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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8월 11일 토요일

Inner slaughter / 경로의존성


얼마전 진보진영의 정치인이 자살하자 보수진영의 정치인이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훈계조의 비평을 해서 비난을 받은 적이 있었다. 해당 보수진영의 정치인이 인간적 기본윤리의 측면이나 동종업계의 공감을 모두 받지 못하고 비난을 받은 점에 있어서는 사회감정들이 어느 정도 안정이 됬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왜냐하면 한반도에서는 이념, 권력, 정치의 세계가 야망과 탐욕의 감정과 결부되어 극단적으로 몰입해가는 성향이 있었기 때문에 과거사를 생각하면 보수진영 정치인의 비평은 정적(政敵)의 죽음을 '슬퍼하지 않아도 되는' 전통과 습관의 연장으로서 당연한 것 같았다. 

원래 인간이 하는 일이란 중용을 찾기가 힘든 것 같다. 유명한 그리스 철학자인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는 인간이 지켜야 할 철학적 윤리로서 '중용(中庸)'을 이야기하며 그 중용의 길을 가기 위해서 많은 의지력이 필요하다는 가르침을 주기도 했다. 그래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은 스승인 플라톤(Platon)의 주지주의(主知主義)철학에 대비하여 주의주의(主意主義)철학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정치분야나 경제분야 할 것 없이 인간사의 모든 분야는 경로의존성이 있는듯 하다. 끊임없이 정신에너지를 투입해주지 않으면 습관과 전통의 노예가 되는 것이 인간의 습성인 것을 이해하면 놀랄일은 아닌듯 하다. 그러나 생각보다 빨리 빠져 나오지 못함은 문제가 된다. 특히 이념에 관해서는 완전히 몰입하여 각자가 다른 세상으로 끌려들어가는 모습을 북한의 실상에서 보고 있고, 한국도 위기를 많이 경험하는듯 하다. 보수정치인의 각박한 비평이 비난을 받는 점은 이와 같이 해석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념과 정치적 야망에 몰입하여 중심을 잃어버렸다.' 그런 현상이 심해지면 각자는 동족이나 동료들의 피까지 봐야하는 내부도살자(Inner slaughter)의 형태로 발전하게 될듯 하다.

Chiang had brought in the Germans when the Russians pulled out after he turned on his Communist allies in 1927 in Shanghai, Chiang's butchers chopped off so many Communist heads their weary arms could hardly raise the great scimitars frome their sides.

The Russian advisers had come in the days of Dr. Sun Yat-sen, the founder of the Chinese republic, whose mantle Chiang was trying to drape over his own narrow shoulders, General Galen and the others had won Chiang's respect at Whampoa Military Academy in Canton when he was commandant. Nonetheless, in 1927 he would have killed them all, and Mikhail Borodln, Stalin's special agent in China, as well, had he been able to lay hands on them. Chiang was ready to slaughter every Communist in China in his drive to win power for himself.

But that was another story . Chiang had some professional respect for the Communist commanders fighting him in Jiangxi. He knew many of them from the days when they had all marched together under their banner of Dr. Sun. one of the leading "bandits," Zhou Enlai, had been Ching's number two, the political chief , at Whampoa. Many others had passed through the Academy. Not Mao Zedong. Chiang hadn't encountered Mao but he knew a lot about him and, of course, he knew that other leading "Red," tough old (forty-eight) Zhu De. Zhu De had been a warlord general and an opium smoker before he joined the Communists.  

- Harrison E. Salisbury의 [THE LONG MARCH]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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