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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새로운 대통령이 반대당의 인사들까지 고루 등용하는 포용심을 보였다. 국민통합이나
대통령의 신뢰성에 대해서도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듯 하다. 낙관적이고 밝은 이미지는 국정을 수행하는 과정에 발생할 수 있는 장애들을 많이 해소시켜
줄 것이다. 지지하지 않는 것과 반대하는 것의 차이점을 명확히 인식하고 있는듯 하다.
마틴 셀리그만(Martin E. Seligman 1942 - )이란
심리학자는 피험자들을 세 집단으로 나누어 실험을 해봤다. 1집단은 귀에 거슬리는 소음이 나올때 책상위의 버튼을 눌러 소음을 중단시킬 수 있었고,
2집단은 소음을 중단 시킬 수 없었고, 3집단은 소음을 전혀 듣지 않는 실험을 했다. 그 다음 단계에서 세 집단을 모두 실험실로 데리고 가서
소음이 들려 오면 버튼을 눌러 소음을 중단 시키라고 했더니 2집단은 소음이 들려와도 버튼 조작을 하지 않고 무기력한 모습을 보였다.
1975년 셀리그만은 옥스포드대학의 초청강연에서 위 실험의
결과를 '학습된 무력감'이란 테마로 강연을 했는데, 영국의 임상심리학자인 티스테일(John Teasdale)은 실험결과를 좀 더 다른 측면으로
보라고 제안했다. 즉 무력감이라기 보다는 어떤 낙관성이 표현된 것이 아닌가 하는 의혹을 제기했다. 결국 셀리그만은 '학습된 낙관성'의 이론을
내놓게 되었다.
한 번은 민주화운동을 했던 한 인사가 자신들이 희생을 해서 민주화를 이끌어냈더니 민중들은
신군부의 인물이었던 노태우 대통령을 대통령으로 선출하여 아연실색했다는 말을 한 적이 있었다. 생각을 해보면 민중들이 신군부의 독재권력의 어두움
보다도 좀 다른 측면의 낙관성을 보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어차피 정치적인 학습이 되지 않은 국민에게는 '독재'라는 개념
자체가 인식이 되지 않은 때였던 것 같다. 부정적으로 해석하면 현실과의 타협이나 무기력함이라고 초기 셀리그만의 해석을 할 수 있겠지만 그래도
좋았던 것이 있었다는 생각을 했었다는 민중이 많았던 탓이다. 당위 보다는 현실이었고, 과장보다도 현실이었다.
왜 한국민들이나 미국민들은 사업가출신의 대통령을 선출하고 후회할까. 이유는 간단하다.
사업가라는 이미지에서 낙관성을 포착해낸 것이다. 대게 진보인사들은 현실의 부정적인 모습을 개선할려는 태도를 취하게 되는데, 자칫하면 민중에게는
어두운 이미지를 심어줌으로써 심리적인 격리감을 안겨주기도 하는것 같다. 예를 들면 어려움을 딛고 성공한 사람들이 어려운 처지에 있던 때나 장소를
회상하면 진저리를 치는 이치와 같다. 다시 생각하기도 싫은 것들을 멀리하고 싶었던 생각 같은 것이다. 이번에 당선된 한국의 대통령이나 영부인은
이런 진보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지혜롭게 타파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오래전 종교단체의 신자들이 불행하면 자신들의 세계로 오라고 꾀어서 참여했더니 행복을
구걸하기 위해서 아우성치고 있었고 분위기는 우울했으며 내 자신이 가장 낙관적임을 알고 아연실색한 적이 있었다. 이념도 마찬가지인듯 하다. 뭔가
자신들의 세계가 옳고 행복을 가져다 주는 길이라고 항변하고 때로는 강권하고 있지만 현실은 극히 부족함을 스스로 인식하지 못하고 자기
최면에 빠지는 행태를 보이기도 한다. 북한의 현실이 그렇고 한국에서 이념을 이야기 하는 보수나 진보가 모두 그렇다. 그래서 실용주의나 중도주의가
필요한듯 하다. 실용주의나 중도로 가자는 의미가 아니고 새로운 출발을 하자는 의미로 이해하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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