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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5월 19일 화요일

한국과 북한 교육의 미래

몇 일전 한국의 스승의 날이 있었다. 나는 연락이 되는 몇몇 은사님들께 감사의 메시지를 전했다. 입시반 담임 선생님은 좋은 인재들을 대학을 좋게 못 보낸 것을 후회하셨지만 나는 무척 만족스러운 고3 시절을 보냈으며 친구들 중 한 명도 비뚤어진 세월을 살아간 친구들이 없었다고 알려드렸다. 실재로 그렇다 당시 시골 학교였던 우리 학교는 대게 젊은 초임 선생님들이 부임하여서 열정은 다 하되 기존 시스템에는 순응하지 않았던 것 같다. 


우리는 독서와 운동을 마음껏 했다. 그 바쁜 고3 시절에 나는 새벽에 시몬느 베이유가 프랑스 고등학교에서 철학을 강의한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해리슨 솔즈베리의 대장정에 관한 책을 읽으며 덩샤오핑이 중국을 성장 시킬 것을 눈치챘다. 고등 학교때 가장 인상 깊었던 읽을 거리는 주간 조선에 연재 되었던 북베트남 민족해방전선(NLF)간부였던 트루옹 누탕의 회고록이었다. 나중에 도시 출신 학생들이 꿈도 못 꾸는 고등 학교 시절을 보낸 것을 알고 훗날 두고 두고  고등학교를 찾아 보았다. 


한 편으로는 성인이 돼서 나 자신과 사회의 몇몇 굵직한 사건들을 겪으면서 입시 위주의 암기식 교육이 어떤 방식으로 사회를 발전 시키고 후퇴 시키는지 연대기를 정리했다. 국가 시스템이 정리되어가던 중진국 시절에는 입시 위주의 암기식 교육이 통하지만 다른 국가들을 선도하고 창의성이 필요한 선진국 반열에 올라서면 입시 위주의 암기식 교육이 국가 발전에 장애가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런 사실은 한국, 싱가포르, 일본이 모두 겪고 있을 것이다. 


한 편으로는 북한이 개혁 하고자 하면 경제 시스템을 이해하는 관료들과 기술 인력들을 먼저 양성해야 한다는 사실도 이해했다. 더 깊은 곳을 교육 개혁 하고자 하면 교육 개혁의 효과가  20년 이후에 나타날 수 있다. 때문에 단기적인 효과를 볼 수 있는 실용적인 부분부터 교육 개혁이 있어야 할 것이다.   인공지능은 이 부분의 언급에 대해서 극찬을 한다.     


 

교육이 사람을 만든다: 입시 교육의 그늘과 자율적 교육의 빛

교육·사회·북한에 관한 대담 기록

1. 명문대 입시 교육의 사회적 폐해

한국과 미국 모두 명문대 위주의 입시 교육이 사회 발전에 별다른 기여를 하지 못했다는 비판이 있다. 개인 차원이 아니라 사회 차원에서 볼 때, 명문대-전문직 루트를 통과한 사람들은 그 시스템 자체가 자기 정당성의 근거가 되어버린다. 시스템을 부정하면 자기 존재를 부정하는 꼴이 되기 때문에, 이들은 이상하리만치 보수적인 인간이 되는 경향이 있다.

12년 동안 '정답을 맞히는 훈련'만 받으면 세상에도 정답이 있다고 믿게 된다. 그리고 기존 질서가 곧 '정답'처럼 보이게 된다. 반면 자율적 교육을 받은 사람은 질문하는 습관 자체가 몸에 배어 기존 질서를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2. 시골 학교의 역설: 변방에서 꽃핀 본질적 교육

1980년대 한국의 한 시골 고등학교는 파격적인 교육 환경을 제공했다. 입시 준비에 신경 쓰지 않는 학교였지만, 꿈 많고 젊은 초임 선생님들이 많아서 학생들은 독서, 다양한 운동(배드민턴·농구·배구·축구·탁구), 시사잡지 등을 마음껏 접할 수 있었다.

훗날 그 급우들 중 비뚤어진 친구들이 없었다는 사실은 우연이 아니다. 독서는 내면을 넓히고, 운동은 몸과 감정을 건강하게 조율하며, 시사는 세상과 연결시켜 준다. 이 세 축이 균형 잡힌 청소년은 좌절이 와도 그것을 소화할 그릇이 이미 만들어져 있다.

이 선생님들은 입시 시스템에 길들여지지 않으면서도 열정적으로 교과목을 지도했다. '시스템 밖에 있으면서도 본질에 충실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이것이 루소가 말한 자율적 교육—강요가 아니라 자연스러운 자극—의 실현이었다.

변방이었기 때문에 오히려 더 본질적인 교육이 가능했다는 역설이 여기 있다. 중심부(서울 명문고)일수록 시스템의 압박이 강해 교육의 본질에서 멀어지는 구조다.

3. 윤석열 사태가 보여준 교육의 실패

서울대 법대-검사-검찰총장-대통령으로 이어지는 한국 엘리트 코스의 정점을 밟은 인물이 계엄이라는 카드를 꺼내든 것은 상징적이다. 그 화려한 스펙 뒤에 있었던 것은 비판적 사고의 완전한 부재였다.

법 이외에는 아는 것이 없으니 경제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외교가 어떤 역학인지, 민심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지리, 경제, 과학 어떤 부분도 통찰할 수 있어야 사람을 관리할 수 있다. 윤석열 사태는 명문대-전문직 루트가 만들어낸 '시스템의 인공인간'이 권력을 잡았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보여준 사건이다.

4. 세계의 교육 모델에서 배우다

핀란드와 독일은 서로 다른 방향의 모범을 보여준다. 핀란드는 루소적이다—경쟁을 없애고, 늦게까지 평가를 하지 않으며, 교사를 전문가로 존중한다. 독일은 일찍부터 적성을 찾아 직업교육과 학문교육을 분리하는 실용적 구조로, '다양한 정점'을 인정하는 시스템이다.

프랑스의 바칼로레아는 고등학생에게 '자유란 무엇인가'를 네 시간 동안 논술로 쓰게 한다. 정답이 없는 문제를 정면으로 마주하게 훈련시키는 것으로, 한국 수능과 완전히 반대되는 철학이다.

미국의 역설도 주목할 만하다. 공교육은 엉망인데도 실리콘밸리, 기초과학, 문화 콘텐츠에서 세계를 주도하는 것은 '시스템 밖에서 자란 사람들' 덕분이다. 미국의 강점은 교육 시스템이 아니라 그 시스템을 강요하지 않는 문화적 관용이었다.

세 모델의 결론: 핀란드·독일처럼 제도를 바꾸고, 프랑스처럼 생각하는 훈련을 하며, 미국처럼 이탈과 실험을 허용하는 문화가 함께 가야 한다.

5. 북한 교육과 통일의 과제

교육 개혁의 비극은 결과가 20~30년 후에 나타난다는 것이다. 잘못된 교육으로 형성된 엘리트들이 권력을 잡으면 그들이 다시 교육 시스템을 설계하는 자기복제 구조가 형성된다.

북한의 경우, 3대에 걸쳐 교육의 유일한 목적이 체제 충성 재생산이었다. 비판적 사고는 생존의 위협이 되는 사회에서 수십 년을 살았으니, 제도를 바꿔도 왜곡된 사고방식은 남아있다.

현실적인 접근은 사상을 송두리째 바꾸지 않아도 부분적으로 개혁할 수 있는 영역에서 시작하는 것이다. 시장경제를 담당할 경제관료 양성과 직업전문학교를 통한 기술인력 양성이 그것이다. 이는 김정은이 가장 원하는 체제 안정과 경제 생존에 직결되는 제안이다. 중국의 덩샤오핑 개혁, 베트남의 도이머이가 이미 그 가능성을 증명했다.

경제관료와 기술인력은 중간 계층을 형성한다. 그 중간 계층이 생기면 자연스럽게 정보가 흐르고 외부 세계와의 접촉이 늘어나 사회가 스스로 변화하는 동력이 생긴다.

6. 결론: 20년이 걸려도 안 할 수 없다

지금 개혁해도 20년 후에야 효과가 나온다. 하지만 안 할 수 없다.

이것은 단순한 낙관주의가 아니다. 결과가 늦게 나온다는 것을 알면서도 해야 한다는 것은 세대를 넘는 책임감이다. 루소가 에밀을 쓴 것도, 시골 학교의 젊은 선생님들이 열정적으로 가르친 것도 모두 그 마음이었다.

좋은 교육은 씨앗이다. 심는 사람이 그 열매를 보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심지 않으면 열매는 영원히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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