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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1월 17일 토요일

독서와 이상한 팔도강산 / 마빈해리스


객지생활을 하다가 집에오면 좋은 일이 있다. 집안 여기저기 널려있는 천여권이 넘는 책들이 많은 세계를 상상하게 한다. 원래 집에 책이 많았다. 이삿짐 싸기가 부담스러워 수백권씩 없애기를 여러차례했는데 한 곳에 오래 거주하다보면 책이 마구 불어난다. 한 페이지를 보더라도 필요한 책은 구입하는 습관이 있어서 도서관에서 빌린책도 내용이 좋으면 금방 내것을 구입해서 서재에 꽂아놓곤한다.

한 때 출판사에서 일하던 누나가 누군가 추천한 책이라고 가져오곤 했는데,  몇년을 묵히다가 어느 날 책을 열어보고는 그 책이 명저임을 알게 된 일이 한 두 번이 아니다. 그렇게 인연이 맺어진 책들이 마빈해리스의 [문화의 수수께끼], 앙드레 모로아의 [프랑스사], 스코트팩의 [끝나지 않은 길]등인데, [문화의 수수께끼]는 요즘도 영문판으로 간간히 꺼내보고 있고, 대학입시생들의 사회탐구영역의 예문으로서 많이 인용되곤 한다. 대학교입시를 포기하고 있다가 시험장에 갔는데,심심할때 뒤적거리던 리더스다이제스트의 내용이 영어 과목의 예문으로 그대로 나와있어 읽지도 않고 답을 짝던 즐거운 추억도 있다.

책 때문에 벌어진 역사적인 추억이 하나 있다. 20여년전에 여건이 안 좋으니 몸과 마음을 단련시키겠다고 무술서적 100여권과 지능개발 서적 100여권을 줄기차게 읽고 이렇게 저렇게 실험도 해봤다. 특히 무술서적중에는 반복하면 될 일을 신비하고 직관적인 서술을 해놓은 것이 있어 냉소를 짓게 만드는 책도 있었고, 영국의 교육학자인 토니 부잔(Tony Buzan)이 지은 [THE MIND MAP BOOK]시리즈는 실제로 우뇌영역을 개발시키는데 도움을 준 것도 같다. 책의 내용에 꿈을 잡는 법이 있었는데, 계속 꿈을 인지하고 기억하며 집중해가면 스타워즈의 주인공처럼 예지몽이 생긴다고 했다. 잘은 모르지만 민감해지긴 하는것 같다. 잠시 그런 일을 겪고나서, 아니 그런 책을 읽고나서 몸과 마음을 관리하니 좀 변화가 외부에 드러나긴 했나보다.  당시 주위에 교주가 되고 싶어하는 무술인이나 신비주의 교단의 정신 나간 성직자등이 접근을 해와 짐짓 모른척 하고 교류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일하기는 싫고 남 위에 군림하고는 싶으니 별 짓을 다한다고 질타해서 충격을 주곤 했다. 

한 번은 그런 사람들 사이에 추앙받는 교주가 되면 어떨까 하는 이상한 생각도 안해본 것이 아닌데, 좀비들의 우두머리가 되는 것은 그렇게 유쾌한 일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리고 말 조차도 안꺼냈다.

백두칭송위원회라는 단체가 김정은 위원장의 한국방문을 한없이 기다린다는 소식을 듣고 옛날 나 어릴때 있었던 일이 생각났다. 국민이 책을 안읽어서 이 지경이 됐으니 이 일을 어찌 할것이며 김정은 위원장은 이 덫에서 어떻게 빠져나갈지를 고민할 것이 생각났다. 그래서 통일이나 북한의 개혁이 급속히 이루어져서는 안된다는 말을 하고 있었던거다. 독서를 하지 않는 국민은 변화를 능동적으로 끌어내지 못하고 일단 구세주부터 기다린다.


The Book of Daniel - written about 165 B.C, when Palestine was ruled by Syrian Greeks - also speaks of militarymessinic redemption by an anointed one, the Prince, leading to a great Jewish empire : "I saw in the night visions, and behold the Son of Man came with the clouds of heaven...... and there was given him dominion, and glory, and a kingdom, that all the peoples, nations and languages shall serve him ...... an everlasting dominion ......[a] kimgdom that shall not be destroyed."

What most people fail to realize about these vengeful prophecies is that they were made in conjunction with actual wars of liberation waged under the leadership of real-life military messiahs. These wars enjoyed popular support because they not only aimed at restoring the independence of the Jewish state, but also promised to eliminate economic and social inequities that foreign rule had exacerbated beyond endurance.

Like cargo, the cult of the vengeful messiah was born and continually re-created out of a struggle to overturn an exploitative system of political and economic colonialism. Only in the case, the natives - the Jews - war militarily more of march for the conquerors, and they were led by literate soldier-prophets, who remembered a far-off time when the "ancestors" had contrplled an empire of their own.

다니엘 서 ----시리아계 그리이스인들이 팔레스타인을 지배하던 B.C.165년경에 기록된 성서 ----도 대 유태왕국을 다스릴 기름부음 받는 자, 즉 왕자가 나타나 전투적 , 메시아니즘적 구원을 하리라고 예언했다. "나는 밤에 환상을 보았다. 인자(人子)가 구름과 함께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을 보았다......그에게 주권과 영광과 왕국이 주어졌다. 모든 백성들과 모든 국가들과 모든 언어들이 그에게 엎드린다......영원한 주권......멸망받지 않을 왕국......"

이 원한에 찬 예언들 속에 깃들은 것들 중에서 대부분 사람들이 깨닫지 못한 점은, 실재했던 역사적인 해방전쟁들과의 관련 속에서 그 예언들이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그  전쟁들은 민중의 호응을 받고 있었다. 그 까닭은 그 전쟁들이 단지 유태국가의 독립을 얻기 위한 것들만이 아니었고 외국의 지배 상태에서 견뎌낼 수 없으리만큼 악화된 경제, 사회적 불평등을 제거하기로 약속된 전쟁들이었기 때문이었다.

화물숭배와 마찬가지로 복수에 불타는 메시아 숭배는 정치, 경제적 식민주의의 착취적인 체제를 전복시키려는 투쟁 속에서 생겨났고, 끊임없이 재창조되었던 것이었다. 단지 메시아 숭배의 경우에서는 원주민들----유태인들----은 화물숭배자들보다는 전투적인 면에서 정복자들과 호각(互角) 을 이루었다. 그들은 문자 그대로 군인- 예언자(solder-prophet)들의 지휘를 받았다. 군인-예언자들은  자기들의 조상들이 자기들의 제국을 다스렸던 그 먼 옛날의 일들을 상기하고 있었다.

 - MARVIN HARRIS의 [THE RIDDLES OF CULTURE] -

우연의 일치지만 바로 직전의 글에서 김정은 위원장의 영리함을 말하고 있었는데, 바로 북한언론에서 남쪽에서 김정은 위원장을 칭송하는 목소리가 드높다고 방송을 해서 아연실색했다. 하지만 이것만은 사실이다. 민중이 무식한 것이 뜻있는 지도자에게는 말 할 수 없이 큰 고민이고, 뜻 없는 지도자에게는 대충 살다 함께 망해가는 말 할 수 없이 좋은 기회일 것이다.  

2018년 11월 3일 토요일

랜드연구소의 남북한 관계 전망


어렸을때 미국대통령이 레이건대통령이었는데, 리더스다이제스트에 레이건대통령에 대한 기사가 나왔다. 대통령의 주변에 새롭게 생겨나거나 포진해있는 연구소 조직이나 참모조직(taskforce team)에 관한 기사였다. 그 당시에는 그게 뭔지는 모르지만 냉전시대에 대통령의 결정을 외롭지 않게 도움을 주는 조직으로만 알고 있었다. 세월이 흘러보니 레이건대통령에게는 피라미드형의 계선조직말고 대통령의 권력행사에 정당성과 힘을 실어줘야했던 조직들의 존재이유가 속속들이 생각났다.


레이건대통령은 냉전시대에 강력한 반공정책으로 소련과 체제경쟁을 해야하는 짐을 지고 있었으며 영국발 복지국가의 문제점을 방지해야하는 강력한 시장경제정책을 시도해야했던 짐도 지고 있었다. 지금은 '신자유주의 정책'이 그 수명을 다해가고 있지만 그 당시에는 획기적인 대안으로서 시도해봐야 하는 이유가 충분했다. 절충의 근거가 없이 반대방향의 길로 가야만 했던 인간사 사이클의 특성상 복지주의와 반대되거나 정부의 시장개입과 반대되는 자유주의 시장경제나 공급중시경제이론이 실천되야 하는 시대적요구는 부정할 수 없었다는 생각이든다.

대통령의 주변에 포진해 있던 연구소조직들은 항상 가치중립적이었을까. 분명히 그렇지는 않았을 것이다. 대통령의 정책에 필요한 자료들을 연역적인 방식으로 연구수집해왔을 것이다. 방향과 지침을 정해놓고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한 연구가 시작되었을 거라는 의미다. 연구소도 주군을 위해 봉사하는 가치형성기능을 한다.


한국정부도 김정은 위원장을 평화로운 협상가라고 완전히 믿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남북한의 통일문제나 경제협력문제에 가장 큰 이해관계가 엮여있는 두 국가의 정상들이 주변국에서 원하는 속도 이상의 관계를 맺어 나가는 것은 피치못할 이유로 생각된다. 랜드연구소는 한국과 북한이 미국이 원하는 이상으로 관계가 진행되는 것을 원치않는듯 하다. 한반도의 민중들에게는 다소 무책임하게 느껴지는 전쟁이야기가 나오고 북한에 김정은 위원장이상으로 개혁을 추구할만한 세력이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랜드연구소의 공신력(public trust)을 구실삼아 미국정부가 원하는 정책을 형성해나가자는 의도가 보인다.


김정은 위원장에 대한 호의적 감정은 전혀 아니고 냉정과 열정사이의 폭을 생각해볼때 비교적 영리하거나 젊은 김정은 위원장의 성향이 한반도 경제협력에 우려할만한 이유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든다. 보수정부 10년동안에 항상 나태하고 지엽적인 대통령들의 성향이 김위원장의 고집을 감당못핳까봐 걱정되었던 점이 있다. 말하자면 김정은 위원장을 경계하면서도 협력해야 할 대통령의 그릇이 필요했던 것 같다. 70년을 호전적인 전시국가로서 존재하는 북한의 지도자를 어떻게 믿을 수 있을까. 다만 믿는 척이라도 해야하는 짐이 지워진 것이 현재 한국 대통령의 입장이었을 것이다. 요약하면 미국과 한국은 북한을 대하는 입장과 태도가 너무 다를 수 있다는 것이다. 

2018년 10월 29일 월요일

By bus / 장하준(1)

앞이 안 보일정도로 짙은 눈이 내리는 날 새벽에 버스를 몰고 신도시의 임대아파트에서 손님을 태웠다. 젊은 기사들이 이상한 사람들이 많다고 꺼리는 노선이었지만  생각할게 있다는 이유로 혼쾌히 노선운행을 수락했다.

버스기사로 일하던 친구가 힘든 근로환경에 지쳐 그만두었고, 여기 저기 아픈데가 많이 생겼다는 소식을 듣고  버스기사일을 해보기로 결정했다. 노선견습을 위해 조수석에 앉아 있었는데, 그날 유난히 차가 울컥거렸다. 나쁜 근로환경에 뚜렷한 증상없이 망가진 근로자의 몸처럼 오래된 대형버스는 뚜렷한 증상없이 울컥거림을 반복했다. 잠시후 손님중 누군가가 기사에게 차가 고장이 있는건지 기사님이 험하게 운전을 하는건지 조심해달라는 부탁을 하였다. 그러자 뒤에서 여기저기 동조하는 볼맨소리가 둘려왔다. 급기야 한 중년의 여자승객이 "기사가 싸가지가 없어!" 하고 외치고 다른 승객들은 군중심리로 감정이 격해지고 있었다. 참다못해 내가 일어났다. 나는 사회현상에 관한 글을 쓰는 작가라고 승객들에게 소개하고 나서, 이 문제는 기사님의 문제가 이닌것 같다라는 말만 했다. 그러자 중년의 남자 승객이 "말씀 잘 하셨소. 이건 우리 B시민들을 무시하는 처사요."하고 해석하기 힘든 말을 하였다. 뚜렷한 증상없이 마음의 병을 얻은 승객들을 보면서 이 지역을 버스로 운행하는 일이 순조롭지 않을 것임을 예상했고, 실제로 별일이 다 있었다. 사회병리현상을 갖가지 경험할 수가 있었다. 요즘도 그 지역은 버스기사 구하기 힘들정도로 버스기사 지원자가 없다고 한다.


그 도시는 서울 근교의 위성도시인데 도시가 불규칙적으로 확장되어가는 현상인 sprawl 형태로 확장이 되어간 도시여서 무질서한 점이 있었다. 하지만 그 도시의 일부인 신시가지는 신도시 건설에 따른 미래형 건물이 들어서서 밤이면 공상과학영화에 나오는 야경을 보여주었다. 마치 공중택시가 초고층빌딩사이를 날아다닐듯 했다. 신시가지를 벗어나면 공장들이 많았고, 개발이 안된 시골마을도 많아 노령인구도 많았다. 119 출동 횟수가 전국 1위라고 한다. 나는 이해가 갔다. 내 차도 크게 들이 받혀서 대형 119차가 세대나 출동하고 밀려들어온 차 앞부분에 끼인 내 몸을 젊은 구조대원이 놀래서 허둥대며 기계로 구조하는 과정에서 "난 괜찮으니 서두르지 마세요."하고 이순신 장군같은 영웅적인 참견을 했던 적이 있다. 사실 그 날 다리 한쪽이 잘라진 줄 알았다.

버스운행을 하는 동안 보상금을 노리고 넘어져서 생떼를 쓰는 노인,  히터가 약해서 몸도 춥고 마음도 춥다며 슬픈 표정을 짓는 일용직 노동자, 차가 늦어 환승이 안되어 귀중한 천원을 낭비했다고 악을 쓰는 할머니, 폐지를 실은 리어카를 길 한가운데로 끌고가며 비켜주지 않아 버스를 지체시키고 기사의 점심을 굶긴 할아버지, 앞 질러갔다고 할아버지뻘의 동료기사에게 차를 세우고 욕을 하는 젊은 트럭기사, 눈 오는 날 스노우 타이어를 교환하지 못해 버스가 5분 늦었는데, 어떤 승객은 출근 시간이 늦는다고 욕을 하였다. 오늘같은 날은 회사에서도 이해를 할테니 침착하게 조금만 참으라고 부탁을 하였는데, 그 승객의 표정은 초조하고 두려워하는 기색을 보였다. 버스기사가 승객의 '을'인것 처럼 저 승객도 회사의 '을'이겠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들의 근로는 여유로운 대접을 받지 못하고들 있었다. 그리고 수평폭력 현상도 보였다.


한편으로는 신도시개발을 하면서 보상을 받은 주민들은 외제차를 구입하여 그 도시는 유난히 외제차가 많았다. 그걸 생각하면 버스승객들이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은 충분히 이해되었다. 나는 비교적 승객들에게 친절했고, 내 버스를 기다렸다가 먹거리를 넣어주고 가는 승객들도 꽤 있었다. 하루는 살인적인 근로시간에 지쳐서 졸면서 운행을 했던것 같다. 뒷자리의 여자승객이 앞으로 와서  이것 저것 질문을 했다. 별 걸 다 물어 본다고 생각하는 순간 그 승객은 살며시 웃으면서 차에서 내렸고, 오랫동안 짝사랑 하면서 다시 보고 싶은 승객이 되었다.

나중에 다른 서울의 위성도시에서 운행을 했는데, 전통적이고 밀집된 형태의 도시였고, 대학교도 있어서 승객들은 온건하고 신사적이었다. 무엇보다 합리적인 설득을 하면 고개를 끄덕이며 이해를 했다. 말하자면 '이상한 사람'이 없었다.

Despite its overwhelming presence in our lives, work is a relatively minor subject in economics. The only minor mention of work is, somewhat curiously, in terms of its absence - unemploy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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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t for most people, work is a lot more than simply a means to earn income. When we spend so much time on it, what happens in the workplace affects our physiological and psychological well-being. It may even shape our very selv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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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 many people, work is about  basic human history, huge numbers of people were deprived of the most basic humanright of 'self-ownership' and were bought and sold as commodities - that is, as slav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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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most rich countries, people work around thirty-five hours per week, although the working week is considerably longer in the East Asian countries (Japan, Forty-two hours; Korea, forty-four hours; Singapore, forty-six hours). People in those countries are working half, the length of the tlme that their great-grandparents or great-great-grandparents worked (seventy to eighty hours per week).

- [Economics : The User's Guide] by Ha-Joon Chang -


장하준 교수는 전통적 보수주의자들이 진보주의경제학자라고 말할 수 있는 경제정책을 이야기하고 있다. 차후에 한 번 더 언급하겠지만 장하준 교수는 제조업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는데, 재벌의 불필요함을 말하고 있지도 않다. 좀 더 혁신적인 연구개발에 투자하지 못한 재벌을 탓하고 있는듯 하다. 왜 중소기업의 '중요한 역할'에 대해서는 그다지 언급을 하지 않는 것일까. 한국의 중소기업은 일찌감치 정부의 경제정책으로부터 '버려졌다'고 표현하는 것이 과격하지만 옳은 표현일 것 같다. 내가 지난 6년동안 구경한 중소기업들은 노동자들의 노동력을 갈아넣어 한올밖에 안되는 이윤을 근근히 얻어내고 있었다. 심지어 어떤 IT회사는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자마자 함께 뛰어든 거대재벌과 경쟁을 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몰리게 된 것을 보았다.

재벌- 중소기업- 근로자로 이어지는 먹이사슬의 가장 아래쪽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 한은 어떤 경제정책도 힘을 발휘하지 못할 것이다. 물론 이념문제때문에 가중적으로 방해받는 어려움도 있는 것이 한국의 경제정책일 것이다. 근로자들이 당면한 문제는 단순히 경제적분배의 문제가 아니다. 수직적 불평등의 문제, 인간적 근로환경과 관련된 문제, 근로가 대우받는 사회분위기의 문제와 관련되어 있다. 

2018년 10월 5일 금요일

특수이익집단의 역설 / 토드부크홀츠

한국에서 보수는 부패때문에 망하고 진보는 분열때문에 망한다는 말이 있다. 타성에 빠져서 대충가는 부류들과 과욕과 열정때문에 자신만의 길을 고집하는 부류들을 의미하기도 한다. 저번글에서 전쟁후 수요증대와 집권적 정치문화를 가진 국가들이 급속한 경제성장을 한 사례를 언급한 적이 있었다. 집권적인 정치문화가 신생국에 도움이 되는 경우가 있는데, 안정된 국가들에 비해서 특수 이익집단의 폐해를 줄일 수 있다는 점인듯 하다. 총리집권체제로 급속한 경제개발을 이룬 싱가포르나 공산당 일당독재체제의 중국, 집권적 정치문화가 내면화된 반민주주의(half-democracy) 국가인 일본이 급속한 경제성장을 한 원인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아마 보수가 부패하기 쉽다고 말하는 이유는 자본주의라는 단어를 사적이익의 추구라는 의미로 곡해(misinterpretation)한 까닭이고 사적이익의 추구라는 명분으로 특수이익집단의 권력이 지나치게 강해졌다는 의미로 이해해도 될 것 같다. 이번에 한국에서  전직대통령에 대해 뇌물수수에 대한 유죄판결이 내린 이면에 아직도 사실관계만을 다루어야 하는 법리(法理)상 못다루는 부분이 있는것 같은 생각이 든다. 바로 많은 사람들이 '무리'들이라고 표현하는 대통령의 정책에 영향을 끼쳐온 이익집단들인데 '조직'과 같이 공식적인 결속력이 없는 '집단'이나 정치적 성향같이 내면적 연대감으로 뭉쳐진 '군집'형태의 이익집단들이 국가운영에 마이너스적인 요소로 작용했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아마 북한이 경제개발을 시도한다면 이미 해왔던 국가들이 보여준 신뢰할만한 실증적인 사례들을 참고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물론 한국의 경우는 전체주의 이념이나 공산주의 이념들과 명확히 구분되어야 하는 공리주의(utilitarianism)이념이 좀 더 내면화되어야 할 필요가 있는듯 하다. 앞으로 상당기간 정권을 유지할 가능성이 있는 진보진영의 정부는 자칫하면 패거리 정치문화의 행태를 보여줄 수 있는 위험을 사전에 방지해야 할 것이다. 한 때 문제가 되었던 전 도지사의 성추문 사건의 기승전결이 모두 이익집단의 문제점으로 보일 수 있음으로서 진보진영의 이미지에 큰 타격이 되었음은 인정해야 할 것 같다. 판결에 문제가 있었다는 의미가 아니고 양성불평등의 문화가 이율배반적으로 뿌리깊게 내려 왔음을 보여줌으로써 진보진영조차도 폐쇄적인 패거리 정치문화의 전통속에서 헤어나오지 못함을 상징한 사건으로 비추어지고 있는듯 하다.    

Everyone in New York City and Boston recognizes that there's shortage of taxi cabs. These cities actually limit the number of licensed cabs, which drives up the income of drivers and drives down the morale of the cities. Still, the city governments refuse to support the grumbling of the general public over the ranting of taxi owners. The Public choice school does not symply point out that the "squeaky wheel gets the grease." More important, Olson and his colleagues teach us why tight coalitions make a much more powerful noise than a diffuse, unorganized public.

Olson takes his arguments into far more controversial territory by drawing broad historical laws. He assumes that stable socities are more susceptible to special interests. He then claims that "long-stable" societies wlii grow more slowly than relatively new societies. As time passes, leechees multiply and suck the lifeblood from a nation. If so, revolutions and wars can invigorate economies, since special interest groups lose their stranglehold. He cities Great Britain as a stable, retarded nation and postwar Japan as an economic miracle.

Few economists follow Olson all the way to his conclusion about the rise and fall of nations. Even so, the arithmetic of special interest groups makes sense.

The special interest paradox seems hopeless. Is it? Not necessarily. After all, each group suffers when Congress awards favors to the others. If a president or congressional leader could get a mandate for across-the-board budget cuts or broad policies against subsidies, price supports,and protection schemes, the increased efficiency in the economy could offset for these groups the elimination of special favors. Sadly, historical examples are few. And it seems more likely that the politicians will continue to deliver tough-sounding rhetoric,while special interests spout words of magnanimity-but nothing really happens.

- TODD G. BUCHHOLZ의 [NEW IDEAS FROM DEAD ECONOMISTS] - 

2018년 9월 23일 일요일

동아시아에서 부족한 언론과 표현의 자유(2) / 교육의 힘

지난날을 생각해보면 한반도에서 적어도 '내 인생'은 충격의 연속이었던 것 같다. 그래도 어릴때는 자유로웠다. 방학이면 흩어져 사는 가족들을 만난다는 핑계로 모르는 아저씨 옆에 붙어서 기차개찰구를 통과하면 열차여행을 자유롭게 할 수 있었다. 용돈이 생기면 서점으로 달려가 계몽사,계림문고,삼중당문고등의 저렴한 서적들이나 앙드레 지드의 '좁은문', 리처드 바크의 '갈매기 조나단' 공상과학소설, 학생잡지,등을 사서 읽었고, 청년기에 들어서는 좀 더 진일보해서 시사잡지,시몬느베이유 평전이나 출판사에서 일했던 누나덕에 중국연변인민출판공사에서 출간한 마르크스적 입장에서 해석한 철학책등을 읽곤했다. 한때 이 철학책은 내용때문이 아니고, 연변인민출판공사에서 출판했다는 이유로 우파적 입장에 있었던 친구들의 제보로 포도청의 관심대상이 되곤했는데, 제도권내로 편입할려는 시도를 하여서 법률서적도 열심히 읽는 참신한 청년이었던것 같다.

중학교 1학년과 2학년때 중학교 도서관의 대출업무를 맡아서 하면서 북한에 관련된 서적을 자가 대출해서 읽곤했는데, 대동강에서 스케이트 타는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도 알았다. 한 편으로는 가끔 찾아뵙는 부친은 북한에 남겨놓은 어머니나 북한의 장진으로 시집간 누이가 부친의 탈출때문에 피해를 입지나 않았을까 아니면 혹시 중국 연변으로 피신하지나 않았을까 하는 기대감으로 밤마다 사회교육방송을 듣곤 했다. 나에게는 책을 통하여 접하는 세계도 충격적이었고, 부친과 결부된 한반도의 현실도 충격적이었다. 


조금 시간이 더 지나서도 이념적,종교적 카리스마가 있거나 이념적,종교적 카리스마에 도취된 시민들을 참여관찰하면서 사상적으로 완고한 교육이 시민들을 어떻게 망가뜨리는지  체험했다. 그러나 그것이 일시적이고 지엽적인 문제가 아니라 수십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진행중인 거국적이고 역사적인 문제였고, 오직 장기적인 시민교육을 통해서만 해결될 수 있다는 생각이다.  한 편으로는 말하고 싶으나 말 할 수 없는, 아니면 아직 때가 무르익지 않은 '통제'상황을 많이 경험했는데, 사상이 경직되어있고, 언론과 표현의 자유가 부족한 곳에서 정신세계가 확산할 곳을 찾지 못한 백성은 남보다 더 '우월한 상태'를 찾아서 해매는, 그 상태를 못 찾으면 난폭해지거나 교활해지는, 들개같이 방황하는 삶을 살게 된다는 사실도 체험한듯 하다.   
       

한반도는 좀 더 다방면의 관심거리가 넘치는 땅이 될 것을 예정하고 있지만 이념이나 종교적 믿음이 완고하게 넘치는 지역일수록 단조롭고 어두운 문화를 가지는 것은 당연하다. 중동이 화약고인 이유는 타협하지 않는 믿음과 믿음의 충돌때문일 것이다. 서유럽사회의 민주주의 풍토는 종교적 완고함을 벗어난 르네상스(인문주의)의 시작과 과학의 발달, 계몽사상, 홉스, 로크, 루소같은 사회계약론자들의 사상등이 발달한 이유로 시작되었다. 그런 사상들이 탄생한 것이 중요하다기보다 '생각하는 습관'을 가지게 된것이 중요한 일인듯 하다.

Thus, Luther and his followers were driven by a necessary logic to support education for all people. They advocated training in the elements of reading, writing, and figuring, and held that, though fundamentally this knowledge was to make possible their understanding of the Bible and religion, it was also necessary for good citizenship. Luther wrote that even though there were no heaven nor hell, education would be necessary for the citizen.

This swing away from the dominance of education by the church, and its control more and more by sesecular forces, led to the establishment of schools and school systems by cities and by interested privated groups. An example was the school of JOHANN STURM at Strassburg, which was then in Germany. This institution aimed at piety, knowledge, and eloquence." Although religion was a prominent factor in the teaching of the school, other matters were also considered, and the control of the school was not in the hands of the church.

As this trend toward secular education grew in strength there began to appear men who attempted to put it into philosophic form, to draw up a philosophy of education to fit the new age and new demands. JOHN MILTON, the great English poet, who was also a schoolmaster, urged students to turn to the ancient writings of Greece and Rome and study them, not for their form, but because they contained all that man needed for a happy life. He believed that the best possible education was to be obtained from the study of these classical writings.

- S.E.FROST,JR.의 [BASIC TEACHINGS OF THE GREAT PHILOSOPHERS]  - 

서양사회가 완고하고 획일적인 종교적 교육으로부터 벗어나는 장면을 말하고 있지만 이념에 관해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프랑스에서 노동자생활을 했던 등소평이 공산주의 사상을 맹목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프랑스사회의 현실과 철학적 성찰을 비롯한 여러가지 생각을 해본것은 당연한듯 하다. 5개국어를 했다는 주은래도 마찬가지다. 천안문사태때 중국인민들에게 기본권을 좀 더 부여하려고 하다가 물러난 중국정치인들도 '지향하는 바'는 서유럽의 자유주의적 평등사회였을 것이다. 

일본사회는 좀 더 내성적이다. 일본의 극우주의가 만연하는 이유 역시 교육의 힘이다. 몇일전 프랑스의 유력한 대선후보였던 극우적 성향의 후보인 르펜이 상대방을 설득하기 위하여 자극적인 자료를 제시했다가 프랑스법원으로부터 정신감정명령을 받은적이 있었다.


합리적 설득이 아닌 감정적인 자극을 통하여 '쉽게 가는 선동의 길'을 택하기 쉬운 이념적 사고의 결론이다. 동아시아가 근대화기간이 짧고 아래로부터의 혁명이 부족한 이유는 사상적인 다양성이 부족한 탓이고 역시 다양성을 추구하는 교육이 부족한 탓이다. 언론과 표현의 자유를 비롯한 기본권들은 생각하는 교육으로부터 얻어질 것이다.  

           

2018년 9월 15일 토요일

동아시아의 정치문화 / 지리적 특성

시민의 자유나 민주주의에 관해서는 서구화 모델이 '지향해야 할 바'라는 사실은 동아시아의 어느 국가나 공감하고 있을 것이다. 다만 그런 문화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질 문화적 바탕이 부족한 것은 어쩔 수 없는 사실이긴 하다. 서구사회의 지리적 특성은 개방적이다. 전통적으로 국가와 국가의 경계나 민족과 민족의 경계는 모호하며 그 경계는 수시로 변하였다. 프랑크 왕국이 베르덩조약과 메르센조약으로 분할되고 나서도 서구사회는 이합집산을 반복했고, 그만큼 전쟁도 잦았다. 시민을 전쟁에 동원하기 위해서는 단기적 이데올로기가 필요하긴 했는데, 그 시간이 지나면 잊혀지는 이데올로기들이었던것 같다. 이데올로기가 굵직하면 동아시아, 특히 한반도나 중국처럼 굵직한 분열을 일으킨다. 범 게르만주의를 내세우며 전쟁을 치루고나서도 전쟁에서 패배하면 민망해지는 그런 소소한 이념에 단기적으로 몰두하는 것이 서구사회의 전통인듯 하다. 

러시아에서 공산혁명이 일어난 이유는 서구사회에 비해서 농노해방이 늦었고, 농노해방이 늦은 이유는 지리적으로 고립된 탓이다. 북한사회가 고립국을 벗어나지 못한 이유는 전근대적인 강대국들, 러시아,중국,일본이라는 극복하기 힘든 장벽에 둘러싸인 까닭이다. 자유주의 국가의 맹주인 미국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던 한국이 무역과 국제교류를 통한 세계화 이데올로기와 친밀해 지면서 촛불혁명까지 이루어낸 것은 지리적 폐쇄성을 극복한 사례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지엽적이긴 하지만 한국에서는 지리적으로 고립되어 있거나 문화적으로 고립된 사람들은 아직도 정치적으로 보수성을 띄긴 한다. 

한반도의 미래와 관련된 극복할 점은 정치문화가 성숙하지 못한 중국의 존재와 영향력이다. 경제적, 군사적으로 미국과 대립할 수 있는 초 강대국으로서의 지위를 예정하고 있지만 중국은 아직도 고립국이다. 이전 글에서 밝혔듯이 공산당 일당독재의 정치문화가 많은 부작용을 예정하고 있을듯 하다. 경제적 자유주의를 지향했던 등소평이 천안문 사태를 통하여 민주주의의 적이 된 이유는 과도기적인 불가피함이 있었을 것 같다. 하지만 등소평이 교육을 통한 시민의식의 성장을 꾀하고 있었음은 확실하다. 등소평의 장기적 전망은 중국사회가 민주화되기 위해 필요한 전망이었을 것이다.

https://hyeong-chun.blogspot.com/2016/01/blog-post_15.html

동아시아의 인권이나 언론의 자유, 표현의 자유등이 미성숙한 이유는 지리적 특성 때문일 것이다. 동아시아 국가들은 언어적 특성이나 민족적 특성들이 개별적이고 정체성이 구별된다. 게다가 바다나 큰 강 또는 높은 산맥등으로 구별되는 경계를 가지고 있다. 섞이고자 하나 섞일 수 없는 존재들인 것이다. 이 점을 생각하면 상대적으로 약소국이었던 한반도의 정체성유지를 위한 노력은 대단했던 것 같다. 게다가 한국이 서구사회와 대등한 정치적 민주화를 이루어내기까지 한 점은 한국의 교육개혁이나 세계화 노력이 어느 정도 성공한 것으로 생각된다. 북한은 피치못할 이유로 강대국들 사이의 고립국가로서 분투하고 있지만 김정은 위원장이 등소평과 같은 과도기적 지도자로서의 역할을 해 준다면 지리적 폐쇄성이나 관계적 패쇄성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점은 중국이나 일본보다 더 나은 장기전망을 생각할 수도 있게 한다.  

The most populous nation on the planet, heirs to great empire and guardians of one of the oldest continuous cultures, is asserting its place in a world dominated by American superpower .China is the first non-Westernpower to mount such a challenge, creating a new set of geopolitical circumstance. During the twentieth century , when the United States and the Soviet Union were locked in a Cold War that repeatedly risked nuclear conflict, Armagedon never happened because this was a struggle between superpowers whose leaderships, ideaologically oppossed as they were, understood each other relatively well.

While the politicians and military strategists were plotting, the cultural doors never closed : American audiences listened to the music of Prokofiev and Shostakovich, watched Russian ballet, and read Tolstoy and Pasternak even as the Soviets cheered Van Cliburn, read Hemingway, and lionized American political dissidents.

In shorts, this was an intracultural Cold War, which reduced the threat of calamity. A cold war between China and the United States would involve far less common ground, the first intercultural cold war in which the risk of fatal misunderstanding is incalculably greater than it was during the last.   

- Harn de Blij 의 [WHY GEOGRAPHY MATTERS] -

2018년 9월 8일 토요일

동아시아에서 부족한 언론과 표현의 자유(1)

고등학교시절 학교공부는 포기하고 수업시간에 주간조선을 뒤적이고 있었다. 거기에 월남전참전에 관한 경향신문 김경래기자의 회고록이 었었다. 한국이 월남전에 참전하기로 한 결정이 엠바고(embargo / 한국의 군사정권때 언론에 공개할 시기를 조절하였다는 의미의 단어)되기전에 김경래기자가 언론에 공개하여 박정희 전 대통령앞에 부르심을 받았다는 내용이 있었다. 당시 박정희 전 대통령과 김경래 기자가 독대하는 자리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이 김경래 기자에게 아직 엠바고가 안 된 한국의 월남전 참전계획을 어떻게 알았냐고 따졌다.

김경래 기자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손에 권총이 안 들려 있음을 내심 감사하며 기자가 취재원을 밝히는 것은 처녀가 처녀성을 빼앗기는것과 같다고 항변하며 버티는 장면이 나왔다. 그러나 결국 주한 베트남 대사관 주재원에게 술을 사주고 얻어낸 정보임을 밝혔고 박정희 전 대통령은 절대 못 믿을 놈들이라고 분노하던 장면이 있었다.

몇일전 중국의 대학교수가 중국의 비민주적인 표현의 자유에 대한 억압에 항변하다가 생방송중에 공안에 끌려가는 장면이 생중계 되었는데, 아마도 중국정부가 인민들에게 경고하는 베시지가 담겨 있는것 같았다. "정치에 대해서는 눈,귀, 입을 닫고 경제에만 신경써라"하는 메시지가 전달되고 있는 장면이었다. 일본은 좀 더 우회적으로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방식을 사용한다. 국민들에게 애국적 이념을 심어놓고 애국을 위해서 참아달라는 동의를 구하는 방식을 취한다.

어쨌거나 동아시아의 언론과 표현의 자유는 고대 그리스나 로마보다 못하다는 사실을 동아시아 사람들은 잘 모른다. 그것은 그렇게 교육받은 탓이다. 적어도 고등학교 수업시간에 아무책이나 읽으면서 자발적 교육에 능한 사람에게는 일찌감치 파악되고 있는 사실을 동아시아 시민들은 대체로 모른다.

In Rome, education followed the pattern which had been developed by the Sophists. The ideal of the Roman was the orater who could away the multitudes with his eloquence. Success in public life was largely determinded by the power which one possessed to speak in public and to influence mass opinion. QUINTILIAN, the Roman authority on education, pointed out that the orator had to be more than an eloquent speaker.

He must also be "a good man," one of "excellent mind." He believed that "the man who can duly sustain his character as a citizen, who is qualified for the manacement of publict and private affairs, and who can govern communities by his counsels, settle them by means of laws, and improve them by means of judicial enactments, can certainly be nothing else bat an orater."

Thus, the heart of Roman education was the training of the orator. This included knowledge of logic, good morals, a careful schooling in the laws of the nation, and a character that was above suspicion. CICERO developed this scheme thoroughly and became himself the model of the Roman orator.

- S.E. FROST, JR.의 [BASIC TEACHINGS OF THE GREAT PHILLOSOPHER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