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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2월 20일 토요일

북한의 사회적 분위기

운동장은 다른 장소에 비해서 많이 열린 공간이다. 협소한 분위기에 지친 사람들이 자신을 극복하는 공간이기도 하고, 타인과의 불협화음을 자기 중심적으로 풀어보는 선량한 공간이기도 하다. 그런데 언젠가 운동장에서 속칭 '텃세'라는 것을 목격한 적이 있었다. 물론 소통의 공간이 넓고 활발한 젊은 세대와는 무관하고 어느 정도 연배가 있는 사람들의 행위였다. 일터에서도 많이 목격했던 일인데, 지역사회의 특정학교 출신이나 가까운 연고등을 들먹이며 에너지싸움에 승리할려는 노력도 어느 정도 연배가 있는 사람들의 몫인것 같았다. 일터에서는 그런 상황이 닥치면 갈등상황을 피하고 독서를 하거나 젊은 이들의 생각과 많이 다르다는 의미를 애둘러서 표현하는 방법으로 사고의 경계를 벗어나게 할려고 노력했던것 같다.

사회적분위기라는 것이 있다. 국제사회든 국가사회든 지역사회든 아니면 좀 더 하위집단으로 구성된 일터속에 있는 것들이다. 그 경계내에서 통념적으로 소통되는 의사와 정보의 성질은 그 사회의 성격을 잘 나타내 주기도 한다. 때로는 그런 사회분위기가 대단히 낙관적이거나 비관적이기도 한데, 그 분위기에 따라서 미래가 결정되기도 한다. 생각해보면 내 자신은 일터나 운동장에서 낙관적인 태도를 취할려고 노력하곤 하는데, 좋은 방법중의 하나가 다른 곳의 낙관적인 사회분위기를 소개시키는 방법이었던 것 같다. 노인이 많은 일터에서는 젊은이들의 이야기를 많이하고, 또 그 반대의 경우도 있었으며, 지역사회적인 성격이 강한 지인들이나 구태를 반복하는, 안정되기는 하나 정체된 성격을 가진 직장을 다니는 지인들에게는 세계주의적인 말을 많이 하는 편이었던 것 같다. 물론 타인에 대한 염려 이전에 내 자신이 좁은 사고의 경계내에서 노니는 상황을 많이 힘들어했기 때문인것 같았다.

배운게 별로 없거나 이념적 갈등에 자신의 관점을 묶어놓거나 편협한 종교적 관점속에 정신을 묶어놓은 이들은 무리짓는 인간의 본성상 내밀한 경계속에 자신들을 묶어놓음으로써 하위사회집단의 분위기를 확고하게 하는 성향이 있는듯 하다. 그런 분위기를 가진 사회는 '개혁'이라는 변화를 '침입'이라는 의미로 곡해하여 해석하는 성향이 있는듯 하다. 인간의 정신은 변화되거나 넓은 세계를 꿈꾸지 않는 한(실행여부를 불문하고) 점점 내밀하게 침전되어 버리는 특성이 있는듯 하다. 굉장히 큰 사회집단 중에 북한사회는 그런 모습을 가장 강렬하게 가진 사회집단이 될 것이다.

강렬하게 경계지워진 하위집단의 사회적 분위기는 그 경계를 무너뜨리고 더 넓은 시공(時空)으로 향할때만 희망과 미래 또는 발전이라는 명분으로 현재의 지적인 충족감과 미래의 현실적 만족을 가져올 수 있는듯 하다. 희망없이 자신의 정신을 과거속에 가두어 놓은 사람들 속에서 오랫동안 지내본적이 있는데, 북한사회의 문제점이 무척 선명하게 해석되는듯 하였다. 인간 개인으로 보면 바람직하지 않은 특징들을 모두 가진 노인과 비교될 수 있는듯 하다. 이념문제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로 해석을 해보면 '꿈이 없는 사회'의 모습을 지닌듯 한데, 북한 이외의 다른 국가들도 그런 사회의 모습을 보이는 것을 피해야 할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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