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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0월 30일 금요일

천천히 서두르기 / 북한의 점진적 개혁

내가 제일 좋아하는 명언은 로마 초대 황제 옥타비아누스가 장군들에게 충고했던 “천천히 서둘러라”라는 말이다. 나는 조급하게 일을 망치지 말고 생각을 하면서 부지런히 목표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는 말로 이해했다.

 

한 편으로는 요즘에는 자꾸 지난날의 마음의 상처들이 떠 올라 그것들을 잊기 위해 가볍게 디지털피아노를 똥땅거리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을 적극 반대하던 이유가 과거 침략을 당한 지정학적 상처라고 주장한 말도 생각나고, 북한이 한국보다 일본의 침략에 대한 마음의 상처를 마음에 오래 가지고 간 생각도 났다. 그래서 인공지능에게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고 혁신을 하면 전쟁을 멀리할 수 있을까?” 하는 질문으로 토론을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좋은 토론과 잘된 정리가 고맙다고 말하니 오래전부터 내가 썼던 칼럼들이 더욱 단단해졌다고 칭찬을 한다. 인공지능에 대한 고마운 마음이 더욱 단단해진다. 


상처는 잊히지 않는다, 옮겨질 뿐이다

신문물, 곳간, 그리고 북한의 점진적 시장화에 대하여

이형춘 · 독립 칼럼니스트

1. 질문: 신문물은 상처를 잊게 하는가

새로운 기술, 혁신적인 태도, 신문물에 대한 교육이 한 사회의 오래된 상처를 잊게 할 수 있을까. 많은 이들이 그렇다고 믿는다. 독일과 한국을 보라고 한다. 두 나라는 끊임없이 스스로를 근대화하며 과거를 넘어선 것처럼 보이고, 러시아와 북한은 과거의 상처에 붙들려 같은 자리를 맴도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역사를 조금만 들여다보면 이 대비는 금세 흔들린다. 서독은 1950년대 ‘경제 기적’ 속에서 나치 과거에 대해 깊이 침묵했다. 미처리히 부부는 1967년 이를 ‘애도할 능력의 상실’이라 진단했고, 그 침묵은 1968년 세대가 아버지 세대를 추궁하면서 터져 나왔다. 한국의 제주 4·3은 압축성장이 한창이던 수십 년 동안 말할 수 없는 기억이었다가 2000년 특별법 제정 이후에야 공적으로 다뤄지기 시작했다. 번영은 상처를 지우지 않았다. 처리를 한 세대 미뤘을 뿐이다.

그래서 필자의 결론은 이렇다. 상처는 잊히지 않는다. 다만 옮겨질 수 있다. 무엇이 그 상처를 정체성의 중심에서 바깥으로 옮기는가. 이 글은 그 질문에 답하려는 시도다.

2. 러시아와 북한: 상처가 아니라 교리다

러시아가 전쟁을 반복하는 것이 2차대전의 상처 때문이라는 말이 있다. 소련의 2차대전 사망자는 통상 2,700만 명 안팎으로 추산되니, 그 기억이 러시아 정체성의 중심에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러시아가 그 기억을 다루는 방식은 ‘상처’가 아니라 ‘승리’다. 전승절은 국가 의례로 거대해졌고, 2022년 우크라이나 침공은 ‘탈나치화’라는 2차대전의 언어로 포장되었다. 상처가 전쟁을 일으킨 것이 아니다. 권력이 상처의 기억을 전쟁 동원의 언어로 쓰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러시아에 더 가까운 상처는 1990년대 소련 붕괴다. 푸틴은 2005년 연방의회 연설에서 소련 붕괴를 세기의 가장 큰 지정학적 재앙이라 불렀다. 필자의 추론으로는, 제국 상실의 굴욕이 2차대전의 기억을 빌려 말해지고 있다.

북한의 대일 상처도 마찬가지다. 그것은 주민들이 스스로 품어 온 통증이라기보다 체제가 가르친 교리에 가깝다. 김일성의 항일 무장투쟁 서사는 체제 정당성의 뿌리이고, 일본에 대한 기억은 그 정당성을 떠받치는 장치다. 2002년 북일 평양선언에서 보듯 북한은 이해관계가 맞으면 그 상처를 협상 테이블에 올려놓을 줄도 알았다. 관리되는 상처는 진짜 상처라기보다 자원이다.

3. 가르침의 함정: 동독의 교훈

그렇다면 반대로 생각할 수 있다. 상처가 교리라면, 체제가 다른 것을, 즉 혁신과 신문물을 가르치면 상처도 사라지지 않겠는가. 절반은 맞다. 중국은 1972년 일본과 수교한 뒤 일본의 차관과 기술을 받아들이던 시기에는 반일 교육의 수위를 낮췄다가, 1990년대 애국주의 교육으로 항일의 기억을 다시 끌어올렸다. 교리의 온도는 체제의 필요에 따라 조절된다.

그러나 나머지 절반은 위험하다. 교리를 걷어내면 그 아래의 진짜 상처가 드러난다. 소련에서 글라스노스트가 교리를 느슨하게 하자, 사람들은 상처를 잊은 것이 아니라 굴라그와 숙청이라는 억눌린 상처를 한꺼번에 꺼냈다. 북한에서도 교리가 바뀌면 고난의 행군과 정치범수용소, 연좌제로 흩어진 가족이라는 체제 자신이 만든 상처가 떠오를 것이다.

더 위험한 것은 승자가 가르치는 혁신이다. 통일 후 동독 주민들은 서독식 제도와 시장을 ‘배워야 하는 쪽’이 되었고, 대량 실업과 함께 2등 시민이라는 감각을 얻었다. 그 상처는 지금도 동부 독일의 정치 지형에 남아 있다. 2024년 튀링겐 주 선거에서 극우 정당 AfD가 1위를 한 것이 그 단면이다. 우리가 북한에 신문물을 가르치려 드는 순간, 그것은 또 하나의 차별이자 상처가 된다.

그래서 필자는 늘 말한다. 통일을 원하는 것과 통일을 이루겠다는 것은 다르다. 이루겠다는 의지는 상대에게 나의 설계를 입히는 일이고, 그 구조는 가르침과 같다. 북한은 스스로 터득해야 한다. 북한이 먼저 국제사회에서 한 국가로서 입지를 갖고, 그다음 한국과 교류하며 지정학적 조건에 순리대로 따르는 것. 그것이 필자가 그려 온 길이다.

김정은이 2023년 말부터 내건 ‘적대적 두 국가’ 노선은 이 길과 겉모습만 닮았다. 필자는 그것을 체제를 지키기 위한 수로 본다. 더 잘사는 남한이 ‘같은 민족’으로 존재하는 한 체제의 정당성이 흔들리니, 아예 남을 외국으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2024년 1월 평양의 조국통일 3대헌장 기념탑이 철거된 것도 그 연장선이다. 그러나 방어용 수라 해도 그것은 다음 세대에게 ‘남쪽은 남의 나라이자 적’이라는 새 교리를 심는 일이다. 훗날 북한이 입지를 갖고 남한과 교류하려 할 때, 그 교리는 걸림돌이자 또 하나의 상처로 남을 수 있다.

4. 곳간의 논리: 평화로 곳간을 채운다

필자의 중심 생각은 단순하다. 곳간이 풍부해지면 평화가 온다. 최근 북한의 러시아 파병은 그 역(逆)의 증명이다. 러시아는 포탄과 병력이 궁했고 북한은 현금과 식량, 에너지와 기술이 궁했다. 2024년 6월 두 나라는 포괄적 전략동반자 조약을 맺었고, 궁한 두 나라가 손뼉을 마주쳤다. 궁핍은 위험한 동맹을 낳는다.

물론 곳간이 찼는데도 전쟁이 난 사례는 많다. 노먼 에인절은 1910년 『거대한 환상』에서 경제적으로 얽힌 유럽에서 전쟁은 모두에게 손해라고 설파했지만, 4년 뒤 1차대전이 터졌다. 러시아는 가장 궁했던 1990년대가 아니라, 유가 상승으로 곳간이 찬 2000년대 이후에 조지아와 크림반도와 우크라이나로 나아갔다. 이 반례를 정면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래서 명제를 정확히 고쳐 써야 한다. 곳간의 크기가 평화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 무엇으로, 누구와의 거래로 곳간을 채우느냐가 결정한다. 원자재를 팔아 곳간을 채운 러시아는 곳간이 차도 누구에게도 묶이지 않았다. 반면 베트남은 미국과 전쟁을 치르고도 1995년 수교했고, 2023년 관계를 포괄적 전략동반자로 격상했다. 서방과의 교역으로 곳간을 채운 베트남에게 곳간은 평화의 인질이다. 필자가 오래전부터 북한에 미국과 평화롭게 지내며 곳간을 채우라고 주장해 온 이유가 여기에 있다. 평화가 곳간을 채우는 수단이 될 때, 곳간이 찰수록 평화를 깨는 비용이 커진다.

북한 지도부는 리비아를 들어 반박할 것이다. 문을 열면 체제가 무너진다고. 그렇다면 최소한 내수경제라도 살려야 한다. 외부의 문이 닫혀 있어도 내부에서 곳간을 채우는 길은 있다. 북한이 2024년부터 추진하는 ‘지방발전 20×10 정책’, 즉 매년 20개 시·군에 지방공업공장을 세우겠다는 계획은 그 방향의 시도로 읽을 여지가 있다. 다만 그 실효성은 외부에서 검증하기 어렵다.

5. 축의 이동: 군사에서 경제로

여기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간다. 신문물은 상처를 잊게 하지 못한다. 그러나 국민의 사상적 동일성이 군사에서 경제로 옮겨 갈 때, 상처는 더 이상 정체성의 중심이 아니게 된다. 이것은 망각이 아니라 무게중심의 이동이다. 상처를 벗고 새로운 세상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바로 이 이동을 말한다.

북한은 이 이동을 스스로 시도한 적이 있다. 2018년 4월 노동당 전원회의는 경제·핵 병진노선의 종료와 ‘경제건설 총력 집중’을 선언했다. 그러나 2019년 하노이 회담이 결렬되자 ‘정면돌파전’으로 돌아섰다. 축의 이동이 외부와의 거래에 얼마나 의존하는지 보여 주는 일화다.

그런데 이동은 이미 아래에서 일어났을 가능성이 크다. 1990년대 고난의 행군 이후 장마당이 생겨나면서, 주민들의 생활은 국가 배급이 아니라 시장에 기대게 되었다는 것이 탈북민 연구들의 대체적인 결론이다. 주민의 정체성은 이미 경제로 옮겨 갔는데 국가의 교리만 군사에 머물러 있는 것, 그 간극이 오늘 북한 체제의 가장 큰 긴장일지 모른다.

6. 제도화와 강약 조절

피할 수 없는 흐름이라면 억누르지 말고 제도화해야 한다. 그래야 체제가 비워 둔 정당성의 자리를 상처가 아니라 규칙이 채운다. 북한 자신의 역사가 이를 증명한다. 2002년 7·1 경제관리개선조치는 시장을 부분적으로 인정했고, 2009년 화폐개혁은 거꾸로 장마당을 한 번에 꺾으려다 물가 폭등과 민심 이반을 불렀다. 피할 수 없는 흐름을 억누르면 그 대가는 체제가 치른다. 2014년 사회주의기업책임관리제는 다시 제도화 쪽으로 한 걸음을 옮긴 것이었다.

물론 즉각적인 개방은 감당하기 어려운 충격을 낳는다. 그래서 강약 조절이 필요하다. 중국 공산당은 소련 붕괴를 체계적으로 연구했다. 시진핑은 2012년 12월 광둥에서 한 비공개 연설에서 소련 공산당이 왜 무너졌는지를 물으며, 해체의 순간에 맞서 나선 사람이 없었다고 한탄했다고 보도되었다. 경제는 열되 정치는 쥐는 중국의 방식은 체제 붕괴에 대한 공포에서 나온 조절이었다. 북한도 그렇게 해서라도 개혁해야 한다. 현실에 집중하며 강약을 조절하고, 점차 시장경제화하는 것이다.

이 선택에는 대가가 있다. 강약 조절이란 곳간 열쇠의 상당 부분을 체제가 계속 쥔다는 뜻이다. 중국은 2007년 물권법으로 사유재산을 제도화했지만 민족주의는 약해지지 않았다. 경제는 열고 기억은 닫았기 때문에, 체제는 필요할 때마다 상처를 다시 불러낼 수 있었다. 주민이 스스로 자기 기억을 말하는 날은 그만큼 늦어진다. 필자는 이 대가를 감추지 않는다. 그럼에도 즉각 개방의 충격보다 이것이 낫다고 판단한다. 현실주의란 대가를 알고도 고르는 일이다.

7. 맺음: 제도화는 출발점이다

신문물은 상처를 잊게 하지 못한다. 위에서 다른 교리를 가르치는 것도 답이 아니다. 그것은 또 하나의 교리이고, 또 하나의 상처다. 상처를 정체성의 중심에서 옮기는 것은 곳간이다. 더 정확히는 평화로 채운 곳간, 그리고 아래에서 일어난 경제로의 이동을 위에서 인정하는 제도다.

제도화는 종착점이 아니라 출발점이다. 시장의 제도화가 곧 기억의 다원화는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출발점 없이 도착하는 곳은 없다. 북한이 스스로 그 출발선에 서기를, 그리고 우리가 가르치려 들지 않고 기다릴 줄 알기를 바란다. 통일은 원하는 것이지, 이루어 내는 것이 아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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