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지표지에 한국의 대선주자 기호1번이 보였다. 한국내에서는 이념적 프레임으로 오인받을
수 있겠지만 통일문제나 남북협력문제에 대해서는 지난 정부보다 더욱 발전된 길을 갈 것이라는 추측을 해볼만하다. 상대성의 원칙을
생각해볼때, 북한에 대해서 무용한 적대적감정을 덜 표현할 것이라는 최소한의 기대가 있는만큼 북한을 협상테이블로 불러올 수 있는 상황이 연출 될
것이라는 추측이 된다.
가끔은 그런 생각이 든다. 누군가 나를 어떻게 다루고 있을까. 여러가지 많은 글로
이념이나 종교문제를 이슈화시키는 나의 글을 통제하거나 신변을 통제할려고 해왔던, 그리고 해오고 있는 집단이나 기관은 나를 실제로 통제하고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그런 생각은 그들 생각이고, 내가 알고 있으면 통제받는 것이 아닌데, 기분 나쁜것은 사실이다. 어차피 내 생각의 프레임은
평화와 협력이란 관념이 깊게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쓸모없이 기싸움꾼들이 걸어오는 시비를 대응하는 일이 귀찮아서 모른척 하고 사는 것이지
마음의 앙금은 가라않지 않는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거냐 하면 북한의 김정은 위원장이 유일한 '한 방'인 핵무기에
집중하는 이유는 '동등한' 입장을 추구할려는 이유인 것은 확실하다. 전체적으로 부족한 국가가 독립된 지위를 유지해나가기 위해서는 극단적인
상황에서 벌어질 치킨게임의 한 방이 필요한데, 김정은 위원장은 핵무기를 이용하여 동등한 입장을 추구할려고 노력하는 중인 것이다. 아마 한국의
문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김정은 위원장을' 잘 다룰 수 있다'고 한 타임지 기사는 북한에 대해서 좀 더 유연한 태도를 취하여 북한의 상대적인
적대감을 축소시킬 것이라는 의도로 표현된 기사말로 이해하면 될 것 같다.
사실 마음을 잃지 않아 끌려다니지 않는 쪽이 상대방을 다룰 것이지만 가능한한 동등한
입장으로 협상테이블로 '초대해야 '바람직한 미래를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좀 더 냉철하고 객관적인 지도자들의 마음 가짐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전 정부에서 그랫듯이 쓸데없는 이념과 같은 정신적 프레임으로 기싸움을 할려고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 기본바탕이 되어야
할 것 같다. 서로 다룰려고(deal with)하지 말고 협력할려고 노력해야 할 것이다.
뜬금없이 실존주의 철학자 키에르케고르(S.A Kierkeggard 1813
- 1855)가 그의 저서 [죽음에 이르는 병]에서 '절망'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정의한 말이
생각난다.
"자기가 자기 자신이 아니라는 것이야말로 절망에
다름아니다."
국가도 마찬가지다. 국가가 국가로 여겨지지 않는 것이야말로 절망에 다름아니다. 남북한은 쓸데없는 기싸움을 하지말고 협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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