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정파(政派)는 정확하게 좌파와 우파로 나눌수 있을까. 인위적인 경계를 그어서 원하는 정치적 이상을 실현하기 위한 도구로서 충분한 기능을 기대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사실 사회적 약자라고 문제가 없는것도 아니며 강자라고 탐욕의 상징이 될 수는 없는듯 하다. 물론 반대의 경우인 사회적 강자라고 해서 칭송의 대상이 될 수도 없고 약자라고 해서 비난의 대상이 될 수 없는 것은 너무 당연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좌파는 약자에게 우파는 강자에게 가치를 집중하고 있다. 협동으로서 공리(共利)를 추구하는 새로운 정치적 이념을 위한 경계를 만들어 낼 수는 없는 것일까 하는 문제는 한국사회에서 꽤나 오래되고 심각한 고민거리인듯 하다.
그랙 매커운(GREG McKEOWN)은 [ESSENTIALISM]이란 베스트셀러저서에서 핵심적인 역량에 집중하기 위해서는 경계를 분명히 그어놓아야 한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다, 그것이 중요한 일에 관심과 행동을 집중하는 좋은 방법이라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한국에서 좌파와 우파의 구분은 철이 지나서도 꽤 오랫동안 집중을 위한 경계의 도구로 사용되고 있으나 사실은 문제의 본질을 이해 못하게 만드는 망상덩어리로 사용되고 있다는, 즉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어서 문제의 본질을 찾지 못하게 하는 도구로 사용되고 있는듯 하다.
어느 날 내 자신의 세계와 어울리지 않는 곳에서 무엇인가를 찾아내기 위해서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집중력이 떨어지니까 쉽게 동조되어 정신적인 역량이 무너지는 사태를 경험한 적이 있었다. 그래서 자신과 대화하는 시간을 명확하게 구분해야 된다는 사실을 다짐했던 일이 있었다. 쉽고 편안함만 추구하거나 집중력을 잃어버린 사람들은 시간의 경계와 말의 경계를 잃어버리고 마음의 경계까지 잃어버리는 모습을 많이 본다. 신뢰감없는 말을 흘리고 다니며,시간을 건설적으로 사용하지 못하는 성향이 있다. 왜 그시절 그 추억만 되뇌이고 있을까. 대답은 간단하다. 정신에너지가 소멸된 상태이기 때문인듯 하다.
인생에서도 분명하게 경계를 긋고 담장을 쳐놓지 않는다면, 우리의 영역은 다른 사람에 의해 정해질 것이다. 반면에 우리가 추구하는 본질적인 목표를 기반으로 분명한 경계를 마련하고 담장을 쳐둔다면, 그 영역 안에서는 - 그 영역은 우리 자신이 정하는 것이다 - 목표추구에 필요한 자유를 얻을 수 있다.
- [ESSENTIALISM]중에서 -
북한사회나 한국사회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과거라는 시간에 동조된 것인지도 모른다. 정신에너지가 부족하니 과거의 이념에 매달려 경계를 그어 볼려고 하지만 오히려 시간의 경계(아니면 시대의 경계라고 표현해야 할지)를 긋지 못하고 끌려 다니면서 역량을 소모시키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마치 직장의 고민거리를 집에까지 가져와서 고민하며 시간을 낭비하고 가정과 자신의 에너지를 뺏기는 어리석은 사람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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