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전 주말에 버스를 운전하며 서울의 월곡 램프 근처를 지나고 있었다. 고급 스포츠카 부터 오래 된 경차까지 그리고 노선 버스까지 모두 발이 묶여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일자리가 없어서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 온 나는, 국토 설계를 이 지경으로 한 정치인과 관료들을 원망했다. 이미 서울은 그 운명이 다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얼마 전 출산률에 관한 글과 함께 지방에 공급 측면의 일자리를 만들어 수요 측면의 중심지 이론을 무너뜨리고 교통망을 확충하여 좁은 전 국토를 차라리 수도권화 해 버리자는 칼럼을 썼다.
그런데 모든 문제의 배경에는 시민과 정책 입안자들이 얽혀 있는 정치적인 문제가 있다. 이번 지방 선거에서 놀라운 점은, 망가지는 거대 도시인 서울이나 부산에서 뜻밖에 극우 성향에 가까운 정치적인 표현들이 있었다는 점이다. 정치의 흐름은 현실을 개선하려는 방향으로 가지 않고, 소수의 이익을 위해 전체의 발전이 저항 받는 방향으로 흐르고 있는 현상이 나타난다.
나는 단순한 버스 기사가 아니다. 북한 경제에 관여하기 위해 장기간 지리학이나 부동산학을 공부하며 수험생들에게 강의도 해 왔다. 그래서 전체적이고 장기적인 관점을 가질려고 노력해 왔다. 그런데 오랫동안 출산률이 증대하지도 않고, 젊은이들까지 보수 성향을 보이는 것 같아서 한국의 미래에 문제가 있어 보인다. 내가 어느 편을 지지하느냐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든 한국의 미래를 발전의 방향으로 유도해야 한다는 문제이다.
인공지능이 트럼프나 이준석 같은 정치인의 예를 실명으로 내 놓기에 못 이기는 척 하고 칭찬해 줬다. "내가 개선책을 내 놓을 수 있어야지, 항상 불평만 말하는 징징이가 될 수 없잖아"라고 인공지능에게 말했더니 징징이라는 단어를 넣어서 정리를 해 준다. 아니 이 인간(?)이 남사스럽게......
설계의 실패
— 저출산, 수도권 집중, 그리고 불안이 만든 정치 —
이형춘
1. 징징이가 되지 않으려면: 진단과 처방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2023년 역대 최저인 0.72명을 기록했다. 2024년과 2025년 소폭 반등했지만, 이는 1990년대 초중반에 태어난 에코붐 세대가 주출산 연령에 진입한 인구통계학적 착시와 코로나로 미뤄졌던 결혼이 한꺼번에 몰린 이연 효과가 겹친 결과일 뿐이다. 한국은 여전히 OECD 38개 회원국 중 단독 최하위다.
문제를 진단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진단에서 멈추면 그것은 불평이 된다. 이 글은 저출산이라는 현상의 구조적 원인을 추적하고, 실현 가능한 처방을 제시하고자 한다. 이념의 언어가 아니라 이해관계의 언어로.
2. 일하는 사람을 천대하는 사회
수십 년을 비정규직과 저층 근로자로 살아온 사람들은 안다. 결혼은 사랑의 문제가 아니라 경제적 여유의 문제라는 것을.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결혼을 감당할 수 없는 구조, 이것이 저출산의 출발점이다.
한국의 노동시장은 극단적인 이중구조로 고착되어 있다. 대기업·공기업 정규직과 중소기업·비정규직 사이에는 임금, 복지, 사회적 지위 모든 면에서 건너뛸 수 없는 절벽이 존재한다. 그 중간이 없다. 젊은 세대에게 '좋은 직장 아니면 차라리 실업자'는 합리적 선택이 됐다.
출산은 본질적으로 미래에 대한 투자이자 사회에 대한 신뢰 행위다.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소모품 취급을 받는 사회에서 그 신뢰는 무너진다. 그리고 신뢰가 무너진 자리에 아이는 태어나지 않는다.
3. 수도권 집중: 중심지 이론의 함정
2023년 기준, 한국 GDP의 52.4%와 전체 일자리의 58.4%가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다. 상위 100대 기업의 80%가 수도권에 본사를 두고 있으며, 청년 인구 1만 명당 채용공고 수는 수도권 282건 대 비수도권 114건으로 두 배 이상 차이가 난다.
여기서 흔히 제시되는 해법이 교통망 확충이다. 청주나 춘천에서 서울까지의 이동시간을 줄이면 지방도 살아날 것이라는 논리다. 그러나 이것은 중심지 이론(Central Place Theory)이 예측하는 결과를 무시한 처방이다.
교통이 발달할수록 상위 중심지는 하위 중심지의 수요를 더 강하게 빨아들인다. KTX 개통 이후 지방 상권이 죽고 서울 상권만 더 커진 것이 그 증거다.
진짜 해법은 수요 측(교통 편의)이 아니라 공급 측에 있다. 일자리 자체를 지방으로 옮기는 것이다. 기업과 공장이 지방으로 이전하면, 서울 사람이 지방으로 출퇴근하는 역류 현상이 발생한다. 공급이 수요를 창출하는 세이의 법칙이 여기서 작동한다.
4. 전국의 수도권화: 공급 측 처방
한국의 국토는 좁다. 종단 거리 약 500킬로미터, 일본 도쿄-오사카 구간과 비슷하다. 이론적으로 전국 어디서든 서울까지 1시간대 접근이 가능한 나라다. 문제는 그 접근성이 의미 있으려면 지방에 일자리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교통망 확충과 기업 지방 이전을 패키지로 밀어붙여야 한다. 교통만 앞서면 베드타운화되고, 기업만 이전하면 인프라 없이 고립된다. 두 가지가 동시에 움직일 때 비로소 '전국의 수도권화'가 실현된다.
단기 처방
비정규직 비율이 일정 수준을 초과하는 기업에 사회보험료 할증 부과 — 비정규직 남용에 실질적 비용을 부과
출산·육아 불이익을 준 기업에 대한 실명 공개 및 공공 입찰 제한
중기 처방
수도권 사옥·공장 신증축 총량 규제 및 수도권 입지세 부과 — 당근이 아니라 채찍
공공기관·대기업 지방 이전 시 법인세 감면, 토지 무상 제공, 규제 완화 특구 지정
지방대 졸업자 대기업·공기업 채용 쿼터 — 학벌 집중과 지역 집중을 동시에 완화
장기 처방
독일 마이스터 제도를 참조한 기술직·현장직의 사회적 지위 공식화 — 손으로 일하는 것이 패배가 아닌 문화
자산소득 과세 강화와 노동소득세 완화 — 일하는 것이 손해인 구조의 근본적 교정
5. 불안이 만드는 정치: 히틀러, 트럼프, 이준석
개혁에는 반드시 정치적 장벽이 등장한다. 수도권 기득권층의 이해관계가 걸린 변화를 도덕과 양심으로 설득하려는 시도는 역사적으로 거의 성공하지 못했다. 사람은 자신의 이해관계가 바뀔 때 움직인다.
그런데 더 복잡한 문제가 있다. 변화로 가장 많은 이득을 볼 청년들이 오히려 변화를 막는 세력을 지지하고 있다는 역설이다. 2025년 대선에서 20대 남성의 74.1%가 보수 진영 후보를 지지했다.
이것은 한국만의 현상이 아니다. 미국에서는 러스트벨트의 백인 노동자들이 트럼프를 선택했다. 바이마르 공화국의 청년들은 히틀러를 지지했다. 공통점은 하나다 — 구조적 절망과 불안이 축적될 때, 사람들은 논리가 아니라 강한 권위에 매달린다. 분노의 방향을 잘못 지시하는 대중 정치의 언어가 그 빈틈을 파고든다.
그 정치인들이 나빠서 사람들이 따른 것이 아니다. 사람들이 불안했기 때문에 그 정치인들이 탄생했다. 문제는 인물이 아니라 그 인물을 만들어낸 구조다.
한국 청년 보수화의 실체를 더 정밀하게 보면, 이것은 보수 이념에 대한 지지가 아니라 자신들을 외면해온 기존 진보에 대한 지지 철회에 가깝다. 그리고 연구에 따르면 극우 청년은 '서울 거주, 경제적 상층'일 확률이 높다 — 즉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는 상층부의 방어 본능이 작동하는 것이다.
6. 이해관계의 언어로 설득하라
그렇다면 수도권 기득권층을, 보수 정치인을, 불안한 청년을 어떻게 설득할 것인가. 답은 이해관계의 재편에 있다.
수도권 기득권층에게
수도권 집중이 계속되면 강남 부자 자녀들은 모르겠지만, 강북 중산층 자녀들은 이미 서울에서 밀려나고 있다. 집값이 오를수록 자기 자녀 세대도 피해자가 된다. 지방 분산은 '내 것을 빼앗기는 것'이 아니라 '자녀의 미래를 여는 것'이다.
보수 정치인에게
수도권 집중은 자연스러운 시장의 결과가 아니다. 수십 년간의 정책 편향이 만들어낸 인공적 왜곡이다. 진짜 시장주의자라면 이 왜곡을 교정해야 한다. 지방 분산은 좌파 정책이 아니라 시장 실패의 교정이다.
불안한 청년에게
당신의 분노는 정당하다. 그러나 분노의 방향이 잘못됐다. 당신을 힘들게 만든 것은 페미니스트도, 이민자도 아니다. 비정규직을 양산하고 수도권에 일자리를 묶어둔 구조다. 그 구조를 바꾸는 쪽에 서는 것이 당신의 이해관계에 맞다.
결론: 설계의 실패는 설계로 고친다
저출산은 개인의 선택 문제가 아니다. 근로자 천대, 노동 이중구조, 수도권 집중이 맞물려 만들어낸 구조적 설계의 실패다. 그리고 그 절망 위에서 불안의 정치가 자란다.
설계의 실패는 도덕 호소로 고칠 수 없다. 이해관계의 재편으로 고쳐야 한다. 공급 측 기업 분산, 노동 이중구조 해소, 전국의 수도권화 — 이 처방들이 동시에 작동할 때, 비로소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사회가 된다.
아이를 낳는다는 것은 미래를 믿는다는 뜻이다. 지금 한국의 젊은이들은 미래를 믿지 않는다. 그 신뢰를 되돌리는 것, 그것이 저출산 문제의 본질이고 이 나라가 풀어야 할 가장 오래된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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