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영국이 브랙시트 결정을 할때 나는 의아했다. 나는 통합은 분업의 극치고 흐름과 소통이라고 생각했다. 한반도 통일과 관련해서 그런 문제에 무척 민감해서 칼럼도 간략하게 썼다. 그리고 한국의 제조업과 같은 실물 경제의 천시와 금융업과 같은 금융 경제의 비대가 가져올 미래의 비극에 대해서도 칼럼을 썼고, 요즘엔 국토의 불균형 발전을 개선하기 위한 칼럼을 쓴다. 이 모든 것은 영국과 한국의 통합적으로 고민해야 할 문제였다. 영국의 문제를 한국의 미천한 일개 시민이 고민하는 세상에 영국은 분열의 문제점을 한 아름 안고 가고 있었다.
나는 캠브리지 대학 장하준 교수의 경제학 저서나 크루그먼 교수의 경제학 저서를 챙겨 읽는다. 진보적인 관점으로 읽는 것이 아니라 통합적인 관점으로 읽는다. 그러나 국가 정책은 학리적인 탐구가 참고만 되는 것이지 현실은 시민과 정치인의 행동에 의해 움직인다. 그래서 지금 영국의 힘든 날이 있다. 혹자는 대처 수상의 신자유주의 정책이 있기 이전에 영국인들의 파업과 과잉 복지를 이야기 하고 있다. 그런 것들이 대처리즘의 탄생 배경이 된 것은 맞지만 대처 수상은 해결책을 국민 통합의 방향으로 몰고 간 것이 아닌 국민 분열의 방향으로 몰고 간 책임이 있다.
요즘 들어 전 세계적으로 극우주의 성향이 나타난다. 통합이 멈추고 분열이 시작되는 현상이다. 세계적인 분업이 멈추고 흐름이 깨진다. 그리고 퇴보한다. 영국이 먼저 시험대에 섰다.
버려진 땅의 복수
— 국토의 불균형이 어떻게 세계를 부수는가 —
이형춘 | 칼럼니스트
1. 나는 합치려 했는데, 그들은 왜 부쉈나
나는 오랫동안 분열된 것들을 잇기 위해 살아왔다. 한반도의 단절된 두 세계를 연결하려는 노력, 이질적인 사람들 사이에서 다리를 놓으려는 시도가 내 삶의 방향이었다. 그런데 2016년, 영국이 국민투표로 유럽연합(EU)을 탈퇴하는 장면을 보며 나는 깊은 의아함에 빠졌다.
합쳐지기도 이렇게 어려운 세상에서, 이미 합쳐진 것을 굳이 부수는 이유가 무엇인가. 수십 년간 쌓아온 분업망과 협력의 구조를 스스로 해체하는 이 역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오랜 고민 끝에 나는 답을 찾았다. 브렉시트는 유럽에 대한 심판이 아니었다. 그것은 런던에 대한 심판이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수십 년간 자국 내 특정 지역만을 키우고 나머지를 방치한 국토 불균형 전략에 대한 역사의 청구서였다.
2. 대처가 먼저 영국을 쪼갰다
1980년대 마거릿 대처의 신자유주의 혁명은 영국 경제를 근본부터 재편했다. 런던의 금융 빅뱅(1986년 금융규제 완화)은 시티(City of London)를 세계 금융의 중심으로 끌어올렸다. 자본은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그러나 그 성장의 과실은 M25 고속도로 안쪽, 즉 런던 권역에만 머물렀다. 같은 시기 북부 잉글랜드에서는 정반대의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탄광이 문을 닫았고, 철강 공장이 사라졌으며, 조선소가 해체됐다.
1984년의 탄광 파업 진압은 단순한 노동쟁의가 아니었다. 그것은 한 지역 문명의 장례식이었다. 탄광 하나가 문을 닫으면 그 주변의 철물점, 식당, 의원, 학교가 함께 무너진다. 맨체스터, 미들즈브러, 선덜랜드, 웨일스 — 이 지역들은 국가의 지도에서 천천히 지워졌다. 그리고 아무것도 그 자리를 채우지 않았다.
2016년 브렉시트 투표 결과는 그 30년의 기억을 그대로 보여줬다. 런던은 잔류 60%, 북부 공업지역과 웨일스는 탈퇴 60~70%. 이것은 하나의 나라가 아니라 두 개의 영국이 투표한 결과였다.
"브렉시트에 투표한 사람들을 가난하게 만든 것은 EU가 아니었다.병은 국내 불평등이었다. 그러나 분노는 정확한 원인을 찾지 않는다. 가장 가까운 표적을 향한다."
3. 같은 병, 다른 나라들
이 구조는 영국만의 것이 아니다. 20세기 후반 이후 주요 민주주의 국가들이 택한 성장 집중 전략은 도처에서 같은 분노를 낳고 있다.
미국의 러스트벨트를 보라. 디트로이트, 피츠버그, 클리블랜드 — 한때 세계의 공장이었던 이 도시들은 제조업이 사라진 자리에 오피오이드 중독과 실업만 남았다. 2016년 도널드 트럼프는 그 분노를 중국과 이민자를 향해 돌렸다. 표적은 틀렸지만 분노는 진짜였다. 러스트벨트 노동자들을 가난하게 만든 것은 워싱턴의 방치와 월스트리트의 탐욕이었지, 국경 너머의 이민자가 아니었다.
프랑스의 마린 르펜 현상도 같은 뿌리를 가진다. 파리의 그랑제콜 엘리트들이 유럽통합을 설계하는 동안, 노르망디의 소도시와 로렌의 공장 지대는 조용히 몰락했다. 노란 조끼(Gilets Jaunes) 운동은 유류세 인상에서 촉발됐지만, 그 본질은 파리 중심의 프랑스가 지방을 얼마나 오래 외면해 왔는가에 대한 폭발이었다.
세 나라 모두에서 패턴은 동일하다. 수도와 몇몇 대도시에 자원과 기회가 집중되고, 나머지 땅은 서서히 버려진다. 버려진 사람들의 분노는 언젠가 반드시 폭발한다. 그 폭발의 방향이 브렉시트이고, 트럼프이고, 르펜이다.
4. 한국에 보내는 경고
나는 한국을 바라보며 불안을 느낀다.
대한민국 인구의 절반 이상이 서울과 수도권에 몰려 있다. 지방 소멸은 더 이상 학자들의 용어가 아니라 현실이다. 전남의 군소 읍면에서는 초등학교가 문을 닫고, 젊은이들은 수도권으로 빠져나가며, 노인들만 남은 마을이 늘어나고 있다. 이것은 자연스러운 도시화가 아니다. 의도적 설계의 결과다.
지난 수십 년간 한국의 경제 전략은 수도권과 대기업 중심이었다. 삼성과 현대가 있는 곳, 행정부와 대학이 있는 곳에 모든 것이 집중됐다. 지방은 성장의 수혜자가 아니라 성장의 부품 공급지였다. 값싼 노동력과 세금을 수도권으로 보내고, 그 대가로 받은 것은 공동화(空洞化)였다.
영국 북부의 어제가 한국 지방의 오늘이다. 그리고 우리가 경로를 바꾸지 않는다면, 브렉시트식 분노는 한국에서도 다른 이름으로 폭발할 것이다.
5. 내부 분업망이 무너지면 외부 분업망도 지킬 수 없다
여기서 경제학적 통찰이 하나 필요하다. 브렉시트는 결국 유럽의 분업망을 파괴했다. 수십 년간 쌓아온 공급망과 협력 구조가 하룻밤 사이에 국경이라는 장벽 앞에 무너졌다. 그 비용은 지금도 영국이 치르고 있다.
그런데 그 파괴의 씨앗은 어디서 왔는가. 대처가 영국 내부의 분업망을 먼저 파괴한 데서 왔다. 런던과 북부 사이의 내부 분업 — 금융은 런던에서, 제조는 북부에서 — 이 한쪽의 해체로 균형을 잃었을 때, 그 불균형이 30년 후 외부 분업망 해체로 이어진 것이다.
이것이 국토 불균형 전략의 가장 치명적인 결과다. 안에서 분열된 나라는 밖에서도 분열을 선택한다. 내부 통합 없이 외부 통합은 유지될 수 없다.
6. 한반도 통일이 놓쳐선 안 되는 교훈
나는 한반도의 통합을 평생의 과제로 삼아왔다. 그 일을 하면서 늘 절감하는 것은, 분열된 것을 잇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오랜 시간을 요구하는가 하는 점이다.
브렉시트를 보며 나는 역으로 배웠다. 이미 이어진 것을 끊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가. 그리고 — 더 중요하게는 — 통합 이후의 설계가 얼마나 중요한가.
만약 한반도가 통일된다면, 우리는 새로운 국토 설계의 기회를 갖게 된다. 그 기회에서 우리가 다시 한쪽만을 키우고 다른 쪽을 버린다면, 우리는 브렉시트의 비극을 한반도 규모로 반복하게 될 것이다.
통일은 경계를 여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모든 땅이 중심이 되는 설계, 버려지는 지역이 없는 균형 — 그것이 지속 가능한 통합의 조건이다. 브렉시트는 그 반면교사를 세계 앞에 보여준 비싼 수업이었다.
버려진 땅은 반드시 말한다. 표를 통해서, 거리를 통해서, 때로는 역사를 뒤흔드는 투표 결과를 통해서. 그 말을 듣기 전에 행동하는 것이 정치의 책임이고 국가의 의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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