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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2월 29일 월요일

엘랑 비탈

부동산문제로 건설회사의 젊은 영업사원들과 대화를 하다가 실소를 짓고 말았다. 어디서 영업기술을 배웠는지는 모르지만 젊은 이들에게서 전혀 진화가 되지 않은 구세대의 모습이 그대로 투영되어 있었다. 어린 사람들이 카리스마와 권위, 확신만 있으면 만능인줄 헷갈리고 있었다.

프랑스의 철학자 앙리 베르그송( Hanri Bergson 1859 -1941)은 원초적인 생명속에는 잠재력과 다양한 가능성이 내재되어 있다고 말한다. 이로부터 에너지를 축적하는 경향은 식물로, 에너지를 동적(動的)으로 발산하는 경향은 동물로 현실화된다고 말한다. 이런 두가지 경향이 불균형하여 양립이 불가능할때 내부 폭발이 일어나고 보다 완전한 생명을 향하여 도약을 한다고 말한다. 베르그송은 이런 상태를 엘랑 비탈이라고 하였다. 

아마도 구세대의 매번 반복되는 현실과 변화할려는 신세대의 의지가 내 내부속에서 폭발을 일으켰던 모양이다. 젊은이들의 구태의연한 모방에서 문제의 심각성을 발견한듯 하다. 한 편으로는 어떤 정치인이 정치경력이 없는 이가 정치적 지위를 갖는 것은 힘들다고 말하는 것을 듣고 지지여부를 불문하고 진보진영이든 보수진영이든 한국정치의 현실은 상당히 식물성에 가까운듯 하다는 뜬금없는 상상을 해봤다.  

2016년 2월 28일 일요일

리더의 건강 / 메를로퐁티

북한의 김정은 위원장이 정권을 물려받을때, 내심 남북한관계에 대해서 기대한 바가 있었다. 왜냐하면 그때까지 얻은 정보로서는 스포츠를 좋아하는 젊은 지도자라는 소문이 있었던것 같다. 김정일 위원장과는 달리 양성적인 성격이 있으니 적어도 대국적(大局的)인 정치를 할 것이라는 예측을 했었던것 같다. 시간이 흘러 북한의 태도는 나아지는 것이 없고, 생각과는 달리 김정은 위원장은 건강해보이지 않았다.

신체의 변화에 의해 자신과 주변이 변화해가는 과정을 몸소 체험한 적이 있었다. 어렸을때부터 허약하고 병치례가 많아서 성장기 내내 굴욕의 시간을 보내다가 27세될 무렵에 운동을 하면서 살을 찌우기 시작했다. 1년여만에 20킬로그램정도 늘어난 체중과 두툼한 목과 가슴을 뽐내며 다녔다. 스포츠 머리에 양복을 입고 나서면 불심검문을 당하는건 예사고,그동안 허약하다고 섭섭하게 대했던 동기들을 찾아서 들었다 놨다하는 굴욕을 주기 시작했다. 그런데, 매일 기분이 나빴다. 혈액순환이 원활하지 않았던 탓인지 몸과 마음이 상쾌하지 못하고 다리가 무거운 것이 세상과 삶을 부정적으로 보기 시작했다. 주변인들도 편치 못했지만 급기야 내 자신이 먼저 피폐해졌다. 그래도 순식간에 체중을 마음대로 불리는 의지에 대해서는 비범하다는 칭찬들이 있었는데, 비범하긴 했다. 근육질의 날카로운 눈을 가진 덩치의 생김새와는 달리 전체적인 건강은 비범하게 불량했다.

프랑스의 철학자 메를로퐁티(Maurice Merleau-Ponty 1908 -1961)는 인간은 신체로서 세상을 살고 있으며 신체로서 세상과 상호작용을 한다고 말한다. 따라서 신체가 달라지면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질것이라고 말한다.

하루는 전철을 탔는데, 모 예술대학교 오티가 있었던 날인듯, 검은 대학자켓을 입은 대학생이 여럿이 타서 떠들기 시작했다. 예쁜 여학생들은 떠드는 것도 예쁘다는 말을 하기 이전에 대화내용자체가 무척 긍정적이고 재미있었다. 문득 음주 다음날이면 어김없이 대상없는 욕설을 입에 담던 연배있는 사람들이 생각이 났다. 

역사학자 아놀드토인비는 유능한 지도자의 조건으로서 건강한 스태미너를 이야기하고 있는데,좋지 않으면 극복을 해야 하는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생각컨데, 권력이 강하여 영향력이 강할수록 리더의 건강이 많은 이들에게 영향을 끼칠것이라는 사실은 의심할 수 없는듯 하다. 사담후세인이 기이한 착란적인 정치행태로 공포정치를 폈단 사실을 되새기며 오래전 사진을 살펴봤는데, 마음씀씀이도 기이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별로 좋아보이지 않았던 것 같다. 어쨌거나 나와 영향을 주고받는 누군가는 항상 건강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고, 아무에게나 운동을 할것을 권유했다. 하물며 많은 이들에게 영향을 끼치는 권력있는 사람들이 건강이 필요한 것은 말할 필요도 없는듯 하다.  

2016년 2월 26일 금요일

끝이 없는 학습

여러가지 내 자신만의 합리적인 이유로 육식을 피하는 성향이 있는데, 어제 튀긴닭을 딱 한 입 베어물었다. 십년 가까이 지켜 온 자신만의 금기를 깨는 순간이었다. 맛있게 닭을 튀기는 기술을 팔기 위해서 2년동안 1008번을 거절당해야 했던 샌더스노인에게 결국 굴복당한 순간이었기도 하다.

과연 천재는 어떻게 만들어질까 하는 의문을 오래전부터 품고 있었다. 매우 가까운 사람들중에 쳔재성이 있는 이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 객관적으로 불행한 삶을 살고 있는 이들도 많았고, 천재성을 내려놓고 지극히 평범하고 안일하게 살아가는 이들도 많았던것 같다. 언젠가 지인이 천재성을 만드는 기본 베이스라고 믿는 열정을 가지고 있음에도 조악한 환경속에서 헤매는 모습을 보면서 한 사람의 일같지가 않았다. 바보같은 장소를 벗어나면 자기자신으로 명확하게 돌아오라고 충고를 했는데, 열정만큼이나 반항심이 많은 성품이라서 제대로 지키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근거있는 통계인지는 몰라도 한국인들의 평균아이큐가 106으로서 홍콩의 107다음으로 세계수준이라고 한다. 홍콩은 사실상 국가가 아니니 세계제일의 지능을 가지고 있다는 통계를 본것 같다. 물론 인간생활에 지능지수가 절대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아니라고 한다. 지능에도 사회적지능이나 도덕적지능같은 새로운 지능분야가 규명되면서 인간생활에는 단순한 아이큐 이상의 무엇이 필요하다는 사실도 규명되고 있는듯 하다.

한 번은 본의 아니게 타고난 열등적 존재인 내자신에게 천재성을 느낀 경험이 있었다. 어떤 문제로 사회적 환경이 억압당하고 밀리니까 딱 3개월만 운동으로 지옥훈련을 하겠다고 스케이트와 사격,수영프로그램을 짜서 밀어붙이기(스스로 괴롭히기) 시작했다. 뭔가 이루기에는 말도 안되는 기간이었지만 3개월이 지나자 운동이 습관이 되어 버리고, 꽤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 물속이나 빙판위에서 허리를 비트는 모습이 꽤 괜찮아진듯 하다. 그러면서 플루타르크 영웅전에 나오는 카토를 무척 존경하게 되었던것 같다.

어떤 귀순한 북한군장교의 말이 북한군장교는 한국군장교와는 달리 사병으로부터 시작하는데, 여러가지 검증조건을 거친 결과, 평균아이큐가 꽤 높다고 한다. 평균아이큐가 높은들 이념이나 사상학습만 하는 두뇌가 무슨 발전이 있겠나 싶었다. 한 편으로는 당면한 건강문제부터 시작하여 여러가지 문제상황들을 이런 저런 독서와 학습을 통하여 해결하면서 여러가지 책을 읽을 자유라도 있는 것이 개인에게나 국가에게 얼마나 이익이 될 것인가를 생각한 적이 있었다. 독서는 개인의 힘이고 국력이다. 교육을 받은 인간이라는 것은 계속 공부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을 자각하는 인간이라고 말한 피터 드러커의 말을 곱씹어보면 북한은 교육받은 인간이 없다는 결론이 나는듯 하다. 한 편으로 한국은 교육받은 인간이 좀 덜하다는 말도 나올법하다. 학력이랑 상관없이 사람들의 행태는 생각보다 현실적이고 동조와 암시에 취약한듯 하다. 자신의 길을 가기 힘든 단체주의적인 성향을 갖는 동북아시아 문화의 문제를 벗어나지 못한 사회라는 생각이 든다.

국민 개인이 시간을 잊고서 무엇인가 시도할려고 해도 시도할 수 없는 곳, 변하고자 해도 변하기 힘든 사회는 무너지는 공동운명체라는 사실이 피부에 와 닿을때가 많다. 레오나르도다빈치가 이런 말을 남겼다고 한다. "하늘의 별을 지표로 삼으면 어떤 폭풍우가 와도 길을 잃지 않고 항해할 수 있다." 그런데 별 볼일 없는 일들이 많은듯 하다.   

2016년 2월 23일 화요일

목표 있는 개인과 목표 있는 국가 / 올포트

어느 날 오랜만에 래쉬가드를 입고 특이한 수영법으로 몇 킬로미터를 반복왕래하고 있었다. 누군가 발끝을 툭툭쳤다. 그래서 돌아보니 수영은 그렇게 하는게 아니란다. 자유형수영법에 관해 한동안 원치않은 교습을 받으면서 내내 웃음이 나왔다. 나는 더욱 진화한 자유형수영법을 알고는 있었고, 지금은 간만에 옷을 입은체로 생존수영을 익히고 있는 중이었다. 수영을 마치고 우연히 원리주의종교를 믿는 지인을 오랜만에 만났는데, 과거의 일과 패턴을 무한반복하면서 상상력까지 동원해 떠드는 말을 들어주는 고행이 겹쳤다. 말할것도 없이 내가 제일 고역스러워하는 일이 겹친것이다. 그것뿐인가 인터넷뉴스에서는 북한군 최고사령부의 성명으로 청와대와 한미연합사령부에대한 타격이야기가 나오고 있었다. 내 자신이야말로 하루만에 정신적인 타격을 겹쳐서 받은탓인지 몸과 마음이 상쾌하지 못해 몸살기운이 있었다.

미국의 성격심리학자이자 교육자인 고든 올포트(Gordon Allport 1897 - 1967)는 프로이트의 인간을 비관적인 존재로 보는 프로이트의 심리적결정론에 반대하면서 인간을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존재라고 규정하고 인간의 건강한 성격을 연구대상으로 삼았다. 연구의 관점자체를 낙관성과 행복함에 중점을 두어서 마치 비관적인 측면은 보지않고 생각하지 않으면 없는 면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듯 했다. 우리가 느끼고 있는 많은 불행한 사실들이 사실은 나와 타인의 그림으로 그려졌다는 사실을 알고나면 그런 상황과 접촉하지 않는 것이 우선이고, 어쩔 수 없이 접촉하는 상황이라면 몰입하지 말고 비껴나가야 되는 상황을 많이 경험해본듯 하다. 비정상적인 이념이나 종교적인 관점과 오랜동안 충돌아닌 충돌을 하면서 느낀점은 끊임없이 낙관적이고 긍정적인 마음을 무장하지 않는 한은 사람과 사람사이, 국가와 국가사이의 소용돌이 치는 번뇌속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던것 같다. 어쨌거나 그 덕에 객관적으로는 무의미한 삶을 살고 있는것처럼 보일지라도 스포츠등을 통해서 고뇌를 떨쳐버릴려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는듯 하다.

프로이트는 건강한 사람과 신경증이 있는 사람을 종이 한장의 차이로 보았지만 올포트는 서로 유사성이 없다고 보았다. 올포트는 과거의 갈등상황에 현재까지 지배를 받는 사람을 신경증이 있는 사람으로 보았고, 보다 높은 수준의 동기를 가지고 개인의 삶을 개척하는 사람을 건강한 사람으로 보았다. 올포트는 건강한 성격을 가진 사람으로 남극을 탐험한 아문센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아문센의 삶의 핵심동기는 프로이트의 생각처럼 긴장감소가 아니라 미래에 대한 기대와 꿈이었다고 말한다. 아문센과 같은 이는 어떤 목표를 달성하면 다음에 성취할 목표에 도전함으로서 행복을 느낀다고 말한다.

올포트는 건강한 삶의 필요조건으로서 프로프리움(proprium)이라는 개념을 제시하였는데, 그 조건으로 첫째, 의미있는 삶을 살 것, 둘째, 타인과 따뜻한 관계를 맺을 것, 셋째, 정서가 안정될 것, 넷째, 현실적인 판단력을 가질 것, 다섯째, 성공에 필요한 지식과 기술을 습득 할 것, 여섯째,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 볼 것등을 제시하고 있다.

생각해보면 과잉이념과 과잉종교는 올포트가 말하는 건강한 삶에 역기능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은 확실한듯 하다.분위기가 그러하면 개인의 역량으로 그 분위기를 이겨나가기 힘든 점도 있다는 것을 많이 느끼면서 사는데, 특히 한반도에서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불건강한 삶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은 점이 있는듯 하다. 개인의 문제는 정신적인 문제로 규명하기 쉬우나 국가의 문제는 사회심리학적인 문제로 규명해봐야 하는데, 우호적인 관계와 적대적인 관계의 양면적인 감정이 개입되면 심각하고 살벌한 문제가 발생하는게 현실이라서 많이 힘든 점이 있는듯 하다.

이런 문제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나 자신은 가능한한 스포츠와 독서에 열중하는 시간을 갖기 위해서 노력하고, 성취해야 할 목적을 잊지 않으려고 노력하는데, 안일하거나 변화없는 삶을 살려고 할 수록 건강하지 못한 삶의 요소들, 과잉이념이나 과잉종교에 끌려들어가는 일을 본다. 웃기는 점은 개인과 국가가 이념이나 종교에 안일하게 얽매일수록 외부세상을 침략자나 자신들만의 질서를 공격하는 나쁜 놈으로 치부하는 것도 많이 보았는데, 어느 날, 찐득거리면서 보기 싫고 듣기 싫은 것만 보게하는 지인이나 정치인 종교인이 자신들을 비판하는 점에 대해서 과잉반응하는 일을 몸소 절실히 체험한 일이 많다. 아마 내 인생에 불행했던 모든 과거사는 과잉이념과 과잉종교와 관련된 일에서 비롯된듯 하다.

아마 북한정부가 걸핏하면 '타격'운운하는 점도 한 번 올포트의 생각을 반영해봐야 할 문제인듯 하다. 북한 정부는 빨리 국가과 국가간의 관계를 호의적인 관점으로 개선시켜야 할 과제가 있는듯 하다. 일제의 침략이 상처를 받은 과거사임을 인정하나 좀 더 영민하게 대처해야 할 문제로 생각된다. 이 점에 있어서는 한국정부도 마찬가진데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북한정부의 이념적인 태도에는 끌려들어가지 않는 점도 중요한듯 하다. 북한정부와의 비정상적인 충돌이 있다면 공산주의와 자본주의의 대립이 아닌 국가테러와 반테러의 입장으로 규명한다든지 평화로운 질서에 대한 침략과 방어의 관점으로 보는 점도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북한이나 한국이 모두 국가와 국가를 구성하는 개인의 관점을 좀 더 긍정적인 목표로 몰고 가는 점이 필요한듯 하다. 할 일이 바쁜 이는 다른 생각을 할 시간이 없다는 사실에 근거해서 그렇다는 생각이다.  

2016년 2월 20일 토요일

북한의 사회적 분위기

운동장은 다른 장소에 비해서 많이 열린 공간이다. 협소한 분위기에 지친 사람들이 자신을 극복하는 공간이기도 하고, 타인과의 불협화음을 자기 중심적으로 풀어보는 선량한 공간이기도 하다. 그런데 언젠가 운동장에서 속칭 '텃세'라는 것을 목격한 적이 있었다. 물론 소통의 공간이 넓고 활발한 젊은 세대와는 무관하고 어느 정도 연배가 있는 사람들의 행위였다. 일터에서도 많이 목격했던 일인데, 지역사회의 특정학교 출신이나 가까운 연고등을 들먹이며 에너지싸움에 승리할려는 노력도 어느 정도 연배가 있는 사람들의 몫인것 같았다. 일터에서는 그런 상황이 닥치면 갈등상황을 피하고 독서를 하거나 젊은 이들의 생각과 많이 다르다는 의미를 애둘러서 표현하는 방법으로 사고의 경계를 벗어나게 할려고 노력했던것 같다.

사회적분위기라는 것이 있다. 국제사회든 국가사회든 지역사회든 아니면 좀 더 하위집단으로 구성된 일터속에 있는 것들이다. 그 경계내에서 통념적으로 소통되는 의사와 정보의 성질은 그 사회의 성격을 잘 나타내 주기도 한다. 때로는 그런 사회분위기가 대단히 낙관적이거나 비관적이기도 한데, 그 분위기에 따라서 미래가 결정되기도 한다. 생각해보면 내 자신은 일터나 운동장에서 낙관적인 태도를 취할려고 노력하곤 하는데, 좋은 방법중의 하나가 다른 곳의 낙관적인 사회분위기를 소개시키는 방법이었던 것 같다. 노인이 많은 일터에서는 젊은이들의 이야기를 많이하고, 또 그 반대의 경우도 있었으며, 지역사회적인 성격이 강한 지인들이나 구태를 반복하는, 안정되기는 하나 정체된 성격을 가진 직장을 다니는 지인들에게는 세계주의적인 말을 많이 하는 편이었던 것 같다. 물론 타인에 대한 염려 이전에 내 자신이 좁은 사고의 경계내에서 노니는 상황을 많이 힘들어했기 때문인것 같았다.

배운게 별로 없거나 이념적 갈등에 자신의 관점을 묶어놓거나 편협한 종교적 관점속에 정신을 묶어놓은 이들은 무리짓는 인간의 본성상 내밀한 경계속에 자신들을 묶어놓음으로써 하위사회집단의 분위기를 확고하게 하는 성향이 있는듯 하다. 그런 분위기를 가진 사회는 '개혁'이라는 변화를 '침입'이라는 의미로 곡해하여 해석하는 성향이 있는듯 하다. 인간의 정신은 변화되거나 넓은 세계를 꿈꾸지 않는 한(실행여부를 불문하고) 점점 내밀하게 침전되어 버리는 특성이 있는듯 하다. 굉장히 큰 사회집단 중에 북한사회는 그런 모습을 가장 강렬하게 가진 사회집단이 될 것이다.

강렬하게 경계지워진 하위집단의 사회적 분위기는 그 경계를 무너뜨리고 더 넓은 시공(時空)으로 향할때만 희망과 미래 또는 발전이라는 명분으로 현재의 지적인 충족감과 미래의 현실적 만족을 가져올 수 있는듯 하다. 희망없이 자신의 정신을 과거속에 가두어 놓은 사람들 속에서 오랫동안 지내본적이 있는데, 북한사회의 문제점이 무척 선명하게 해석되는듯 하였다. 인간 개인으로 보면 바람직하지 않은 특징들을 모두 가진 노인과 비교될 수 있는듯 하다. 이념문제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로 해석을 해보면 '꿈이 없는 사회'의 모습을 지닌듯 한데, 북한 이외의 다른 국가들도 그런 사회의 모습을 보이는 것을 피해야 할 듯 하다. 

2016년 2월 19일 금요일

여론의 신화

가끔 열광적인 지지를 얻던 정치인이 갑자기 싸늘하게 식어버린 여론을 경험하는 일이 있는듯 하다. 굳건한 지지층이 순식간에 돌아설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테지만 여론의 변덕스럼움은 믿고 의지할만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들게한다. 그러니 에너지가 강한 정치인은 여론에 의지를 하느니 여론을 조작하는게 더 믿음직한 일이라고 기상천외한 발상을 하게되는듯 하다.

국민이 무지하고 이성적이지 못할수록 여론은 신화에 가까운듯 하다.무지한 대중은 없는 사실이나 근거없는 현상을 실제로 존재하는것 처럼 착각을 한다. 많은 사람과 대화를 해보면 노력없는 믿음에 의존하는 종교적인 사람, 생각할 필요없는 프레임에 의존하고자 이념에 생각을 의탁하는 사람, 그리고 자기성찰이나 학습과는 담을 쌓고 살아온 사람들의 공통점은 외부에 의해서 쉽게 조작될 수 있는 정신세계를 갖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는듯 하다. 그러니까 생각하지 않는 습관이 들어 있다는 점이다. 그런 사실은 표를 얻고자 하는 정치인에게는 여론을 조작해야 하는 일거리를 제공하고, 국가의 현실이나 국민생활을 개선시킬려고 노력하는 정치인에게는 프랑크푸르트학파 정치학자인 아도르노(Theodor W.Adorno)와 호르크하이머(Max Horkheimer)의 말처럼 신화를 해소하고 공상을 깨뜨리기 위해서 국민을 계몽시켜야 하는 일거리를 먼저 제공할것같다.

결국 기분(sentment)은 변해도 이기(利己)는 변하지 않는다는 격언(최평구 저 외교 외교관에서 발췌)처럼 눈에 보이는 단기적 이익인 정권획득에 힘을 기울이다보면 여론에 농락을 당하든지 여론조작을 하든지 하는 두갈래의 길밖에 없을듯 하다. 교육이 안된 대중이 정치인에게 주는 메시지는 서로 파국으로 가는 길을 인도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생각없는 대중과 생각없는 정치인은 공동운명체라는 생각도 들고, 바르게 살고자 하는 사람이 정치를 시작했을때는 '국내정치에 소모'된다.'라는 표현도 적절한듯 하다. 

2016년 2월 13일 토요일

비극의 연극무대가 된 한반도

어떤 상황에 빠져들다가 잠깐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객관적으로 내가 처해있는 상황을 바라보면 웃음이 나올때가 한 두 번이 아닌듯 하다. 사람이 바보같은 짓을 하면서 몰입을 하면 쓸데없이 그 짓에 진지해지는데, 그 진지함 속을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이 절대 다수일때는 그 정신들이 이념이나 종교라는 명분으로 받아들여지는 경우가 있는듯 하다. 통일이나 협력이랑 점점 거리가 멀어지는 남북한 상황을 보면서 쓸데없이 진지하게 부정적인 상황으로 몰고가거나 물려들어가는 점에 있어서 조금 만 더 심해지면 IS같은 기묘한 생각과 행동을 하게되는 극단으로 치우칠 우려까지 든다. 인간의 합리성과 의지를 믿지 못하는 심정에 과거사를 생각하건데, 빨리 생각과 행위를 전환시키지 않으면 파국이 파국인지도 모르고 서서히 무너지는 결론을 볼까봐 우려된다.

오래전 북한 사격국가대표감독인 소길산대좌가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휩쓸던 젊은 시절, "적도의 심장을 겨누는 기분으로 총을 쏜다."고 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한국에서는 소길산선수를 꺾기위한 인재프로젝트가 있어서 박종길선수가 나서서 이겼다. 먼 훗날 북한 국가대표팀을 이끌고 온 소길산대좌에게 기자들이 그때 그런 말을 한 기억이 나느냐고 질문을 하자 겸연쩍게 웃으면서 "그땐 젊었으니까"하더란다. 그러니까 유치한 기억이 쑥스러웠단 말씀이다.

다음은 UN대사였던 박수길대사가 북한외교관들이랑 다투었던 내용이다.

박길연과는 참 지겹게도 많이 다투었다. 성격이 무뚝뚝하고 다혈질인 그는 유엔로비에서 마주쳐도 말 한 번 건네는 적이 없이 눈을 부라리곤 했다. 어느 자리에선가는 나에게 한국말로 거친 욕을 퍼부어서 내가 "이보시오, 같은 박 씨고 나이도 나보다 어리면서 무슨 욕을 그렇게 심하게 해요?"하면서 성 씨와 나이를 들먹인 적이 있었다.

- 중략 -

그런 어처구니없는 상황에서 최광수 장관은 내가 써준 쪽지를 보면서 니체의 <짜라투스투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한구절인 "악마와 싸우는 사람은 그 과정에서 스스로 악마로 전락을 하지 말아야 한다."를 인용하면서 일일이 대응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 중략 -

나와 숱하게 다투었던 박길연 대사도 북한식 외교의 그런 한계를 벗어날 수 없었을 것이다. 나는 박길연이 무례하게 나올 때마다 대결을 피하지 않았다. 거친 말은 하지 않았지만 늘 강하게 면박을 주며 정면으로 다투었다. 그러면서도 그처럼 불가능한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 그에게 연민을 느끼곤 했다. 10년이 넘도록 그런 관계로 지내다 보니 나중에는 그가 어떤 말을 해도 화가 나지 않았다. 그가 일종의 연극배우처럼 느껴지는 것이었다. 그리고 동족은 동족인지 어떤 때는 그를 비난하는 타국 외교관들 앞에서 그를 변호해주고 싶은 마음마저 들기도 했다.

- 중략 -

언젠가 서울에서 열린 남북총리회담에도 왔던 한시해라는 북한 대사가 있다. 그는 주유엔 대사도 역임했다. 그는 늘 미국산 최고급 승용차를 타고 다녔고 입고 다니는 옷이나 구두도 고가였다. 어느 날 나는 그에게 "한 대사님, 북한 대사의 구두가 그렇게 반질빈반하면 되겠소?"하고 면박을 주었다. 인상을 쓰는 그에게 여유 있게 씩 미소를 지은 것이 당시에는 당당한 태도라 생각했는데, 지금 돌아보면 외교문제로 다투는 자리도 아닌데 인신공격성 발언까지 할 필요는 없었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는 나이도 있고 현역에서 은퇴한 터라 예전의 북한 외교관들을 만날 기회가 더는 없을 것 같다. 그러나 기회가 된다면 일부러라도 한번 만나고 싶다. 지난날의 다툼을 추억처럼 주고받으며 통일된 한국의 장래를 함께 이야기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 박수길저 [DIPLOMATIC HISTORY OF KOREA]중에서 -

오래전 대학시절 연극영화를 전공했던 노인분을 가까이 한 적이 있는데, 지력(知力)이 바쳐주는 시간에는 여러가지 모습으로 자신을 바꾸면서 카리스마를 발휘하다가 지력이 떨어지는 시간에는 욕망과 아둔함에 압도되어 기묘한 정신상태를 갖는 것을 보면서 우려 반 흥미 반으로 유심히 살펴봤던 기억이 있다. 생각하건데 한반도가 세계속에서 그런 흥미로운 대상이 되질 않기를 소망해보기도 한다. 그 속에 소속되어 있는 존재로서 자존감이 무너지는 소리를 듣기 때문이다. 철학없는 교육, 이념에 치우친 교육등이 문제의 발단이 되었음을 다시한 번 생각해보기도 한다. 

2016년 2월 12일 금요일

타인의 계절 / 레비나스

좀 더 젊고 생동감있는 마음을 가져보겠다고 평소 어색해하던 슬림핏 바지를 입고 거울 앞에서 한 바퀴 돈 다음 외출하고 돌아오니 개성공단이 사단(死斷)이 났다는 뉴스가 들려온다. 미래지향적인 주관과 과거지향적인 객관이 머리속에서 크게 혼돈되는 감정을 느낀것은 물론이다. 모든 것을 빼앗긴 한국의 중소기업인이나 역시 모든 것을 빼앗긴 오만명의 북한근로자들은 그들 나름대로는 주관적인 고통을 느꼈겠지만 영문도 모른채로 슬림핏 바지를 입고 멋을 내는 사람과 이 지경까지 사건을 끌고간 이들은 타인의 고통들을 함께 느낄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내 자신과 직접적인 연계성을 가지지 않는다면 '객관적인 고찰'이라는 명분으로 타인의 고통에 대해서 냉정해지는 것이 인지상정인듯 하다.

프랑스의 철학자 레비나스(Emmanuel Levinas 1906 - 1995)는 "나는 타자가 신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나는 타자의 얼굴에서 신의 말씀을 듣습니다."라고 말하면서 내가 세상의 중심이며 나의 이익이 모든 관점의 근본적인 생각이라는 통념에 반기를 들었다. 플라톤이 현실과는 다른 지향해야 할 도덕적인 세계를 '이데아'의 세계라고 했듯이 레비나스는 폐쇄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세계를 떠나서 고통받는 타자의 얼굴에서 도덕성을 찾으라고 이야기 한다.

경제적으로 빈곤한 것 보다 정신적으로 빈곤한 것이 문제다. 한때 정신적으로 몹시 피폐한 삶을 살아가는 이들을 가까이 한 적이 있었는데, 나름대로의 신념들은 가지고 있었던듯 하다. 그 신념이 때로는 이데올로기의 형태로 보전되거나 종교의 형태로 보전되어 오직 동물적인 자신만의 이익을 위해 집중되고 있었는데, 그런 상황에서 윤리성이 부실해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는것 같았다. 말 되는 합리적인 명분들을 내세운다고는 하지만 블루오션(blue ocean)을 지향하지 못하고 고통받는 인민이나 고통받는 국민을 양산하는 이념적인 정치는 윤리적이지 못하고 정당하지도 못한듯 하다.

지난 겨울 나는 몹시 추웠는데, 누군가 겨울은 추워야 한다고 씨베리아 허스키같은 소리를 하면 입장이 다르니 타인의 고통을 알아주지 않는다는 섭섭한 마음이 들기도 했던것 같다.



2016년 2월 8일 월요일

이천오백년전 / 그리스철학

http://hyeong-chun.blogspot.kr/2011/09/blog-post_2563.html

오래전 아테네를 그리스 최강의 국가로 만든 솔론의 이념 중립적인 정치철학에 대해서 매력을 느낀적이 있었다. 솔론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중용사상의 영향을 받아서 지적인 균형감각을 유지했을 거라는 내 나름대로의 추측을 해 봤는데, 아리스토텔레스는 그의 스승 플라톤의 영향을 받았고, 플라톤 또한 스승인 소크라테스의 영향을 받아서 솔론의 중립적인 정치적 결론에 다다르게 되었다는 인과의 연결고리가 맺어진다. 물론 솔론의 개혁에만 그친 것이 아니고 이후 도편추방제를 만든 클레이스테네스를 거쳐 페리클레스시대에 들어와서는 아테네는 강국 페르시아를 물리치고 최고의 전성시대를 맞이하게 된다. 그런데 그것이 무려 이천오백여년전의 이야기들이다. 일찍 일어난 인간지성을 꽃 피우기는 커녕 발전이 아닌 퇴보와 회복을 반복한 인간 지성의 우매함도 적지 않게 경험하는 경우도 있는데, 그 원인을 찾아서 먼 길을 돌아다녀봐도 결론을 알아도 결과는 볼 수 없는 지성(知性)과 우성(愚性)의 이중성을 한반도에서 경험할 수 있는 행운(?)을 얻어낸것도 이 땅에서 태어난 복(?)이려니 생각해보기도 한다.

고대 그리스는 '신화'로서 유명하지만 그 신들을 인간적인 면모를 지닌 존재로서 인간 사고의 대상으로 여긴만큼 고대그리스문화는 '인간중심적'이라고 표현한다. 그런 이유로 고대그리스인들은 철학을 발명함으로써 종교로부터 해방되어 인류문명의 각별한 시작을 알렸다. 고대 그리스철학은 논리적 사고와 그것을 표현하는 대화, 토론등을 중시하며 이성의 세계를 열었는데, 그 시발점은 소피스트들이었다. 이들은 정치가들에게 대중을 설득할 수 있는 수사학을 가르치며 생계를 유지했는데, 상대주의 철학의 특성상 기회주의적인 행동들을 많이해서 아는것이 많아서 말만 잘하는 지식인의 특성을 보여준다는 나쁜 평판이 있었다.

소피스트들의 기회주의적이고 달변의 문제점을 처음 들고 나온 철학자인 소크라테스는 정치의 도덕적근거를 밝히기 위해서 목숨까지 버리는 열정을 발휘했는데, 악법이라도 법이라는 절대주의 철학의 신념을 독배를 마시는 행동으로 보여주었다. 소크라테스는 아테네의 엘리트들이 독자적인 사고를 할 수 있도록 교육시킴으로서 아테네의 민주주의가 군중독재로 타락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 최선을 다했다고 한다.

생각해보면 똑같은 고민을 이천오백년후에 문명이 발달했다고 착각하는 이곳 저곳에서 하게 되는 일이 있었는데, 한반도의 정치적 불안정은 인간에게 지성(知性)보다 우성(愚性)이 압도할 수 있다는 좋은 예를 보여주는듯 하다. 종교와 같은 이념, 고민하지 않는 종교, 이념과 종교의 정치, 그리고 그것들의 대중정치와의 결합등의 현상들은 '현대문명'이라는 단어를 무색하게 만들기도 한다.   

2016년 2월 6일 토요일

노키아와 핀란드 그리고 교육

어느 대학의 경영학 교수가 중간고사 시험때마다 같은 문제를 출제했다. "마케팅이란 무엇인가?" 재직기간 20년동안 문제가 한결같았기때문에 학생들은 모범답안을 미리 만들어 답안을 작성하는 구태를 반복했다. 그러던 어느 날 중간고사 문제를 흑판에 쓰는데, '마'자로 시작하지 않고 '도'자로 시작해서 학생들은 가슴이 철렁했다. 문제는 "도대체 마케팅이란 무엇인가?"였다. 문제는 같아도 답은 시대나 상황에 따라서 다를 수가 있다는 우화같았다. 특히 기업경영에 있어서는 혁신의 최첨단을 걷지 않으면 생존자체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핀란드의 대표적 기업인 노키아를 통해서 알 수 있을 것 같다.

노키아는 한 때 핀란드의 경제를 짊어지고 나가는 대기업이었다. 핀란드 수출의 20퍼센트를 차지하고 있었으며 핀란드 소득세의 사분의 일을 납부하던 대기업이었다. 스마트폰이 나오기 이전의 피처폰 시절에 노키아의 핸드폰은 세계 제일의 브랜드였다. 노키아의 브랜드를 세계제일로 만드는데 공헌을 한 사람중에서 한국의 마케팅 전문가인 안석화씨가 있었음은 잘 알려져 있다. 안석화씨의 자서전 [너의 무대를 세계로 옮겨라]에 나와있는 노키아 성장기의 이야기는 혁신에 관한 모범이었던것 같다. 광고 마케팅의 대상을 장래에 핸드폰을 구입할 가능성이 있는 청소년들에게 맞추어서 새로운 수요를 창출하는 시도가 대단히 성공적이였는데, 요즘 청소년들이 어른들보다 핸드폰을 교환하는 주기가 빠른 것을 보면서 미래지향적인 혜안(慧眼)을 제대로 발휘했다는 생각이 든다.

안석화씨가 노키아 아시아태평양 본부에 첫 출근을 하던 날, 브랜드 매니저들이 모두 20대후반인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고 한다. 당시 노키아는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창조하려는 휴대폰 산업에서 혹시라도 편견이나 아집을 갖고 있을지 모를 나이든 세대들이 오히려 방해가 될 수 있다는 경영자들의 과감한 결단이 작용했다고 안석화씨는 서술하고 있다. 펄프회사로 시작하여(사실 펄프 산업은 침엽수림 지대인 핀란드의 중요한 산업이었다) 가전제품을 이것 저것 만들던 노키아를 요르마 올릴라라는 최고 경영자가 취임하여 휴대폰과 같은 미래지향적 산업에 집중하는 전략으로 바꾼것이 노키아성장의 시작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렇게 혁신적인 노키아가 피처폰산업을 고집하며 스마트폰산업에 한 발 늦어 몰락을 하게 되었고 더불어 핀란드경제에 암울한 미래를 예고하는듯 했다. 그러나 핀란드는 '노키아브릿지 프로그램'등을 통해 벤처산업을 육성하고, '슈퍼셀'이나 클래시 오브 클랜'같은 글로벌한 벤처기업이 탄생을 하면서 핀란드 경제는 큰 충격을 받지 않았다. 한때 노키아가 몰락할 당시에 핀란드경제의 어두운 미래를 예고하며 핀란드 교육시스템에 대해서도 비평을 하는 의견들을 한국의 인터넷에서 본 것 같은데, 핀란드교육의 튼튼한 기반은 거대한 경제적충격도 완화시키는 역할을 한 것 같다. 행동의 기반이 되는 사람의 생각을 만드는 교육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좋은 예가 되었다고 비약해서 생각해보는 것도 무리가 아닌듯 하다. '새로운 시작'에 대한 용기나 시도는 교육으로 만들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한 편으로는 노키아를 이긴 대표적인 기업이 한국에 있지만 만약 한국에서도 비숫한 사태가 일어 난다면 한국은 기사회생할 수 있는 역량이 있을까 하는 것은 의문이다. 이미 벤처열풍이 그냥 열풍으로 끝난 경험이 있지만 혁신의 뿌리깊은 사회적분위기가 자리잡지 못하거나 국가주도의 혁신, 대기업주도의 혁신의 한계가 가끔 보이는듯 한데, 대기업의 인재들이 많은 연봉을 찾아서 중국으로 떠나는 행태등은 자율적이지 못하고 예속과 불평등의 한국 특유의 기업문화가 만든 부작용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개인의 경제적인 성공, 돈 이런 것 보다 더 근본적인 것, 자유, 평등, 자아실현과 같은 심리적 동기를 조성해주는 교육이 바탕이 되지 않으면 '획기적인 사태'에 대한 충격에 무력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2016년 2월 5일 금요일

의욕의 군주 / 강희제

30여년전 어느 깊은 밤, 시골의 열차역에서 내려 손전등도 없이 산길을 걷고 있었다. 세상과 담을 쌓고 살아가는 부친을 만나기 위해서 두어시간 겨울바람 소리를 들으며 걷고 있었는데, 어린 나이에 무섭다기 보다 화가 났다. 도대체 부친은 뭐 때문에 저러고 계시는지, 나는 이 밤에 왜 혼자 산길을 걷고 있는지, 알것같으면서도 말로 표현을 할 수 없는 감정이 복받쳐서 숲이 우는 소리도 감성적으로 들리지 않았다. 지금은 어느 정도 알고나서 정확히 언어로서 규명하건데 단순하지 않은 민초들을 무기력하게 만드는 이념이나 정치행태는 감성적인 문제가 아니라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교정해야 할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

북한 이전 지도자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요리사였던 후지모도 겐지의 회고록을 읽은 적이 있었는데, 매우 감각적이고 감성적인 김정일 위원장은 영화, 서커스, 술, 외로움,기쁨조, 미각등과 친근한 것으로 서술되어 있었다. 그 전에도 무리해서 통큰 정치를 표방하며 동양최대의 유경호텔을 짓는다거나 아리랑대축전같은 거대공연등을 행사하는등 상징정책에 지나치게 치중하는 비합리적인 모습을 보이는 면이 있어서 비합리적인 군주로서 역할이 수백만의 인민들을 고난의 행군시기에 아사(餓死)시킨 비합리적인 결과를 이룬것은 당연한듯 싶었다. 군주국가와 같은 곳에서 군주같은 지도자의 파행은 국가와 인민의 파행을 의미하는 것은 당연했다. 후지모도 겐지는 차기 북한의 지도자로서 김정은 국방위원장을 예고하고 있었는데, 어린 나이에도 일본인인 후지모도 겐지에게 일본의 풍요로움과 북한의 궁핍함을 비교하며 여러가지 고민을 상담했던 점을 이야기하고 있다. 문제와 해결방법을 일찌감치 배려하고 있었던 점에서 김정일 위원장과 다른 점을 이야기 하고 있었다.

지나간 일은 지나간 일이고, 한국이나 북한이나 마지막 희망은 서로에게 있는듯 하다. 이념이나 권력이 중요한것도 아닌듯 하다. 심지어는 통일도 중요하지 않은듯 하다. 상호간의 협력이 가져오는 시너지 효과로 굶어죽는 인민은 없도록 하고, 불행한 국민은 행복한 국민으로 만드는 일이 한반도의 정치적인 과제인듯 하다. 내 부친은 극단적인 경우지만 한반도의 민중들은 이념, 분단, 정치행태때문에 모두 불행한 피해자가 된듯 하다.

군주이야기가 나오니 청나라 황제 강희제(재위기간 1661~1722) 생각이 난다. 강희제는 스스로가 인재다. 중국역사상 가장 위대한 군주로 알려져 있다. 청나라는 만주족이 세운 나라인데, 만주족은 한족에 비해 강건한 기상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소수의 만주족으로 백여배의 한족을 통치하기 위해서 항상 긴장을 하고 자기 성찰을 한 만주족의 황실은 매우 검소하고 절제하였다고 한다. 일설에는 청나라 황실의 일년 비용이 명나라 후궁의 일년 비용이랑 비숫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런 청나라의 황제중에서도 강희제는 더욱 엄격했다고 한다. 제대로 수면을 취할 시간도 없이 국사(國事)를 돌보며 꾸준히 무예수련을 하고, 외부 정복활동시에는 항상 친정을 하며 앞장을 섰다고 한다.

일곱살에 황제로 즉위한 이후 아버지 순치제의 유언에 따라서 색니(索尼), 소극살합(蘇克薩哈),알필륭(謁必隆), 오배(鰲拜)등의 신하가 고명대신(顧命大臣)으로 섭정을 했는데, 이들 중 오배가 정권을 가지고 있었다. 당시 청나라는 건국한지 20년이 지나지 않은 상태에서 남쪽의 삼번세력과 대만의 정성공, 서쪽의 티베트, 북쪽의 몽골족, 동북의 러시아, 서북부의 준가르부의 압박을 끊임없이 받고 있었는데, 강희제는 열여섯살이 되어서 오배일당을 제거하고 친정(親政)을 하게 되었다.

오배일당에게 실권을 빼앗긴채로 지내던 어린시절의 강희제는 정치를 하지 않는(못하는)대신 독서와 사색과 무예수련을 하면서 자유롭고 폭넓은 관점을 지닐 수 있었다고 한다. 훗날, 유학을 고증학으로 발전시킨 사고전서나 강희자전을 편찬한 실사구시의 업적을 이룬 점이나 직접 독학으로 역법을 익혀 구역법의 오류를 지적하고 신역법을 추진하여 영리한 카리스마를 보여주며 대신들을 휘어잡을 수 있었던 문리적(文理的)인 능력도 자유로운 소년기의 자발적인 교육이 만들었다고 역사가들은 말한다.

삼번의 난을 평정할때는 조정의 대신들이 오삼계의 강한 반란군에 항복할 것을 권유하거나 장강 이남의 영토를 반군에게 할양하자는 의견을 보일 정도로 어려운 처지였음에도 불구하고 인질로 북경에 남아있던 오삼계의 두 아들을 주살함으로써 배수의 진을 치고 오삼계의 강한 반군과 어쩔 수 없이 싸워야 하는 상황을 만드는 결단력을 보여줬다고 한다. 이때 상대적으로 적은 군대를 오삼계가 지휘하는 중군(中軍)을 집중적으로 공략하게 함으로써 나머지 반란군을 오합지졸로 만드는 전략을 펴서 반군을 진압했다고 한다. 이때 강희제의 나이가 28세였는데, 정치가로서 천부적인 소질이나 자발적인 교육의 결실을 일찍 보았다는 역사가들의 평이다.

현대국가의 정치지도자들이 아직도 관념이나 아집속에서 끈적거리고 있다면 강희제를 연구해보면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