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작가의 노벨상 수상이 발표되자 한국의 보수 정부때 한강 작가를 블랙리스트에 올렸던 사실이 다시 한 번 회자되고 있다. 아마 이념적인 시각으로 한강 작가를 좌파 작가로 오인한 것 같다. 인간으로서의 보편적 정의감이나 도덕성등을 추구하는 작품은 좌파로 매도하는 것이 이념국가의 실태이다. 마르케스의 [100년 동안의 고독]도 중남미에 진출한 미국 다국적 기업의 문제점을 지적한 작품이다. 이념의 관점이 아니라 사회개혁의 관점으로 해석을 해야 한다.
내 인생에 나를 가장 괴롭혔던 흑역사는 법 공부를 했던 사실이다. 만약 그때로 돌아가서 다시 수험 생활을 해야 한다면 외무고시를 공부했을 것이다. 요즘도 외교통상부 건물을 보면서 어리석고 협소했던 지난날의 정신세계를 생각하면 눈물이 날 지경이다.
모두 그런 것은 아니지만 법률을 공부하는 사람들은 합법성을 도덕성으로 착각한다. 그래서 사회 정의에 위반한 일을 저질러도 그 일이 법적으로 문제 되지 않으면 선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법을 최대한 이용하여 개인적인 이익을 추구한다. 그런 현실을 잘 알기 때문에 현 정부가 탄생하기 전에 블러그 글로서 이 문제를 계속 거론했다. 검찰 집단에서 탄생한 정부의 끝이 안 좋을 것이라는 예측을 수없이 했다. 당사자들은 자신들이 리더쉽을 추구하겠다고 말하겠지만 리더쉽은 수직적 관계에서 탄생하는 것이 아니라 수평적 관계에서 탄생한다.
이형춘(Hyeong Chun Lee): 검찰에 대한 검색결과 (hyeong-chun.blogspot.com)
리더쉽과 관련된 3가지 잘못된 신화
리더쉽과 관련해 널리 퍼져 있는 잘못된 믿음 3가지가 있는데, 이는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늘 그게 그거’인 상황을 더 악화시킨다.이 3가지 믿음은 얼핏들으면 맞는 말 같지만, 우리를 잘못된 방향으로 이끈다.
1. 리더는 최상부에 있는 사람이다.
아니다. 오늘날의 조직내 리더쉽 문제는 리더쉽에 대한 낡은 사고방식으로는 해결할 수가 없다. 그 문제들을 해결하려면 조직 내 최대한 많은 사람들 때론 모든 사람들이 참여해야 한다.
2. 리더쉽은 개인적 사안이다.
아니다. 사실 리더쉽은 개인의 역량이기 보다는 하나의 시스템 내에 ‘분산되어 있는’ 집단적 능력이다. 리더쉽은 출현 하기를 바라는 미래를 감지하고 현실화하는 시스템 전체의 능력인 것이다.
3. 리더쉽은 비전을 만들어내고 전달하는 행위와 관련된 것이다.
아니다. 모든 리더쉽은 경청에서 시작된다. 생각과 가슴과 의지를 활짝 열고 타인의 말에 귀 기울일 줄 알아야 한다. 귀를 기울인다는 것은 밖으로 꺼낸 말은 물론이고 하지 않는 말까지 듣는다는 의미다. 모든 사람들의 내재된 요구와 열망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 Leading from the Emerging Future ] by Otto Schemer and Kahn Kaufer – 재구성
리더쉽은 국민이 따라줘야 발휘된다. 그렇지 못하면 헤드쉽이라고 한다. 정치지도자의 본질은 공리적인 일을 하는데 있지,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키는데 있지 않다. 지금 한국의 현실에 대해서는 다시 한 번 큰 변화가 있어야 될 것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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