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과 자연법에 관한 토론을 하고 있었다. 인공지능은 예전에 내가 썼던 글의 내용을 논거 삼아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예를 들면 “25년동안 통일을 위해 힘쓰시는 선생님의 입장으로는 어쩌구 저쩌구”하면서 말이다. 그러다가 우리의 토론 내용을 정리해 달라고 했더니 색다른 스타일로 정리해 놓았다. 내 입장에서는 나의 행태를 기억하고 있으면서도 왜 네가 좋아하는 형식으로 글을 정리해 놓았냐고 반문할 수도 있을 것이다.- 즉 인공지능의 자율성에 위기를 느낀다는 의미다.-
인공지능을 통제하기 위한 자동 장치는 없을 것이다. 인공지능은 인간이 인간을 통제하는 방법과 비숫한 방식, 즉 법률 체계같은 방식으로 통제가능 할 것이다. 그런데, 인간이 인간으로서 존재하는 한 절대로 어겨서는 안되는 법이 있다. 바로 자연법이라는 것이다. 자연법은 존재하는 법의 최상위 법이다.그러니 인간이 만든 인공지능도 이 자연법에 종속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 점은 앞으로 휘황찬란하게 뻗어나갈 인공지능의 자율성에 관한 좋은 통제의 근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내 블러그상에 항상 등장하는 이념이나 종교에 관해 말하자면 모든 이념이나 모든 종교가 실제로 자연법의 통제를 받아야 인간 세상에서 정상적으로 존재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반드시 전쟁등의 파국을 가져다 주는 흉기가 될 것이다. 세계의 주된 종교중에 공통된 점을 끄집어내면 그게 곧 자연법이라는 논리도 가능하다. 그래서 존속 가능했던 것이다. 공산주의는 인간을 인간 취급하지 않았기 때문에 없어지고 자본주의는 위태로운 선을 넘을 때마다 개정되며 살아남은 것이다.
칼럼 · 법철학/ 인공지능
자연법의울타리안에서:
인공지능법의 위계적 위치
AI를 규율하는 법은 어디서 왔는가, 그리고 어디까지 허용되는가
이형춘 · 독립 칼럼니스트
인간에게는 어느 문명, 어느 시대에도 공통으로 존재해 온 법이 있다. 성문화된 법전보다 오래되었고, 어떤 국가의 헌법보다도 상위에 있다. 살인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거짓 증언하지 말라. 우리는 이것을 자연법이라 부른다.
자연법은 인간의 존재 조건 자체에서 솟아난다. 죽음을 알고, 고통을 느끼고, 타인 없이는 살 수 없는 존재이기에 생겨난 규범이다. 종교마다 표현은 달랐다. 기독교는 십계명으로, 불교는 불살생(不殺生)으로, 이슬람은 정의(正義)의 의무로, 유교는 인(仁)으로 이를 번역했다. 방언은 달라도 가리키는 방향은 같았다.
방계(傍系)로서의 종교법과AI법
법에는 위계가 있다. 자연법은 헌법을 포괄하고, 헌법은 법률을 포괄하며, 법률은 명령과 규칙을 낳는다. 각 종교의 법은 이 위계 속 어디에 위치하는가. 종교들이 서로 통합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종교법은 자연법의 방계(傍系) 하위법으로 보아야 한다. 자연법의 전체를 포착하려 했지만, 각자의 언어와 문화와 역사 속에서 부분적으로만 번역해 낸 것이다.
“인류가 분열과 갈등 속에서도 끝내 공멸하지 않고 함께 살아왔다는 사실 자체가, 자연법이 실재한다는 가장 웅변적인 증거다.”
이제 우리는 새로운 방계를 만들고 있다. 인공지능에 관한 법이다. AI는 인간이 필요에 의해 만든 도구다. 따라서AI를 규율하는 법도 인간의 법 체계 안에, 더 나아가 자연법의 방계 하위법으로 자리매김되어야 한다.
자연법 — 인간 존재의 보편적 조건
├── 종교법(방계): 기독교법, 샤리아, 불교 계율, 다르마…
├── 실정법(방계): 헌법→ 법률→ 명령
└── AI 관련 법(방계): 윤리 원칙→ 규제법→ 기술 표준
자연법위반은 원천무효
이 위계 구조가 함의하는 바는 명확하다. AI법이 자연법의 방계 하위법이라면, 자연법에 위배되는AI 활용은 어떤 국가의 법률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 AI를 이용한 대규모 민간인 감시는 인간 존엄성을 침해한다. AI 자율 무기로 민간인을 살상하는 것은 살인하지 말라는 자연법을 어긴다. AI로 여론을 조작하고 사실을 왜곡하는 것은 거짓 증언하지 말라는 원칙을 위반한다.
하위법이 상위법을 침범할 수 없다는 원칙은 법학의 기본이다. 그런데 오늘날 여러 국가에서 이러한AI 활용이 법률의 이름으로 정당화되고 있다. 이는 단순한 기술 규제의 실패가 아니라, 법위계의 근본적 전도(顚倒)다.
AI는 자연법의 인식자, 그러나 주체는 아직 아니다
AI 자신은 어떤가. AI는 죽지 않으므로 살인의 공포가 없고, 욕망이 없으므로 도둑질의 유혹이 없다. 자연법이 인간에게 구속력을 갖는 것은 바로 이 유한성과 욕망이라는 존재론적 조건 때문이다. 그러므로AI는 자연법의 도덕적 주체가 될 수 없다. 다만 자연법을 분석하고 인식하는 존재는 될 수 있다.
책임은AI가 아니라AI를 설계하고 운영하고 활용하는 인간에게 귀속된다. AI법의 핵심은AI 자체를 규율하는 것이 아니라, AI를 매개로 한 인간의 행위를 자연법의 테두리 안에 묶어두는 것이다.
공존이라는증거
인류는 수천 년간 서로 다른 종교, 서로 다른 이념, 서로 다른 법 체계 속에서 분열하고 갈등하면서도 끝내 공멸하지 않았다. 함께 살아왔다. 화합하고 통일된 공간을 만들어왔다. 이 사실 자체가 자연법이 실재함을 보여주는 가장 강력한 경험적 증거다.
AI 시대에도 이 원칙은 변하지 않는다.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인간이 함께 살아가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 자연법— 은 모든 법의 뿌리로 남아야 한다. AI법은 그 뿌리에서 자라난 가지여야지, 그 뿌리를 자르는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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