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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5월 7일 화요일

시에예스와 기회주의


좌파와 우파의 대립이 심한 한국에서 중도적인 입장을 지니고 있는 사람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실제로 이념의 바람에 휩쓸릴 여유없이 민생(民生)의 가장 고달픈 모습을 하고 있지는 않은지, 사상이나 지식의 가면을 벗어버린 일그러진 얼굴을  감추지 못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인듯 하다.

그들은 결집하여 의사를 표현할 구심점도 없이 기회주의자라는 비난을 감수하며 삶의 가장 본질적인 소망인 '행복'을 찾아서 방황하는 유랑민의 무리들이 아닐까 생각한다.

기회주의라는 비난을 감수하며 역사속에서 자신만의 길을 고수했던 등소평의 어려움은 크게 변화되고 발전된 중국의 모습으로  보상받았지만, 대의적이거나 이타적인 목적없이 개인의 욕심을 위하여 기회주의적 태도를 취하게된 정치가는 비난을 받기도 하였다. 

프랑스혁명 당시 3신분을 대표할 국민의회를 만들자고 제안했던 시에예스는 프랑스혁명의 물살이 폭풍처럼 거세지고, 자코뱅당의 로베스피에르가 공포정치를 펴자 외교관으로 피해있거나 시골에서 은둔 생활을 하면서 일신(一身)의 안위(安違)를 구했다.

시에예스는 나플레옹이 쿠데타를 일으키자 나플레옹의 분위기를 '시민적'이라고 착각해 나플레옹의 쿠데타를 주도하다가 나플레옹이 독재를 하는것을 보고 다시 은둔하게 된다. 그러다가 루이필립이 정권을 잡자 다시 파리로 들어왔다. 격렬한 프랑스혁명의 와중에서 숨어 있다가  모임에 나가자 반가와한 친구가 "그 동안 자네 무엇을 했나?"하고 묻자 "살아 남았지."하고 대답한 일은 유명하다.

정치가야 고정적인 지지기반을 구축(構築)하기 위해서 이념이나 종교등을 이용한다고 할 수 있겠지만 국민의 행복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국가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처럼 행복해야만 하는 국민들이 이념이나 종교적인 프레임속에 자신들의 사고를 구속하는 일은 자각하여 피해야할 일 같다. 

실현 불가능 하더라도 '행복'이라는 단어가 사고의 프레임으로 자리잡는 것이 훨씬 합리적일것 같다. 이념이나 종교같은 대의 명분을 띄고 있는 단어의 알량한 과오를 되짚어 보면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2013년 5월 5일 일요일

가족사(家族史)


요즘 연예인들의 가족사 이야기가 화제다. 어린시절의 가족사는 겪어내고 습관화시키는 어린이의 세계가 가정과 학교로 제한되는것을 볼때 분명히 인성발달에 많은 영향을 끼쳤을거라는 생각이다. 불안한 가정은 확대된 사회적 관계에도 영향을 끼쳐서 좋지않은 사회분위기를 형성하는데 필연적인 역할을 하게된다. 

누군가가 연예인가족사에 관한 기사 에 '한국의 부부사이는 사탄이 지배한다'는 댓글을 올린것을 보고 댓글을 쓴 당사자와 그 주변 가정의 가족관계가 원만치 않음을 이해할 수도 있겠고, 역사적인 트라우마가 많은 한국민들의 응어리진 마음들이 원만한 가족사를 만드는데 걸림돌이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형법학에서는 '인과관계설'이라는 말이 있다. 책임의 기원을 어디까지 거슬러 올라가서 끊어내야 하는지에 관한 학설이다. 나의 가정의 불화는 사회적인 불안감에 원인이 있기도 하고, 후대의 사회적 불안감에 영향을 끼치기도 하면서 순환해가는 모습이다. 그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 개인의 많은 노력이 필요한것 같다. 한국의 가정에서는 더욱 그런것 같다.

부부라는 사회에서는 일에 따라 각자가 상대를 돕고, 혹은 상대를 지배한다.따라서 부부는 대등하면서도 다르다. 그들은 다르므로 대등한 것이다.  

시몬느베이유에게 많은 영향을 끼친 프랑스철학자 알랭의 말이다. 부부사이가 사랑의 감정으로 결합되어 있기는 하지만 부부사이도 하나의 사회적 협력관계임을 인정해야 한다는 의미가 들어있는것 같다.

두 영혼이 영원히 결합됨을 서로가 느낄 때에는 참으로 위대하다. 온갖 고통이나 험준한 길에 있어서 서로 의지하며, 서로 위로하며, 서로 떨어지지 않고 결합되기를 원할때에는 참으로 위대하다. 

영국의 여류(요즘은 남녀 평등의 입장에서 '여류'라는 말을 쓰지 않는다고 한다.)소설가 조지 엘리어트의 말이다. 철학자의 이성적인 해석에 비해서 감성적으로 부부관계를 해석하는 면이 있다.

뭐 잘은 모르지만은 사람사는 일이 모두 그렇듯이 부부사이도 Give and Take 관계나 Talio의 법칙이 예외없이 적용되는것 같다. 상대방에 대한 헌신이 필요한 관계임이 예외없다는 생각이든다.

2013년 5월 4일 토요일

잃어버린 세계 / 남북의 이념


국가의 성장동력이라는게 반드시 물질적인 측면에만 있는것이 아니라는것은 교육받은 사람들이 많아진 현시대에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생각컨데, 바람을 좇아서 온 기력을 다 쏟았던 보나푸는 이 정밀감(靜謐感)을 알았으리라. 기요메도 또한 눈속에서 알았을 것이다. 나 자신도 어떻게 잊을 수 있으랴. 목까지 모래속에 파묻히고, 갈증으로 바싹바싹 목이 졸리면서, 그 별들의 망또 아래서 그렇게도 마음이 포근했을때의 일을.


어떻게 하면, 우리들의 마음속의 이러한 일종의 해방감을 북돋을 수가 있을까? 인간에게 있어서는 모든 것이 모순이라는 것을 사람들은 잘 알고 있다. 어떤 사람에게, 그가 의도하는데로 창작에 몰두할 수 있도록 생활을 보장해 주면 그는 잠들어 버린다. 승리를 거둔 정복자는 이내 연약해진다. 선심좋은 사람에게 돈을 주면 수전노가 되어 버린다.


인간을 행복하게 해준다고 주장하는 정치상의 주의(主義)란 것도, 그것이 어떤 종류의 인간을 행복하게 하려는지 우리가 미리 알지 못한다면 무슨 가치가 있을까? 누가 태어나려는가? 우리는 먹이만 있으면 만족해하는 가축들이 아니다. 또 우리에게는 한 사람의 가난한 <파스칼>의 출현이, 분별없는 부호의 출현보다 훨씬 값어치가 있는 것이다.     


- 쌩땍쥐베리의 (인간의 대지)중에서 - 

한때는 이념의 세계가 지고(知高)하고 창조적인 역동성을 발휘하던 시절이 있었다. 비록 다수나 개인의 행복과 평화를 위한다는 대의적인 명분을 내포하고 있지만 실상은 식자(識者)들이나 행동가들의 자아실현의 도구로서 역할을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다. 그들은 끊임없이 이등병과같은 삶의 생명력을 끌어내기위한 도구로서 이념을 사용한 면이 있는것 같다. 결국에는 지식과 행동력을 함께 갖춘 정치인이 목표한 그 둘을 모두 갖게되는 결론으로 마무리짓게 되었지만서도.......

북한정부의 국가운영방식을 시계열로 살펴보면 국가를 성장시킬수 있는 이념적인 성장동력이 구제할수 없는 정도로 바닥을 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개성공단사태에 이르러서는 스스로의 획기적인 개선이던지 통일이던지 확실하게 양자택일을 해야하는 지경까지 이른것이 확실하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아마 지도자의 흐트러진 기상이 가장 큰 원인이 되지 않았나 싶다.

자유주의 체제인 남한에서는 많은 갈등을 겪고 있지만 그래도 문제를 제시하고 올바른 방향으로 피드백을 시킬 수 있는 유연성과 기회가 주어진 까닭에 밝은 미래를 생각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특히 이 문제에 관해서  국민의 정신적인 역량을 갉아먹는 듯한 문제들에 대해서 많은 개선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2013년 4월 28일 일요일

개성공단과 이념


민중은 웅변을 좋아하지만 그러면서도 그 본질은 현실주의자다

- 아그네스스메들리 -

중국인민해방군에 종군하였던 미국의 평론가 아그네스스메들리가 어느 고을의 대중집회에서 연설을 하다가 느낀 생각이다. 아그네스스메들리는 공산혁명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혁명을 헌신적으로 지지하면서도 현실적인 이익을 구하는 민중의 본질을 간파하는 모순을 느끼고 있었던것 같다.

자본주의는 자본과 경제력이 선전활동의 수단이고 공산주의는 이념적인 선동이 선전활동의 수단이라는 발상은 진리인듯하다. 개성공단이 가져다주는 경제적인 이익과 평화를 위한 수단으로서의 역할외에 폐쇄적인 북한인민에게 자본주의사상과 자유경제에 관한 현실적인 감각을 심어주는 역할을 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북한정부는 그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적지않은 경제적이익때문에 단호하지 못한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단기적인 승부보다 장기적인 승부를 염두에 두는 것이 좋을듯하다. 이기고 지는 문제가 아니라 이익을 얻는 문제라는게 자본주의적 발상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든다.

2013년 4월 27일 토요일

한계령 / 화강암



1985년 발표된 노래 '한계령'을 듣고 있노라면 고독과 집착심을 내려놓는 달관의 마음이 들때가 있다. 작곡가 하덕규씨는 1983년 여름 20대젊은 날의 고독과 삶에대한 회의로 가득찬 시절 이곳을 찾아왔는데 산봉우리들이 내려가라고 어깨를 떠미는것 같았다고 이야기한다.

태백산맥을 넘어 동해안으로 갈때는 미시령터널이나 진부령을 이용하면 편하지만 일부러 한계령을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 좋은곳을 구경하며 운전한다는 의도와는 달리 고갯길의 난이도 때문에 정상휴계소에서 내려다보는 동해의 수평선만큼 여유있게 구경하기는 힘들다.

나의 부친처럼 금강산과 함께 젊은 시절을 보낸 실향민들은 설악산의 절경쯤은 관심도 없으니 보고 느끼는 주인공의 세계에 따라서 절경의 가치가 다르다는 말이 나올듯 하다.가끔 심술궂은 스포일러가 되고 싶을때가 있다.

"금강산의 절경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만들어진 것이니 고향산을 생각하며 눈물흘릴 이유가 없습니다."

한계령을 비롯한 기암괴석이 많은 산들이 생긴 이유를 지질학적인 설명을 하면 좋은 감성의 노래에 스포질이 되는게 아닌가 싶다.

원래 금강산이나 설악산과 같은 기암괴석의 산들은 화강암으로 이루어져있다. 화강암은 공룡이 살던 중생대에 화산이 터져 만들어진 현무암이 오랫동안 묻혀지고 응축되어 만들어진 암석이다.

한반도에 분포한 많은 암석들이 고생대 이전에 압축형성되어 딱딱한 성질을 가지고 있는데 비해서 중생대에 형성된 화강암의 경도가 훨씬 약하다.

암석의 주변이 침식이 잘되는 토사물(土沙物)로 이루어져 있으면 주변 토사물이 침식이 되고 화강암만 남아서 바위산을 만드는데, 다른 암석의 산들에 비해서 침식이 심해서 기묘한 모습이 만들어진다. 세상을 떠나기전에 바라보는 산이 가장 아름다울것 같은 생각이든다.

화강암 주변에 편마암과 같은 경도가 강한 암석이 분포하고 있으면 가운데 화강암부분만 침식이되어 군에 입대하는 장정들의 꿈(?)의 장소인 강원도 양구 을지전망대밑의 펀치볼지형이 만들어진다. 펀치볼지형은 혜성이 떨어져서 만들어졌다고 할정도로 둥근데, 직접 가보니 가운데 부분에 작은 구릉이 있는것으로 보아 차별침식이 확실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2013년 4월 26일 금요일

풀잎처럼 눕다 / 국가의 역동성


20여년전에 3저호황을 맞아 한국경제의 미래가 번뜩일 시기였다. 당시에 어쩌다 쾰른에 사는 은행원인 독일인과 이야기를 나눈적이 있다. 내 자신은 아는 것도 없고, 영어실력도 전무한 상태로서 내성적이고 생각이 깊은 성격을 가진 독일인의 직감에 의존하여 몇 일 대화를 나눈 적이 있었다.

식사중에 서로 하지 말아야할 말을 하고 말았는데, 분단된 공통점을 가진 두 나라에 대해서 이야기하다가 독일인의 우월감을 제압한다는게 그만 히틀러시대를 이야기 하고 말았다. 그랬더니 독일인이 "너희는 일본에게 식민지를 당하지 않았느냐. 그 시절을 너에게 이야기하면 너의 기분이 좋겠느냐'"하면서 반박했다.

"우리가 당한거 맞다. 창피한 역사다. 그러나 그런일은 다시 없을 것이다. 우리는 점점 커가고 있다. 독일은 노쇄하고 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던 한국인의 패기어린 답변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역사에 대해서 심사숙고한 독일인과 철없는 대중심리로 우왕좌왕하는 한국인의 표상을 보여주는 낮뜨거운 장면이었던것 같다.  

그 시절의 그 패기가 무색하게도 한국과 그의 아주 극소한 일부분인 내자신은 부끄러운 길을 가고 있었던것 같다. 더구나 지난정부 5년동안 말하기도 거국적으로 구차하고 복잡한 상황에 쫓기면서 스케이트장에 눌러앉아버린 서글픈 내 자신을 보며 그날의 패기를 한 번 떠올려보기도 한다.

지금 독일은 탄탄한 교육과 과학기술에 힘입어 노쇄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통일까지 되어있다. 활짝 피어보지 못하는 꽃처럼 저출산과 생산력없는 경제구조로 성장동력을 잃어버린 한국, 게다가  통일하고는 거리가 점점 멀어지는 개성공단 사태를 보며  한 국가의 미천한 구성원으로서 내자신의 삶도 꺾이는 기분이 든다.

대화의 현장에 나오지 않는 북한정부의 태도와 한국의 유명한 이념 논객이 트위터에 올린"북한 그딴거 없어도 우린 잘살았다."하는 이야기를 보며 20여년전의 철없는 내모습이 떠오르기도한다.  기분만으로 모든것이 잘 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들의 장래에 아마도 나타날지도 모르는 모든 드높은 약동(躍動)을 이처럼 파괴하고 우리국민 전체를 이렇게 타락시키는 것을 저지하기 위해서 여러가지 수단이 강구(講究)되었는데, 그것이 모조리 실패로 돌아간 오늘날 단지 하나 남아있는 수단을 여러분들에게  말하는 것이 이 강연의 목적이다. 이 강연은 우리 국민을 영원한 국민 - 우리들 자신의 영원성의 보증자라고 보고, 진실하고 전지전능의 조국애를 교육의 힘에 의해서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 깊숙이 불멸(不滅)하게 북돋아 주는 방법을 여러분들에게 말하려고한다.

-  피히테 -

제대로된 나라의 구성원으로서 살다가 늙어죽는 일도 어른의 책임이며 교육의 힘일것 같다. 

2013년 4월 24일 수요일

북한의 지하자원 / 단천개발


북한의 지질은 대부분 고생대 이전에 형성이 되었다. 아오지탄광의 갈탄으로 유명한 두만강지역의 신생대지층이나 백두산의 용암으로 만들어진 개마고원의 현무암풍화토지역을 제외한 대부분이 시생대, 원생대, 특히 고생대지층으로 이루어져 있다.

신생대지층에서 형성되는 석유와 천연가스가 생산되지 않는 대신 오래된 지층에서 오랫동안 압착되어 형성되는 경질(硬質)의 지하자원이 풍부한 편이다. 금, 마그네슘, 텅스텐, 철광석, 석회석등이 대표적인데, 무연탄 역시 고생대지층에서 형성되는 것으로 북한에는 매우 풍부하다.

북한이 최소한의 무역량으로 자급자족경제를 꾸려오면서 체제를 유지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지하자원의 자급자족에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다. 6.25의 폐허상태를 일찌기 복구시킬 수 있었던 원인도 남한보다 풍부한 고생대 평남지향사지층의 풍부한 석회석으로 만들어진 시멘트의 양산에 힘입은 바 있으며, 경제력에 비해서 강한 재래식 군사력을 유지할 수 있는 원인도 풍부한 철광석을 자급자족할 수 있는데 원인이 되었다는 생각이다.

그 동안 무역활동이 봉쇄된 까닭에 중국에 귀중한 지하자원을 염가로 매각할 수 밖에 없었던 상황이 안타깝기도 하였다. 북한체제를 동정해서가 아니라 구한말과 일제시대를 통해서 세계적인 금매장량이 한반도 외부로 유출되었던 비극을 보는 것 같았다. 지나간 역사를 쉽게 잊고 살다보면 미리 유출되어버린 경제적 이익을 후손들의 복지감소와 연결시키는 감각이 없어질 수 있는게 문제다.

60년대 경제개발 초기에 한국은 강원도 상동의 텅스텐이 주요 수출품이었다. 빈약한 경제를 유지하는데 큰 힘이 되어준것이 사실이다. 북한의 정부차원에서 단천의 마그네사이트개발과 가공품의 개발계획을 가지고 있는것은 때늦은 감이 있다. 핵이나 군사적인 목적 운운하지만 않는다면 북한인민들의 경제생활을 선도하는 지름길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지금 이 시점에서도 북한경제란 지하자원과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인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