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청년기에 사람들이 이념같은 보이지 않는 것에 확신을 갖는 이유가 궁금해 자의반 타의반으로 종교집단을 구경한 적이 있었다. 그곳에서 순수하기는 하나 순수하지 않은 기이한 형태의 인간상을 보고는 정치(이념)와 종교와 사기는 상상력이 풍부한 공통점이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훗날 이념적이며 종교적이고 게다가 사기롭기까지한 대통령이 등장해 풍부한 이야기거리를 만들어 주기도 했다.
많은 시간이 흘렀는데도 정치인과 일반시민들 중 일부는 풍부한 상상력을 낭비하는 것을 본다. 하지만 현실에서 한국은 실용적 상상력이 점점 강해져 과학 기술같은 첨단 분야가 발달하고 그런 것들이 한국의 경제발전을 견인하는 중이다.
나는 꾸준히 한국은 사기범죄가 세계에서 제일 많다고 알고 있었고, 그 이유는 정치와 종교와 진성 사기가 삼위일체가 되어 그 통계를 이끌었다고 생각했다.그리고 인공지능과 토론했는데, 인공지능은 '한국의 범죄 중에서' 사기범죄가 가장 많다고 반박한다.그리고 내 글이 설득력이 있을려면 진영논리를 피하라고 가르쳐 준다. 인공지능이 안 가르쳐 주었으면 누군가 또는 어떤 집단의 명예를 훼손할 뻔했다. 어쨌든 한국에서 사기가 만연하는 것은 사실이란다.
검증면제형 확신: 사기 다발 사회를 설명하는 하나의 가설
정치·종교·법률 지식의 결합이 만드는 화법의 구조와 실사구시적 대안
이형춘
국문 초록
이 글은 한국 사회에서 사기 범죄가 유독 큰 비중을 차지하는 현상을 새로운 각도에서 설명해보려는 시도다. 흔히 거론되는 설명, 즉 고소·고발이 쉬운 사법 문화나 가벼운 처벌 같은 제도적 요인은 사기가 통계에 많이 잡히는 이유는 설명해주지만, 그 사기가 실제로 사람들에게 통하는 이유까지는 설명해주지 못한다. 이 글은 법률·세법 같은 사회공학적 지식, 종교적 확신, 이념적 확신이라는 세 가지 자원이 한 사람이나 한 집단 안에서 결합할 때, 검증을 요구받지 않으면서도 신뢰를 얻어내는 독특한 화법이 만들어진다고 본다. 이를 검증면제형 확신이라 부르고, 그 작동 방식과 정상적 신념과의 경계를 가르는 기준을 제시한 뒤, 조선 후기 실학의 실사구시 정신을 그 해독제로 제안한다.
주요어: 사기 범죄, 검증면제형 확신, 사회공학적 지식, 종교적 확신, 이념적 확신, 실사구시
1. 들어가며: 통계가 말해주지 않는 것
한국 사회에서 사기는 가장 흔한 범죄다. 절도는 시간이 지나면서 줄어들었는데 사기는 오히려 늘었다. 형사 사건 전체를 놓고 보면 사기가 차지하는 비중이 다른 어떤 범죄보다 크다. 이런 현상을 두고 “한국은 세계에서 사기꾼이 제일 많은 나라”라는 식의 단정적인 말이 자주 돌아다니는데, 사실 이런 국제 비교 주장은 출처가 불분명하거나 검증이 안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 일단 확실한 것만 짚고 가자면, 한국 안에서 사기가 다른 범죄보다 압도적으로 많이 일어난다는 것, 이건 분명한 사실이다.
그런데 왜 그럴까. 보통 나오는 답은 제도 이야기다. 한국은 고소나 고발을 하기가 다른 나라보다 훨씬 쉽다. 미국이나 일본 경찰은 개인 간 채권채무 문제는 잘 받아주지 않는데, 한국은 형사 고소가 수월해서 민사로 풀어야 할 일도 사기죄로 잡히는 경우가 많다. 게다가 사기 금액이 클수록 오히려 형량이 가벼워지는 이상한 양형 구조도 있다. 이런 설명들은 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여기엔 빠진 게 하나 있다. 제도의 빈틈이 있다고 해서 누구나 그걸 비집고 들어가 수백, 수천 명을 속일 수 있는 건 아니라는 점이다. 그 빈틈을 파고들어서 사람들을 실제로 설득해내는 능력, 그게 어디서 오는가 하는 질문에는 아무도 답을 안 하고 있다.
이 글은 그 질문에 답을 해보려는 시도다.
2. 세 가지 자원이 만나는 자리
먼저 짚고 싶은 건 이거다. 한국 사회에는 사기와 가까운 자리에 설 수 있는 자원이 유난히 풍부하게 모여 있다는 것. 그 자원을 세 가지로 나눠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는 법률, 세법, 부동산 등기처럼 제도와 규칙을 다루는 지식이다. 이런 지식 자체는 전혀 나쁜 게 아니다. 분쟁을 풀어주고, 거래를 안전하게 만들어주는 좋은 도구다. 둘째는 종교적 확신이다. 이것도 본래는 사람들에게 삶의 의미를 주고 위로를 주는 좋은 역할을 한다. 셋째는 이념적 확신이다. 이것도 사람들을 모아서 정치적인 행동을 가능하게 해주는 순기능이 있다.
문제는 이 세 가지가 한 사람, 또는 한 집단 안에서 한꺼번에 합쳐질 때 생긴다. 실제로 통계를 보면 종교인의 지능범죄, 즉 사기나 횡령, 위조 같은 범죄의 적발 규모가 전문직 가운데 제일 크고, 그 안에서도 사기가 차지하는 비중이 압도적이다. 그리고 법조인 출신 정치인 가운데 일부, 특히 종교적이거나 이념적으로 확신이 강한 쪽일수록, 검증되지 않은 단정적인 이야기를 법리적인 말투로 포장해서 내놓는 모습을 종종 보인다. 이 사람들을 사기꾼이라고 부르자는 게 아니다. 다만 그들이 쓰는 화법의 구조가 사기의 화법과 닮아 있다는 걸 짚고 싶은 거다.
3. 검증면제형 확신이라는 개념
정치인, 종교인, 사기꾼이 공통으로 갖고 있는 능력을 흔히 “상상력이 풍부하다”는 말로 표현하곤 한다. 그런데 이 표현은 정확하지 않다. 소설가의 상상력도 풍부하지만, 소설가는 “이건 허구입니다”라고 미리 밝히고 시작한다. 독자에게 신뢰를 요구하지 않는다. 반면 정치인, 종교인, 사기꾼이 쓰는 상상력은 다르다. 이건 사실이다, 진리다, 확실한 수익이다 라고 주장하면서도, 그 주장을 검증하려는 시도는 슬쩍 피해 간다.
이걸 검증면제형 확신이라고 부르고 싶다. 이 확신이 작동하는 방식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검증할 수 없는 미래나 초월적인 영역에 대해서 마치 확정된 사실처럼 단정적으로 말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듣는 사람의 불안이나 결핍을 정확하게 짚어내서, 그 확신을 신뢰로 바꿔놓는 것이다. 이 두 가지가 합쳐지면, 검증 없이도 사람을 움직이는 말이 만들어진다.
4. 경계는 어디에 있나
그런데 여기서 조심할 게 있다. 정상적인 신념과 사기에 가까운 확신을 가르는 선이 뚜렷하지가 않다는 점이다. 둘 다 검증면제형 확신을 쓰기 때문이다. 정치 공약도, 종교적 가르침도 따지고 보면 지금 당장 검증할 수 없는 미래나 초월적 영역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러니 “검증이 안 되는 말을 한다”는 것만으로는 정상적인 신념과 사기를 구분할 수 없다.
그래서 다른 기준이 필요하다. 내가 보기엔 이거다. 정상적인 신념은 검증하려는 시도 자체를 막지 않는다. 정치인이 자기 정책의 효과를 자신 있게 말하더라도, 다음 선거에서 심판받는 건 받아들인다. 종교인이 신의 뜻을 말하더라도, 교단 내부의 감독이나 신학적 토론은 받아들인다. 반대로 사기에 가까워지는 지점은 따로 있다. “지금 의심하면 배신이다”, “이건 계시라서 증명할 수가 없다”, “지금 안 하면 기회를 영영 놓친다” 같은 말로, 검증해보려는 시도 자체를 원천적으로 막아버리는 화법이 등장하는 순간이다.
이 기준으로 보면, 누가 사기에 가까운지는 그 사람의 진영이나 직업으로 판단할 게 아니라, 그 사람이 쓰는 말의 구조로 판단해야 한다. 의심할 시간 자체를 안 주는 말, 의심하는 사람을 배신자로 몰아붙이는 말, 자기 주장을 신성한 것으로 만들어서 논쟁 대상에서 빼버리는 말. 이 세 가지 가운데 하나라도 등장하면, 그 확신은 정상적인 신념의 영역을 벗어나 사기의 문법으로 들어선 것이라고 볼 수 있다.
5. 엘리트의 화법이 사회 전체로 퍼질 때
이 화법이 그냥 개인 차원의 일탈로 끝나면 큰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 그런데 이 화법을 쓰는 사람들이 법률, 종교, 정치 분야의 엘리트들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사회적으로 권위 있는 자리에 있는 사람이 검증을 막는 화법을 반복해서 쓰면, 그 화법 자체가 마치 정당한 것처럼 받아들여진다. 일반 사람들도 검증 없는 확신을 의심 없이 받아들이는 습관을 자연스럽게 따라 배우게 된다.
이게 사기 범죄가 사회 전체에 만연하게 되는 문화적인 배경이라고 본다. 제도의 빈틈, 즉 고소가 쉽고 처벌이 가벼운 구조는 이 화법이 마음껏 활동할 수 있는 무대를 깔아준다. 그리고 엘리트들이 보여주는 검증면제형 확신은 그 화법을 “이렇게 말해도 되는구나” 하는 본보기로 만들어버린다. 무대와 본보기, 이 둘이 합쳐져서 사기가 줄지 않고 늘어나는 환경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6. 실사구시로 돌아가기
그렇다면 무엇을 해야 할까. 이 문제에 대한 답을 새로 만들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이미 조선 후기 실학자들이 내놓은 답이 있다. 실사구시, 즉 사실에 근거해서 옳음을 구하는 태도다. 다만 실사구시는 원래 학자 개인이 학문을 하는 방법이었다. 이걸 사기가 만연한 사회를 고치는 처방으로 쓰려면 한 걸음 더 나가야 한다. 개인의 학문적 태도였던 실사구시를, 시민 전체가 공적인 말을 검증하는 사회적 습관으로 넓혀야 한다는 것이다.
정치인의 공약을, 종교인의 계시를, 전문가의 법리를, 그 사람의 권위만 보고 받아들이지 말고, 사실과 증거를 한 번 더 물어보는 태도. 이게 검증면제형 확신의 시대에 맞설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라고 본다. 사기꾼을 한 명씩 잡아내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검증을 면제받은 확신이 권위처럼 통용되는 그 구조 자체를 바꾸어야 한다.
7. 나가며
이 글에서 제시한 가설은 아직 다듬어야 할 부분이 많다. 특히 “법률 지식, 종교적 확신, 이념적 확신의 결합”이 실제로 사기 범죄와 얼마나 강하게 연결되는지는 통계로 더 정밀하게 따져봐야 할 일이다. 그리고 진영을 가리지 않고 같은 기준으로 살펴봐야 한다는 점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래도 이 글이 말하고 싶은 건 분명하다. 사기가 통계에 많이 잡히는 이유는 제도에서 찾을 수 있지만, 사기가 실제로 사람들에게 통하는 이유는 화법의 구조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 그리고 그 화법을 가려내는 가장 좋은 도구는 결국 실사구시, 사실을 따져 묻는 태도라는 것이다.
참고문헌
국민일보. (2022). 「종교인 지능·폭력범죄 가장 많았다」.
더팩트. (2023). 「[팩트체크] 전세피해·주가조작 몸살…한국은 OECD 사기 범죄율 1위?」.
나무위키. 「사기 공화국」 문서.
한국경찰연구. 「한국종교범죄의 분석: 범죄현황과 심리」.
한국경제. (2024). 「20代 사기범죄율 1위,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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