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교사들의 성추행문제로 시끄럽다. 실제로 유명인들의 성범죄가 무탈하게 넘어가는 일이 있듯이 강력하게 대응해야 할 문제로 여기지 않았던 한국사회의 나쁜 습관중 하나로서 놀라운 일은 아닌듯 하다. 하지만 학생들을 훈육해야하는 스승의 위치에 있는 사람의 책임감을 생각하면 그 파장은 피해자에게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병든 사회를 경고하는 중대한 일일 수도 있는듯 하다.
오래전 연세 있으신 분들과 일을 할 때 노욕(老慾)으로 어지럽혀진 정신때문에 무척 고생한 적이 있었다. 사납고, 우울하고, 그게 아니면 하루종일 음담패설을 입에 달고 사는 노인들이 있었는데, 이해를 못하는 건 아니지만 노인이라는 위치가 가져다 주는 권위때문에 동조되거나 모방할 수 있는(배우는) 사태가 벌어질까봐 노심초사한 적이 있었다. 가랑비에 옷 젖듯이 환경이 가져다 주는 영향은 나도 모르게 나에게 젖어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생각해보면 가르침의 위치에 있는 성직자나 노인분들을 매우 싫어하는 마음이 있는 듯 한데, 역설적으로 사회초년생시절에 그것도 가장 힘들고 어려운 시절에 좋은 성직자분과 좋은 노인분을 만난 것이 기준이 되어버린 탓도 있는 것 같다. 수면 시간도 갖지 못하고 환자를 돌보던 의사였던 외국인 성직자분을 뵌 적이 있었고,, 당신이 노인이면서 노인을 보살피고,젊은이를 존중하며, 끊임없이 일하고 공부하며 활력있게 사시던 노인분도 만났는데, 내 자신이 모방과 동조의 힘으로 지병(遲病)을 치유하기도 했던것 같다.
까마득히 잊고 살다가도 권력을 행사하는 아니면 권력의 배후에서 탐욕을 부리는 성직자를 보거나 노욕에 찌든 노인을 볼때면 첫사랑(?)이 생각나는 것은 당연한듯 싶다.
미국의 사회심리학자인 솔로몬 애쉬(Solomon Asch 1907 - 1996)와 스탠리 밀그램(Stanley Milgram 1933 - 1984)은 동조와 복종에 관한 연구로 유명하다. 솔로몬 애쉬는 실험을 통해서 다른 사람들이 모두 일부러 틀린 답을 하면 옳은 판단을 하는 사람도 함께 틀린 답을 내 놓는다는 결과를 얻었으며, 스탠리 밀그램은 실험을 통하여 명령을 하는 사람이 권위있는 인물이었다면 그 명령이 비규범적이더라도 복종한다는 결과를 얻었다. 그 이유는 자신에게 책임과 소재가 없다는 이유인 것을 찾아냈다.
요즘은 어른이 없다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심지어는 시대가 변할 수록 나이 먹은 사람들이 점점 뻔뻔스러워진다는 이야기도 많이 한다. 종교인의 유일한 사회공헌방식인 도덕성이 없는 종교인도 늘어가는듯 하다. 물론 사회지도층이라는 말이 무색해진것도 오래 되었다. 그래도 한 편으로 사회가 평형을 유지하며 존재하는 이유는 본받을만한 분들이 있기 때문인듯 하다. 아직도 청년처럼 방황하는 내 자신에게 누가 스승이 되고 있는가 생각을 해보면 열심히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하면서 사회 공리(共利)를 위해서 헌신하는 분들인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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