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적인 삶이란 습관의 지배를 받지 않는 삶을 말하는듯 하다. 일정한 생활패턴이 반복되면 몸과 마음이 퇴보하는 것을 느낀다. 아마도 사람들의 끊임없는 상승욕구(발전욕구)는 습관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인듯 하다. 그런데 대부분의 노인분들은 상승욕구에 대한 기대를 접는다. 삶의 유한성(有恨性)을 깨달은 탓인듯 하다. 오래살고 싶으면서도 죽음을 적극적으로 준비한다. 건강한 자극을 수용하지 않을려고 한다. 자극과 노력은 '수고'로 착각을 한다. 부작위(不作爲)의 삶을 이상향으로 꿈꾼다. 아마도 과거 젊은 날의 노력들을 보람보다는 수고로 생각하고 살아온 탓인지도 모른다. 오늘 일터로 끌려가서 하루 종일 노동을 해야 하는 의무감은 먼 훗날 편히 쉬고자 여생을 부작위로 뭉개버리는 노인을 탄생시킬 것 같다.
젊은이는 현재의 삶이 고통스러워도 언젠가는 개선될 시간적인 여유를 생각한다. 하지만 노인은 이제는 현재의 기쁨을 미래에 맡겨놓을 시간여유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손해보는 일을 참을 수 없고, 때로는 방탕과 이기심에 빠지기도 한다. 아주 가끔 만나는 어떤 노인분들은 도전하는 삶을 즐긴다. 그래서 하루 하루가 소중하다. 당신과 이웃을 존중한다. 당신의 시간을 아낄 수 밖에 없는듯 하다. 하지만 현재의 상태가 과거의 삶을 뚜렷하게 알려주는 타성속에서 사는 노인분들은 당신들이나 이웃에게 많은 고민을 안겨준다.
권위적인 아버지 밑에서 자란 여성이 권위적인 짝을 선택거나, 알콜중독 가정에서 자란 아이가 어느 정도 술을 즐기는 연인을 찾는 경우가 있다. 심지어는 불만족스럽고 성공과 거리가 멀더라도 우리는 익숙한 것에 집착한다. 바로 익숙하기 때문이다. 특정한 스타일을 배운 예술가들은 그 스타일이 퇴조하고 다른 스타일이 그 자리를 차지했음에도 애초에 배운 스타일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새로운 스타일을 선택하면 성공에 더욱 가까이 갈 수 있지만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 중략 - 이렇듯 우리는 모두 습관의 존재다.
- 제임스 크록(미국의 예술가) -
이런 습관의 부작용은 작게는 개인으로부터 크게는 사회나 국가에까지 널리 물들어 있다. 더구나 수직적인 사회구조에 익숙한 동북아시아의 국가들에게는 '늙은 습관'을 교정할만한 자극이 전혀 주어지지 않는다. 동북아시아의 국가들이 보수적이거나 퇴행적인 길을 갈 수밖에 없는 이유중 하나는 늙은 습관들에 대해서 교정과 비판의 길이 닫혀 있는것이 문제인듯 하다. 게다가 동북아시아 국가들의 젊은 인생은 끊임없는 희생과 수고를 강요당한다. 젊은 날을 눈물로 보냈는데, 늙어서 여유롭지 못하면 대단히 손해보는 일이다. 그 여유를 젊은이에게 양보할 수 없다. 젊은 이들도 우리처럼 고생을 해야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젊은이도 일을 즐겁게 해야 하고, 노인도 즐거운 일을 가져야 한다. 기왕이면 그렇다. 삶을 대하는 자세도 물려받을 필요는 없는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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