국가로서 존재하는 북한의 지도자를 어떻게 믿을 수 있을까. 다만 믿는 척이라도 해야하는 짐이 지워진 것이 현재 한국 대통령의 입장이었을 것이다. 요약하면 미국과 한국은 북한을 대하는 입장과 태도가 너무 다를 수 있다는 것이다. 

2018년 10월 29일 월요일

By bus / 장하준(1)

앞이 안 보일정도로 짙은 눈이 내리는 날 새벽에 버스를 몰고 신도시의 임대아파트에서 손님을 태웠다. 젊은 기사들이 이상한 사람들이 많다고 꺼리는 노선이었지만  생각할게 있다는 이유로 혼쾌히 노선운행을 수락했다.

버스기사로 일하던 친구가 힘든 근로환경에 지쳐 그만두었고, 여기 저기 아픈데가 많이 생겼다는 소식을 듣고  버스기사일을 해보기로 결정했다. 노선견습을 위해 조수석에 앉아 있었는데, 그날 유난히 차가 울컥거렸다. 나쁜 근로환경에 뚜렷한 증상없이 망가진 근로자의 몸처럼 오래된 대형버스는 뚜렷한 증상없이 울컥거림을 반복했다. 잠시후 손님중 누군가가 기사에게 차가 고장이 있는건지 기사님이 험하게 운전을 하는건지 조심해달라는 부탁을 하였다. 그러자 뒤에서 여기저기 동조하는 볼맨소리가 둘려왔다. 급기야 한 중년의 여자승객이 "기사가 싸가지가 없어!" 하고 외치고 다른 승객들은 군중심리로 감정이 격해지고 있었다. 참다못해 내가 일어났다. 나는 사회현상에 관한 글을 쓰는 작가라고 승객들에게 소개하고 나서, 이 문제는 기사님의 문제가 이닌것 같다라는 말만 했다. 그러자 중년의 남자 승객이 "말씀 잘 하셨소. 이건 우리 B시민들을 무시하는 처사요."하고 해석하기 힘든 말을 하였다. 뚜렷한 증상없이 마음의 병을 얻은 승객들을 보면서 이 지역을 버스로 운행하는 일이 순조롭지 않을 것임을 예상했고, 실제로 별일이 다 있었다. 사회병리현상을 갖가지 경험할 수가 있었다. 요즘도 그 지역은 버스기사 구하기 힘들정도로 버스기사 지원자가 없다고 한다.


그 도시는 서울 근교의 위성도시인데 도시가 불규칙적으로 확장되어가는 현상인 sprawl 형태로 확장이 되어간 도시여서 무질서한 점이 있었다. 하지만 그 도시의 일부인 신시가지는 신도시 건설에 따른 미래형 건물이 들어서서 밤이면 공상과학영화에 나오는 야경을 보여주었다. 마치 공중택시가 초고층빌딩사이를 날아다닐듯 했다. 신시가지를 벗어나면 공장들이 많았고, 개발이 안된 시골마을도 많아 노령인구도 많았다. 119 출동 횟수가 전국 1위라고 한다. 나는 이해가 갔다. 내 차도 크게 들이 받혀서 대형 119차가 세대나 출동하고 밀려들어온 차 앞부분에 끼인 내 몸을 젊은 구조대원이 놀래서 허둥대며 기계로 구조하는 과정에서 "난 괜찮으니 서두르지 마세요."하고 이순신 장군같은 영웅적인 참견을 했던 적이 있다. 사실 그 날 다리 한쪽이 잘라진 줄 알았다.

버스운행을 하는 동안 보상금을 노리고 넘어져서 생떼를 쓰는 노인,  히터가 약해서 몸도 춥고 마음도 춥다며 슬픈 표정을 짓는 일용직 노동자, 차가 늦어 환승이 안되어 귀중한 천원을 낭비했다고 악을 쓰는 할머니, 폐지를 실은 리어카를 길 한가운데로 끌고가며 비켜주지 않아 버스를 지체시키고 기사의 점심을 굶긴 할아버지, 앞 질러갔다고 할아버지뻘의 동료기사에게 차를 세우고 욕을 하는 젊은 트럭기사, 눈 오는 날 스노우 타이어를 교환하지 못해 버스가 5분 늦었는데, 어떤 승객은 출근 시간이 늦는다고 욕을 하였다. 오늘같은 날은 회사에서도 이해를 할테니 침착하게 조금만 참으라고 부탁을 하였는데, 그 승객의 표정은 초조하고 두려워하는 기색을 보였다. 버스기사가 승객의 '을'인것 처럼 저 승객도 회사의 '을'이겠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들의 근로는 여유로운 대접을 받지 못하고들 있었다. 그리고 수평폭력 현상도 보였다.


한편으로는 신도시개발을 하면서 보상을 받은 주민들은 외제차를 구입하여 그 도시는 유난히 외제차가 많았다. 그걸 생각하면 버스승객들이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은 충분히 이해되었다. 나는 비교적 승객들에게 친절했고, 내 버스를 기다렸다가 먹거리를 넣어주고 가는 승객들도 꽤 있었다. 하루는 살인적인 근로시간에 지쳐서 졸면서 운행을 했던것 같다. 뒷자리의 여자승객이 앞으로 와서  이것 저것 질문을 했다. 별 걸 다 물어 본다고 생각하는 순간 그 승객은 살며시 웃으면서 차에서 내렸고, 오랫동안 짝사랑 하면서 다시 보고 싶은 승객이 되었다.

나중에 다른 서울의 위성도시에서 운행을 했는데, 전통적이고 밀집된 형태의 도시였고, 대학교도 있어서 승객들은 온건하고 신사적이었다. 무엇보다 합리적인 설득을 하면 고개를 끄덕이며 이해를 했다. 말하자면 '이상한 사람'이 없었다.

Despite its overwhelming presence in our lives, work is a relatively minor subject in economics. The only minor mention of work is, somewhat curiously, in terms of its absence - unemploy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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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t for most people, work is a lot more than simply a means to earn income. When we spend so much time on it, what happens in the workplace affects our physiological and psychological well-being. It may even shape our very selv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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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 many people, work is about  basic human history, huge numbers of people were deprived of the most basic humanright of 'self-ownership' and were bought and sold as commodities - that is, as slav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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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most rich countries, people work around thirty-five hours per week, although the working week is considerably longer in the East Asian countries (Japan, Forty-two hours; Korea, forty-four hours; Singapore, forty-six hours). People in those countries are working half, the length of the tlme that their great-grandparents or great-great-grandparents worked (seventy to eighty hours per week).

- [Economics : The User's Guide] by Ha-Joon Chang -


장하준 교수는 전통적 보수주의자들이 진보주의경제학자라고 말할 수 있는 경제정책을 이야기하고 있다. 차후에 한 번 더 언급하겠지만 장하준 교수는 제조업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는데, 재벌의 불필요함을 말하고 있지도 않다. 좀 더 혁신적인 연구개발에 투자하지 못한 재벌을 탓하고 있는듯 하다. 왜 중소기업의 '중요한 역할'에 대해서는 그다지 언급을 하지 않는 것일까. 한국의 중소기업은 일찌감치 정부의 경제정책으로부터 '버려졌다'고 표현하는 것이 과격하지만 옳은 표현일 것 같다. 내가 지난 6년동안 구경한 중소기업들은 노동자들의 노동력을 갈아넣어 한올밖에 안되는 이윤을 근근히 얻어내고 있었다. 심지어 어떤 IT회사는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자마자 함께 뛰어든 거대재벌과 경쟁을 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몰리게 된 것을 보았다.

재벌- 중소기업- 근로자로 이어지는 먹이사슬의 가장 아래쪽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 한은 어떤 경제정책도 힘을 발휘하지 못할 것이다. 물론 이념문제때문에 가중적으로 방해받는 어려움도 있는 것이 한국의 경제정책일 것이다. 근로자들이 당면한 문제는 단순히 경제적분배의 문제가 아니다. 수직적 불평등의 문제, 인간적 근로환경과 관련된 문제, 근로가 대우받는 사회분위기의 문제와 관련되어 있다. 

2018년 10월 5일 금요일

특수이익집단의 역설 / 토드부크홀츠

한국에서 보수는 부패때문에 망하고 진보는 분열때문에 망한다는 말이 있다. 타성에 빠져서 대충가는 부류들과 과욕과 열정때문에 자신만의 길을 고집하는 부류들을 의미하기도 한다. 저번글에서 전쟁후 수요증대와 집권적 정치문화를 가진 국가들이 급속한 경제성장을 한 사례를 언급한 적이 있었다. 집권적인 정치문화가 신생국에 도움이 되는 경우가 있는데, 안정된 국가들에 비해서 특수 이익집단의 폐해를 줄일 수 있다는 점인듯 하다. 총리집권체제로 급속한 경제개발을 이룬 싱가포르나 공산당 일당독재체제의 중국, 집권적 정치문화가 내면화된 반민주주의(half-democracy) 국가인 일본이 급속한 경제성장을 한 원인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아마 보수가 부패하기 쉽다고 말하는 이유는 자본주의라는 단어를 사적이익의 추구라는 의미로 곡해(misinterpretation)한 까닭이고 사적이익의 추구라는 명분으로 특수이익집단의 권력이 지나치게 강해졌다는 의미로 이해해도 될 것 같다. 이번에 한국에서  전직대통령에 대해 뇌물수수에 대한 유죄판결이 내린 이면에 아직도 사실관계만을 다루어야 하는 법리(法理)상 못다루는 부분이 있는것 같은 생각이 든다. 바로 많은 사람들이 '무리'들이라고 표현하는 대통령의 정책에 영향을 끼쳐온 이익집단들인데 '조직'과 같이 공식적인 결속력이 없는 '집단'이나 정치적 성향같이 내면적 연대감으로 뭉쳐진 '군집'형태의 이익집단들이 국가운영에 마이너스적인 요소로 작용했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아마 북한이 경제개발을 시도한다면 이미 해왔던 국가들이 보여준 신뢰할만한 실증적인 사례들을 참고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물론 한국의 경우는 전체주의 이념이나 공산주의 이념들과 명확히 구분되어야 하는 공리주의(utilitarianism)이념이 좀 더 내면화되어야 할 필요가 있는듯 하다. 앞으로 상당기간 정권을 유지할 가능성이 있는 진보진영의 정부는 자칫하면 패거리 정치문화의 행태를 보여줄 수 있는 위험을 사전에 방지해야 할 것이다. 한 때 문제가 되었던 전 도지사의 성추문 사건의 기승전결이 모두 이익집단의 문제점으로 보일 수 있음으로서 진보진영의 이미지에 큰 타격이 되었음은 인정해야 할 것 같다. 판결에 문제가 있었다는 의미가 아니고 양성불평등의 문화가 이율배반적으로 뿌리깊게 내려 왔음을 보여줌으로써 진보진영조차도 폐쇄적인 패거리 정치문화의 전통속에서 헤어나오지 못함을 상징한 사건으로 비추어지고 있는듯 하다.    

Everyone in New York City and Boston recognizes that there's shortage of taxi cabs. These cities actually limit the number of licensed cabs, which drives up the income of drivers and drives down the morale of the cities. Still, the city governments refuse to support the grumbling of the general public over the ranting of taxi owners. The Public choice school does not symply point out that the "squeaky wheel gets the grease." More important, Olson and his colleagues teach us why tight coalitions make a much more powerful noise than a diffuse, unorganized public.

Olson takes his arguments into far more controversial territory by drawing broad historical laws. He assumes that stable socities are more susceptible to special interests. He then claims that "long-stable" societies wlii grow more slowly than relatively new societies. As time passes, leechees multiply and suck the lifeblood from a nation. If so, revolutions and wars can invigorate economies, since special interest groups lose their stranglehold. He cities Great Britain as a stable, retarded nation and postwar Japan as an economic miracle.

Few economists follow Olson all the way to his conclusion about the rise and fall of nations. Even so, the arithmetic of special interest groups makes sense.

The special interest paradox seems hopeless. Is it? Not necessarily. After all, each group suffers when Congress awards favors to the others. If a president or congressional leader could get a mandate for across-the-board budget cuts or broad policies against subsidies, price supports,and protection schemes, the increased efficiency in the economy could offset for these groups the elimination of special favors. Sadly, historical examples are few. And it seems more likely that the politicians will continue to deliver tough-sounding rhetoric,while special interests spout words of magnanimity-but nothing really happens.

- TODD G. BUCHHOLZ의 [NEW IDEAS FROM DEAD ECONOMISTS] - 

2018년 9월 23일 일요일

동아시아에서 부족한 언론과 표현의 자유(2) / 교육의 힘

지난날을 생각해보면 한반도에서 적어도 '내 인생'은 충격의 연속이었던 것 같다. 그래도 어릴때는 자유로웠다. 방학이면 흩어져 사는 가족들을 만난다는 핑계로 모르는 아저씨 옆에 붙어서 기차개찰구를 통과하면 열차여행을 자유롭게 할 수 있었다. 용돈이 생기면 서점으로 달려가 계몽사,계림문고,삼중당문고등의 저렴한 서적들이나 앙드레 지드의 '좁은문', 리처드 바크의 '갈매기 조나단' 공상과학소설, 학생잡지,등을 사서 읽었고, 청년기에 들어서는 좀 더 진일보해서 시사잡지,시몬느베이유 평전이나 출판사에서 일했던 누나덕에 중국연변인민출판공사에서 출간한 마르크스적 입장에서 해석한 철학책등을 읽곤했다. 한때 이 철학책은 내용때문이 아니고, 연변인민출판공사에서 출판했다는 이유로 우파적 입장에 있었던 친구들의 제보로 포도청의 관심대상이 되곤했는데, 제도권내로 편입할려는 시도를 하여서 법률서적도 열심히 읽는 참신한 청년이었던것 같다.

중학교 1학년과 2학년때 중학교 도서관의 대출업무를 맡아서 하면서 북한에 관련된 서적을 자가 대출해서 읽곤했는데, 대동강에서 스케이트 타는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도 알았다. 한 편으로는 가끔 찾아뵙는 부친은 북한에 남겨놓은 어머니나 북한의 장진으로 시집간 누이가 부친의 탈출때문에 피해를 입지나 않았을까 아니면 혹시 중국 연변으로 피신하지나 않았을까 하는 기대감으로 밤마다 사회교육방송을 듣곤 했다. 나에게는 책을 통하여 접하는 세계도 충격적이었고, 부친과 결부된 한반도의 현실도 충격적이었다. 


조금 시간이 더 지나서도 이념적,종교적 카리스마가 있거나 이념적,종교적 카리스마에 도취된 시민들을 참여관찰하면서 사상적으로 완고한 교육이 시민들을 어떻게 망가뜨리는지  체험했다. 그러나 그것이 일시적이고 지엽적인 문제가 아니라 수십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진행중인 거국적이고 역사적인 문제였고, 오직 장기적인 시민교육을 통해서만 해결될 수 있다는 생각이다.  한 편으로는 말하고 싶으나 말 할 수 없는, 아니면 아직 때가 무르익지 않은 '통제'상황을 많이 경험했는데, 사상이 경직되어있고, 언론과 표현의 자유가 부족한 곳에서 정신세계가 확산할 곳을 찾지 못한 백성은 남보다 더 '우월한 상태'를 찾아서 해매는, 그 상태를 못 찾으면 난폭해지거나 교활해지는, 들개같이 방황하는 삶을 살게 된다는 사실도 체험한듯 하다.   
       

한반도는 좀 더 다방면의 관심거리가 넘치는 땅이 될 것을 예정하고 있지만 이념이나 종교적 믿음이 완고하게 넘치는 지역일수록 단조롭고 어두운 문화를 가지는 것은 당연하다. 중동이 화약고인 이유는 타협하지 않는 믿음과 믿음의 충돌때문일 것이다. 서유럽사회의 민주주의 풍토는 종교적 완고함을 벗어난 르네상스(인문주의)의 시작과 과학의 발달, 계몽사상, 홉스, 로크, 루소같은 사회계약론자들의 사상등이 발달한 이유로 시작되었다. 그런 사상들이 탄생한 것이 중요하다기보다 '생각하는 습관'을 가지게 된것이 중요한 일인듯 하다.

Thus, Luther and his followers were driven by a necessary logic to support education for all people. They advocated training in the elements of reading, writing, and figuring, and held that, though fundamentally this knowledge was to make possible their understanding of the Bible and religion, it was also necessary for good citizenship. Luther wrote that even though there were no heaven nor hell, education would be necessary for the citizen.

This swing away from the dominance of education by the church, and its control more and more by sesecular forces, led to the establishment of schools and school systems by cities and by interested privated groups. An example was the school of JOHANN STURM at Strassburg, which was then in Germany. This institution aimed at piety, knowledge, and eloquence." Although religion was a prominent factor in the teaching of the school, other matters were also considered, and the control of the school was not in the hands of the church.

As this trend toward secular education grew in strength there began to appear men who attempted to put it into philosophic form, to draw up a philosophy of education to fit the new age and new demands. JOHN MILTON, the great English poet, who was also a schoolmaster, urged students to turn to the ancient writings of Greece and Rome and study them, not for their form, but because they contained all that man needed for a happy life. He believed that the best possible education was to be obtained from the study of these classical writings.

- S.E.FROST,JR.의 [BASIC TEACHINGS OF THE GREAT PHILOSOPHERS]  - 

서양사회가 완고하고 획일적인 종교적 교육으로부터 벗어나는 장면을 말하고 있지만 이념에 관해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프랑스에서 노동자생활을 했던 등소평이 공산주의 사상을 맹목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프랑스사회의 현실과 철학적 성찰을 비롯한 여러가지 생각을 해본것은 당연한듯 하다. 5개국어를 했다는 주은래도 마찬가지다. 천안문사태때 중국인민들에게 기본권을 좀 더 부여하려고 하다가 물러난 중국정치인들도 '지향하는 바'는 서유럽의 자유주의적 평등사회였을 것이다. 

일본사회는 좀 더 내성적이다. 일본의 극우주의가 만연하는 이유 역시 교육의 힘이다. 몇일전 프랑스의 유력한 대선후보였던 극우적 성향의 후보인 르펜이 상대방을 설득하기 위하여 자극적인 자료를 제시했다가 프랑스법원으로부터 정신감정명령을 받은적이 있었다.


합리적 설득이 아닌 감정적인 자극을 통하여 '쉽게 가는 선동의 길'을 택하기 쉬운 이념적 사고의 결론이다. 동아시아가 근대화기간이 짧고 아래로부터의 혁명이 부족한 이유는 사상적인 다양성이 부족한 탓이고 역시 다양성을 추구하는 교육이 부족한 탓이다. 언론과 표현의 자유를 비롯한 기본권들은 생각하는 교육으로부터 얻어질 것이다.  

           

2018년 9월 15일 토요일

동아시아의 정치문화 / 지리적 특성

시민의 자유나 민주주의에 관해서는 서구화 모델이 '지향해야 할 바'라는 사실은 동아시아의 어느 국가나 공감하고 있을 것이다. 다만 그런 문화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질 문화적 바탕이 부족한 것은 어쩔 수 없는 사실이긴 하다. 서구사회의 지리적 특성은 개방적이다. 전통적으로 국가와 국가의 경계나 민족과 민족의 경계는 모호하며 그 경계는 수시로 변하였다. 프랑크 왕국이 베르덩조약과 메르센조약으로 분할되고 나서도 서구사회는 이합집산을 반복했고, 그만큼 전쟁도 잦았다. 시민을 전쟁에 동원하기 위해서는 단기적 이데올로기가 필요하긴 했는데, 그 시간이 지나면 잊혀지는 이데올로기들이었던것 같다. 이데올로기가 굵직하면 동아시아, 특히 한반도나 중국처럼 굵직한 분열을 일으킨다. 범 게르만주의를 내세우며 전쟁을 치루고나서도 전쟁에서 패배하면 민망해지는 그런 소소한 이념에 단기적으로 몰두하는 것이 서구사회의 전통인듯 하다. 

러시아에서 공산혁명이 일어난 이유는 서구사회에 비해서 농노해방이 늦었고, 농노해방이 늦은 이유는 지리적으로 고립된 탓이다. 북한사회가 고립국을 벗어나지 못한 이유는 전근대적인 강대국들, 러시아,중국,일본이라는 극복하기 힘든 장벽에 둘러싸인 까닭이다. 자유주의 국가의 맹주인 미국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던 한국이 무역과 국제교류를 통한 세계화 이데올로기와 친밀해 지면서 촛불혁명까지 이루어낸 것은 지리적 폐쇄성을 극복한 사례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지엽적이긴 하지만 한국에서는 지리적으로 고립되어 있거나 문화적으로 고립된 사람들은 아직도 정치적으로 보수성을 띄긴 한다. 

한반도의 미래와 관련된 극복할 점은 정치문화가 성숙하지 못한 중국의 존재와 영향력이다. 경제적, 군사적으로 미국과 대립할 수 있는 초 강대국으로서의 지위를 예정하고 있지만 중국은 아직도 고립국이다. 이전 글에서 밝혔듯이 공산당 일당독재의 정치문화가 많은 부작용을 예정하고 있을듯 하다. 경제적 자유주의를 지향했던 등소평이 천안문 사태를 통하여 민주주의의 적이 된 이유는 과도기적인 불가피함이 있었을 것 같다. 하지만 등소평이 교육을 통한 시민의식의 성장을 꾀하고 있었음은 확실하다. 등소평의 장기적 전망은 중국사회가 민주화되기 위해 필요한 전망이었을 것이다.

https://hyeong-chun.blogspot.com/2016/01/blog-post_15.html

동아시아의 인권이나 언론의 자유, 표현의 자유등이 미성숙한 이유는 지리적 특성 때문일 것이다. 동아시아 국가들은 언어적 특성이나 민족적 특성들이 개별적이고 정체성이 구별된다. 게다가 바다나 큰 강 또는 높은 산맥등으로 구별되는 경계를 가지고 있다. 섞이고자 하나 섞일 수 없는 존재들인 것이다. 이 점을 생각하면 상대적으로 약소국이었던 한반도의 정체성유지를 위한 노력은 대단했던 것 같다. 게다가 한국이 서구사회와 대등한 정치적 민주화를 이루어내기까지 한 점은 한국의 교육개혁이나 세계화 노력이 어느 정도 성공한 것으로 생각된다. 북한은 피치못할 이유로 강대국들 사이의 고립국가로서 분투하고 있지만 김정은 위원장이 등소평과 같은 과도기적 지도자로서의 역할을 해 준다면 지리적 폐쇄성이나 관계적 패쇄성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점은 중국이나 일본보다 더 나은 장기전망을 생각할 수도 있게 한다.  

The most populous nation on the planet, heirs to great empire and guardians of one of the oldest continuous cultures, is asserting its place in a world dominated by American superpower .China is the first non-Westernpower to mount such a challenge, creating a new set of geopolitical circumstance. During the twentieth century , when the United States and the Soviet Union were locked in a Cold War that repeatedly risked nuclear conflict, Armagedon never happened because this was a struggle between superpowers whose leaderships, ideaologically oppossed as they were, understood each other relatively well.

While the politicians and military strategists were plotting, the cultural doors never closed : American audiences listened to the music of Prokofiev and Shostakovich, watched Russian ballet, and read Tolstoy and Pasternak even as the Soviets cheered Van Cliburn, read Hemingway, and lionized American political dissidents.

In shorts, this was an intracultural Cold War, which reduced the threat of calamity. A cold war between China and the United States would involve far less common ground, the first intercultural cold war in which the risk of fatal misunderstanding is incalculably greater than it was during the last.   

- Harn de Blij 의 [WHY GEOGRAPHY MATTERS] -

2018년 9월 8일 토요일

동아시아에서 부족한 언론과 표현의 자유(1)

고등학교시절 학교공부는 포기하고 수업시간에 주간조선을 뒤적이고 있었다. 거기에 월남전참전에 관한 경향신문 김경래기자의 회고록이 었었다. 한국이 월남전에 참전하기로 한 결정이 엠바고(embargo / 한국의 군사정권때 언론에 공개할 시기를 조절하였다는 의미의 단어)되기전에 김경래기자가 언론에 공개하여 박정희 전 대통령앞에 부르심을 받았다는 내용이 있었다. 당시 박정희 전 대통령과 김경래 기자가 독대하는 자리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이 김경래 기자에게 아직 엠바고가 안 된 한국의 월남전 참전계획을 어떻게 알았냐고 따졌다.

김경래 기자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손에 권총이 안 들려 있음을 내심 감사하며 기자가 취재원을 밝히는 것은 처녀가 처녀성을 빼앗기는것과 같다고 항변하며 버티는 장면이 나왔다. 그러나 결국 주한 베트남 대사관 주재원에게 술을 사주고 얻어낸 정보임을 밝혔고 박정희 전 대통령은 절대 못 믿을 놈들이라고 분노하던 장면이 있었다.

몇일전 중국의 대학교수가 중국의 비민주적인 표현의 자유에 대한 억압에 항변하다가 생방송중에 공안에 끌려가는 장면이 생중계 되었는데, 아마도 중국정부가 인민들에게 경고하는 베시지가 담겨 있는것 같았다. "정치에 대해서는 눈,귀, 입을 닫고 경제에만 신경써라"하는 메시지가 전달되고 있는 장면이었다. 일본은 좀 더 우회적으로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방식을 사용한다. 국민들에게 애국적 이념을 심어놓고 애국을 위해서 참아달라는 동의를 구하는 방식을 취한다.

어쨌거나 동아시아의 언론과 표현의 자유는 고대 그리스나 로마보다 못하다는 사실을 동아시아 사람들은 잘 모른다. 그것은 그렇게 교육받은 탓이다. 적어도 고등학교 수업시간에 아무책이나 읽으면서 자발적 교육에 능한 사람에게는 일찌감치 파악되고 있는 사실을 동아시아 시민들은 대체로 모른다.

In Rome, education followed the pattern which had been developed by the Sophists. The ideal of the Roman was the orater who could away the multitudes with his eloquence. Success in public life was largely determinded by the power which one possessed to speak in public and to influence mass opinion. QUINTILIAN, the Roman authority on education, pointed out that the orator had to be more than an eloquent speaker.

He must also be "a good man," one of "excellent mind." He believed that "the man who can duly sustain his character as a citizen, who is qualified for the manacement of publict and private affairs, and who can govern communities by his counsels, settle them by means of laws, and improve them by means of judicial enactments, can certainly be nothing else bat an orater."

Thus, the heart of Roman education was the training of the orator. This included knowledge of logic, good morals, a careful schooling in the laws of the nation, and a character that was above suspicion. CICERO developed this scheme thoroughly and became himself the model of the Roman orator.

- S.E. FROST, JR.의 [BASIC TEACHINGS OF THE GREAT PHILLOSOPHERS] -

2018년 8월 31일 금요일

일본의 단기적 경제기적 / 폴 크루그먼

https://hyeong-chun.blogspot.com/search?q=%EC%A4%91%EC%86%8C%EA%B8%B0%EC%97%85

60년대와 70년대 일본의 급속한 경제성장, 독일의 '라인강의 기적'. 한국의 '한강의 기적'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전쟁후복구를 위한 수요의 증대가 경제를 활성화시키고, 집권적 정치문화가 그 여세를 몰아 오랫동안 경제를 활성화 시켰다는 사실이다. 일본경제의 성장은 멈추었고, 한국경제의 저변에는 70년대의 경제팽창의 시절을 그리워하는 여론이 이념문제와 엮여서 경제여론에 투입(input)될려는 움직임이 심상치않다. 하지만 후퇴하지 않는 독일경제를 생각하면 서구적 시민사회의 지구력을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다.

There was a certain irony in the timing of the great debate about Japan: the truth was that the heroic age of Japanese economic growth ended just about the time Westerners started to take Japan seriously. In the early 1970s, for reasons that are still somewhat mysterious, growth slowed throughout the advanced world. Japan,which had had the highest growth rate, also experienced the biggest slowdown- frome 9 percent a year in the 1960s to less than 4 percent after 1973.

Although this rate was still faster than that of any other advanced country (half again as fast as that of the United States), at that rate the date of Japan's emergence as the world's leading economy would have to be put off well into the twenty-first century.

Still, Japan's growth performance was, literally, the envy of other nations. Many people argued not only that japan figured out a better way to run its economy but also that its success came at least partly at the expense of naive Western competitors.

  - Paul Krugman [THE RETURN OF DEPRESS on ECONOMCS AND THE CRISIS OF 2008]-

한때 일본을 부러워했던 서구사회가 통계적 성장보다는 시민사회의 복리적 성장에 목표를 두고 민주적인 INPUT과 OUTPUT이 교차하는 가운데 장기적인 성장 또는 시민중심의 성장을 이루어온것으로 생각된다. 한국사회는 많은 비율의 근로자를 고용하고 있는 제조업을 중심으로 한 중소기업에 노동정책의 화살이 쏘아지고 있는 것도 문제다. 근본적으로 경제적인 집권세력인 재벌개혁이 없으면 국가경제자체를 살릴 수 없다는 혹독한 결론이 나올 가능성도 있다. 사실 일본경제도 재벌중심의 경제이긴 하지만 국가분위기 자체가 공적인데 편승하여  한국보다 중소기업과의 상생(相生)을 이룬 것으로 생각된다.   

First, while cronyism and corruption were very real in Asia, they were nothing new. Korea's chaebol were essentially family enterprises disguised as modern corporations whose owners had been accustomed to special treatment for decades.

    - Paul Krugman [THE RETURN OF DEPRESS on ECONOMCS AND THE CRISIS OF 2008]-

2018년 8월 18일 토요일

동양의 시민과 고대 아테네의 시민

가끔 지인들이나 일터의 동료들에게 정치적 참여에 대한 생각을 물어보곤 한다. 이유인즉슨 열심히 근로하며 아기자기한 시민의 삶을 꾸려가야 하는 시기에 많은 기회비용을 들여서 할 말을 하고 있던 내 자신에 대한 확신이 흔들리는 경우가 가끔 있었기때문이다. 가장 많이 들어 본 말이 "먹고 살기 바빠서 정치적 관심을 가질 수 없다"라는 답변이었다. 그렇긴 하다. 한국뿐만 아니라 특히 일본같은 국가의 시민들은 근면 성실, 거국적 협동, 지하자원등의 부족으로 인한 어려운 국가생존여건을 명분삼아 비정치적인 시민을이 만들어져가는듯 하다.

시간과 경제적 여유가 없는 시민은 간편한 정치참여의 방법을 찾는다. 그러다보니 철학적이거나 이성적이지 못한 대중정치가 만연을 한다. 마국사회의 대중은 사회적 자유라는 명분으로 선거와 같은 공식적 정치참여외에 정치에 무관심한 경우가 있지만 한국과 일본은 전혀 다른 문제를 안고 있는듯 하다. 바쁜 직업활동, 경제적 욕망,한국은 이념적 갈등을 안고 있는 정치의 극단성이 가져다 주는 부담(대게 어느 한 편에 서면 다른 편으로 부터 불이익을 당할 것을 우려하는 사람들이 뜻밖에 많다는 것을 체험했다.) 

Democracy as a system survived in Athenes for nearly two hundred years, on and off, though it never caught on widely in the ancient world. To work, it demanded an educated citizenry though only perhaps a tenth of them could actually read as well as people who had learned how speak publicly, to reason and to follow complicated argument. This development of what we might call civil society was important as the results of voting.

Athenian 'democracy' did not include women, younger men or slaves, however. As Athens developed her gorgeous architecture and sculpture, her theatre and music and philosophy, she relied on slaves just as much as unsmiling Sparta did. And as Athens came to depend ever more on her silver mines to by the corn she could not grow herself, huge numbers of slave miners wer imported: one account suggests 150,000 at one time. But slaves were used heavily on farms as well - the historian Xenophon refers to twenty thousand absconding from Athenian farms during a Spartan invasion -  and as paid craftsmen, including for the great public buildings. It has been estimated that for every free male Athenian citizen there were two slaves.

Without the slaves, captured in wars, the Greek farmers could not possibly have spared the time to learn to speak and vote, or to serve as active citizens ; nor could the Greek aristocrats have enjoyed the wealth and leisure to study philosophy. Again, it was war that under pinned the 'Greek miracle - and rather more substantially than many of its admirers like to admit.

- ANDREW MARR 의  [ A History of the World ] 중에서-      

그리스 아테네의 문화적 번영과 민주정치의 발전은 노예노동을 기반으로 한 시민의 여유에서 비롯되었다는 내용인데, 일하는 사람은 정치문제에 대해서 피동적인 태도를 취할 수 밖에 없음을 생각하게 한다. 이쯤 되면 일본사회가 왜 정치적으로 수동적이며 보수적이고 규율에 복종하기를 좋아하는지 예상할 수 있을 것 같다. 일본은 국민소득이나 국가경제규모에 비해서 아직도 블랙기업이나 파견근로등이 많고, 야간근로에 지친 근로자들의 자살 소식이 자주 들려오는 기이한 사회다. 한국사회는 지리적 인접성과 문화접변에 의해서 일본사회를 많이 닮아가는 성향이 있다. 특히 근로문제에 대해서 인간중심의 근로현장을 만들지 못하고, 효율적인 함의점을 찾으려는 노력을 소홀히하는 문제가 있다. 아마도 돈이 있어야 정치를 할 수 있거나 정치적인 접근을 할려면 빚이 늘어가거나 하는 문제는 아테네의 정치사회를 보면 쉽게 이해되는 문제인듯 하다.

저녁이 있는 삶은 정치발전에 있어서도 중요한듯 하다.  

2018년 8월 11일 토요일

Inner slaughter / 경로의존성


얼마전 진보진영의 정치인이 자살하자 보수진영의 정치인이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훈계조의 비평을 해서 비난을 받은 적이 있었다. 해당 보수진영의 정치인이 인간적 기본윤리의 측면이나 동종업계의 공감을 모두 받지 못하고 비난을 받은 점에 있어서는 사회감정들이 어느 정도 안정이 됬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왜냐하면 한반도에서는 이념, 권력, 정치의 세계가 야망과 탐욕의 감정과 결부되어 극단적으로 몰입해가는 성향이 있었기 때문에 과거사를 생각하면 보수진영 정치인의 비평은 정적(政敵)의 죽음을 '슬퍼하지 않아도 되는' 전통과 습관의 연장으로서 당연한 것 같았다. 

원래 인간이 하는 일이란 중용을 찾기가 힘든 것 같다. 유명한 그리스 철학자인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는 인간이 지켜야 할 철학적 윤리로서 '중용(中庸)'을 이야기하며 그 중용의 길을 가기 위해서 많은 의지력이 필요하다는 가르침을 주기도 했다. 그래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은 스승인 플라톤(Platon)의 주지주의(主知主義)철학에 대비하여 주의주의(主意主義)철학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정치분야나 경제분야 할 것 없이 인간사의 모든 분야는 경로의존성이 있는듯 하다. 끊임없이 정신에너지를 투입해주지 않으면 습관과 전통의 노예가 되는 것이 인간의 습성인 것을 이해하면 놀랄일은 아닌듯 하다. 그러나 생각보다 빨리 빠져 나오지 못함은 문제가 된다. 특히 이념에 관해서는 완전히 몰입하여 각자가 다른 세상으로 끌려들어가는 모습을 북한의 실상에서 보고 있고, 한국도 위기를 많이 경험하는듯 하다. 보수정치인의 각박한 비평이 비난을 받는 점은 이와 같이 해석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념과 정치적 야망에 몰입하여 중심을 잃어버렸다.' 그런 현상이 심해지면 각자는 동족이나 동료들의 피까지 봐야하는 내부도살자(Inner slaughter)의 형태로 발전하게 될듯 하다.

Chiang had brought in the Germans when the Russians pulled out after he turned on his Communist allies in 1927 in Shanghai, Chiang's butchers chopped off so many Communist heads their weary arms could hardly raise the great scimitars frome their sides.

The Russian advisers had come in the days of Dr. Sun Yat-sen, the founder of the Chinese republic, whose mantle Chiang was trying to drape over his own narrow shoulders, General Galen and the others had won Chiang's respect at Whampoa Military Academy in Canton when he was commandant. Nonetheless, in 1927 he would have killed them all, and Mikhail Borodln, Stalin's special agent in China, as well, had he been able to lay hands on them. Chiang was ready to slaughter every Communist in China in his drive to win power for himself.

But that was another story . Chiang had some professional respect for the Communist commanders fighting him in Jiangxi. He knew many of them from the days when they had all marched together under their banner of Dr. Sun. one of the leading "bandits," Zhou Enlai, had been Ching's number two, the political chief , at Whampoa. Many others had passed through the Academy. Not Mao Zedong. Chiang hadn't encountered Mao but he knew a lot about him and, of course, he knew that other leading "Red," tough old (forty-eight) Zhu De. Zhu De had been a warlord general and an opium smoker before he joined the Communists.  

- Harrison E. Salisbury의 [THE LONG MARCH] -

2018년 7월 22일 일요일

전문적 환상과 생명력 / 시진핑

인간이 어떤 환경에 놓여 있든지 그 곳의 분위기를 벗어나기란 쉬운 일이 아닌듯 하다. 법조인은 법조인들의 세계에 몰입되어 있고, 정치인은 정치인들의 세계에 몰입되어 있으며 종교인들은 말할 것도 없이 종교인들의 세계- 종교 경전의 세계- 에 몰입되어 있다. 여러가지 일을 하면서 그 세계의 쓸모없는 전통과 몰입에 대하여 문제가 있다는 생각을 할때가 많았는데, 요즘 중국의 지도자 시진핑이 '동양적 민주주의'라는  정체불명의 용어를 만들어 내며 황제적 권력을 가지려고 애쓰는 모습을 보면서 역시 오랜 전통과 습관을 없애는건 쉬운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https://hyeong-chun.blogspot.com/search?q=%EC%95%84%EB%8B%B4%EC%8A%A4%EB%AF%B8%EC%8A%A4+%EB%B6%84%EC%97%85

우리가 경제적 자유주의에 대하여 공리성과는 상관없이 이기심을 위하여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착각을 하고 있지만 원래 경제적 자유주의의 선구자인 아담스미스의 생각은 아니었다. 시진핑은 그냥 중국의 오랜 황제적 전통과 혁명지도자인 마오저뚱의 퇴보적 길을 답습하는 무기력한 모습을 보여주는 일을 하고 있는듯 하다. 사람이 늙어갈때 개혁심보다는 수구적 전통을 답습하기 쉽다는 증거만 보여주고 있는듯 하다.

수십년전 어느 날, 서울 거리를 배회하다가 교보문고에서 판매하던 밀로즈[권력의 장악]과 미국 저널리스트인 Harrison Salisbury 의 [THE LONG MARCH /대장정]를 사서 읽었다. 밀로즈의 [권력의 장악]은 어렵고 제미가 없어 읽다 말았고, 대장정은 책의 내용에서 풍겨 나오는 생명력이 매력적이라서 반복해서 읽었다.

https://hyeong-chun.blogspot.com/search?q=%EB%8C%80%EC%9E%A5%EC%A0%95

이런 책을 좋아하니 좌파적 사고가 있지 않나 하는 오해도 살법한데, 고등학교시절 내내 속칭 우파적 언론인 [주간조선]을 매주 구입해서 앍었고, 특히 그 속에 연재되던 베트남 민족해방전선(NLF)의 고위 간부였다가 전향한 트루옹누탕의 회고록을 빠짐없이 읽었는데, 이념에 대한 객관적인 시각은 신뢰받고도 남을만한 생각을 가졌다고 생각한다. 10년후 매우 어려운 처지에 빠졌을때 그냥 생명력의 관점에서 Agnes Smedley 의 [Battle Hymn of China]를 읽으면서 견뎠는데, 고난을 극복할려는 몸부림과 훗날 모택동의 수구적 변신은 이념의 문제가 이닌 인간 개인의 문제에 관심을 좀 가져야 한다는 생각을 어렴풋이 하게 되었던 것 같다.

시진핑의 변신은 매우 개인적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중국 경제를 살린 국부의 모습도 아니고 동양적 민주주의의 선구자도 아닐뿐더러 오히려 중국에 생명력을 가져다 준 선배 지도자들, 주은래와 등소평의 노력을 허망하게 만드는 일일 수도 있을 것이다. 동양의 정치지도자들은 서양과 같이 자발적 혁명에 의해서 아래로부터의 개혁을 하지 못하고 위로부터의 개혁에 의존한 동양 민중들의 약점을 잘 이용하는듯 하다. 국가주의적이고 수직적인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일본이 그렇고 심지어는 공산혁명의 무용함을 확인한 러시아에서 푸틴은 짜르 형태의 수구적 지도자로 회귀할려고 한다. 황제적 국가와 황제적 권력의 학습효과이며 늙어가는 권력자들의 개인적인 파탄일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국가와 사회는 새로운 생명력과 활기를 되찾을 수도 없을 뿐더러 서서히 퇴보하는 모습을 보게 될 것 같다.

물론 북한과 한국은 이런 모습들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2018년 1월 25일 목요일

석회석광산과 텅스텐광산 / 코라파스


서술상 좀 엉뚱한 비약이 있긴 하지만 한 국가의 경제성장에 있어서 한 부분의 개발이 전체에 큰 영향을 미칠 수도 있는데,  북한의 경제성장에 지하자원이 큰 역할을 할 수 있을것 같다.

혼돈이론(나비효과이론)의 창시자인 코라파스(Dimitris Chorafas 1961 - )는 어떤 일의 원인과 결과에 대해서 반드시 비례관계나 정규분포적 질서에 의존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코라파스는 아주 사소하게 발생한 문제가 나중에 커다란 문제로 변환되는 경우를 이론화 시켜서 많은 저서를 내놓고 많은 세미나에서 강연을 하면서 세상의 질서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내놓아 센세이션을 일으킨적이 있다.

그러나 정규분포적 질서를 찾아내지 못해서 그렇지 어떤 대규모적 사건이나 추세는 명확히 규명할 수 있는 이유가 발단이 됨을 알수도 있는데, 한국이 건설업이나 중공업으로 경제성장의 발판을 마련하게 된 이유를 지하자원의 성질에서 찾아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심지어는 어떤 전직 대통령이 옛날 한국의 1970년대 건설업의 부흥시대를 잊지 못하고 건설업에 대해 심각한 집착을 하다가 국고를 낭비한 사건까지도 아주 오랜 옛날 고생대 지층이 한반도에서 형성되던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간 사건으로 인연이 맺어질듯 하다. 고생대에 형성된 조선계지층에서 풍부한 석회석이 한국의 건설업 발전에 중요한 영향을 끼쳤다는것을 부정할 사람은 없을 것같다.

몇일전 일터를 옮기면서 잠깐 머리도 식힐겸 한국의 강원도 영월군 상동이란 곳을 다녀왔다. 어렸을때 부친이 제무시(GMC)트럭이나 일본제트럭이나 소련제트럭을 개조한 4발이 또는 쓰리쿼터트럭을 가지고 석회석 광산이나 상동의 텅스텐 광산에서 트럭품을 판적이 있어서 어릴때의 추억이 있는곳이기도 하였다. 1960년대 상동의 텅스텐은 한국수출액의 60퍼센트를 점유하는 중요한 수출품이었다. 광물의 품위도 높고 매장량도 엄청났다. 하지만 1990년대 저렴한 중국산 텅스텐원광이 개발되고나서 상동의 텅스텐광산은 폐광되고 상동은 상주인구 2만명의 지방도시에서 일천명의 마을로 전락을 했다. 하지만 이제 중국의 어느 지역이 다시 부흥했으리라 생각한다.

상동의 광산이 한창때는 광산 고용인원이 이천여명정도 되었는데, 그 인원과 맺어진 상주인구가 열배인 이만명까지 되었던던 점과 한국 수출액의 60퍼센트까지 점유했음을 생각하면 있는 지하자원을 개발해서 경제성장과 연계시키는 일이 매우 유용하고 편리한 방법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든다.

2018년 1월 19일 금요일

현실주의 이상주의 / 김일성과 황장엽

어느 날 밤늦게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서민들의 생활에서는 얄팍한 이익을 가지고 서로 충돌하는 경우도 있고, 내 의도와는 다르게 낮과 밤이 바뀌는 생활을 하는 경우도 있고, 시간에 맞추어 일을 처리하기 위해 제때 식사도 못하고 고속도로를 달리기도 한다. 모든 조건이 나쁘게 결합되어 있는 처지라서 팍팍한 현실이 여유있는 통찰력을 몰아낸지 참 오랜 시간이 지났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면서 휴게소에서 식사를 하는데, 전직 대통령이 기자회견을 하는 장면이 티브이에 방영되었다. 이념문제에 대한 오해로 뜨거운 양철지붕위의 고양이 같이 살았던 그 시절의 대통령의 기자회견을 애증(愛憎)이 가득 담긴 눈으로 보고 있었다. 뭐 애(愛)는 얼마냐 있겠냐만은 그래도 나를 살펴본 만큼 나도 저쪽을 살펴보았던 전력이 있는 처지라서 미운정 고운정 다 들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래 정치인이 서민과 다른 점이 있다면 생각의 스케일이 크고 그릇이 커서 여유가 있고, 그 여유와 상상력이 결합하여 통찰력이나 직관을 만들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정치인이 사소한 이익을 추구하기 시작하면 서민의 스케일을 가지고 감당못할 일을 떠맡는 처지가 되어서 아주 나쁜 상황을 만들기도 한다. 아마 한국의 보수가 괴멸 된다고 하면 이런 문제일 것이다. 보수가 살려면 헌신적인 마음으로 여유와 통찰력을 가지고 개혁을 위해 힘써야 한다. 사사로운 이익을 위해서 공익적 지위를 사용했으니 직관이 발휘될리가 없던 것이다. 나는 해봐서 아는데, 이런 문제도 나처럼 밑바닥 인생을 살아보면 안다.

북한과의 이념전쟁의 일선에서 자유주의 이념을 수호하기 위해서 힘썼던 영웅들을 많이 알고 있다. 나의 부친이 그랬으며 구월산유격대장과 그 대원들이 그랬으며 북파공작원들이 그랬으며, 참전용사들이 그랬다. 하지만 더 나은 미래를 위하여 좀 더 미래지향적인 생각을 하다보니 소중한 분들이 한 일의 가치를 폄하하는 상황이 될까봐, 말하자면 내 자신이 사회주의 성향을 띌까봐 우려하곤 했는데, 항상 맑은 머리로 직관을 발휘해야 냉철한 입지를 지킬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아마 누군가 나를 나이에 비해 염소같다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한 번은 국립현충원에서 구월산 유격대 김종벽대장의 아드님, 황장엽 북한외무상을 망명시킨 이연길 선생과 식사를 하고 있다가 이연길 선생이 부친과 비숫한 점이 많아서 부친이 생각났다. 한 편으로는 내가 알고 있었던 황장엽 선생의 전력과 황장엽 선생을 신뢰하던 김일성 주석의 마음도 짚어보곤 했는데, 현실주의자였던 김일성 주석이 이상주의자였던 황장엽 선생을 많이 신뢰했을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념을 퍼뜨리기 위해서 전쟁을 일으킨 사람들, 이념을 수호하기 위해서 목숨을 바친 사람들이 모두 이상주의자이긴 하지만 한국의 상업고등학교 선생으로 있다가 자진월북을 한 황장엽 선생의 이상주의적인 성격은 한 술 더 뜬 면이 있다.

1990년대 황장엽 선생이 망명할 무렵 한국의 한 잡지에서 황장엽 선생의 이야기가 특집으로 나왔다. 한국의 상업고등학교 선생시절 학생들에게 인기는 없었으며 점심시간에 생쌀과 솔잎으로 식사를 하는 이상한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그랬던 인물이 북한에서 외무상을 하면서 김일성 주석의 신뢰를 받아서 북한의 정신적 바이블인 김일성 주체사상을 만들었으니 권력과 사람보는 눈이 있는 김일성 주석도 특이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현실주의자가 이상주의적인 눈으로 이상주의자를 영입해서 균형을 얻을려고 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상주의자들은 현실적인 이익에 집착하지 않아서 마음의 여유가 있다. 그 마음은 직관을 낳는다. 인민군 장교학교로 이송되다가 남쪽으로 가는게 좋을 것 같아서 기차역에서 탈출한 나의 부친은 모친을 남겨두고 온 것을 후회했는데, 황장엽 선생은 모든 사적(私的)인 인연을 끊고서 월북했다가 다시 모든 사적인 인연을 끊고서 망명해서 북한에 관련 인물들 2000여명이 숙청되었다고 한다. 이연길 선생은 전 재산을 들여서 황장엽 선생을 망명시키고, 구월산유격대장과 대원들은 이념을 수호했다는 자부심외에는 어떤 현실적인 이익도 없었다는 생각을 하며, 이상주의자들의 바다에서 떠 다니는 눈으로 본 현실은 매우 못 마땅한 생각이 들었다.

북한의 김정일 위원장 시절 북한이 고난의 행군시절을 맞게 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원산 앞바다로 추정되는 휴양지에서 국사(國事)는 멀리하고 술판을 벌리고, 영화에 몰두하고 여성편력에 힘쓰는 현실적인 생활을 했으니 미래에 대한 답을 내놓지 못하고 북한이 어려워진 것은 당연한 것이다. 김정은 위원장은 이런 부친의 모습을 싫어했던 것으로 아는데, 타산지석으로 삼을 일이다.  

자신의 발등에 불이 떨어질 것 같으니 매우 현실적인 해명을 하는 전직 대통령을 보면서 정말 큰 일날뻔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살이가 힘든 서민이 하는 말이지만 이 말은 들어야 한다. 정치인이 개인적 이익을 탐하는 그릇을 가지면 자신뿐만 아니라 국민 모두가 어려움에 빠진다

2018년 1월 12일 금요일

트라우마의 해결

한달전 큰 교통사고를 당했다. 과속으로 달리던 차가 내 차의 옆구리를 들이받은 사고인데, 사고의 규모에 비해서 크게 다친데는 없었고, 사고직후 침착하고 의연하게 대처한 점도 있었다. 그런데 몸과 마음이 천천히 무너졌다. 마치 다른 세상에 온 것 같은 생각을 하게끔 내 자신을 잃어버렸다. 이제 지금 이 시점의 현실이 내 생각의 바탕이 되어가고 있었다. 현실에 길들여진다는 점을 체험했다는 의미다. 이래저래 고통을 겪다가 남극이나 7대룩 최고봉을 등반한 사람들의 수기를 읽으며 정신을 모으려고 애를 썼다. 

사람은 방황하면 돌아올 곳이 필요하다. 그곳은 고향일 수도 있고, 종교일 수도 있고, 이념일 수도 있고, 부모님일 수도 있다. 만약 한 국가의 구성원들 전체가 식민지 치하나 전쟁등을 겪었다면 그 트라우마를 어떻게 이겨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나와 같은 방식을 취할 수도 있을 것이다. 국가의 구성원들이 이념이나 종교에 집착하는 이유를 트라우마를 극복할려는 시도로 해석해도 될 듯 싶었다.


원래 이념이나 종교가 나쁜 것은 아닌데, 왜 그것에 지나치게 매달리게 되었는지, 북한이나 한국은 스스로를 돌아봐야 할듯 하다. 일제식민지의 경험, 625전쟁등 편치않은 역사는 맹목적인 믿음을 만들것같다.

북한의 공업화전략

북한이 아프리카의 어느 나라와 일인당 GDP가 비숫하다고 해서 북한의 공업화전략을 아프리카의 미개발국가들과 비숫한 방식을 취할 것이 아니다. 북한은 국가규모대비 엄청난 부존자원을 가지고 있고, 군수산업과 관련된 기계공업이나 IT산업, 심지어는 핵개발능력까지 어떤 부문에 있어서는 첨단을 달리고 있는 국가다. 만약 미국의 군수산업기술이 민간기술을 이끌었던 방식으로 공업발전을 시도한다면 짧은 시간에 빠른 경제성장을 이룰 수 있는 잠재력이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고립된 지정학적 위치와 이념적인 전통은 후진국이 취할 수 있는 공업화전략인 수출 주도형전략을 취하는 것을 방해하고 있는듯 하다. 이 전략은 활발한 국제관계와 무역활동이 전제되어야 하는데, 자립경제만을 외치고 있는 북한은 수출 주도형 경제성장을 전혀 시도하지 않는다. 적성국가와 적성국가들에 협력하는 국가들에 둘러싸인 운명을 개탄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한국은 북한의 유일한 희망이 될 수 있다. 한국은 북한이 필요한 모든 것을 가지고 있고, 북한은 한국이 필요한 모든 것을 가지고 있는듯 하다.

한때 한국의 중공업지대와 경공업지대에서 생활했던적이 있는데, 비교적 한국의 70년대나 80년대의 문화적 정신적 생활형태를 놓지 않고 있는 것을 보며 한국과 북한의 경제적 문화의 접변에 그다지 큰 어려움이 없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정리하자면 북한은 군수산업을 기반으로한 2차산업 위주로 특화하고, 한국은 3차산업이나 4차산업 위주로 특화하여 서로 비교우위에 있는 상품으로 활발한 무역활동을 시작하자는 의미다. 정치적인 신뢰감문제는 구상무역같은 형태로 해결하면 될 것 같다.

2018년 1월 6일 토요일

정치지도자의 정신건강

스코틀랜드의 정신의학자 R.D.라잉은 [분열된 자아와 경험정치학]이란 저서를 통해 인간의 정신분열 증세는 병든 사회가 표출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므로 정신분열 증세는 약물로 억제할 것이 아니고 널리 알리고 탐구하여 문제의 근원을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한 번은 북한과 한국의 정치지도자뿐만 아니라 정치인들이나 외국의 정치인들의 분열적이거나 과장된 행태에 대해서 생각해본적이 있었는데, 핵단추에 관한 논란에서 비롯된 미국의 트럼프대통령의 정신건강이 미국사회의 큰 이슈가 되고 있다.


원래 정치인, 종교인, 사기꾼, 사업가는 도덕성문제와는 별개로 형이상학적인 상상력이 풍부한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그런것이 때로는 인간사회에 필요한 것일수도 있고, 문제의 시발점이 될 수도 있지만 어쨌든 그렇다는 것이다. 특히 미국사회처럼 대중사회의 성향이 강한 곳에서는 좀 과해도 문제가 안되는듯 한 현상이 나타나서 다소 우려가 되는 점이 있었는데, 요즘에는 그 우려가 현실화되고 있는것 같다.

대중정치나 선동정치가 국민에게 무리없이 용인된다면 그 사회의 정신건강부터 고려해봐야 할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