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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5월 21일 월요일

대장정(大長征)



1985년 겨울에 사서 수십번도 더 읽은 책이다. 퓰리처상을 받은 미국의 언론인 해리슨솔즈베리가 이념을 넘어서 인류역사상 전대미문의 사건인 대장정의 루트를 답사하면서 쓴 책이다. 유태인들에게 출애굽기가 있다면 중국인들에게는 '대장정'이 있다고 할정도로 중국인들에게 신념의 통합을 이루게한 정신적자산이된 사건이다.

1934년 중국남부의 장시성근처에 웅거하던 홍군주력부대8만6천명은 국민당군의 포위를 벗어나기위해 중국서부 오지의 24개의 강과 천개이상의 산을 넘어 6천마일이상의 대장정을 하게된다. 그들은 내내 국민당군의 추격부대와 회족과 같은 지방이민족부대와도 전투를 벌이며 이동을 하였다.  혹독한 굶주림과 추위로 중국북부의 산시성에서 대장정을 완료할 무렵에는 4천명만이 남아 새로운 중공(이 책을 처음 읽을 당시의 중국을 한국에서는 중공이라 불렀다.)을 건설하게되는 바탕이 된다.





 대장정내내 홍군의 우두머리였던 모택동은 위대한 '결론'을 살리지 못하고 말년에 광기의 '문화대혁명'으로 무너졌지만 홍군수뇌부였던 등소평은 문화대혁명때 숙청을 당하는 고난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지도자가 되었다. 그리고 이념의 '고루함'을 벗어난 실용주의 노선을 걷게되며 대장정의 정신을 살린 증거를 남겨놓았다. 그 증거물은 지금의 '중국'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 주관적으로  홍군에게 가장 고난으로 느껴졌던 사건은 같은 홍군인 장국도의 4방면군과의 충돌사건이었던것 같다. 대장정을 끝내가는 소수의 홍군주력부대와 그보다 10배 더 많은 장국도의 4방면군과의 만남은 모택동과 장국도의 헤게모니싸움으로까지 비화하게 된다. 결국 두 부대는 각자의 길을 가게되고 장국도의 부대는 국민당군에게 소멸되게된다. 한 가지 이념으로 뭉쳐진 다른 사람들과의 갈등은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고 해결되는지를 알게되는 사건이었던것 같다.   





2020년 5월 30일 토요일

모택동과 현대 중국정치

대입 시험을 막 끝마친 고3 겨울에 서점을 들러 미국 저널리스트인 해리슨 솔즈베리가 쓴 [대장정]을 샀다. 원래 학교 공부는 하지 않고 이 책 저 책 읽는 성격인데, 3 겨울은 세상이 인정하는 여유가 있었다. 그리고 그 책을 자주 읽었는데, 뭐 하나 좋을 일 없는 환경에서 모든 문제는 자신의 의지로 극복해야 하는 것이라는 사상이 심어졌다.

감동을 한 것은 대장정의 과정이지 혁명과 혁명 이후의 세계가 아니었다. 어린 마음에 말로 표현하지는 못했지만 노력한다고 해서 원했던 세상이 오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어렴풋이 알고 있던 것 같다. 대장정도 그랬다. 중국 공산군의 엄청난 의지력이 발휘되고 난 이후에 다시 암울한 세상이 왔다. 문화대혁명이나 참새박멸사건 등은 무지한 의지가 일으킨 파괴적인 사건이었다.

등소평과 주은래라는 현명한 인물들에 의해서 문제는 수습되어 갔지만 모택동의 혁명 정신을 신격화 시키는 의식들이 중국에 존재하는 한, 항상 중국 정신은 위태로웠다. 그런데 그 혁명 정신이라는 것이 서구 사회에서도 있었다. 영국의 명예혁명, 미국의 독립전쟁, 프랑스 혁명, 한국의 동학운동 역시 봉건제도의 퇴락성에 반발하여 발생한 거대한 역사적인 사건이었다는 것이다.

서양이나 동양이나 각자가 구제도의 모순에 반발하여 역사를 바꾸고 더 나은 세상으로 가고자 하는 움직임이 있었다는 사실은 공통적이었다.

홍콩에 중국의 보안법이 적용되는 문제에 대해서는 홍콩 시민들과 중국 본토인들의 입장이 매우 다를 것이다. 하물며 북한과 마찬가지로 중국은 제국주의 침략에 대해서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다, 홍콩이 영국령이 되었고 서구의 민주주의적인 가치가 홍콩 시민들에게 심어진 반면, 중국인들에게는 제국주의 침략에 의한 산물로서 빨리 중국화 시켜야 한다는 의지가 있을 것이다.

역사적으로 중국인들의 마음속에 잠재해 있는 중화사상(中華思想)’은 언젠가 기회가 되면 냉철한 판단력이상의 영향력을 발휘할 것이고, 매우 신중하고 치밀한 면이 있었던 등소평은 기분 내지 말고 착실하게 목적을 달성하라는 의도로 도광양회(韜光養晦/자신의 재능을 드러내지 않고 인내하면서 기다린다 )를 이야기 하면서 정도가 지나친 열정을 억누르고자 했을 것이다. 하물며 오랫동안 인내의 세월을 보낸 등소평은 상대성에 대한 감각도 남달랐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강해지고 내가 지배하고자 하는 욕구를 드러내면 반드시 뭉치는 상대가 있을 거라는 생각 같은 것이다.

언젠가 글을 썼지만 모택동은 참 많은 독서를 하였다. 그러나 독서의 성질이 중국 공산당이 추구하는 사상과 맞지 않았다.

마오쩌뚱은 비할 데 없는 독서광이었지만 외국 문학 작품은 [춘희/椿姬]같은 몇몇 명저를 제외하고는 거의 읽지 않았다. 중국의 현대 문학도 읽지 않았다. 경제 관리 분야, 그 중에서도 특히 외국의 사회화 된 생산관리에 관계된 것은 더욱 적었다. 이것은 사회주의 건설에 있어서 큰 마이너스 효과를 불러왔다고 펑센즈는 말하고 있다. 그가 애독했던 것은 중국의 고전이었고, 만년에는 특히 [자치통감/ 資治通監]이었다.

- 야부키 스스무가 지은 [마오쩌뚱과 저우언라이]중에서 -

모택동은 전쟁터에서도 항상 [사기/ 史記]를 열독했다고 한다. 중국의 고전은 봉건사회의 의식이 담겨 있고, 항상 황제가 등장하였다. 모택동의 의식은 중국 봉건제도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었던 것이다. 자신이 많이 접한 이야기가 황제관련 이야기인 것처럼 모택동도 황제가 되고 싶었던 것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10여년 후에 또 한차례 정신적인 고통을 겪은 적이 있는데, 그 때는 대장정 당시 중국 홍군에 종군했던 미국 여성인 아그네스 스메들리(AGNES SMEDLEY)[중국혁명의 노래/ Battle Hymn of China]와 앙드레 모로아의 [프랑스사]등을 읽으면서 견뎠다. 시야가 넓어지면 현실의 고민이 사소해 보이는 효과가 있었다. 요즘 생각해 보면 서구사회는 혁명의 목적을 달성했고, 중국은 아직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 등소평과 주은래가 통치하던 시절의 중국과는 달리 모택동의 시절로 회기 하는 중국을 보는 것 같다. 중국 정부는 홍콩 문제에 대해서 타국이 간섭하는 것을 용납지 않겠다고 한다. 분명한 것은 내 인생에 가장 좋은 영향을 주었던 그 시절의 중국이 아닌 것 같은 생각이 든다.

2018년 7월 22일 일요일

전문적 환상과 생명력 / 시진핑

인간이 어떤 환경에 놓여 있든지 그 곳의 분위기를 벗어나기란 쉬운 일이 아닌듯 하다. 법조인은 법조인들의 세계에 몰입되어 있고, 정치인은 정치인들의 세계에 몰입되어 있으며 종교인들은 말할 것도 없이 종교인들의 세계- 종교 경전의 세계- 에 몰입되어 있다. 여러가지 일을 하면서 그 세계의 쓸모없는 전통과 몰입에 대하여 문제가 있다는 생각을 할때가 많았는데, 요즘 중국의 지도자 시진핑이 '동양적 민주주의'라는  정체불명의 용어를 만들어 내며 황제적 권력을 가지려고 애쓰는 모습을 보면서 역시 오랜 전통과 습관을 없애는건 쉬운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https://hyeong-chun.blogspot.com/search?q=%EC%95%84%EB%8B%B4%EC%8A%A4%EB%AF%B8%EC%8A%A4+%EB%B6%84%EC%97%85

우리가 경제적 자유주의에 대하여 공리성과는 상관없이 이기심을 위하여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착각을 하고 있지만 원래 경제적 자유주의의 선구자인 아담스미스의 생각은 아니었다. 시진핑은 그냥 중국의 오랜 황제적 전통과 혁명지도자인 마오저뚱의 퇴보적 길을 답습하는 무기력한 모습을 보여주는 일을 하고 있는듯 하다. 사람이 늙어갈때 개혁심보다는 수구적 전통을 답습하기 쉽다는 증거만 보여주고 있는듯 하다.

수십년전 어느 날, 서울 거리를 배회하다가 교보문고에서 판매하던 밀로즈[권력의 장악]과 미국 저널리스트인 Harrison Salisbury 의 [THE LONG MARCH /대장정]를 사서 읽었다. 밀로즈의 [권력의 장악]은 어렵고 제미가 없어 읽다 말았고, 대장정은 책의 내용에서 풍겨 나오는 생명력이 매력적이라서 반복해서 읽었다.

https://hyeong-chun.blogspot.com/search?q=%EB%8C%80%EC%9E%A5%EC%A0%95

이런 책을 좋아하니 좌파적 사고가 있지 않나 하는 오해도 살법한데, 고등학교시절 내내 속칭 우파적 언론인 [주간조선]을 매주 구입해서 앍었고, 특히 그 속에 연재되던 베트남 민족해방전선(NLF)의 고위 간부였다가 전향한 트루옹누탕의 회고록을 빠짐없이 읽었는데, 이념에 대한 객관적인 시각은 신뢰받고도 남을만한 생각을 가졌다고 생각한다. 10년후 매우 어려운 처지에 빠졌을때 그냥 생명력의 관점에서 Agnes Smedley 의 [Battle Hymn of China]를 읽으면서 견뎠는데, 고난을 극복할려는 몸부림과 훗날 모택동의 수구적 변신은 이념의 문제가 이닌 인간 개인의 문제에 관심을 좀 가져야 한다는 생각을 어렴풋이 하게 되었던 것 같다.

시진핑의 변신은 매우 개인적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중국 경제를 살린 국부의 모습도 아니고 동양적 민주주의의 선구자도 아닐뿐더러 오히려 중국에 생명력을 가져다 준 선배 지도자들, 주은래와 등소평의 노력을 허망하게 만드는 일일 수도 있을 것이다. 동양의 정치지도자들은 서양과 같이 자발적 혁명에 의해서 아래로부터의 개혁을 하지 못하고 위로부터의 개혁에 의존한 동양 민중들의 약점을 잘 이용하는듯 하다. 국가주의적이고 수직적인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일본이 그렇고 심지어는 공산혁명의 무용함을 확인한 러시아에서 푸틴은 짜르 형태의 수구적 지도자로 회귀할려고 한다. 황제적 국가와 황제적 권력의 학습효과이며 늙어가는 권력자들의 개인적인 파탄일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국가와 사회는 새로운 생명력과 활기를 되찾을 수도 없을 뿐더러 서서히 퇴보하는 모습을 보게 될 것 같다.

물론 북한과 한국은 이런 모습들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2016년 8월 31일 수요일

중국과 북한의 제왕적 권위와 숙청

가끔 기업체에 입사원서를 내놓고 대표이사와 면접을 보는 자리에서 대표이사의 권위적인 모습과 마음의 여유정도를 내쪽에서 살펴보는 경우가 있었다. 한 번은 회사에 인터뷰를 간다고 연락을 하고는 회사 정문에 도착하니 넓은 마당 한쪽 끝에서 노인분이 열심히 마당을 쓸고 있었다. 공손하게 이것 저것 여쭙고 사무실에 들어가니 잠시후 대표가 왔는데, 그 노인분이었다. 나를 시험에 들게한 주체의 쏟아지는 질문에 감정의 변화도 없이 의연하게 대답을 하고 있었는데, 회사의 크기에 비해서 대표의 심리는 매우 '개인적'이었다. 나는 일을 원했지 나를 다스릴 '제왕'을 원했던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인터뷰는 실패했다. 몇번 그런일이 있고나서는 회사의 '높은 사람'과 맞닥뜨릴일이 없는 상대적으로 빈한한 일자리를 찾아서 일했는데, 마음이 편했다.

아직도 모택동을 숭배하는 중국인들이 많은 것을 보면서 중국인들이 이데올로기적 망상에 빠져있고, 제왕적 권위에 대해서 비판적인 태도로 받아들일 민주적인 자세가 안되어 있음을 생각하면 경제민주화에 정치민주화가 따를 수 없는 중국의 한계를 다시 생각해보곤 한다. 북한은 과도기적인 정치형태로 중국의 그것을 받아들여야 할 것은 맞지만 중국 그 자체는 한계에 부딪힐 날이 멀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곤한다. 공산당의 지나친 권위는 협동과 화합을 끌어낼 수 없는 시스템을 만든것이고 액튼경(Acton)의 말처럼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는 진리를 낳는 것이 현실적으로 보여지기 때문이다. 중국은 부패문제가 심각한데, 정치적인 참여를 할 수 없는 에너지는 경제적인 상승욕구로 과잉배출되는 문제가 있는듯 하다. 훌륭한 국가를 건설할 꿈과 희망은 많은 능력있는 이들의 마음속에 싹틀 수 없는 여건상 대단히 개인적이고 일탈적인 꿈을 꾸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엘리트들의 비리도 알고보면 상승욕구나 협동적인 참여욕구를 차단당했다는 자기기만이 작용했다는 생각이 든다.

개인적으로 이념과는 상관없이 대장정의 가혹한 시련을 벗어났음에 대해서 중국홍군의 끈질긴 생명력은 경이롭게 생각하지만 모택동에 대해서는 대단히 좋아하지 않았다. 봉건적이고 부패한 중국타도의 기치를 내걸고 혁명을 일으킨 지도자가 또 다른 제왕으로 군림하게 된 '왕조의 교체'이상의 의미가 없었기 때문이다. 주은래와 등소평같은 혁명의 목적을 제대로 알고 있는 지도자가 없었다면 또 다른 세습왕조의 탄생이라는 역사적인 오명을 벗어나지 못할뻔 했던 것이 중국혁명인듯 하다. 중국의 근대화보다는 계급의식이 중심이 된 이념으로 또 다른 제왕적인 권위를 갖고자 했던 모택동은 독서를 즐겼지만 중국 고전에 치우쳐 읽음으로서 봉건적인 제왕적인 이미지를 자신의 그림속에 그려넣을 수 밖에 없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1974년 2월 등소평은 뻬이징으로 소환되었다. 모택동의 시대가 막바지에 다다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 지독했던 문화대혁명도 끝났다. 파괴는 전쟁보다 더 지독한 상처를 남겼다.산업은 절름발이가 되었고 교육은 사라졌으며 당은 난파선이 되어 있었다. 유소기를 비롯하여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모택동의 건강도 아주 나빠서 정신 상태조차 매우 위험한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모택동의 아내인 강청과 사인방의 세 추종자들은 잠시 충격을 받았으나 곧 반격태세를 갖췄다. 주은래는 암에 걸려 있었다.

모택동은 다시 이 부도옹에게 도움을 청했다. 모택동은 유소기에게 했던 것처럼 등소평도 녹초로 만들어 버릴 수 있었다. 아니면 하룡의 경우처럼 의사를 시켜 죽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모택동은 등소평에게 그런 짓을 하지 않았다. 그는 등소평을 불러들였고, 그에 대해서 이렇게 말하였다. "등소평 은 아주 드믄 인재다. 그에게는 사상이 있다. 그는 무턱대고 문제에 달라붙지 않는다. 그는 해결책을 찾는다. 책임감을 갖고 어려운 문제를 풀어가는 것이다.

모택동의 말에 따르면 등소평은 훌륭한 전사였다. 그는 소련과 싸우는 법을 알고 있었다. 등소평같은 사람은 좀처럼 찾기 어려운 인물이었다.

 - HARRISON E. SALISBURY [THE LONG MARCH] - 

그러니까 모택동 자신은 이념과 제왕적 권위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함을 인식하고 있으면서 등소평의 목적을 아는 태도는 인정하고 또 필요로 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의지하고 있는 사람을 숙청할 수 없는 일이었다. 모택동은 등소평을 '솜뭉치속의 바늘'이라고 평했다. 부드러움속에 감추어진 목적을 향한 일관된 통찰력이 깃들어 있음을 표현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북한은 최근에 김용진 내각부총리를 처형하기까지 4년간 100여명을 처형한 것으로 추측된다. 김정은 위원장의 집권초기에 경제대국화의 포부를 피력했던 이상과는 달리 문제는 개선이 안되고 있는데, 이념과 군사교육외에는 배운게 없는 북한 엘리트들에 대한 신뢰할 수 없는 마음이 개입이 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김정은은 2009년 봄부터 가을에 걸쳐 실시된 생산배가 운동 '150일 전투'를 비롯하여 같은 해 연말의 통화 단위 변경, 2011년의 경제개혁인 '6.28 조치'까지 다양한 경제정책을 펼쳐왔다. 그러나 그럴때마다 나라는 혼란에 빠졌고, 결국 조선인민군 보수파 중진들의 반대에 부딪혀 좌절하기를 거듭했다.

 - 일본 동아시아연구가 곤도다이스케 -

거칠게 표현하면 배운것도 없고 생각도 없는 쓸모없는 인물들이 김정은 위원장의 권위에 도전한다는 억한 심정까지 생기게 만든 것이다. 생각해보면 김일성 주석이나 김정일 위원장시대까지 엘리트들의 교육을 소홀히 한 나쁜 효과를 김정은 위원장이 떠맡게 된 결과가 된 것같다. 몇 번 서술한 바 있지만 효과가 늦지만 확실하게 나타나는 교육정책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일깨워주는 사태인듯 하다. 프랑스의 르노자동차 공장에서 작은 체구로 육체노동을 하면서까지 배움의 열정에 빠져들었던 등소평과 같은 참모가 없는 것이 김정은위원장의 큰 고민인 것 같다. 개방이나 개혁을 할려니 일을 할 인재가 없고, 이념과 체제, 선군정치에 몰입한 엘리트들이 체제를 받쳐주는 인재들이자 체제를 무력화시키는 인재들이기도 한 이중적인 성격을 감당할 수 없는듯 하다.

몇년전 한 번 언급한 바 있지만 김정은 위원장은 고문정치를 생각해볼 수도 있을 것 같다. 중국혁명기에는 국민당쪽이나 공산당쪽에서 많은 서양인 군사적 정치적 고문들이 있었는데, 정작 고문들의 생각이 그릇된 것으로 판단된다고 하여도 어떤 문제들을 해결하는 실마리로서의 다양한 지식과 반대의견을 유발 할 수 있는 근거가 되기도 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논의의 다양성'을 유발할 인재라도 필요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2023년 11월 28일 화요일

부정의 경제학 그리고 독서


 인간은 몸과 마음이 불편할 때나 지식과 논리의 밑천이 드러날 때 극단적인 태도를 취하기 쉽다. 그래서 인간은 이념적 또는 종교적 극단성을 보여준다. 인간은 자신도 모르는 성난 본성을 해소하기 위해 상대를 찾아 대장정을 펼치고,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게 된다. 극단적인 공격성은 상대의 방어기재를 끌어내고 결국 갈등으로 이어진다.. 한반도는 그런 일을 겪었기 때문에 나는 그것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정치인은 통치인과 봉사인을 불문하고 몸과 마음의 컨디션이 좋아야 한다. 한국에 젊은 정치인이 많아지기를 바라거나 북한의 김정은 위원장이 늙기 전에 남북한의 협력 관계를 만들어야 한다든지, 프랑스의 마크롱 대통령에게 실용 정치의 본보기를 기대하는 점은 젊은 정신과 육체가 정치 환경을 긍정적으로 만들 가능성이 더 많다는 생각에 근거한다.그렇다고 그런 생각이 연장자들에 대한 감정을 나쁘게 만든 것은 아니다. 좋은 컨디션에서 깊고 많은 경험들이 실용적으로 판단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기대가 있다. 사실 현실적인 세계 정치에서 냉전 상황이 커지는 것을 보고는 속이 쓰렸다. 행위와 책임은 우리들 자신의 몫이지만 한반도는 냉전의 피해를 최전선에서 끝없이 보고 있는 중이다.

 

 

 

부정적인 냉전 감정(이념 감정)이 한국에서는 외교 관계를 무너뜨리고 무역 중심의 경제를 흔들고 있다는 점은 중고생들도 인지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 정치인들과 지지자들은 이념에 기반하여 정치를 하고 있다. 우리의 우군이라고 생각하는 국가가 우리의 적군이라고 생각하는 나라와 다시 협력의 무대로 나서고 있는데도 한국은 이념 정치를 고집한다.

 

 

 

내가 생각하는 최종적인 가능성이 가장 일리가 있는 것 같다. 나는 30년 이상 상대적인 지위에 관한 글을 써왔다. 이에 대한 자유주의자와 우파들의 가장 흔한 반응은 내가 계급간의 갈등을 일으키려고 한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사디스트의 선호를 무시하는 것과 같은 이유로 정황을 무시한다. 그러나 상대적인 지위를 논의의 장으로 끌어들이는 것은 사디스트의 선호에 정책의 무게를 두는 것과는 크게 다르다. 우리 모두는 사회가 부러움과 질시같은 부정적인 감정을 없애는데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 [ The Darwin Economy ] by Robert H.Frank -

 

 

 

나는 관념의 부작용을 매우 싫어하기 때문에 서서히 공학인의 길로 빠져들고 있어서 많은 책을 읽지 못하지만 젊은 정치인들은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 한국의 분위기에서는 연장자들에게 충고하면 건방져 보이므로 젊은 정치인이라고 언급했다. 오죽했으면 내가 이러겠는가 -

 

 

필독서 몇 권을 추천한다. 독자가 반복하여 독서를 하는 동안에 머리 속에 설정되어 있는 이념의 기초를 무너뜨리고 세계를 폭 넓고 객관적으로 보는 시각을 갖기를 나는 기대한다. 그래야 우리 모두가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독자들은 이상한 생각과 행위는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불경기와 관련된 경제의 순환 형태를 이해하기 위해서 [THE RETURN OF DEPRESSION ECONOMICS]

 

국제 정세와 지리적 인과성을 알기 위해서 [PRISONERS OF GEOGRAPHY] 그리고 [WHY GEOGRAPHY MATTERS]

 

현대사와 외교 관계를 이해하기 위해서 [DIPLOMACY]

 

요즘 한국 정치 현실을 보면 학벌이나 시험만큼 한국의 미래에 치명적인 것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말하자면 순기능만큼 역기능도 대단하다는 사실이 밝혀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