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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2월 5일 금요일

의욕의 군주 / 강희제

30여년전 어느 깊은 밤, 시골의 열차역에서 내려 손전등도 없이 산길을 걷고 있었다. 세상과 담을 쌓고 살아가는 부친을 만나기 위해서 두어시간 겨울바람 소리를 들으며 걷고 있었는데, 어린 나이에 무섭다기 보다 화가 났다. 도대체 부친은 뭐 때문에 저러고 계시는지, 나는 이 밤에 왜 혼자 산길을 걷고 있는지, 알것같으면서도 말로 표현을 할 수 없는 감정이 복받쳐서 숲이 우는 소리도 감성적으로 들리지 않았다. 지금은 어느 정도 알고나서 정확히 언어로서 규명하건데 단순하지 않은 민초들을 무기력하게 만드는 이념이나 정치행태는 감성적인 문제가 아니라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교정해야 할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

북한 이전 지도자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요리사였던 후지모도 겐지의 회고록을 읽은 적이 있었는데, 매우 감각적이고 감성적인 김정일 위원장은 영화, 서커스, 술, 외로움,기쁨조, 미각등과 친근한 것으로 서술되어 있었다. 그 전에도 무리해서 통큰 정치를 표방하며 동양최대의 유경호텔을 짓는다거나 아리랑대축전같은 거대공연등을 행사하는등 상징정책에 지나치게 치중하는 비합리적인 모습을 보이는 면이 있어서 비합리적인 군주로서 역할이 수백만의 인민들을 고난의 행군시기에 아사(餓死)시킨 비합리적인 결과를 이룬것은 당연한듯 싶었다. 군주국가와 같은 곳에서 군주같은 지도자의 파행은 국가와 인민의 파행을 의미하는 것은 당연했다. 후지모도 겐지는 차기 북한의 지도자로서 김정은 국방위원장을 예고하고 있었는데, 어린 나이에도 일본인인 후지모도 겐지에게 일본의 풍요로움과 북한의 궁핍함을 비교하며 여러가지 고민을 상담했던 점을 이야기하고 있다. 문제와 해결방법을 일찌감치 배려하고 있었던 점에서 김정일 위원장과 다른 점을 이야기 하고 있었다.

지나간 일은 지나간 일이고, 한국이나 북한이나 마지막 희망은 서로에게 있는듯 하다. 이념이나 권력이 중요한것도 아닌듯 하다. 심지어는 통일도 중요하지 않은듯 하다. 상호간의 협력이 가져오는 시너지 효과로 굶어죽는 인민은 없도록 하고, 불행한 국민은 행복한 국민으로 만드는 일이 한반도의 정치적인 과제인듯 하다. 내 부친은 극단적인 경우지만 한반도의 민중들은 이념, 분단, 정치행태때문에 모두 불행한 피해자가 된듯 하다.

군주이야기가 나오니 청나라 황제 강희제(재위기간 1661~1722) 생각이 난다. 강희제는 스스로가 인재다. 중국역사상 가장 위대한 군주로 알려져 있다. 청나라는 만주족이 세운 나라인데, 만주족은 한족에 비해 강건한 기상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소수의 만주족으로 백여배의 한족을 통치하기 위해서 항상 긴장을 하고 자기 성찰을 한 만주족의 황실은 매우 검소하고 절제하였다고 한다. 일설에는 청나라 황실의 일년 비용이 명나라 후궁의 일년 비용이랑 비숫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런 청나라의 황제중에서도 강희제는 더욱 엄격했다고 한다. 제대로 수면을 취할 시간도 없이 국사(國事)를 돌보며 꾸준히 무예수련을 하고, 외부 정복활동시에는 항상 친정을 하며 앞장을 섰다고 한다.

일곱살에 황제로 즉위한 이후 아버지 순치제의 유언에 따라서 색니(索尼), 소극살합(蘇克薩哈),알필륭(謁必隆), 오배(鰲拜)등의 신하가 고명대신(顧命大臣)으로 섭정을 했는데, 이들 중 오배가 정권을 가지고 있었다. 당시 청나라는 건국한지 20년이 지나지 않은 상태에서 남쪽의 삼번세력과 대만의 정성공, 서쪽의 티베트, 북쪽의 몽골족, 동북의 러시아, 서북부의 준가르부의 압박을 끊임없이 받고 있었는데, 강희제는 열여섯살이 되어서 오배일당을 제거하고 친정(親政)을 하게 되었다.

오배일당에게 실권을 빼앗긴채로 지내던 어린시절의 강희제는 정치를 하지 않는(못하는)대신 독서와 사색과 무예수련을 하면서 자유롭고 폭넓은 관점을 지닐 수 있었다고 한다. 훗날, 유학을 고증학으로 발전시킨 사고전서나 강희자전을 편찬한 실사구시의 업적을 이룬 점이나 직접 독학으로 역법을 익혀 구역법의 오류를 지적하고 신역법을 추진하여 영리한 카리스마를 보여주며 대신들을 휘어잡을 수 있었던 문리적(文理的)인 능력도 자유로운 소년기의 자발적인 교육이 만들었다고 역사가들은 말한다.

삼번의 난을 평정할때는 조정의 대신들이 오삼계의 강한 반란군에 항복할 것을 권유하거나 장강 이남의 영토를 반군에게 할양하자는 의견을 보일 정도로 어려운 처지였음에도 불구하고 인질로 북경에 남아있던 오삼계의 두 아들을 주살함으로써 배수의 진을 치고 오삼계의 강한 반군과 어쩔 수 없이 싸워야 하는 상황을 만드는 결단력을 보여줬다고 한다. 이때 상대적으로 적은 군대를 오삼계가 지휘하는 중군(中軍)을 집중적으로 공략하게 함으로써 나머지 반란군을 오합지졸로 만드는 전략을 펴서 반군을 진압했다고 한다. 이때 강희제의 나이가 28세였는데, 정치가로서 천부적인 소질이나 자발적인 교육의 결실을 일찍 보았다는 역사가들의 평이다.

현대국가의 정치지도자들이 아직도 관념이나 아집속에서 끈적거리고 있다면 강희제를 연구해보면 좋을 것 같다. 

2024년 10월 24일 목요일

실사구시의 지도자와 남북한

이형춘(Hyeong Chun Lee): 강희제에 대한 검색결과

이형춘(Hyeong Chun Lee): 김정일에 대한 검색결과


정치지도자의 정신이 집중이 되지 않는 상태라면 지도자의 자리를 빨리 내놓아야 한다. 한국은 자원, 지리, 정세등이 믿고 의지할만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러시아가 자국의 역사를 후퇴 시킬만한 희생을 치르면서도 우크라이나와 전쟁을 계속하는 이유는 자원이 풍부하기 때문이다. 북한은 한국 경제규모의 2%도 안되지만 버티고 있는 이유는 기본자원이 있기 때문이다. 이 두 나라는 자원 말고도 끊임없이 집중의 묘를 찾고 있는 중이다. 아마 김정은 위원장은 사회주의가 이미 운명을 다한 이념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국가존속에 필요한 집중을 끌어내기 위한 단기처방으로 사회주의를 강조하고 있을 것이다.

 

선량한 종교나 선량한 믿음이 나쁠리 없다. 그러나 의지와 집중이 개입하지 않은 채로 정신을 방치한 구복신앙과 같은 믿음은 단기적인 마취감만 줄 뿐 문제의 해결에 도움을 주는 집중력을 결여하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파국을 예고하고 있을 것이다.

 

역사상 최고의 지도자중의 한 명이라는 중국 청나라의 강희제는 실사구시를 신봉하는 정치가였다. 끊임없이 문제를 고민하고 해결하는 방법을 찾았다. 강희제는 만주족의 강건한 기질을 지니고 구태의연한 관념 사회였던 한족 사회의 문제점을 개혁하기 위해 끊임없이 과학적 탐구를 하였다. 나는 청년기에 읽은 어느 역사책의 청나라 부문에서 부재로 달린 한 귀절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청나라 1년의 궁정 비용이 명나라 후궁 한명의 궁정 비용과 맞먹었다.’ - 법문사에서 출판한 [문화사개론] -

 

현재 북한과 한국의 정부 수반들은 빨리 이해해야 한다. 북한이 쇠퇴하는 전환점이 된 것은 정확한 탐구와 분석이 안된 경제정책 몇 건과 김정일 위원장의 퇴락적인 분위기가 결정적인 문제가 되었다. 한국도 현재 이런 상황을 겪고 있는 것은 한국민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2024년 4월 13일 토요일

사상의 진화 / 성리학과 한반도

실용적인 관점으로 생각하면 한국에 막심한 폐해를 안겨주었던 유교는 발상지인 중국에서는 진화를 거듭해 왔다.

 

원래 중국 춘추 전국시대의 어지러운 세상을 교정하려는 사상이 많이 나왔는데, 그 중에 유교(유가)는 가장 합리적이고 실용적이었다. 활국구민(活國救民/ Lets protect the national system and save the people)을 중시하고 그 행동강령으로 충(/loyalty to the king)을 중시하며 중앙집권성과 계급제도의 기반을 마련했다.

 

중국의 송나라를 건국한 송태조 조광윤은 당나라가 변방 사령관인 절도사들에 의해 망하는 것을 보았기 때문에 중앙집권성을 강화하기 위해서 문신들을 최대한 활용하여 성리학이란 유학사상을 정립하여 왕권과 계급사회를 더욱 강화시키고 실용성을 줄여 나갔다. 덕분에 중국의 송나라는 변방 유목민족인 거란과 여진에게 조공을 바치고 침략을 당하다가 결국 유목민족인 몽골에게 멸망당하는 역사를 가지게 되었다.


하필이면 송나라에게 조공을 받던 거란은 고려침략에 실패해서 망하고 여진은 응전태세가 완벽한 고려의 국방력을 매우 두려워하였다. 그러나 고려는 말기에 송나라에서 들어온 성리학을 공부한 신진 사대부들이 많이 생겨서 이들이 조선건국의 기반이 되었다. 때문에 조선은 한층 더 강력한 중앙집권성과 한층 더 약화된 실용성을 기반으로 가늘고 길게 왕권을 유지하다가 폐업했다. 


그러나 성리학은 중국의 명나라때 와서는 지행합일(知行合一 /Knowing and acting must be combined)을 중시하는 양명학으로 발전을 하여서 조금씩 실용성을 갖추더니 유목민족인 만주족(여진족)이 건국한 청나라때 와서는 그 분위기에 맞게 실사구시(實事求是/ Seek truth based on facts)를 중시하는 고증학으로 진화였다.

 

청나라의 성군(成君/ Accomplished king)인 강희제는 본인이 직접 무예를 연마하며 과학기술을 연구하였다. 중국의 영토를 친히 정복을 하여 확장시키고 이후 옹정제와 건륭제까지 전성기를 보내다가 절대 다수이며 별로 강건하지 못한 피지배 민족인 한족에게 동화되어 폐업의 길을 가게 되었다.    


이형춘(Hyeong Chun Lee): 강희제에 대한 검색결과 (hyeong-chun.blogspot.com)


훗날 청나라 고증학의 실사구시 사상은 한국의 조선에 들어와서 실학(實學 / A practical study)이란 실용적 학문으로 연구되어 말만 살아있는 조선사회를 개혁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워낙 성리학이 사회에 깊게 뿌리내린 조선은 어떤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는 성리학적 계급사회를 끈질기게 유지시켜 나갔다. 그래도 세종 같은 과학적인 조선의 군주는 한글을 만드는 등 후손에게 큰 유산을 물려주는 경우도 있었다. 

 

훗날 참혹했던 마오쩌둥의 중국 공산당을 개혁시킨 저우언라이는 이 역사적 배경을 잘 이해하고 실사구시를 내세우며 오늘의 중국으로 개혁 시키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

 

하지만 한국은 아직도 성리학의 계급주의와 중앙집권성 그리고 보수성을 극복하지 못하고 이념이나 종교의 형태로 변성하여 말만 살아있는 한국으로 갈려는 움직임이 있어왔다. 한국의 민중들과 정치인들은 각성해야 한다. 요즘 한국에서 거란과 고려의 전쟁에 대한 드라마가 나와서 무척 재미있게 본 경험이 있다. 고려는 통일 한국의 모습이었고, 실용성 없는 말과 관념에 휘둘리며 분단된 한반도에 시사하는 점이 많다고 해야 할 것이다.           

2014년 6월 13일 금요일

합리성에 저항하는 한국사회


18세기 무렵 조선에서 야인이라 불리던 만주족이 세운 청은 급속히 발전하기 시작했다. 만주족으로부터 두번의 침략을 받은 조선은 북벌을 계획했지만 팽창하는 청의 국력을 감당하기 어려웠다. 청은 중국의 전통적 통치원리인 유교사상을 실사구시(實事求是)의 정신을 기본으로 하는 고증학(考證學)으로 발전시켜 새로운 문화를 개척하며 강희제, 옹정제, 건륭제 3대 황제 통치하의 130년동안 최전성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양반사회이자 성리학 사회인 조선은 당시 붕당정치에서 배제된 지식인들이 청나라 고증학의 실사구시 정신을 연구하여 실학이란 이름으로 현실을 개선하고자 노력했지만 성리학의 관념적이고 보수적인 양반사회였던 조선은 실학이란 새로운 합리성에 대해서 강하게 저항하였다.

그로부터 2세기~3세기가 흐른 후에도 한국사회는 합리성에 대해서 저항하는 모습을 많이 보여주고 있는데, 최근에 와서 국가적 재난에 종교가 개입된 문제라든지, 국정을 위해서 일을 할 사람을 인선(人選) 하는 문제에 있어서 종교적인 인물이 추천되는 사례도 있고, 심지어는 이전에 종교편향적인 정치지도자가 나타나 국가분위기를 침체시키기도 한 사례가 있는듯 하다. 

어느 홈페이지에서 이런 문제를 토로하니 어떤 종교인이 현대는 문화지체현상이 심각해 종교가 물질문명의 문제점을 보완해준다고 말한다. 사실 옳은 말이다. 종교가 문화지체현상을 해결해주거나 공공의 선으로 부담감없이 수용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종교인으로서 직접 뵙고 감명을 받아 내 자신을 조금이나마 선량한 정신으로 인도해준 분도 계시다. 

한국전쟁 당시에 뙤놈이란 멸시를 받은 침략자였던 중국인들이 지금은 국가정책으로 과학기술에 집중하며 모든 과학기술 분야에서 한국을 압도해 나가는 동안, 한국은 이념이란 관념과 종교라는 관념이 다른 가치에 우선하는 사회를 벗어나지 못하는듯 하다. 심지어는 한국사회는 합리성에 저항하는 사회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어떤 종교인들은 이미 도태된 공산주의를 아직도 싫어한다. 공산주의는 유물론과 계급투쟁을 본질로 하는 이념이기 때문에 "나도 공산당이 싫어요." 그러나 생각해보면 종교와 이념의 충돌은 비숫한 가치를 지닌 관념끼리의 충돌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때가 있다. 둘 다 보편적으로 사회에 수용되는데 실패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때도 있다. 또는 투쟁과 도그마라는 측면에서 보면 유사성을 보이기도해서 그렇게 느껴지는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한국에서 가장 건드리지 말아야 할 것은 종교와 이념이라고 말한다. 한국민들의 의식 저변에 잠재해 있는 가장 중요하고 근본적인 문제라서 그렇다는 생각도 있지만 그건 아닌듯 하다. 간단히 말해서 합리적인 토론과 설득이 불가능한 부분이기 때문에 그렇다고 생각한다. 다른것끼리의 장점을 수렴하여 발전의 토양으로 삼는 습관을 없애버린 탓이기때문에 그렇다는 생각도 든다. 합리성, 토론문화, 논리적인 사고를 잃어버린 국가의 미래는 없다는 생각이 든다. 이념이나 종교의 비합리적인 도그마는 개인이나 국가사회의 발전을 저지하는듯 하다.  

 합리성, 토론문화, 논리적인 사고는 종교나 이념과 배척되는 부분이 아닌듯 하다. 종교나 이념을 더욱 개선시키고 발전시켜줄 부분일수도 있다. 다만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열려있는 사고가 필요할 것 같다. 요즘 한국사회를 보면서 18세기 조선과 청나라를 보는듯 하다.

2024년 10월 25일 금요일

The leaders of the real world and the two Koreas

이형춘(Hyeong Chun Lee): 강희제에 대한 검색결과

이형춘(Hyeong Chun Lee): 김정일에 대한 검색결과

이형춘(Hyeong Chun Lee): Kang Hui에 대한 검색결과

이형춘(Hyeong Chun Lee): Kim Jung il에 대한 검색결과


If the political leader's spirit is not concentrated, he or she should quickly give up his position as leader. This is due to the fact that Korea cannot be trusted and relied on in terms of resources, geography, and circumstances. Russia continues to wage war with Ukraine despite sacrificing its history to retreat because it has abundant resources. Although North Korea is less than 2% of South Korea's economy, it is holding out because it has basic resources. Aside from resources, these two countries are constantly looking for ways to concentrate. President Kim Jong-un is probably aware that socialism is an ideology that has already died. However, he may be emphasizing socialism as a short-term measure to draw the attention necessary for the existence of the state.

 


Good religion or good faith is a good thing. However, beliefs such as those that neglect the mind without will and concentration, which only provide short-term anesthesia and lack the concentration to help solve the problem, will foreshadow a catastrophe in the long run.

 


Emperor Kang Hui of the Qing Dynasty of China, one of the best leaders in history, was a politician who believed in live-action. He constantly pondered and looked for ways to solve problems. Emperor Kang Hui had a strong temperament of the Manchurian people. He made constant scientific research to reform the problems of the Han Chinese society, which was an old ideological society. I still remember a passage from a historical book I read in my youth that had a side title in the Qing Dynasty section.

 


'The court cost for a year in Qing was equivalent to that of a Ming concubine.' - Published by Beopmunsa [Introduction to World Cultural History] -

 


Currently, the heads of government in both North and South Korea must understand quickly. The turning point for North Korea's decline was crucially affected by some of its economic policies without precise exploration and analysis as well as Chairman Kim Jong-il's regressive atmosphere. No one in South Korea can deny Seoul is experiencing this situation now.



2021년 4월 27일 화요일

지식의 흐름과 중국

https://hyeong-chun.blogspot.com/search?q=%EA%B0%95%ED%9D%AC%EC%A0%9C

https://hyeong-chun.blogspot.com/search?q=%EB%93%B1%EC%86%8C%ED%8F%89+%EA%B5%90%EC%9C%A1

https://hyeong-chun.blogspot.com/search?q=%EC%A4%91%EA%B5%AD+%EA%B5%90%EC%9C%A1%EA%B0%9C%ED%98%81

청나라 황제 강희제와 등소평, 주은래는 과학기술을 비롯한 지식을 개방시키고 교육 시키는 것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다. 청나라나 지금의 중국이 전성기를 맞이하게 한 업적을 달성했다. 지금도 많은 개발도상국들은 같은 방법으로 선진 국가를 건설하고 있다.

 

미중 분쟁의 배경에는 창조적인 지식의 배경을 가지고 있는 미국과 지나치게 적극적인 방법으로 서구사회의 과학기술 지식을 받아들였던 중국의 갈등관계가 있다. 때로는 미국은 중국을 스파이 활동국가로 규정짓기도 한다. 과거에 일본이 그랬듯이 중국은 국가주도로 적극적으로 과학기술을 수용해서 많은 이익을 보고 있다. 자유주의 체제의 바탕에서 일사불란하게 이를 통제할 수 없는 미국 또한 이 문제에 관해서 여러 가지 대책을 세울 수밖에 없는 현실이 있다.

 

1차 세계화로 은 산업화 되었고 은 산업화에서 배제 되었다. 2차 세계화는 이 상황을 180도 뒤집었다. 20년 전에는 선진국이라 불린 에서는 제조업 분야의 일자리 수와 부가가치 점유율이 급격히 하락했다. 이와 동시에, 제조업의 생산량은 I6이라 불리는 6개 개발도상국, 즉 중국, 한국, 인도네시아, 폴란드에서 급증했다.

 

- 중략 -

 

기적의 20동안 일본의 제조업 생산량은 급속히 팽창했으며, 이는 결국 총소득의 비약적인 성장으로 이어졌다. 이 급속한 성장은 마침내 미국과의 대규모 충돌을 초래했다.

 

- [ THE GREAT CONVERGENCE ] by Richard Boldwin -

 

중국의 정치체제가 공산주의 정치와 자본주의 경제라는 기형적인 시스템을 갖춘 것은 중국의 현실에 적응한 필요한 방식일 수 있다. 공산주의 혁명으로 탄생한 국가가 급속하게 정치체제를 바꾸기 위해서는 또 다른 혁명이라는 충격을 감내해야 하기 때문에 과도기적인 방법을 취했을 것이다. 천안문 사태 당시 등소평이 보수적인 입장에 선 이유는 그런 현실에 대한 통찰력이 바탕이 된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인류공영이란 이념보다 민족주의 이념을 강화 시키고 있는 지금의 중국은 외부 세계와 많은 분쟁을 예견하고 있다.

 

국가의 장기적 미래를 생각하면 북한은 지식과 기술에 대해서 좀 더 개방적인 태도를 지녀야 한다. 등소평이나 주은래처럼 교육에 대한 투자를 중시해야 한다. 오랫동안 선군정치를 해왔기 때문에 교육 개혁의 중요성은 중국보다 크다.   

2020년 3월 7일 토요일

코로나 사태와 한국의 정치와 종교

한국의 종교는 끊임없이 국가 시스템을 위협한다. 보수정부 시절에는 정치인에게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거나 세월호사건과 같은 국가적 재난에 배후역할을 함으로서 그들의 세상으로 국가시스템을 유도해 나가려는 시도를 계속 한다. 진보정부가 들어서고 정치인에게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자 종교와 반대성향을 가진 사회주의 프레임을 씌워서 진보정부를 공격한다.

더구나 요즘은 은밀한 내집단적인 성향이 강한 신흥 종교가 그 자체의 창궐이 아닌 진짜 역병을 창궐 하게 하는 역할을 함으로써 국가 시스템을 위협하고 있다. 내 관점으로는 이념과 종교는 한반도의 국가시스템을 교란하는데 유사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

과거 박정희 전 대통령은 집권을 하자마자 국가 재건에 필요한 가장 중요한 요소로서 과학 기술을 장려하고 미신을 타파하여 실사구시(Actual inspection)적인 집중력을 끌어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강력한 군사정부의 서슬 푸른 정책 앞에서 종교는 국가시스템에 순종적이었다. 국가시스템 만큼이나 강력한 중앙 집권적 시스템을 가지고 있던 카톨릭만큼은 한국에서 군사 정부의 부조리에 종교 특유의 자연법적인 정의감을 내세우며 저항하곤 했다.

종교는 자연법적이고 영구적인 윤리를 지향하기 때문에 국가나 사회에서 상수(常數)로 작용하고 정치는 환경과 상황과 인물이 변화함에 따라서 국가나 사회의 변수(變數)로 작용한다. 자칫하면 종교가 정치를 압도하여 암울한 사회로 만들 가능성이 큰 이유다. 이란과 같이 이슬람 혁명이 일어난 나라의 국가나 사회시스템이 퇴보하는 예가 있었고, 터키의 에르도안 정부는 이슬람 원리주의와 손잡으면서 건국 지도자 케말파샤의 원대한 희망을 무너뜨린 예가 있다.

권력을 지향하는 욕망을 가지고 있는 것은 정치인이나 종교인이나 마찬가지다. 그렇지 않은 정치인이 있는 만큼이나 그렇지 않은 종교인이 있다는 점도 마찬가지다. 다만 더 근원적이고 장기적인 종교권력이 정치권력을 종속 시킬 가능성이 많다. 많은 한국의 보수 정치인들이 단기적인 정치적 욕망에 휘둘려서 장기적이고 근원적인 종교권력에 종속되는 현상은 이 때문이다. 정신 나간 소리를 하는 종교인이 뭔가 믿는 구석이 있음은 이 때문이다.

과거 중국 청나라가 가장 융성했을 때는 실사구시를 국정의 중심 사상으로 삼은 강희제 때이다. 결국 청나라는 백련교도의 난이나 태평천국의 난, 의화단의 난등의 신흥종교의 난을 거치면서 내부 혼란을 치유할 틈도 없이 무너졌다. 그런 난들을 혁명으로 봐 줄 수 없는 이유는 실사구시적인 시스템을 갖추지 않은 혼란스러운 집단의 창궐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중국 공산당의 과학적 시스템이 중국에 자리 잡긴 했지만 시스템의 집중력을 잃어버리면 많은 혼란이 있곤 했다.

패기 넘치는 모습으로 새 역사를 창조해야 할 한국의 많은 젊은이들이 신흥 종교에 심취하는 이유는 경쟁사회나 빈부격차등의 사회적 부조리에서 회피한 이유다. 오랫동안 사회의 내면을 속속들이 관찰하고 있는 내 입장으로는 분명히 그렇다. 젊은이들에게 희망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늙은 교주의 욕망에 휘둘린다. 그래서 복지국가가 필요하다.

북한은 오랫동안 한 가문의 초합리적인 정치행위로 파탄이 났다. 젊은 김정은 위원장은 이런 모습을 타파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지만 오랫동안 진행되던 일이라서 그 부작용도 오래 간다. 북한이 빠르게 개혁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번 코로나19사태에 대해서 책임이 있는 신흥종교 교주가 마귀의 탓이라고 하는 말을 들어보면 한국 사회가 얼마나 병들어 있는지 짐작이 간다. 초합리적인 예언가로서 유명한 노스트라다무스가 전 유럽이 페스트로 곤란을 겪고 있을 때 유태인 가정만은 패스트를 앓지 않고 있는 이유를 곰곰이 생각했다는 말이 생각난다. 나중에 유태인 가정은 공통적으로 물을 끓여 먹는다는 사실을 알고 패스트를 몰아내기 위해서 물을 끓여 먹도록 전파했다고 한다. 같은 초합리성이라도 의도하는 바가 다르다.

과거 일본사회가 오음진리교 같은 신흥종교로 인해 재난을 당할 때도 일본 사회의 비합리적인 시스템과 비합리적인 의식이 숙주 역할을 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한국은 더 큰 문제를 안고 있다. 정치, 정치인이 종교나 종교인에게 종속되는 문제다. 비합리적인 종교가 결속력을 이용해서 사회 시스템을 공격하면 외부에서도 방어를 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이유이기도 하다.

한국의 사회사상은 좀 더 실사구시를 지향해야 하고, 종교는 좀 더 철학적인 고민을 해야 한다.    

2016년 9월 16일 금요일

실사구시(實事求是)

SBS 방송프로에 대기업의 고액연봉에도 불구하고 경직된 조직문화를 견디지 못해서 사표를 쓴 젊은이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20여년전 어느 일본계제조회사에 현장직에서 일하다가 관리직으로 옮겨준다는 제안에 놀래서 회사를 그만둔 기억이 났다. 조직에 몰입하는 순간 생각이 끝이라는, 형편에 비해서 만용에 가까운 결단을 내렸는데, 파란만장한 시간을 보냈으면서도 지금 후회는 없는듯 하다. 한 번 살다가는 인생인데, 후회없으면 모두 좋은 경험이다 싶었다. 조직문화가 가장 정상적이라고 생각하는 아재들의 관점으로는 세상을 특이하게 산다는 생각도 할 법하지만 이런 사람들이 있지 않고서야 세상이 발전을 하겠나 싶다.

한 번은 네덜란드의 200킬로미터 스케이트 마라톤대회에 나가보고 싶은 꿈이 있었는데, 체격이나 체력을 만드는데 한계가 보였다. 그래서 체드 헤드릭(Ched Hedrick)이라는 더블푸쉬(Duble push)라는 특이한 방법을 사용해서 세계인라인 챔피언을 독점했던 선수의 기술을 빙상에 접목시켜 보았다. 물론 이 선수도 그런 방식으로 토리노동계올림픽에서 장거리스케이팅부문에서 금메달을 땄다. 연습을 해보니 중심이동간격이 작아서 에너지소모가 덜 했다. 전통적인 방식보다 스피드는 안나지만 남들이 보기에 긴 시간을 설렁설렁 쉽게 탄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름 초장거리에서는'발전'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그런 기술을 만드는데는 사격훈련을 위해서 스케이트균형훈련을 한게 큰 도움이 되었던것 같다. 사격과 스케이트를 다 잘하는 방법을 찾다가 결국은 찾게되는듯 싶었다.

가끔은 스스로 찾아가는 길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모든 일은 실사구시에 맞게 안정적으로 처리해야 한다."

저우언라이는 언제나 이렇게 주장했다. 1953년에 시작된 중국의 제 1차 5개년 게획은 매우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국민들도 이 5개년 계획으로 경제가 성장하면서 생활의 질이 향상되자 모두 기뻐하며 적극적인 지지를 보냈다. 국가전체는 활력이 넘쳐났다. 당시 정부의 모든 사업계획은 실사구시의 원칙에 따라 계획 추진되었다. 실사구시란 경제건설 분야에 있어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1956년 1월에 열린 전국정치협상회의에서 저우언라이는 이렇게 말하였다.

"우리는 현실을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판단할 때 현실성 없는 일을 목표로 삼지 말아야 합니다. 현실과 동떨어지고 불가능한 일을 추구하면 조급증이 발동하고 이 조급증은 일을 그르칠 수밖에 없습니다.

저우언라이는 부강한 중국을 만들기 위해 그의 장년기를 모두 쏟아 부었다. 나라가 부강해져야만 이제 생겨난 신생 중국을 안정화시킬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너무 조급하게 서두르며 급진적인 모험을 하려고 하였다.

그래서 당시 저우언라이는 '많이, 빨리, 좋게, 그리고 절약하는 것이 노동의 효율성을 높이는 방법이라고 주장했다. 이를 실행하기 위해서는 관념이 아니라 현실에 뿌리를 둬야 한다고 했으며 가장 좋은 방법은 실사구시라고 재차 강조했다. 하지만 모든 것이 저우언라의 뜻대로 일이 진행된 것은 아니었다.

- 김상문 저 [유엔이 감동한 위대한 지도자 저우언라이]중에서-  

저우언라이의 생각은 우경화를 반대한 마오쩌뚱에 의해서 배척되었는데, 마오쩌뚱의 카리스마적인 제왕적 권력은 중국발전에 많은 한계를 가져다 주었다. 중국을 대기근으로 몰아넣은 그 유명한 참새박멸사건이나 목표량에만 신경쓰다가 쓸모없는 철강제품을 대량 생산한 사건들은 이미 이념적으로 고착화된 생각들이 어떻게 파탄을 가져올 수 있는지 잘 보여주는 사건이었던것 같다. 만약 마오쩌뚱이 말년에도 권력을 놓지 않고 계속 꼰대성을 발휘하고 있었으면 오늘 날 중국의 방향은 많이 달라졌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가끔 북한에 대해서는 갑작스런 붕괴나 통일같은 비현실적인 몽상을 하는것 보다는 일단 북한내부의 개혁과 개방이 점진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최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치엘리트들의 혁신적인 변화가 중요하고, 이미 만들어지고 있는 시장경제를 제도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태도가 필요하다는 생각이든다. 배척이 아닌 세수(稅需)의 원천으로서 시장경제를 제도적으로 받아들이고 법이나 징세제도를 마련한다면 원하는 것을 모두 얻을 수 있는 실사구시의 방편이 마련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저우언라이와 같은 개혁주의자는 과거 청나라에서도 있었는데, 강희제같은 인물이 대표적이다. 젊은 시절 환관정치를 극복하고 황제가 되어 실사구시의 정신을 발휘하여 청나라를 내실(內實)있고 부강한 국가로 만드는데 최선을 다했는데, 국사(國事)에 매진하느라 제대로 된 수면도 취하지 못하고 전전긍긍하는 모습이 훗날 저우언라이 총리의 모습으로 재현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