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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2월 31일 목요일

학생 K / 주희의 독서

K라는 젊은이를 1년동안 가까이했다. 당시 재수생활을 했는데, 중위권정도의 모의고사성적을 보이고 있었다. 어렷을때 부모가 결별하면서 보육원에 맏겨졌다고 한다. 그러니까 요즘 언어로 표현하면 흙수저도 아닌 가시수저를 입에 문 젊은이였다. 어려운 여건에서 공부를 어쩌구 하는 그런 관심이 아닌 학습태도가 상당히 인상적이었는데, 10개월정도의 학습기간의 태도가 마치 미륵보살 같았다. 대처수상의 '철의 여인'이라는 별명을 자신과 동일시시키며 마음을 가다듬고 있었다. 여건이 안되니 친구들과 간식거리를 챙길수도 없고 꾸준히 책만 파고들었다. 1달에 한 번 보는 모의고사 성적이 꾸준히 10점정도씩 상승했다. 결국 한국 최고의 대학이라고 하는 S대와 P공대를 동시에 합격했다. 아마 지방신문에도 기사가 나왔다고 하는데, 못 보았다. 스스로 얻어낸 깨달음이 많았을거라는 생각이 든다. 훨씬 연상인 내게도 두고 두고 마음의 스승역할을 하고 있으니 배울 것은 어디에도 있다는 생각을 확인시켜준 젊은이였던것 같다.

그 이듬해 내게는 정신적으로 최악의 혼란을 겪는 사건이 생겼는데, 이념문제와 북파공작원문제가 얽혀서 본질을 알고자 하는 행위가 권력과 관련된 정치행위라는 누명을 썼던 모양이다. 정치행위가 봉사행위라는 내 혼자만의 생각은 그냥 내 혼자만의 생각이었던것 같다. 도청, 감청,통화방해, 미행등의 상대가 보이지 않는 신경전을 벌이기 시작했다. K라는 젊은이가 여름방학때 내려왔다가 길에서 잠시 마주쳤는데, 탁구를 집중적으로 배운다고 했다. 그 말에 힌트를 얻어 새벽에 일어나 검도와 사격훈련을 시작했다. 한 번은 어떤 은퇴한 특수요원과 언쟁을 벌였는데, 내가 머리속으로 아는 것만 있다고 한 말이 마음속에 아른 거렸다. 어린시절 곱상한 모양새의 부친께서 뜬금없이 동네팔씨름대회만 열리면 우승을 했는데, 생김새와는 달리 나도 무골(武骨)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 스케이트와 수영을 익히면서 합기도의 전사경(轉絲勁)방식을 적용시키거나 부드러운 방식으로 에너지 손실을 최대한 줄일것이라는 원칙으로 연습을 했는데, 효과가 상당히 좋았다. 그런데 그렇게 하기 위해서 책을 100여권을 분해해봤다. 역시 독서도 중요했다.

송나라의 주희(朱熹 1130 ~ 1200)가 만든 주자학은 조선의 통치원리로 채택되면서 매우 관념적이고 비실용적이라는 누명을 썼다. 그러나 그것은 그 시대를 움직여 나가는 사람들의 수용태도에 따른 것이지 더욱 진보한 학문 자체가 무슨 죄가 있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던 주희가 만든 성리학의 원리적이고 관념적인 모습은 명나라때 지행합일(知行合一)이라는 조금 더 실천적으로 변한 양명학으로 발전하고, 청나라때 들어오면 실증성과 과학성을 중시하는 고증학(考證學)으로 발전했다. 조선은 고증학을 실학(實學)이라는 학문으로 받아들였지만 보수적 세력들의 반대로 빛을 보지 못한 것을 보면 역시 사람들의 수용태도가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

학문의 길에 이치를 끝까지 따지는 것보다 우선하는 것이 없다. 이치를 따지는 요령은 반드시 독서에서 시작된다. 독서법으로는 순서에 따라 치밀함에 이르는 것이 중요하다 치밀함에 이르는 기본은 삼가 차분하게 뜻을 유지하는데 있다. 성인의 책을 읽으려면 읽고 또 읽어야 하는데 매일 매일 읽으면 성현의 말씀이 점점 의미있게 느껴진다.

독서의 처음에는 의문이 생기는지 알지 못한다 조금 지나면 점차 의문이 생긴다. 중간쯤 가면 곳곳에서 의문이 생긴다. 이런 과정을 한바탕 치르고 나면 모든 것이 한데 모여 하나로 관통하게 되고 모든 의심이 없어진다.

독서법이란 별다른 것이 아니다. 뜻을 단단히 하고 마음을 비운 다음 반복해서 상세히 음미하면 얻는 바가 있을 것이다.

공부 기간은 융통성을 가지고 길게 잡되 공부 과정은 팽팽해야 한다. 공부는 강단 있고 과감하게 결단해야지 유유자적해서는 안된다.

뜻을 세우는 입지(立志)가 확고하지 않으면 어떻게 공부하겠는가?

주희가 독서와 공부에 관해 언급한 것을 몇가지 적어봤는데, 문득 산만하거나 때로는 천박한 생활속으로 매몰되어가던 중 K라는 젊은이가 생각나고, 내 자신을 추스리고 인식을 넓히기 위해서 서점에서 외교와 세계사 관련된 책을 몇권 골라왔다. 뜻을 잃으면 독서랑은 쉬이 멀어지게 되는 현상을 경험했는데, 생활속에 매몰되어 있으면 그 젊은이의 미륵보살같은 성실하고 꾸준한 태도는 보기 힘들고 경박하게 들뛰는 모습만 보기 마련이다. 물론 나 자신도 동조되어감을 느낀다. 그래서 책을 손에서 놓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어른은 아이에게도 배울 것이 있다는 태도를 항상 유지해야 한다는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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