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시험존치에 관한 법안이 발의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법조계에서 일하는 지인에게 법조문화가 어떻게 변했는지 물어봤다. 오래전 보다는 많이 수평화되었다고 말한다.20대에 최종고교수가 쓴 김홍섭판사의 평전을 읽고서 감동받아 법조인이 되고자 하는 꿈을 가진적이 있었다. 당시 공부하는 사람의 입장으로 본 법조문화는 대단히 '야망'스러웠던 생각이 난다. 사명감보다는 권력과 출세에 관점이 집중되어 있던것 같은데, 공부하면서도 내내 뭔가 갑갑했다. 지금 생각해 보니 더 넓은 세상에 대한 그리움 같은것이라고 부드럽게 표현해 보기도 하는데, 사회적 연대감이나 사명감을 가지고 공부하는 지인들을 보기 힘들었고, 내 마음도 김홍섭판사의 마음과는 반대로 달려갔다. 건강등을 비롯해서 여건도 안되고 해서 그만 두었는데, 상당히 오랫동안 공부한걸로 생계를 유지하며 동시에 막노동판같은 대칭세계를 오가며 체력과 정신력을 단련시킬려고 애썼던것 같다. 생각해보면 어떤 분야를 봐도 공유된 가치를 찾아볼 수 없고, 내 집단화된 부분만 보이니 나름 전체적인 관점도 생긴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법조계에서 일하는 분들과 이야기 하다가 자신도 모르게 '우리 법조계에서는'이라는 뿌리깊은 내집단 의식을 표현하는 것을 보며 법원이나 검찰의 '제식구 감싸기'에 대한 비난은 전혀 사실 무근하지 않다는 생각도 들었다.
캐나다의 정치사상가인 테일러(Charles Taylor 1931 ~ )는 시민이란 강력한 연대의 힘으로 뭉친 사람들이며, 애국심이란 공유된 가치를 가지고 있는 통합된 공동체가 개인의 자유를 가장 이상적으로 실현할 수 있다고 이야기 한다. 테일러는 공화국내에서 같은 운명을 지녔다는 공유된 가치를 함께 누리는 시민들은 그 자체로 서로에 대해 헌신하는 마음과 자유를 함께 누리게 된다고 말한다.
한국에서 가끔 문제가 생기는 유명인들의 친일발언에 대해서도 사회적인 연대감과 관련해서 해석을 해봐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일본의 한국지배가 무조건 정당하지 않지는 않다거나 이해할만한 부분이 있다는 발언들은 적어도 기본적으로 침략행위가 잘못되었다는 가장 중요한 문제외에도 발언 자체가 한국사회의 사회적인 연대감을 손상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우려스러운 문제인듯 하다. 그렇다고 해서 내 생각이 전체주의적인 사고는 절대 아니며,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에서 서로에 대해 헌신할 수 있는 연결고리를 끊어 버릴 수 있다는 우려감때문인듯 하다.
남북한간에 원래 분단이 안 되었어도 괜찮은 상황들이 이념이라는 정체성이 애국심이나 민족애라는 정체성을 대신하여 한반도를 어려운 상황에 빠뜨렸는데, 사실 사람이 살아가는 세상에서 연대감과 같은 감정적 가치는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인듯 하다. 그러니까 이념처럼 이런 방식의 제도를 떠나서는 어떤 이상적인 사회도 만들 수 없다는 문제가 아니라는 뜻이다. 테일러는 자신이 혼자 집에서 레코드로 음악을 듣는 것과 콘서트홀에서 많은 청중들과 심정적인 연대감을 가지며 함께 감동을 느끼는 것이 다르다는 표현을 하고 있는데,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에 대한 생각을 해 봐야 한다는 뜻인듯 하다.
한반도는 이곳 저곳에서 연대감을 해치는 생각과 사건들이 끊이지 않는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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