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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5월 30일 토요일

모택동과 현대 중국정치

대입 시험을 막 끝마친 고3 겨울에 서점을 들러 미국 저널리스트인 해리슨 솔즈베리가 쓴 [대장정]을 샀다. 원래 학교 공부는 하지 않고 이 책 저 책 읽는 성격인데, 3 겨울은 세상이 인정하는 여유가 있었다. 그리고 그 책을 자주 읽었는데, 뭐 하나 좋을 일 없는 환경에서 모든 문제는 자신의 의지로 극복해야 하는 것이라는 사상이 심어졌다.

감동을 한 것은 대장정의 과정이지 혁명과 혁명 이후의 세계가 아니었다. 어린 마음에 말로 표현하지는 못했지만 노력한다고 해서 원했던 세상이 오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어렴풋이 알고 있던 것 같다. 대장정도 그랬다. 중국 공산군의 엄청난 의지력이 발휘되고 난 이후에 다시 암울한 세상이 왔다. 문화대혁명이나 참새박멸사건 등은 무지한 의지가 일으킨 파괴적인 사건이었다.

등소평과 주은래라는 현명한 인물들에 의해서 문제는 수습되어 갔지만 모택동의 혁명 정신을 신격화 시키는 의식들이 중국에 존재하는 한, 항상 중국 정신은 위태로웠다. 그런데 그 혁명 정신이라는 것이 서구 사회에서도 있었다. 영국의 명예혁명, 미국의 독립전쟁, 프랑스 혁명, 한국의 동학운동 역시 봉건제도의 퇴락성에 반발하여 발생한 거대한 역사적인 사건이었다는 것이다.

서양이나 동양이나 각자가 구제도의 모순에 반발하여 역사를 바꾸고 더 나은 세상으로 가고자 하는 움직임이 있었다는 사실은 공통적이었다.

홍콩에 중국의 보안법이 적용되는 문제에 대해서는 홍콩 시민들과 중국 본토인들의 입장이 매우 다를 것이다. 하물며 북한과 마찬가지로 중국은 제국주의 침략에 대해서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다, 홍콩이 영국령이 되었고 서구의 민주주의적인 가치가 홍콩 시민들에게 심어진 반면, 중국인들에게는 제국주의 침략에 의한 산물로서 빨리 중국화 시켜야 한다는 의지가 있을 것이다.

역사적으로 중국인들의 마음속에 잠재해 있는 중화사상(中華思想)’은 언젠가 기회가 되면 냉철한 판단력이상의 영향력을 발휘할 것이고, 매우 신중하고 치밀한 면이 있었던 등소평은 기분 내지 말고 착실하게 목적을 달성하라는 의도로 도광양회(韜光養晦/자신의 재능을 드러내지 않고 인내하면서 기다린다 )를 이야기 하면서 정도가 지나친 열정을 억누르고자 했을 것이다. 하물며 오랫동안 인내의 세월을 보낸 등소평은 상대성에 대한 감각도 남달랐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강해지고 내가 지배하고자 하는 욕구를 드러내면 반드시 뭉치는 상대가 있을 거라는 생각 같은 것이다.

언젠가 글을 썼지만 모택동은 참 많은 독서를 하였다. 그러나 독서의 성질이 중국 공산당이 추구하는 사상과 맞지 않았다.

마오쩌뚱은 비할 데 없는 독서광이었지만 외국 문학 작품은 [춘희/椿姬]같은 몇몇 명저를 제외하고는 거의 읽지 않았다. 중국의 현대 문학도 읽지 않았다. 경제 관리 분야, 그 중에서도 특히 외국의 사회화 된 생산관리에 관계된 것은 더욱 적었다. 이것은 사회주의 건설에 있어서 큰 마이너스 효과를 불러왔다고 펑센즈는 말하고 있다. 그가 애독했던 것은 중국의 고전이었고, 만년에는 특히 [자치통감/ 資治通監]이었다.

- 야부키 스스무가 지은 [마오쩌뚱과 저우언라이]중에서 -

모택동은 전쟁터에서도 항상 [사기/ 史記]를 열독했다고 한다. 중국의 고전은 봉건사회의 의식이 담겨 있고, 항상 황제가 등장하였다. 모택동의 의식은 중국 봉건제도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었던 것이다. 자신이 많이 접한 이야기가 황제관련 이야기인 것처럼 모택동도 황제가 되고 싶었던 것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10여년 후에 또 한차례 정신적인 고통을 겪은 적이 있는데, 그 때는 대장정 당시 중국 홍군에 종군했던 미국 여성인 아그네스 스메들리(AGNES SMEDLEY)[중국혁명의 노래/ Battle Hymn of China]와 앙드레 모로아의 [프랑스사]등을 읽으면서 견뎠다. 시야가 넓어지면 현실의 고민이 사소해 보이는 효과가 있었다. 요즘 생각해 보면 서구사회는 혁명의 목적을 달성했고, 중국은 아직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 등소평과 주은래가 통치하던 시절의 중국과는 달리 모택동의 시절로 회기 하는 중국을 보는 것 같다. 중국 정부는 홍콩 문제에 대해서 타국이 간섭하는 것을 용납지 않겠다고 한다. 분명한 것은 내 인생에 가장 좋은 영향을 주었던 그 시절의 중국이 아닌 것 같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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