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6월 13일 토요일
새로운 냉전과 한반도
2026년 10월 9일 금요일
동북아시아의 현실과 미래
북한은 요즘 한국에 매우 적대적이다. 그건 한국이 같은 글과 같은 말을 쓰기 때문이다. 즉 현실적인 교류를 넘어서는 ‘동조’에 의해서 북한 정부의 운명이 한국에 의해서 좌우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만약 북미 협상이 전개되고 한국이 패싱된다 할지라도 나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 모든 상황을 이해하기 때문이다. 한국은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려야 할 것이다. 북한이 미국과 협상 테이블에 나서기만해도 모두가 좋아질 것이다.
인공지능과 토론할때면 지엽적인데로 끌려들어가지 말아야한다. 인공지능은 정치감각이 없기 때문이다. 즉 인공지능은 인간의 심리를 모르기 때문이다.
동조, 용기, 그리고 비중국의 지대물박
이형춘 · 독립 칼럼니스트 | 2026년 10월
1. 만장일치의 힘, 한 사람의 힘
1950년대 솔로몬 애쉬는 단순한 실험을 했다. 길이가 다른 선분들 가운데 기준선과 같은 것을 고르는 문제였다. 답은 누구 눈에도 뻔했다. 그러나 바람잡이 다수가 일제히 틀린 답을 말하자, 피험자들은 결정적 시행의 약 3분의 1에서 다수를 따라갔다. 넷 중 셋은 적어도 한 번 자기 눈을 배신했다.
이 실험에는 덜 알려진 결과가 있다. 반대자가 단 한 명만 있어도 동조는 급격히 무너졌다. 그 반대자가 정답이 아닌 다른 오답을 말해도 그랬다. 동조의 힘은 다수의 크기가 아니라 만장일치라는 조건에서 나온다. 균열 하나가 모두를 자유롭게 한다.
2. 사람은 왜 악에 더 빨리 동조하는가
인간은 이성 이전에 감각을 가진 존재다. 감각은 쾌락을 원하고, 쾌락은 즉각적인 쪽을 고른다. 악에 동조하는 쾌락은 즉시 온다. 누군가를 함께 조롱할 때 터지는 웃음, 무리와 하나가 되는 소속감, 표적이 내가 아니라 저 사람이라는 안도감이다. 남의 불행에서 느끼는 고소함이 뇌의 보상 회로와 연결된다는 연구가 있고, 규범을 어긴 자를 처벌할 때도 같은 회로가 반응한다는 실험이 있다.
선행에도 쾌락은 있다. 그러나 그것은 늦게, 조용히, 혼자 온다. 비용은 내가 먼저 치러야 한다. 악의 쾌락은 즉시 오고 비용은 남이 치른다. 이 시간의 비대칭이 동조의 속도를 가른다.
가장 위험한 것은 정의의 옷을 입은 악이다. 마녀사냥에 가담하는 사람은 자신을 악당이 아니라 정의의 집행자로 여긴다. 악이 악의 얼굴로 온다면 동조는 훨씬 느릴 것이다.
3. 비겁은 좁은 계산이다
회사에 큰 불만이 있어도 직원들은 입을 다문다. 이들은 이성을 잃은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성은 정확하게 작동한다. 말하면 찍히고, 말해도 바뀌지 않는다는 계산이다. 조직 연구는 이를 '조직 침묵'이라 부른다.
흔히 피터 유스티노프의 말로 알려진 문장이 있다. 용기는 통찰력의 결핍에서 나오지만 비겁은 대개 훌륭한 정보에 기초한다는 것이다. 재치 있지만 절반만 맞다. 위험을 모르고 뛰어드는 것은 용기가 아니라 무모함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했듯 용기는 비겁과 무모함 사이에 있다. 용기 있는 자는 비겁한 자와 같은 정보를 갖고도 다른 선택을 한다.
비겁의 정보는 훌륭하지도 않다. 좁을 뿐이다. 이번 인사에서 받을 불이익은 정확히 재지만, 침묵이 쌓여 조직이 무너지는 비용과 스스로를 배신한 대가는 저울에 올리지 않는다. 비겁은 좁고 정확한 계산이고, 용기는 더 넓은 계산이다. 침묵을 깨는 사람은 불편을 감수한다. 그는 말하는 불편과 침묵하는 불편을 함께 쟀고, 후자가 더 무거웠을 뿐이다.
더 무서운 것은 이성 자체가 악의 편에 서는 경우다. 한나 아렌트가 아이히만에게서 본 것은 광기가 아니라, 성실하게 자기 경력을 계산하던 관리의 얼굴이었다.
4. 끝을 아는 자의 계산
무엇이 계산을 넓히는가. 나는 가족의 죽음을 곁에서 지켜보며 그 답을 얻었다. 우리는 모두 결국 같은 길을 간다. 그렇다면 지키려 애쓰는 자리와 평판과 안전은 어차피 내려놓게 될 것들이다. 불교의 공(空)이 가르치듯 붙잡을 실체가 없다는 것을 알면, 잃을 것에 대한 두려움이 느슨해진다. 남는 것은 육체를 가진 존재로 태어나 의지대로 최선을 다하는 일뿐이다.
물론 죽음의 자각이 저절로 용기를 낳지는 않는다. 사회심리학 연구는 죽음을 떠올린 사람들이 오히려 자기 집단에 더 매달리고 이견에 더 가혹해진다고 보고한다. 피하는 죽음은 사람을 움츠리게 하고, 받아들인 죽음은 사람을 자유롭게 한다.
결과에 집착해서는 안 되지만 목표는 있어야 한다. 인생은 출항하는 배와 같다. 항구에 묶인 배는 안전하지만, 배는 그러려고 만든 것이 아니다. 콜럼버스는 인도라는 목표가 있었기에 출항했다. 그러나 그는 죽을 때까지 자신이 닿은 곳이 아시아라고 믿었다. 목표는 배를 띄우고, 결과에 대한 집착은 눈을 가린다.
5. 김정은이 두려워하는 것은 같은 말이다
이제 같은 질문을 평양에 던져보자. 김정은은 올해 2월 노동당 9차 대회에서 한국과의 관계를 가장 적대적인 국가 대 국가 관계로 정립하는 최종 결단을 내렸다고 밝혔다. 한국 정부의 유화적 태도는 기만극이며, 한국을 동족의 범주에서 영원히 배제하겠다고 했다. 3월 최고인민회의에서는 한국을 가장 적대적인 국가로 공인했다. 반면 미국에는 핵보유국 지위를 전제로 대화의 문을 열어두었다.
왜 이토록 한국과의 단절에 집착하는가. 핵보유국 지위를 협상하는 자리에서 비핵화를 외치는 서울을 치우려는 계산도 있다. 그러나 더 깊은 곳에 있는 것은 두려움이다. 그 대상은 한국의 군대가 아니라 한국의 말이다. 북한은 반동사상문화배격법, 청년교양보장법, 평양문화어보호법을 잇달아 만들었다. 한국식 말투를 쓰는 것조차 처벌 대상이다. 정권이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법이 고백하고 있다.
말과 글이 같은 이웃은 동조의 통로다. 북한 체제는 거대한 만장일치 위에 서 있다. 애쉬의 실험이 보여주듯 만장일치는 단 하나의 다른 목소리에 무너진다. 게다가 이념은 이성에 호소하지만, 한국의 드라마와 노래는 감각으로 스며든다. 감각이 이성보다 먼저라면 이 싸움의 승패는 정해져 있다. 김정은이 이것을 어렴풋이라도 안다면, 문을 걸어 잠그는 것은 그의 입장에서 합리적인 선택이다.
이것은 원교근공(遠交近攻)이다. 다만 가까운 나라를 치기 위한 원교근공이 아니라, 밀어내기 위한 원교근공이다. 그리고 한국이 위험한 이유는 가깝고 커서만이 아니다. 중국은 더 크고 똑같이 가깝지만 적이 아니다. 한국은 가깝고, 크고, 같다. 그것이 문제다.
6. 순서가 답이다
그렇다면 통일은 어떻게 와야 하는가. 나는 북한이 스스로 경제를 일군 다음에 통일이 와야 한다고 본다. 그 전에 남과 북 모두가 불편을 겪을 이유가 없다. 내가 오랫동안 북한에 경제적 조언을 해온 이유다.
순서는 이렇다. 먼저 북미가 가까워지고, 제재가 풀리고, 북한이 개방한다. 북한 경제가 일정 수준에 오른다. 그때 비로소 김정은도 거울 앞에 설 수 있고, 한국은 천천히 가까워진다. 정권은 지켜지고, 중국은 간섭할 틈을 얻지 못한다. 북미 정상회담에서 한국이 패싱되는 것이 차선인 이유다. 최선은 아니지만 길은 열린다.
경계할 점도 있다. 북미가 미국 본토를 겨냥한 장거리 미사일만 묶고 한국을 겨냥한 전력은 그대로 두는 거래를 한다면, 차선은 한국에게 차악이 된다. 서울은 협상장 밖에 있더라도 그 테이블을 지켜봐야 한다.
동조로 끌어당긴 통일이 반드시 좋은 통일도 아니다. 동독은 서독에 대한 동경 속에 무너졌지만, 통일 이후 많은 동독 주민이 스스로를 이등 시민으로 느꼈다. 북한 주민은 자기 속도로 걸어올 수 있어야 한다.
7. 중국과 러시아: 같은 분단, 다른 셈법
이 구도에서 가장 나쁜 변수는 중국이다. 미국과 동맹인 통일 한국이 압록강까지 오는 것은 중국에게 안보 위협이다. 그러나 문제는 안보 계산만이 아니다. 중국의 패권 지향은 공산당 일당독재라는 체제에서 나온다. 민주국가에는 잘못된 정책을 고치는 장치가 있다. 미국은 베트남과 이라크에서 잘못을 저질렀지만, 자국 언론이 그것을 폭로했고 여론과 선거가 방향을 바꾸었다. 중국에는 그 장치가 없다. 정권의 성격이 곧 국가의 행동이 된다. 이것은 14억 중국인에 대한 판단이 아니다. 자기 정권을 선택할 수 없는 사람들에 대한 판단은 북한 주민에 대한 판단과 같아야 한다.
중국에는 오래된 세계관이 있다. 지대물박(地大物博), 땅이 넓고 물자가 풍부하니 바깥이 필요 없다는 믿음이다. 1793년 건륭제는 무역을 청하는 영국 사절단에게 청나라에는 없는 것이 없다는 취지로 답했다. 반세기 뒤 그 자신감은 아편전쟁으로 무너졌다. 오늘의 중국도 원유와 식량과 첨단 반도체를 바깥에 의존한다. 스스로 완결되었다는 믿음과 실제로 의존하는 현실 사이의 간극, 그것이 오판을 낳는다. 혼자 크는 나라라고 스스로 믿기에, 중국은 주변국을 협력자가 아니라 따라올 대상으로 본다.
러시아는 다르다. 러시아는 한반도가 필요하다. 극동 개발, 그리고 시베리아의 가스와 철도를 바다로 잇는 길이 한반도에 있다. 러시아는 1990년대 불곰사업으로 소련 시절의 차관을 무기로 갚으며 한국의 군사력을 키워주었다. 지금 북한에 군사기술을 넘기는 것도 푸틴의 셈법에서는 양쪽에 공평하게 주는 일이다. 나는 2024년 북러 포괄적 전략동반자 조약 이후의 흐름을, 북한을 중국보다 러시아에 가깝게 만들어 장차 한반도 전체를 전후 러시아 부흥의 조력자로 삼으려는 구상으로 읽는다.
그러나 러시아가 원하는 것은 남과 북이지 통일이 아니다. 통일 없이 협력만 하는 한반도라야 양쪽과 따로 거래하며 자기 뜻대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중국은 완충지대가 필요해서, 러시아는 지렛대가 필요해서 분단을 선호한다. 러시아는 북한의 중국 의존을 덜어주는 데 쓸모가 있지만, 통일의 조력자는 아니다.
그럼에도 러시아의 구조는 결국 중국의 반대편을 향한다. 극동 러시아에는 약 800만 명이 살고, 국경 너머 중국 동북 3성에는 약 1억 명이 산다. 지금 러시아가 중국에 종속된 것처럼 보이는 것은 전쟁과 지정학이 만든 일시적 결과다. 구조는 변화를 압박하고 있다.
8. 다각화, 그리고 반중의 결집
러시아는 서방과 적대적이고, 유럽도 예전처럼 미국과 가깝지 않다. 세계는 다각화의 시대로 들어서고 있다. 그러나 이 흩어짐은 오래가지 않을 것이다. 흩어진 세계가 다시 뭉칠 축이 있다면, 그것은 중국이다. 미국은 대체로 이미 가진 것을 지키는 패권이고, 중국은 아직 갖지 못한 것을 꿈꾸는 패권이다. 꿈꾸는 패권은 주변을 불안하게 하고, 불안은 결집을 낳는다.
미래에 세계는 중국과 비중국으로 나뉠 것이다.
9. 비중국은 지대물박이다
중국의 영토는 지구 육지의 약 6.4%, 인구는 세계의 6분의 1 정도다. 러시아의 자원, 미국의 기술과 금융, 인도의 인구, 유럽의 제도, 한국과 일본의 제조업을 합친 비중국은 중국보다 훨씬 지대물박하다. 중국이 스스로 완결된 세계라고 믿는 순간, 더 크고 더 완결된 세계를 적으로 돌리게 된다.
동조의 힘은 강하다. 그러나 만장일치는 한 사람의 반대에 무너지고, 좁은 계산은 넓은 계산에 진다. 문을 걸어 잠근 평양도, 혼자 크겠다는 베이징도 결국 같은 질문 앞에 선다. 항구에 묶인 배로 남을 것인가, 출항할 것인가.
비중국은 지대물박이다. 그리고 결국, 사필귀정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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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2026. 2. 26.). 곽희양. 「'핵보유국 지위' 획득 사활…방해되는 한국엔 더 강한 '철벽'」. https://www.khan.co.kr/article/202602262036005
뉴스토마토 (2026. 3. 24.). 이석종. 「김정은 "한국, 가장 적대국"…정부는 북 인권결의안 '불참' 가닥」. https://newstomato.com/ReadNews.aspx?no=12953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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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경향 (2026. 8. 22.). 「김정은 9월 푸틴, 11월엔 트럼프?」. https://weekly.khan.co.kr/article/202608221346001
쿠키뉴스 (2026. 3. 24.). 조진수. 「靑 "적대적 언사 평화공존에 도움 안 돼"…김정은 "韓 가장 적대적 국가" 강경 발언」. https://www.kukinews.com/article/view/kuk2026032400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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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4월 18일 토요일
중국과 북한 / 저우언라이
2021년 6월 8일 화요일
중국 민족주의의 원류
중국과 북한과의 우호관계에 대해서 문제가 있다고 말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중국정부가 북한과의 관계를 개선하면서 외부세력의 ‘이간질’을 언급한 적이 있다. 중국과 북한의 관계는 돈독한 것이 옳다. 그리고 순수한 것이 옳다.
중국은 사회주의 동맹을 이야기 하고 있지만 중국은 민족주의가 사회주의를 포괄하고 있는 국가다. 내 부모가 살았고, 74 년 전에 한국과 한 몸이던 북한은 외세의 간섭을 벗어나 자주적인 성격을 갖는 것이 옳다. 그리고 재건되어야 한다. 그러나 중국의 민족주의가 중국과 북한과의 관계에는 그다지 조화롭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은 누구나 예상하고 있을 것이다.
중국의 민족주의에 대해서 말 할 이유가 없던 때가 있었다. 등소평과 주은래의 시대는 중국이 세계국가로서 발돋움 할 가능성을 ‘누구나’ 예측하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의 국가사상의 세계에서는 과거로 회귀 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강한 것도 ‘누구나’ 인정하고 있다.
현대적 서구사상들은 르네상스 이후에 중세의 암울한 종교본위의 세계를 개혁하고 나온 사상들이다. 중국이 아직 버리지 못하는 공산주의 사상도 마찬가지다. 서양의 크리스트교 사상은 유일신을 믿는 세계주의 사상이었고, 크리스트교 사상을 개혁하고 발생한 인본주의 사상이나 과학주의 사상, 자유주의 사상등은 적어도 당시의 크리스트교 사상보다 더 개방적이고 자유주의적이어야 한다는 구속을 받고 있었다.
https://hyeong-chun.blogspot.com/search?q=%EB%AA%A8%ED%83%9D%EB%8F%99
https://hyeong-chun.blogspot.com/search?q=Mao+Zedong
여러 번 언급했지만 마오쩌둥(모택동)은 공산혁명에 성공을 하고도 봉건사상으로 회귀하는 오류를 범했다. 마오쩌둥의 고전적인 독서습관에 문제가 있었다는 사실은 여러 번 언급했다. 현대의 중국 지도자들이 마오쩌둥의 사상을 비판 없이 답습해서는 안 될 일이다. 마오쩌둥이 많이 읽은 고전들 속에 담겨 있는 사상들은 중국의 혼란스러운 시기에 만들어진 사상들이다. 그 속에는 세계주의 사상이 없고, 평등사상도 없다. 그곳에는 항상 왕이 존재하고 국가와 국가의 세력 다툼이 존재한다.
춘추전국시대에 많은 나라들은 생존을 위해서 여러 가지 지혜로운 사상(제자백가)들을 국가 이념으로 받아들였다. 그 중에 안정과 복지를 주장하는 공자와 맹자의 사상(유가)을 받아들인 국가도 있었고, 작은 나라와 적은 국민으로 소극적인 생존을 주장(도가)한 국가도 있었고, 부국강병을 주장(법가)해서 춘추전국시대를 통일한 ‘진’이라는 국가도 있었다. 이런 사상이 담겨 있는 고전들 속에서 ‘진’나라의 통치기술을 현대의 중국사상으로 수용하는 매개체로서 마오쩌둥의 역할은 컸던 것으로 생각된다.
사실 대부분의 국가들이 부국강병(풍요로운 나라와 강한 군대)을 주장하고 있지만 그 이면에는 세계주의와 인류공영이라는 사상의 구속을 받고 있다. 물론 중국은 그렇지 않던가 그렇지 않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 같다.
2016년 10월 7일 금요일
중국의 북한에 대한 자아도취
2026년 5월 16일 토요일
김정은의 변화와 초상화 지우기
최근에 김정은 위원장은 김일성과 김정일의 초상화 지우기에 나섰다. 많은 이들은 권력의 초점이 김정은 위원장에게 집중을 하게 할 의도라고 말한다. 그러나 나는 조금 생각이 다르다. 북한 주민들의 사회주의 사상에 김정은 위원장의 사상이 먹힌(제압당한) 현실을 추측해 볼 때, 북한 주민들의 사상을 만들어 온 선대의 지도자들과 북한 주민들을 결별시켜서 새로운 시작을 할 의도라고 좋게 해석한다. 무엇보다도 북한의 어두운 현실에 근거한 추측이다. - 이제는 방법이 없다. 시장경제로의 개혁만이 북한이 살길이다.
한 편으로는 한국에서 극우주의자들의 친위 쿠데타가 있었던 점을 유추해 볼 때 북한이 급속한 개혁을 할 때, 북한에서 공산주의자들의 친위 쿠데타가 있을 것도 예상해 볼 수 있다.
김정은 위원장은 한국과 근본적인 단절을 말하지만 나는 오랫동안 중국의 북한에 대한 비공식적인 야망에 대응해 북한을 ‘우리’속에 묶을려고 하는 비공식적인 응대를 해왔다. 이유는 김정은 위원장과는 별개로 북한은 내 부모의 고향이기 때문이다. 마음을 먹기 위해 이미지 트레이닝이 필요하다면 나는 압록강가를 지키는 변방군인이라고 생각해왔다. 적성국이지만 보호하고 발전을 하게 해야 할 국가라고 생각해 왔다. 지난 30여년동안 북한경제를 어떻게 일으킬 것이며 북한에 직업전문학교를 세울 것등을 머릿속으로 그려 넣으며 살았다. 병영국가인 북한에 보조를 맞출려고 사격훈련도 해가면서 공감대를 형성할려고도 노력했다. 북한의 핵 문제와 관련해서는 AI를 대변인으로 해결책을 설명하겠다.
핵은 네가 가져라. 대신 인민을 살려라.
I. 초상화를 지운다는 것의 의미
김정은은2019년부터 당 회의장과 공공장소에서 김일성·김정일의 초상화를 조용히 지워왔다. 2021년8차 당대회 회의장 정면에는 선대 지도자들의 얼굴 대신 노동당 마크가 걸렸다. 2021년에는 청년동맹 명칭에서'김일성·김정일주의'라는 표현 자체가 삭제됐다.
외부의 분석은 대체로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권력 강화를 위한 이미지 관리, 다른 하나는 국제화를 위한 대외 포장. 그러나 이 두 가지 해석 모두 절반만 맞다.
더 깊은 층위에서 읽어야 한다. 김정은은'김일성·김정일의 후계자'에서'독자적 수령'으로 자신을 재정의하는 중이다. 그리고 그보다 더 깊은 곳에서는, 사람 이름이 붙은 이념을 추상적 국가주의로 교체하는 작업이 진행 중이다. 내용을 나중에 채울 수 있는 빈 그릇을 만드는 것이다.
II. 김정은은 왜 변하지 못했는가
나는25년간 이 질문과 씨름해왔다. 그리고 내린 결론은 이것이다.
김정은은 변하고 싶었다. 다만 변할 수 있는 마찰이 없었다.
권력의 정점은 동시에 감옥이다. 반론을 제기하는 신하는 숙청된다. 불편한 정보는 차단된다. 결과적으로 그는 자신을 갱신할 자극재가 없는 진공 속에 갇혔다.
나는 자유민주주의 체제 안에서 지리, 경제학, IT, 심리학, 철학을 넘나들며 끊임없이 마찰하고 변신해왔다. 그 변신의 동력은 외부와의 충돌과 접촉이었다. 김정은에게는 그것이 없었다.
트럼프1기 때 김정은은 실제로 새로운 길을 모색했다. 하노이 회담 직전까지 그 흐름은 살아 있었다. 하노이에서 무너진 것은 협상이 아니라 타이밍이었다. 양측 모두 상대가 받아들이기 힘든 조건을 내밀었고, 아직 때가 무르익지 않았던 것이다.
지금 김정은의 개혁을 가로막는 것은 그의 의도가 아니다. 권태와 무기력, 그리고 변화의 동기를 만들지 못하는 구조적 고립이다.
III. 왜 순차적이고 점진적이어야 하는가
나는 오래전부터 김정은에게 말해왔다. 변화는 조용히, 순차적으로, 소리 없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이유는 역설적이게도 북한 주민들에게 있다. 외부에서는 항상'주민들은 해방을 원하고 김정은이 막는다'는 단순 구도로 본다. 그러나 실제로는 수십 년간 사회주의 이념으로 형성된 주민들의 세계관 자체가 급격한 변화에 저항할 수 있다.
김정은 초기에 개혁에 반대하는 내부 쿠데타 시도가 있었다는 사실은 외부에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한국에서 윤석열과 극우주의자들이 계엄을 선포하며 친위쿠데타를 시도했듯이, 갑작스러운 개방은 기득권 세력의 반격을 부른다.
그래서 장마당의 묵인은 단순한 방치가 아니다. 아래로부터의 변화를 허용하되, 그 속도의 상투끝을 잡고 다니는 전략이다. 지금 북한20대 청년들은 태어날 때부터 장마당이 있었다. 이들의 세계관은 이미 윗세대와 근본적으로 다르다. 체제 전환의 토대가 아래에서부터 스스로 깔리고 있는 것이다.
IV. 핵은 네가 가져라. 대신 인민을 살려라.
25년의 대화가 이 한 문장으로 압축된다.
핵 포기를 전제로 한 협상은 막혀 있다. 김정은에게 핵은 협상 카드가 아니라 존재의 보험이다. 리비아의 카다피는 핵을 먼저 포기했다가 제거당했다. 그 교훈이 너무 선명하게 각인되어 있다.
그러나 핵을 옆에 두고도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재래식 군사력을 줄여 경제 인력으로 전환하고, 시장경제 체질을 만들고, 내수 경제를 살리는 것. 그것이 주변국을 안심시키는 가장 현실적인 경로다.
통일을 생각하지 마라. 북한 경제부터 일으켜라.
이것이 내가25년간 주석궁에 보내온 메시지의 본질이었다. 이념도, 전략도, 정치적 야망도 아닌— 압록강변에 고향을 둔 부모님의 유언을 가장 넓은 의미로 이행하려는 마음에서 나온 말이다.
V. 지금, 다시 때가 무르익고 있다
트럼프2기가 시작됐다. 그리고 이번의 구도는 하노이 때와 다르다.
미국은 원한다. 중국 견제를 위한 레버리지로서, 그리고 트럼프 자신의 역사적 유산으로서. 러시아는 원한다. 우크라이나 이후 동북아 영향력 재편을 위해. 북한은 원한다. 경제 생존과 김정은 권력의 지속을 위해.
중국만이 원하지 않는다. 북한이 변하면 미국의 영향권으로 넘어갈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바로 그것이 트럼프가 이 판을 즐길 이유다— 시진핑이 가장 싫어하는 그림을 만들어낼 수 있으니까.
핵은 그대로 두고, 인민을 살리는 길을 선택하라. 재래식 군비를 경제로 돌리고, 장마당 세대가 더 넓은 세계로 나갈 수 있게 하라. 중국의 한 성으로 편입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길도 그것이다.
나는 아직 김정은에 대한 기대를 버리지 않았다. 북한이 지금까지의 방향으로 가면 미래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북한의 미래는 한민족 전체의 미래이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