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일터의 동료들중에 고시공부를 하던 인재들이 많았다. 때로는 합격을 하기도 했다.
나는 항상 내가 사무실직장인인지 육체노동자인지 고시생인지 스스로 헷갈리고 있었으므로 한 발 멀리서서 동료들을 바라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반복의 무료함을 견디지 못하는 나와는 달리 고집과 인내심이 출중한 고시생들은 존경할만 했다. 다만 자신이 고시공부를 해야되는 이유에 대해서는
출세나 권력때문이 아니라고 자신있게 말 할 수 있는 동료들은 없었을 것이다. 그때는 우리모두가 출세와 권력이 생존을 수월하게 할 수 있는
조건이기도 했다.
이란은 아주 오랫동안 호메이니의 종교적이고 반동적인 정치로 어두운 시간을 보냈다.
중동국가들에게는 자유주의 국가인 미국과 우호관계나 적대관계를 유지하는 문제는 개혁과 보수라는 이념적문제와 동일시되는 문제이기도 했다. 그리고
반미는 친소나 친러시아라는 냉전시대에 이념문제로 나뉘어진 양강(A both powerful country)의 어느 한쪽을 선택해야 하는
외교적환경이 만들어졌다. 최근 잠시나마 이란을 개혁으로 이끌던 로하니 대통령이 보수적인 검찰총장출신인 라이시후보를 중심으로 연대하고 있는
보수세력에 의해서 연임이 위태로워지고 있다. 보수적인 종교권력과 보수적인 검찰권력이 힘을 합쳐 이란을 다시 어두운 과거로 되돌릴수 있다는
해석밖에 할 수 없는듯 하다.
미국과 친한 것이 반드시 개혁이라고는 할 수 없는듯 하다. 최근 미국도 트럼프라는
보수적인 대통령이 미국의 전통적인 정서에 어긋나는 정치를 하고 있는 것을 볼때 권력을 얻었거나 얻을려고 하는 사람들의 배경에 대해서 좀
생각해봐야 할 필요가 있는듯 하다.
요즘 일어난 한국의 정치적변혁의 와중에도 보수쪽에는 검찰출신들이 있었다. 수평적이거나
평등한 세상을 보지 못한 검찰출신들이 보수쪽에 서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으로 생각해야 한다. 검찰구성원조차도 권위적이거나 억압적인 한국의 과거
정치사의 피해자라고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다만 국내적 국외적 환경이 변하는 만큼 검찰도 함께 부응해야 한다는 것은 검찰의 선의적 과제이기도
하다. 검찰은 협소한 시각으로 지나치게 권력에 집착해서는 안된다. 수사권을 좀 더 현업적 현장인력인 경찰과 나누는 것도 고려해봐야 한다.
권력적인 조직이라는 것은 원래 응집력으로 네트워크화 된다. 종교권력도 그렇고 경제권력도
그렇다. 그래서 법조계는 자기식구 챙기기에 열중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지난 10여년동안 생각해보니 이명박 전 대통령에 비해서 박근혜 전 대통령은
네트워크를 잘 이용하지 못해서 비선실세를 사용할 수밖에 없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벌어졌나 하는 생각도 든다. 정치권력이 바뀌고 정치권력에 협조하지
않으면 네트워크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문제도 있다. 꼭 그런것은 아니지만 현 정부가 검찰을 개혁시키려고 하는 이유는 여러가지로 추측할 수
있는듯 하다.
1. 기존 검찰의 조직과 행태는 대 국민 봉사라는 본질적 목적에 부합하지 않았다.
2. 검찰은 보수적인 입장에서 개혁적인 성향의 정치세력과 대립각을 세워왔다.
3. 조직문화와 행태가 좀 더 다양하고 수평적인 시대적 요구에 부합하지 않는다.
언젠가 법조계에서 일하는 지인에게 법조계는 스스로 개혁하지 않으면 외부개혁이 시도될
것이라는 말을 한 적이 있는데, 자기주도 학습을 해보지 않은 보수조직이 스스로 개혁하는 습관을 만들기란 대단히 어렵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든다.
검찰권력과 정치권력의 필연적인 연관성(그것이 동일시되던지 상대시되던지)을 생각하기
이전에 국가의 목적은 착한생활이고, 정치적인 사회는 단순히 동료들을 사귀기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라 고귀한 행동을 위해서
존재한다는 고대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을 명심해야 할 것
같다. 정치권력이나 검찰권력이나 경제권력, 심지어 종교권력까지 모두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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