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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0월 14일 수요일

코스모스피는 언덕 / 대국(big picture)

어렸을때 티브이에서 칼 세건박사의 우주 다큐멘터리인 COSMOS나 SF 드라마인 버크 로져스를 즐겨보았다. 나는 청소년기를 그 때문에 쉽게 산 것 같았다. 그리고 학창 시절에는 헤르만 헤세의 싯다르타나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그리고 고려원 출판사에서 나온 니코스 카잔차키스 전집을 즐겨 읽었는데, 우주적 세계관에 이어 종교적 세계관까지 일찍 형성된 것 같았다. - 버크 로져스에 나오는 윌마 대령같은 우주여군이랑 결혼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데, 내가 탄 우주선인 지구호가 기관고장을 일으켜 동면이 된 내가 500년후에 깨어나야 가능할 것이다.

 

대충 그 날 이후 이념적인 분쟁, 국가적 분쟁등은 욕망과 선동에 의한 지엽적인 사건으로 보였다. 나중에 푸틴 대통령은 유도를 통하여, 김정은 위원장은 사격을 통하여 자신의 카리스마를 보여주거나 에너지를 얻을려는 시도를 보면서 그런 무력시위는 한계가 있을거라는 생각을 하였다. 나같은 한국의 하찮은 인물도 운동에 어떤 능력이 있을거라는 생각을 하면 더욱 그렇다.

 

우리는 많은 지엽적 관점을 버려야 한다.


오늘은 세계관에 대해서 말해보자. 항상 중국인의 중화적 세계관은 위태로워. 왜 그들은 대국적이지 못할까. 그리고 한국에는 왜 아직도 지역적인 분열을 추구하는 의견들이 있는걸까. 일본과 같은 나라는 왜 국수적일까. 북한은 왜 이념을 버리지 못할까. 왜 러시아는 경제적인 통합보다 영토적 통일을 우선적으로 추구하는가. 그건 교육의 탓이 아닐까? 세계관을 좁힌 교육 말이다. 나중에 그건 발전을 가로막는 부메랑으로 돌아오지 않을까?


인공지능에게 이렇게 토론의 시비를 걸었다. 미국의 인공지능인데 오늘은 미국의 이라크 침공등에 대해서도 시비를 걸었다. 인공지능은 세계관이 넓은 유사적 인간이다.



판의 크기가 나라의 크기다


좁은 세계관의 교육은 왜 부메랑이 되는가

이형춘

[서두: 필자가 별도로 작성]

1. 다섯 개의 좁은 판

중국은 스스로를 판의 한가운데에 놓는다. 중화(中華)라는 이름이 이미 그렇다. 러시아는 판을 지도 위의 면적으로만 읽는다. 북한은 판의 경계를 체제의 경계와 일치시켰다. 일본은 판을 열도 안으로 접어 넣었다. 그리고 한국에는 아직도 판을 도(道) 단위로 쪼개려는 목소리가 있다.

원인은 같지 않다. 러시아의 영토 집착은 자연 방벽 없는 대평원이라는 지리에서 자랐다. 북한이 이념을 버리지 못하는 것은 이념이 곧 체제의 존재 이유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지역주의는 교과서가 아니라 개발의 불균형과, 그것을 표로 바꾼 정치가 만들었다. 그러나 결과는 하나로 모인다. 판의 일부를 판 전체로 착각하는 것이다.

이 잣대는 누구에게나 똑같이 적용되어야 한다. 미국의 예외주의 서사와 한국의 단일민족 교육도 판을 좁히기는 마찬가지다. 남의 좁은 판만 지적하는 것 자체가 또 하나의 좁은 판이다.

2. 좁은 교육은 추격의 엔진이었다

불편한 사실부터 인정하자. 좁은 세계관을 심는 교육은 한때 발전의 동력이었다. 메이지 일본은 1890년 교육칙어로 국민을 국가에 묶었다. 개발 시대의 한국은 민족과 조국을 앞세워 압축성장을 이뤘다. 중국은 1994년 「애국주의교육 실시요강」으로 개혁개방기의 결속을 다졌다.

추격 단계에서는 이것이 통한다. 앞서 간 나라가 판을 이미 그려 놓았기 때문이다. 목표는 분명하고, 내부 결속은 곧 효율이 된다. 판을 읽을 필요 없이 따라 그리기만 하면 된다.

3. 선진 단계에서는 족쇄가 된다

문제는 선두에 섰을 때다. 이제는 아무도 판을 그려 주지 않는다. 혁신과 공존은 바깥을 이해하는 능력에서 나온다. 그런데 좁은 판으로 훈련된 눈은 바깥을 위협으로만 본다.

오늘날 중국이 겪는 마찰이 그렇다. 경제는 세계적 규모로 커졌지만, 세계를 읽는 눈은 그만큼 커지지 않았다. 이른바 전랑외교는 주변국의 경계심을 키웠을 뿐이다. 추격의 엔진이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는 장면이다. 이 부메랑은 남의 일이 아니다. 추격 단계를 막 벗어난 한국이야말로 가장 먼저 그 부메랑을 맞을 수 있는 나라다.

4. 대국관: 판을 넓히고 자기를 낮추다

여기서 말하는 대국(大局)은 큰 나라(大國)가 아니다. 바둑의 대국관처럼 판 전체를 읽는 시야다. 그리고 판 전체를 읽는 일은 판의 중심에 서는 일과 정반대다. 중심에 선 자에게는 자기 시선이 닿는 방향만 보인다.

중국의 천하관(天下觀)도 스스로는 세계 전체를 말했다. 그러나 천하관은 판 전체를 자기 것으로 삼는 방식으로 넓었다. 1990년 보이저 1호가 약 60억 킬로미터 밖에서 찍은 지구는 한 화소에도 못 미치는 점이었다. 칼 세이건은 그 작은 점 위에서 인류가 영토를 두고 피를 흘려 왔음을 일깨웠다. 판이 넓어질수록 자기는 작아진다.

그러므로 대국관은 판을 넓히는 동시에 그 안에서 자기를 낮추는 능력이다. 판만 넓히면 제국이 되고, 자기만 낮추면 무력감이 된다. 둘이 함께 갈 때 공존의 자리가 생긴다. 그리고 이 판은 역사 어딘가에 완성된 채 놓여 있지 않다. 역사가 발전해 온 과정이 곧 판이 넓어져 온 과정이다. 대국관은 정답이 아니라 방향이다.

5. 전쟁은 좁은 판의 제로섬에서 나온다

전쟁은 희소가치를 둘러싼 싸움이다. 영토는 나누면 줄어든다. 무역과 기술은 나눌수록 커진다. 판이 좁은 자는 세상을 고정된 파이로 보고, 판이 넓은 자는 파이를 키울 수 있다고 본다. 러시아가 경제 통합조차 영토적 통제의 수단으로 쓰는 것은 이 때문이다. 대국의 눈으로 보면 전쟁은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많고, 그 후유증은 대를 이어 남는다.

그런데도 전쟁은 일어난다. 계산이 없어서가 아니다. 1910년 노먼 에인절은 경제적으로 얽힌 유럽에서 전쟁은 모두에게 손해라고 논증했다. 4년 뒤 제1차 세계대전이 터졌다. 계산은 이미 나와 있었다. 선동과 욕망이 그 계산을 덮었을 뿐이다.

선진국도 예외가 아니다. 2003년 미국은 이라크가 대량살상무기를 보유하고 있다는 주장 위에서 침공을 감행했다. 그 무기는 끝내 발견되지 않았다. 경제가 발전한 나라와 의식이 발전한 나라는 다르다. 선진국도 선동 앞에서는 소국이 된다.

6. 선동에 대한 면역으로서의 교육

그렇다면 대국관은 국가가 한 번 얻으면 영원히 보유하는 지위가 아니다.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이 매번 지켜내야 하는 상태다. 그것을 지키는 것이 교육이다.

다만 그 교육은 넓은 결론을 주입하는 교육이 아니다. 애국주의 교육은 결론을 먼저 주었다. 결론만 바꿔 넣는다고 달라지지 않는다. "넓게 생각하라"고 가르치는 것은 또 하나의 주입일 뿐이다. 필요한 것은 규모를 직접 보게 하고 스스로 결론에 이르게 하는 교육, 그리고 누가 내 눈을 가리고 있는지 알아채는 힘을 기르는 교육이다. 선진 단계의 교육은 세계관의 공급자가 아니라 선동에 대한 면역 체계여야 한다.

7. 평화의 책임은 큰 그릇에 있다

큰 그릇은 작은 그릇을 통찰하지만, 작은 그릇은 큰 그릇을 보지 못한다. 작은 그릇은 큰 그릇의 자제를 약함으로 읽는다. 그래서 평화의 책임은 비대칭적이다. 판을 넓게 보는 쪽이 먼저 읽고, 먼저 자제해야 한다.

그러나 자제는 무력함이 아니다. 『도덕경』은 훌륭한 무사는 무용을 드러내지 않는다고 했고, 『손자병법』은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을 최상으로 쳤다. 스트롱맨의 힘은 과시에서 나온다. 힘을 지도자만 가진 희소한 것으로 연출하는 데서 나온다. 큰 그릇의 힘은 그 과시를 무력화하는 데서 나온다. 힘은 희소하지 않으며, 세상에는 말없는 고수가 많다는 사실을 아는 데서 나온다.

욕망과 선동은 결국 자기 입지를 좁힌다. 판을 넓히는 나라만이 판 위에서 오래 살아남는다. 평화는 약자의 소망이 아니라 큰 그릇의 선택이다.

참고문헌

노자. 『도덕경』, 제68장.

손무. 『손자병법』, 모공편(謀攻篇).

최장집.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 서울: 후마니타스, 2002.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애국주의교육 실시요강」(愛國主義教育實施綱要), 1994.

일본 문부성. 「교육에 관한 칙어」(敎育ニ關スル勅語), 1890.

세이건, 칼. 『창백한 푸른 점』. 원저: Pale Blue Dot: A Vision of the Human Future in Space. New York: Random House, 1994.

에인절, 노먼. 『대환상』. 원저: The Great Illusion. London: Heinemann, 1910.

저비스, 로버트. 「안보 딜레마 하의 협력」. 원저: "Cooperation under the Security Dilemma." World Politics 30(2), 1978.

러셋, 브루스. 원저: Grasping the Democratic Peace. Princeton: Princeton University Press, 1993.

왕정(汪錚). 원저: Never Forget National Humiliation: Historical Memory in Chinese Politics and Foreign Relations. New York: Columbia University Press, 2012.

마셜, 팀. 『지리의 힘』. 원저: Prisoners of Geography. London: Elliott & Thompson, 2015.

미 중앙정보국 이라크 조사단. 「듀얼퍼 보고서」. 원저: Comprehensive Report of the Special Advisor to the DCI on Iraq’s WMD,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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