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아비브의 테러리즘 연구소장 아리엘 메라리 박사는 빈라덴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빈 라덴은 이슬람 문명이 절정에 달했던 1200년대 안달루시아 문명을 재건하겠다는 꿈을 지니고 있었다. 당시 스페인 도시 코르도바에는 900개의 공중목욕탕, 최고의 무슬림 책들로 가득 차 있는 70여 개의 도서관들 그리고 최고의 식당과 의사들이 있었을 정도였다. 마드리드에서 벌어진 3.11 열차 폭탄 테러는 이라크에 주둔해 있는 스페인군의 철수를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사실은 이런 꿈의 실현과도 연관이 있었다.
빈 라덴은 아프카니스탄과 파키스탄국경의 토라보라 산 동굴에 숨어 지내며 아시아로부터 스페인 너머에까지 이르는 무슬림국가를 건설하겠다는 꿈을 꾸고 있다. 이런 꿈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빈 라덴이 위험한 것이다. 그는 이 꿈의 실현을 위해 살육을 마다하지 않는다. 몽골의 칭기스칸, 십자군, 나치 독일, 러시아의 소수 민족 학살을 능가하는 규모의 학살도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이렇게 위험한 인물이다.
- 기드온의 스파이 중에서 -
중동에서 벌어진 일이나 중동발 사건들은 대부분 종교적인 이상과 무관하지 않은 듯 하다. 종교는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사고의 과정을 거치는 수고로움없이 현실적인 욕망들을 신념화시킬 수 있는 좋은 도구이기도 한것 같다. 건설적이냐 파괴적이냐 하는 가치판단을 하지 않는다면 이스라엘민족의 고난과 건국에 관한 사건도 종교적인 이상과 연관이 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런 면이 종교적인 이상이 자주 위험할 수 있는 이유인듯 하다.
모사드의 분석관들은 찰레비 케이스를 통해서 부시 행정부의 업무 처리 방식에 대해 다시 한 번 놀랐다. 9.11 사태 이후 워싱턴의 정책결정에는 종교의 영향이 크게 작용했다. 9.11 사태가 발생한지 4일 후 빌리 그래함 목사가 백악관을 방문했다. 부시 가문과의 오랜 친구 관계인 그래함 목사는 테러리즘의 악마성과 이를 분쇄하는 '정당한 분노'에 대해 부시 대통령과 오랫동안 이야기했다. 그러고는 "내가 블레셋인들에게 손을 뻗는 것을 보라. 내가 그들에게 복수를 가했을 때 내가 주인인 것을 알게 되리라"라는 성경 구절을 소개했다. 또한 '정당한 분노'를 행사하는 권리가 명시된 성경 구절에 표시를 한 포켓 사이즈의 성경을 대통령에게 선물로 주었다.
부시 대통령은 에스겔 선지자의 말씀에 위로를 받고 힘을 얻었다. '정당한 분노'라는 개념이 부시 대통령의 사고 속에 깊이 자리 잡게 되었던 것이다. 2002년 부시 대통령이 의회나 군 지휘관들을 상대로 행한 모든 모든 연설 그리고 주간 라디오 연설에는 이런 사고 방식이 그대로 반영되어 있었다. 부시 대통령은 테러와의 전쟁은 하나님이 승낙하신 전쟁이라고 믿고 있었다. 이라크에 대한 '예방적 전쟁'도 부시대통령의 종교적 신념에 기초해 있었다.
- 기드온의 스파이 중에서 -
바로 이런 점이 문제다. 테러리즘 자체가 비합리적이고 비 이성적이며 무엇보다도 '파괴적인 악'이라는 점 때문에 방어하거나 예방해야 하는 것이지 종교적 신념을 정당성의 원천으로 사용한다면 분쟁의 골은 더 깊어지기만 할 뿐이라는 사실이다. 이래 저래 중동발 사건들은 종교적 신념이 얽힌 문제가 되버린듯 하다. 이런 문제와 관련해서는 한반도의 이념분쟁도 유사한 모습을 보이는듯 하다. 중동은 문명 자체가 종교적인 성향이 강하다고 할 수 있는데, 아마 교육이나 생활 속에서 종교적인 억압이 지나치게 강한 탓인지도 모르겠다. 이란같은 경우도 팔레비국왕의 합리적인 정부(적어도 지금의 이란에 비해서는 그렇다는 표현이다)를 호메이니의 종교적인 정부가 대체하고 나서 문화자체가 비합리적으로 퇴보하는 모습을 보였는데, 과거에 비해서 너무 어두워진 이란 문화에 대해서 이란 국민들은 후회하고 있지만 이성적인 사고를 할려고 하지 않은 댓가를 크게 치루고 있다는 생각이다. 쉽게 갈려다 망한 경우라고 봐야할 것 같다.
중동은 왜 종교적일까. 애초부터 다른 문명들과 쉽게 교통할 수 있는 비옥한 반달지대의 개방형 문명이라서 과학도 발달하고, 전쟁도 잦았다고 한다. 이집트문명이나 인더스 문명, 황하문명에 비해서 국가의 이합집산이 잦았는데, 문명의 지혜로움에 비해서 척박한 자연환경이 부족들간의 결집체를 쉽게 만들어내지 못하고 정신적인 연대감이라도 필요해서 그런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 점은 한 반도에서도 마찬가지인듯 한데, 이념이란 것이 외세의 침략이나 변동하는 사회문화의 산만함에 대응하여 정신적인 연대감을 추구할려는 욕망을 불러 일으키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 점에서는 중국은 중화사상, 일본은 전통적으로 일관성있는 내부문화등이 있는데 비해 한반도는 그런 문화가 없는 것이 이념적 분쟁의 원인이 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반도라는 지리적 위치는 가장 큰 문제의 원인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는듯 하다.
개인적으로 생각을 해봐도 어려운 시절에는 마음의 중심을 찾기 위해서 뭔가 믿고 의지할 만한 신념을 찾고자 시도하는 일이 있었는데, 나 자신뿐만이 아니고 많은 사람들이 그런 일을 겪는 것을 보았다. 물론 늘어나는 지식만큼 신념들이 세련되어지고 객관화된다는 사실도 경험한듯 하다. 개인적으로는 '신념'들이 가져다 주는 파괴와 광기에 대해서 많이 경계하는 입장인데, 그래서 다방면의 지식이나 인문학적 철학적인 교육등이 국민들에게 필요하다고 역설하기도 한다.
1995년 10월 모사드의 안가에서는 이슬람 지하드의 종교책임자인 파디 시카키에 대한 암살작전이 계획되고 있었는데, 시카키는 25년동안 오만건이상의 테러사건을 배후조정해 400명 이상의 이스라엘 사람이 희생되고, 1000명 이상이 부상당했다고 한다. 시카키는 아랍인들에게 영웅적인 존재로서 코란을 뒤져서 탄압을 받는 자는 가해자에 대해 새로운 힘으로 대항해도 된다는 논리를 끌어내어 자살을 금지한 이슬람 율법에도 불구하고 10대청년들이 몸에 폭탄을 두르고 자살공격에 뛰어들도록 유도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스라엘 지도자들이나 시카키같은 이슬람지하드 지도자들은 이런 말을 자주 한다고 한다. "우리는 싸운다. 그것이 우리의 존재 이유다."
뭐 이것 저것 생각하기 싫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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