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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나라 황제 강희제와 등소평, 주은래는 과학기술을 비롯한 지식을 개방시키고 교육 시키는 것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다. 청나라나 지금의 중국이 전성기를 맞이하게 한 업적을 달성했다. 지금도 많은 개발도상국들은 같은 방법으로 선진 국가를 건설하고 있다.
미중 분쟁의 배경에는 창조적인 지식의 배경을 가지고 있는 미국과 지나치게 적극적인 방법으로 서구사회의 과학기술 지식을 받아들였던 중국의 갈등관계가 있다. 때로는 미국은 중국을 스파이 활동국가로 규정짓기도 한다. 과거에 일본이 그랬듯이 중국은 국가주도로 적극적으로 과학기술을 수용해서 많은 이익을 보고 있다. 자유주의 체제의 바탕에서 일사불란하게 이를 통제할 수 없는 미국 또한 이 문제에 관해서 여러 가지 대책을 세울 수밖에 없는 현실이 있다.
1차 세계화로 ‘북’은 산업화 되었고 ‘남’은 산업화에서 배제 되었다. 2차 세계화는 이 상황을 180도 뒤집었다. 20년 전에는 ‘선진국’이라 불린 ‘북’에서는 제조업 분야의 일자리 수와 부가가치 점유율이 급격히 하락했다. 이와 동시에, 제조업의 생산량은 I6이라 불리는 6개 개발도상국, 즉 중국, 한국, 인도네시아, 폴란드에서 급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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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의 20년’ 동안 일본의 제조업 생산량은 급속히 팽창했으며, 이는 결국 총소득의 비약적인 성장으로 이어졌다. 이 급속한 성장은 마침내 미국과의 대규모 충돌을 초래했다.
- [ THE GREAT CONVERGENCE ] by Richard Boldwin -
중국의 정치체제가 공산주의 정치와 자본주의 경제라는 기형적인 시스템을 갖춘 것은 중국의 현실에 적응한 필요한 방식일 수 있다. 공산주의 혁명으로 탄생한 국가가 급속하게 정치체제를 바꾸기 위해서는 또 다른 혁명이라는 충격을 감내해야 하기 때문에 과도기적인 방법을 취했을 것이다. 천안문 사태 당시 등소평이 보수적인 입장에 선 이유는 그런 현실에 대한 통찰력이 바탕이 된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인류공영이란 이념보다 민족주의 이념을 강화 시키고 있는 지금의 중국은 외부 세계와 많은 분쟁을 예견하고 있다.
국가의 장기적 미래를 생각하면 북한은 지식과 기술에 대해서 좀 더 개방적인 태도를 지녀야 한다. 등소평이나 주은래처럼 교육에 대한 투자를 중시해야 한다. 오랫동안 선군정치를 해왔기 때문에 교육 개혁의 중요성은 중국보다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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